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원 - 리더십이란 무엇인가 인문플러스 동양고전 100선
문이원 엮음, 신연우 감수, 제갈량 / 동아일보사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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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은이가 제갈량. 더 이상 말이 필요 없다. 잔뜩 기대에 차서 달려든다. 이내 흥분이 가라앉는다. 평범하다. 참고 읽는다. 상식적이다. 계속 읽는다. 지극히 상식적이고 평범하다. 사람인지 귀신인지 모를 정도라던 전쟁의 신 제갈량이 쓴 장수에 관한 이야기가 이토록 상식적이고 평범하다니. 뭔가 문제가 있다. 제갈량에게? 아니 나에게!

 

뭘까? 도대체 무엇이 천하의 제갈량이 쓴 장군이야기, 장원을 지루하고 평범하게 만드는 걸까? 우선, 제갈량의 현실과 나의 현실은 달라도 너무 다르다. 제갈량은 일상이 전쟁이다. 그는 항상 시퍼런 칼과 활로 무장한 사람들과 일한다. 음모와 암살의 위험이 항상 도사리고 있다. 시체에서 흘러나온 피와 뭉개진 살이 보통 풍경이다. 한 번의 실수는 곧 죽음이다. 몰살이다. 상식과 원칙은 없는 것이 편하다.

 

제갈량은 알았다. 장군들은 살육이라는 극도의 공포와 흥분상태에 있다. 될 대로 되라 하기 십상이다. 윤리와 도덕은 승리를 위해 언제든지 땅바닥에 버려질 수 있다. 원칙과 상식은 사치다. 일단 이기고 보자. 내일은 없다. 하지만 이래선 언제 끝날지 모르는 전쟁에서 이길 수 없다.

 

전쟁도 사람이 한다. 사람이 가장 중요하다. 군대도 인간 조직이다. 리더가 가장 중요하다. 이 책이 리더십 관점에서 해설을 붙인 이유다. 제갈량은 조직과 행동 심리학의 대가다. 조직에서 리더가 어떻게 생각하고 행동해야 할지 안다. 인간이 무엇을 좋아하고 싫어하는지 안다. 그래서 장원은 공자님 말씀처럼 들리지만 살 떨리는 원칙이요, 전략적인 상식이다.

 

자신이 죽을 수도 있는 상황에서 명령에 따라 진격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이래 죽으나 저래 죽으나 매 한가지라면 도망칠 수도 있지 않은가? 어째서 충성하는가? 그건 나를 알아주는 누군가 때문이다.

 

장군은 병사를 인정해 줘야 한다. 장군은 자기 마음 내키는 대로 상이나 벌을 내려선 안 된다. 장군은 자상함과 엄격함의 균형이 있어야 한다. 장군은 부하에게도 예를 갖춰야 한다. 분명한 명분과 윤리의식으로 부하의 정체성을 튼튼히 잡아주지 않는다면 생존 본능에 따라 어떤 돌출행동이 나올지 모른다. 제갈량이 정확하게 꿰뚫고 있는 부분이다. 장군이 갖추어야 할, 혹은 제거해야 할 요소들을 한 마디로 요약한다면 사람중심의 균형감각을 확보하라이다.

 

독자의 현실은 이와는 달라도 너무 다르다. 정해진 시간과 장소에서 늘 같은 사람과 같은 일을 하는 기계 같은 현실. 그 속에서 제갈량, 전쟁, 장수라는 단어를 통해 어떤 기대를 할지는 뻔하다. SF무협 판타지와 같은 기상천외한 절대고수의 치명적 전략을 꿈꾼다. 원칙과 상식에 얽매인 리더는 널려 있다. 당연히 싱겁고 재미없다. 제갈량의 현실과 회사원의 현실이 빚어낸 전율과 하품 사이에서 장원의 메시지는 무미건조하게 울린다. 제갈량에게 무슨 죄가 있겠나. 죄가 있다면 팍팍한 현실을 퍽퍽하게 살고 있는 나에게 있다. 사람 무서운 줄 모르고 돈만 보고 살아온 탓이다.

 

책은 원문을 충실하게 해석한 후, 리더십 관점으로 풀어내 해석으로 구성되어 있다. 편저자가 들어 올린 반짝이는 통찰을 발견할 때마다 기쁘고 놀라웠다. 삶의 맥락에 따라 고전은 분명 총명하게 깨어있음을 보여주는 증거이기 때문이다.

