67번째 천산갑
천쓰홍 지음, 김태성 옮김 / 민음사 / 202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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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후기를 썼던 소설 <귀신들의 땅>의 저자, 천쓰홍의 신작이 나왔다. 이번에도 제목이 심상치 않다.

천산갑이 뭐지? 생소한 이름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찾아보니 아르마딜로와 비슷하게 생긴 동물이었다. 동물 이름이 참 거창하다고 생각했다. 도대체 저자는 왜 동물의 이름으로 제목을 지었을까? 호기심은 더해갔다.

주인공은 그와 그녀

주인공 '그'는 말이 없는 인물이다. 속으로는 많은 생각들이 실타래처럼 얽혀 있는데, 도통 말을 하지 않는다. 말이 없는 성격적 특성상 아웃사이더의 삶을 살아갈 것 같지만, 반은 맞고 반은 틀린 이야기이다. 그의 주변엔 그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또 한 명의 주인공 '그녀' 역시 그를 사랑하는 사람들 중 한 명이다. 심지어 그의 곁에서 잠을 자야 비로소 진정한 잠에 들 수 있다. 침대가 작고 불편해도 상관없다. 그가 곁에 있으면, 비가 오는 놀이터에서도 잠에 들 수 있을 것이다.

그와 그녀는 모두 타이베이 출신이다. 하지만 소설이 흘러가는 배경은 프랑스 파리이다. 하지만 우리가 흔히 아는 아름답고 낭만적인 파리가 아닌 춥고 을씨년스러운 파리가 배경이다. 그리고 자꾸만 비가 내린다.

천쓰홍만의 독특한 스토리텔링

천쓰홍의 스토리텔링은 독특한 부분이 있다. 책을 읽기 시작하면, 처음에는 그저 인물과 상황을 묘사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다 문득, 툭-하고 중요한 정보가 흘러나온다. 인물의 역사, 배경, 사연 등이 한 번에 등장하는 것이 아닌 한 겹 한 겹 무심하게 밝혀진다. 지난번 책에서도 느낀 부분이어서, 어쩌면 천쓰홍 작법의 스타일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보았다.

서평을 쓰다 보면, 책의 서두부터 어떤 말을 하려는지 알 수 있는 책들이 있다. 솔직히 그런 책들에 고마운 마음이 드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천쓰홍의 책은 조금만 읽어선, 작가가 풀어내려는 이야기가 무엇인지 정확하게 파악하는 것이 쉽지 않다. 인내가 필요한 소설이라고 말하고 싶다. 특히 이번 책 <67번째 천산갑>에선 묘사에 할애한 문장의 비중이 높아 독서의 속도가 더욱 천천히 흘러갔다. 하지만 지루하진 않았다. 저자의 번뜩이는 비유가 참 흥미로웠기 때문이다.

여성과 게이

책의 주인공 그는 게이, 그녀는 헤테로이다. 두 사람의 인연은 어렸을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어린 시절, 함께 매트리스 광고를 찍은 것이 계기가 되었다. 그는 산골 소년이었으나, 그녀는 도시 소녀였다. 소설은 광고 촬영이 아니었다면 결코 만날 일이 없었을 두 사람이 우연한 계기로 중년이 된 지금 다시 만난 이야기를 담고 있다.

그녀의 어머니는 그녀를 스타로 만들고 싶었다. 열심히 오디션장에 참석하던 중 매트리스 광고를 찍게 되었고, 그곳에서 그와 함께 매트리스에서 잠을 자는 모습이 광고로 만들어졌다.

낯선 남자아이와 침대 위에서 함께 잠을 자는 모습을 본 사람들은 그녀를 놀리기 시작했다. '어린 녀석이 벌써부터 남자를 밝힌다'라고 손가락질했다.

그런 사람들 속에서 소녀의 분노는 금붕어에게로 옮겨갔다. 자신을 아프게 한 사람들의 얼굴을 떠올리며 금붕어를 차근차근 죽여나갔다.

그녀는 그를 만나 물었다. 너도 금붕어를 죽이고 있느냐고.

하지만 그는 굳이 금붕어를 죽일 필요가 없었다. 자신에게 손가락질하는 사람이 없었으니까.

성별이 다르기 때문에, 같은 일을 겪고도 다른 대우를 받는다. 심지어 여성이 남성보다 훨씬 더 매력적인 인물이래도, 사랑스러운 인물이래도 여성이라는 이유로 차별을 받는 상황이 펼쳐진다. 이처럼 소설 <67번째 천산갑>에는 여성이 경험하는 부조리가 현실적으로 담겨 있다. 그리고 이는 소설의 배경인 대만과 한국 사이에 큰 차이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차별은 성별에서만 일어나지 않는다. 게이인 그 역시 사회의 주류에 속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인다. 그가 거주하는 아파트가 파리의 뒷골목에 위치한다는 것부터, 그는 아름다운 파리의 모습은 볼 수 없는 배척된 존재라는 의미를 담는다.

두 사람의 물리적 한계는 결코 그들을 이 사회의 주류로 세우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사실은 그녀가 오직 그의 곁에서만 깊은 잠을 잘 수 있다는 현실과 이어진다. 그녀에게 그는 잘 보이기 위한 노력이 필요 없는 사람이다. 그녀 주변에는 몇 없는,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보여줄 수 있는 사람이다. 너무도 특별한 우정, 더 이상 놓치고 싶지 않은 우정이다.

과연 이야기의 끝은 어떻게 될까? 이는 당신의 몫으로 남겨두겠다. 이전 천쓰홍의 작품을 읽어 본 사람, 그리고 그의 작법을 경험해 본 사람들은 소설의 주제와 소재에 집중하여 독서를 하면 좋을 것 같다. 만일 이번이 첫 입문이라면, 그의 집필 스타일을 천천히 음미하며 소설을 읽어 내려가길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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