 

눈앞 현실에 허둥대지 않으려면 올곧은 사람됨을 마음에 그려 놓고 있어야 한다. 전쟁 중인 장군님도 회의 중인 회사원도 마찬가지다. 따지고 보면 하늘 아래 안전한 곳은 없다. 바르고 옳은 길을 걷는 사람이 있다. 제갈량은 장원에서 전쟁 중에도 잊지 말아야 할 사람의 이데아를 그려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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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자 - 쉽게 읽고 되새기는 고전 클래식 브라운 시리즈 4
맹자 원작, 신창호 지음 / 생각정거장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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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연 아는 만큼 보일까?

혹시 믿는 대로 보이는 건 아닐까?

 

맹자는 사람은 본래 착해요라는 믿음으로 세상을 봤다. 쉽진 않았다. 당시 세상은 피와 살이 썩어가는 전쟁 통이었기 때문이다. 노인과 아이의 시체가 도랑을 메웠다. 시체 썩는 냄새가 진동하는 현실 속에서 성선설(性善說)을 줄기차게 주장했다면 확고한 이유가 없을 수 없다.

 

쉽게 읽고 되새기는 고전, 맹자는 그 이유를 양심회복이라고 단언한다. 그것도 여러 번. 맹자는 전쟁을 끝내기 위한 비책을 양심회복에서 찾았다. 왕도, 호연지기, 대장부, 부동심, 지언, 양능, 양지 등 맹자가 강조한 모든 개념들은 양심회복에서 출발한다. 타고난 착한 양심대로 살면 왕은 패도정치를 하래야 할 수 없다. 본디 착한 마음으로 살면 사소한 이권(利權)따위에 흔들리지 않는다. 양심은 양심과 통하기 때문에 화려한 말재주나 논쟁이 필요 없다. 양심대로 산다면 대장부처럼 떳떳하다.

 

상황을 구체화해 보자. 당신은 지금 전쟁 중인 나라의 왕이다. 맹자가 찾아왔다. 그가 말한다. 사람은 원래 착한 양심을 가지고 태어났다. 양심대로 정치하고, 양심대로 세금을 거두고, 양심대로 군사를 일으킨다면 만사 OK! 어때, ?

 

당신이라면 맹자를 채용할까? 솔직히 나는 맹자를 채용하기 싫다. 오히려 한비자나 마키아벨리처럼 눈에 보이는 현상과 맞아떨어지는 말을 하는 사람을 옆에 두고 싶다. 이 부분이 오늘날 맹자를 읽어야 하는 이유다.

 

ROI(Return of Investment)라는 개념이 있다. 투자해서 뭘 얻었느냐를 따지는 개념이다. ROI는 합리적 인간이라면 가져야 할 필수 DNA. 열심히 공부했다면 성적이 올라야 하고, 열심히 일했다면 성과가 나와야 하지 않겠는가? 맹자에게 물어보자.

선생님, 양심에 따라 살고자 열심히 노력하면 뭐가 남나요?”

 

맹자의 답변은 명쾌하다. “何必曰利?”

왜 너는 이익만 따지느냐라는 뜻이다.

사실 이 말은 양나라 혜왕이 먼 길 달려온 맹자에게 던진 叟不遠千里而來 亦有以利吾國乎?’에 대한 대답이다. 양혜왕도 ROI가 튀어나왔다. 맹자가 응수했다.

왜 하필 이익을 말씀 하시나요? 인의(仁義)가 있을 뿐입니다.(何必曰利 仁義而已矣.)

 

책을 읽는 내내 ‘ROI’何必曰利사이에서 갈등했다. 호연지기도 좋고, 대장부도 좋다. 하지만 시장자본주의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에게 양심이란 ROI가 아닐까? 막스 베버의 설명대로, 개신교의 천직 사상은 자본주의를 윤리적으로 해방시켜주지 않았나? 우리는 많이 소유할수록 구원받은 쪽에 가깝지 않은가? 구원받은 자는 정의()롭지 않은가?

 

맹자. 이익을 따져서는 전쟁을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없다고 간파한 현실주의자. 그는 이상주의자가 아니다. 어쩌면 ROI에 집착하고 있는 우리가 이상주의자에 가깝다. 이익 있는 곳에 평화가 깃들 것이라고 믿는 자가 이상주의자 아니라면 누가 이상주의자이겠는가. 차라리 당장 눈에 보이는 성과가 없더라도 양심에 호소하는 편이 본질적이고 현실적이다. 이런 점에서 맹자는 무섭다.

 

고전 맹자를 다소 길지만 문맥에 맞게 적절히 인용한 부분이 이 책의 장점이다. 저자의 주관적인 묵상이 전혀 없진 않지만, 전체적으로 맹자의 사상을 문헌에 기초해서 잘 전달하고 있다고 생각된다.

 

사람을 어떻게 바라보는가에 따라 극적으로 갈라지는 세계관.

이제 맹자를 덮으면서 자문해본다.

사람, 믿을만한가?

세상, 살만한가?

나는, 뭘 믿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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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자의 인생 강의 - 논어, 인간의 길을 묻다
신정근 지음 / 휴머니스트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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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자가 무슨 말을 해주긴 해줄까?”

책제목이 공자의 인생강의란다. 인생처럼 식상한 질문이 또 있을까? 공자처럼 쾌쾌 묵은 인물이 또 있을까? 쾌쾌 묵은 인물이 식상한 질문에 뭐라 대답할지는 너무나도 뻔하다. “똑바로 살아라!”

 

만약 저자가 다른 분이었다면 이 책을 선택하지 않았을 공산이 크다. 신정근 교수님은 노련하다. 누가 이 책을 읽을지 잘 안다. 앞서 말한 푸념 정도는 충분히 예상하고 있었다. 서문부터 잡도리가 예사롭지 않다. “어이, ! ()과 백()을 아는가?”

 

우리 조상들은 사람이 죽으면 혼은 하늘로, 백은 땅으로 간다고 믿었다. 혼을 모신 곳이 사당(위패)이요, 백이 가는 곳이 무덤()이다. 그러나 현대인에게 사당은 없다. 조상들은 집을 지을 때 사당을 가장 먼저 짓고 위패를 모셨다. 어려운 일이 있을 때마다 조상님께 가르침을 구했다. 우리에겐 무덤만 남았다. 뼛가루가 담긴 상자를 보면서 통곡할 뿐이다. 속은 후련해질지 몰라도 가르침은 들을 수 없다.

 

EBS 특강으로 신정근 교수가 공자의 논어를 선택한 이유다. 살면서 정말 중요할 때, 올곧은 말씀 한마디 여쭐 어른이 없는 시대. 정신은 없고 뼈만 남은 시대에 현대인들에게 들려줄 인생 강의로 논어만 한 텍스트가 또 있을까.

 

책은 논어 전체를 학(), (), (), 군자(君子), (), (), () 등 총 여섯 가지 범주로 풀어냈다. 말 그대로 풀었다. 우리가 지금 쓰고 있는 개념 폭에 쏙 들어온다. 예를 들면 이렇다. 배움이란 무엇인가? 질문이다! 시시각각 변하는 세상 속에서 만사형통한 정답을 구하는 태도는 공부하는 자세가 아니다. 변화 속도에 맞게 계속 질문하는 것, 그것이 곧 배움이다. 정치란 무엇인가? 바른 것이다. 바름은 무엇인가? 가까운 사람을 기쁘게 만들고 먼 곳에 사는 사람들을 이민 오게끔 만드는 매력이다. 논어가 본래 현실적인 글이었는지 아니면 해설이 탁월한 탓인지 잘 모르겠지만, 읽는 사람 입장에서는 살갑고 흐뭇하다.


이 책은 말이 바탕이다. 강연을 녹취한 책이라 잘 읽힌다. 글로 옮기면서 뉘앙스를 살려 다듬었다. 공자 인생을 그림으로 요약한 공자성적도(孔子聖跡圖)는 몰입도를 높인다.

 

특별히 이 책을 통해 공자의 새로운 모습도 알게 되었는데, 그 첫째가 知其不可而爲知者이다. 공자의 제자인 자로가 석문을 지키고 있는 문지가와 나눈 대화 중, 문지기가 공자를 설명한 대목이다. 불가능한 줄 알면서도 시도하는 사람! 공자도 당시에는 환영받지 못했다. 문지기도 그의 사상이 현실적이지 않았다는 걸 알았다. 시류에 맞는 사람은 역사가 기억하지 않는 법. 시대와 갈등했지만 역사적으로 환영받아 새롭게 태어난 사람이 위인이라면, 우린 당장 뜨고 싶어 환장한 광대가 아닐까 씁쓸하다.

 

또 다른 공자의 새로운 모습은 매우 현실적이다.

富而可求也, 雖執鞭之士, 吾亦爲之; 如不可求, 從吾所好.

부자 되는 것이 옳다면 나는 시장에서 채찍질하는 직업이라도 마다하지 않겠다. 그러나 그것이 옳지 않은 일이라면, 나는 내가 좋아하는 것을 하겠다.

 

공자도 생계와 열정 사이에서 고민했다. 해법이 달랐다. 공자는 부를 쫓는 인생을 옳지 않다고 생각했다. 옳지 않다면 달리 고민할 이유가 없다. 그냥 좋아하는 일을 따라가면 된다. 공자식 단순 선택이 나에겐 한없이 어렵다. 이 어려움은 길들여진 습관으로부터 나온다. 패러다임에서 벗어나기 위해 나는, 책장을 앞으로 넘긴다. 배움! 계속해서 질문하고 질문하고 또 질문하라. 공자는 나를 이렇게 위로했다.

 

소인배를 어떻게 다룰 것인가가 동양고전을 읽어내는 중요한 키워드 중 하나라고 한다. 소인배는 생계만을 위해 습관적으로 정해진 길을 오고가는 누군가에게 어울리는 이름이다. 반면, 군자란 먹고사는 것 외에 다른 의미와 목적 때문에 불가능한 줄 알면서도 정해지지 않은 길을 걸어가는 사람이다. 자신의 삶을 손수 디자인하는 사람이 바로 군자다. 타인에게 제작당한 삶이 바로 소인배다. , 그럼 이제 어쩔 셈인가?

 

짧고 잘 읽히는 책이다. 하지만, 나를 비취는 거울 같아 다 읽고서도 툭 던질 수 없다. 살면서 어른이 그리울 때마다 다시 읽고 싶은 책이다. 마치 조상을 모신 사당을 찾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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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 관우의 인성인문학
나채훈 지음 / 보아스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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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 관우(關羽)와 함께 부산으로

 

삼국지는 안다. 물론 관우도 안다. 인문학도 익숙하다. 그런데 인성인문학은 처음이다. 인성인문학이란 무엇을 뜻할까? 인성(人性)을 사람다움에 대한 생각으로, 인문학을 고유한 인간 가치에 대한 생각 틀로 이해한다면, 인성인문학은 가치 있는 사람다움에 관한 체계적인 생각쯤 되겠다. 저자는 관우를 통해서 가치 있는 사람다움을 발견하고 우리가 잃어버린 그 무엇을 제시하고자 한다.

 

삼국지 관우를 떠올리면서 내놓는 인성인문학이니까 순서상 과거 중국인들이 생각한 사람다움에 대해 먼저 보자. 그들은 인성을 어떻게 이해했을까? 인의예지신(仁義禮知信)으로 이해했다. 관우는 이 중에서 어떤 인성을 대표할까? 의와 신이다. 저자는 의와 신을 의협(義俠)으로 풀어간다. 의협(義俠)이란 뭘까? 사전적으로 정의를 위하여 강자에 맞서서 약자를 도와줌또는 체면을 중히 여기고 신의를 지키는 일이라는 뜻이다.

 

책은 여러 자료에 기록된 신의와 정의의 사도, 관우의 행적을 시간 순서로 전개한다. 정식으로 인정되는 역사책 삼국지, 이를 바탕으로 나관중이 지은 소설 삼국지연의, 중국의 향토사학자를 포함한 현대 역사학자들의 의견까지 관우의 면면을 의협(義俠)으로 풀어낸다.

 

관운장천리독행이나 한수후오관참육장으로 대표되는 유비를 향한 충절, 조조가 관우를 시험하기 위해 이용한 여포의 아내 초선을 단칼에 베어버린 일, 은혜를 갚기 위해 제갈량의 명을 어기고 화용도에서 조조를 살려준 일, 형주에서 손권에게 죽을 때 까지 잃지 않았던 기개 등이 마치 관우를 주인공으로 삼국지를 재구성한 느낌이다.

 

저자 지적대로 어떤 사건은 충과 신이 대립하고, 또 어떤 사건은 신격화할 필요가 있을까 싶을 정도로 평범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관우는 인성인문학을 설명하는데 여전히 유효하다. 그 이유는 무얼까?

 

영화 부산행이 흥행 중이다. 부산행은 좀비(Zombie) 영화다. 좀비는 생명 없는 움직임으로 요약된다. 먹고 마시고 팔 다리를 움직인다고 해서 모두 살아있다고 할 수 없음을 보여주는 캐릭터가 바로 좀비다. 좀비는 언제 움직이는가? 진짜 생명을 사냥할 때다. 너는 뭔데 살아있느냐며 달려든다. ‘죽은 듯 살라고 위협한다. 전염된 바이러스는 내재된 본능, 이기심을 드러내는 계기일 뿐, 물고 물리는 노예 사슬의 근본 원인은 아니다.

 

부산행 열차에 관우가 타고 있다고 상상해 보자. 관우와 좀비는 어떤 면에서 다른가? 관우는 살아있음을 단순히 목숨에서 찾지 않았다. 관우는 유비와 조조 등 다른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 자기답게 살아있음을 찾았다. 나와 내 가족만을 위해 문을 걸어 잠그거나 꼼수를 쓰지 않는다. 내가 살기 위해 너의 목덜미를 노리는 욕망은 무덤과 시체의 것이다. 사람다움은 투자관계를 넘어 선다. 부산행 열차와 같은 오늘, 관우는 우리를 청룡언월도로 베지 않는다. 의로움과 용기라는 사람다움으로 스스로를 베라고 말한다. 스스로를 베라! 이것이 인간만이 그릴 수 있는 아름다움이다.

 

사람으로 태어나 신이 된 관우. 그가 오늘 나에게 인간으로, 자기 자신으로 살라고 호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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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관정요 - 열린 정치와 소통하는 리더십의 고전 명역고전 시리즈
오긍 지음, 김원중 옮김 / 휴머니스트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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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정관정요를 읽고

 

군주 된 자가 말을 하는 것은 정말로 쉽지 않소!”

 

왜 일까? 군주로서 옳은 말을 하고 싶기 때문이다. 군주로서 옳음이란 또 무엇인가? 경전에 기록되었거나 고사에 등장하는 옛 성현들의 언행이다. 그렇다면 옳지 않음이란 무엇인가? 진시황이나 수양제처럼 욕 많이 먹는 왕들의 언행이다.

 

정관정요는 군주의 옳은 언행을 이야기 한다. 책의 부제는 옳음을 열림과 소통으로 풀었다. 시대를 읽은 탁견이다. 문제는 옳음의 기준이 뭇 백성의 눈으로 볼 때 지극히 상식 수준이라는 점이다. 평범한 상식적 행동이 고도의 윤리적 행위로 전환되는 것은 오직 군주라는 신분 때문이다. 중국의 황제가 약혼자가 있는 여자와 결혼하지 않는 것, 약속된 절차와 순서를 따르는 것, 과도한 사치를 하지 않는 것, 자신을 비방하는 것을 겸허하게 받아들이는 것 등이 높이 칭송되고 후세에 전할 만한 열림과 소통이 되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 대답은 단순하다. 황제니까! 천자니까! 황제는 마음만 먹으면 그 어떤 짓을 하더라도 누가 뭐라고 할 수 없는 절대 권력이니까! 황제께서 이 정도 했으면 할 만큼 한 것 아니냐는 전제가 깔려 있는 것이다.

 

그러나 옳음의 기준이 사람마다 달라진다면, 즉 상대적이라면, 그 옳음은 기준으로서 이미 죽은 것이다. 사람에 따라 늘었다 줄었다 달라지는 자와 저울을 어디에 쓰겠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황제와 뭇 백성의 윤리적 행위가 다르게 평가되는 것이 당연히 접수된다는 사실은 친()권력적인 편향된 윤리기준이 이미 우리 속에 자리 잡고 있다는 증거다.

 

사실 이런 논의는 정관정요의 주인공을 당태종 이세민이라고 볼 때 가능한 비판이다. 하지만 필자가 볼 때 정관정요의 사실상의 주인공은 300번 넘게 간언하고 있는 위징이다. 보자. 이세민이 누구인가? 형과 아우를 계획적으로 살해하고 패권을 차지한 극악무도한 황제다. 아무리 공자와 맹자의 말씀을 술술 외우더라도 신하된 자로서 두려울 수밖에 없는 치명적 과거의 소유자다. 그러므로 이세민의 덕치(德治)와 인치(仁治)를 곧이곧대로 받아들이기엔 무리가 있다.

 

나아가 이징이 누구던가? 이징은 이세민의 라이벌이었던 형님의 책사이다. 형님과 패권을 경쟁할 때는 실로 눈엣 가시였다. 이징의 사리분별력을 고려할 때 이세민이 자신을 어떻게 보고 있을지는 불 보듯 뻔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징은 이세민의 가족들 문제부터 태종의 공적을 높이고자 하는 행사까지 사사건건 반대한다. 죽이고 싶을 정도로 시시콜콜 옳은 말만 한다.

 

이쯤 되면, 정관정요를 지은 오긍의 속내가 보인다. 오긍이 정관정요를 지어 바치고자 했던 중종은 공포정치의 대명사 측천무후에 의해 어린 나이에 제위에 오른 자다. 오긍은 무후의 전횡에 대해 비판 의식을 가지고 뭔가 새로운 대안을 제시하고자 한 것이다. 그러나 중종은 황후 위씨에게 시해되고, 정관정요가 빛을 본 것은 당나라 현종 때였으며, 오긍이 이 때 지은 정관정요의 서()가 번역되어 이 책에도 소개되어 있다.

 

그렇다면, 오긍은 절대 권력의 전횡에 맞서 어떤 대안을 이야기 하고 싶었던 걸까? 오긍이 보기에 당시 당나라에게 필요한 것은 절대 군주의 통치술이나 개방적이고 군자다운 면면보다는, 위징처럼 눈치 보지 않고 입바른 소리할 수 있는 신권(臣權)의 등장이었다. 신권이란 무엇인가? 왕권의 영원한 라이벌 아닌가? 신권도 당시에는 크게 두 부류로 나뉜다. 하나는 지방 명문세력에서 출발하여 성장한 신권이고, 다른 하나는 이들을 견제하기 위해 과거시험을 통하여 중앙에 등용된 이른바, () 계층이 그것이다.

 

오긍은 태어날 때부터 절대 왕권이 기고만장한 시대를 살았다. 오긍은 위징을 앞세워 사() 계층의 등용과 성장만이 현재 당나라를 보다 안정적으로 발전시키는 방안임을 정관정요를 통해 완곡하게 주장하고 있다고 읽힌다. 게다가 정관정요에 등장하는 대화는 불과 50여 년 전, 당나라를 세운 태종의 일이니 상투적으로 거론되는 고사의 미담과는 차원이 다른 최신 모범 사례인 셈이다. 오긍은 현재 당나라의 왕권을 견제하고 균형 잡기 위한 합리적 신권이 없음을 알리면서 그 신권의 부흥을 책임질 사람으로 자신과 같은 사()계층을 자천(自薦)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오긍은 현종에게 바친 서문에서 정관정요의 목적은 권선징악이라고 했다. 여기서 선과 악을 가르는 현실 정치의 기준은 다름 아닌 죽은 신권을 되살릴 수 있는지 여부가 아니었을까? 그렇다. 정관정요의 핵심 주제는 절대왕권의 신권 보장인 것이다. 그렇다면 이 글을 읽었을 현종은 어떻게 해야 할까? 오긍은 옆구리를 꾹 찌르면서 말한다. “신하는 군주하기 나름이다.”

 

열린 정치와 소통하는 리더십의 고전이라는 부제를 달고 나온 정관정요. 사실상 열릴 수 없는 절대 왕권의 시대에 신권의 부활을 꿈꾸는 한 사관(史官)의 신선한 도전이 돋보인다. 심리적 관계론인 유학 속에서 피어난 전략적 글쓰기의 모범으로, 오히려 한비자보다 오묘하고 영리하다. 이러한 고전번역을 새벽마다 하신 지 20년이 넘으셨다는 김원중 교수님의 노고에 머리가 숙여진다. 책의 번역이나 해제 그리고 편집까지 나에겐 전혀 손색이 없다. 위징 뒤에 숨은 오긍과 이야기했던 기억이 오래도록 잊혀 지지 않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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