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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자의 인생 강의 - 논어, 인간의 길을 묻다
신정근 지음 / 휴머니스트 / 2016년 7월
평점 :
품절
“공자가 무슨 말을 해주긴 해줄까?”
책제목이 「공자의 인생강의」란다. 인생처럼 식상한 질문이 또 있을까? 공자처럼 쾌쾌 묵은 인물이 또 있을까? 쾌쾌 묵은 인물이 식상한 질문에 뭐라 대답할지는 너무나도 뻔하다. “똑바로 살아라!”
만약 저자가 다른 분이었다면 이 책을 선택하지 않았을 공산이 크다. 신정근 교수님은 노련하다. 누가 이 책을 읽을지 잘 안다. 앞서 말한 푸념 정도는 충분히 예상하고 있었다. 서문부터 잡도리가 예사롭지 않다. “어이, 너! 혼(魂)과 백(魄)을 아는가?”
우리 조상들은 사람이 죽으면 혼은 하늘로, 백은 땅으로 간다고 믿었다. 혼을 모신 곳이 사당(위패)이요, 백이 가는 곳이 무덤(관)이다. 그러나 현대인에게 사당은 없다. 조상들은 집을 지을 때 사당을 가장 먼저 짓고 위패를 모셨다. 어려운 일이 있을 때마다 조상님께 가르침을 구했다. 우리에겐 무덤만 남았다. 뼛가루가 담긴 상자를 보면서 통곡할 뿐이다. 속은 후련해질지 몰라도 가르침은 들을 수 없다.
EBS 특강으로 신정근 교수가 공자의 논어를 선택한 이유다. 살면서 정말 중요할 때, 올곧은 말씀 한마디 여쭐 어른이 없는 시대. 정신은 없고 뼈만 남은 시대에 현대인들에게 들려줄 인생 강의로 논어만 한 텍스트가 또 있을까.
책은 논어 전체를 학(學), 정(政), 서(恕), 군자(君子), 예(禮), 신(信), 인(人) 등 총 여섯 가지 범주로 풀어냈다. 말 그대로 풀었다. 우리가 지금 쓰고 있는 개념 폭에 쏙 들어온다. 예를 들면 이렇다. 배움이란 무엇인가? 질문이다! 시시각각 변하는 세상 속에서 만사형통한 정답을 구하는 태도는 공부하는 자세가 아니다. 변화 속도에 맞게 계속 질문하는 것, 그것이 곧 배움이다. 정치란 무엇인가? 바른 것이다. 바름은 무엇인가? 가까운 사람을 기쁘게 만들고 먼 곳에 사는 사람들을 이민 오게끔 만드는 매력이다. 논어가 본래 현실적인 글이었는지 아니면 해설이 탁월한 탓인지 잘 모르겠지만, 읽는 사람 입장에서는 살갑고 흐뭇하다.
이 책은 말이 바탕이다. 강연을 녹취한 책이라 잘 읽힌다. 글로 옮기면서 뉘앙스를 살려 다듬었다. 공자 인생을 그림으로 요약한 공자성적도(孔子聖跡圖)는 몰입도를 높인다.
특별히 이 책을 통해 공자의 새로운 모습도 알게 되었는데, 그 첫째가 “知其不可而爲知者”이다. 공자의 제자인 자로가 석문을 지키고 있는 문지가와 나눈 대화 중, 문지기가 공자를 설명한 대목이다. 불가능한 줄 알면서도 시도하는 사람! 공자도 당시에는 환영받지 못했다. 문지기도 그의 사상이 현실적이지 않았다는 걸 알았다. 시류에 맞는 사람은 역사가 기억하지 않는 법. 시대와 갈등했지만 역사적으로 환영받아 새롭게 태어난 사람이 ‘위인’ 이라면, 우린 당장 뜨고 싶어 환장한 광대가 아닐까 씁쓸하다.
또 다른 공자의 새로운 모습은 매우 현실적이다.
富而可求也, 雖執鞭之士, 吾亦爲之; 如不可求, 從吾所好.
부자 되는 것이 옳다면 나는 시장에서 채찍질하는 직업이라도 마다하지 않겠다. 그러나 그것이 옳지 않은 일이라면, 나는 내가 좋아하는 것을 하겠다.
공자도 생계와 열정 사이에서 고민했다. 해법이 달랐다. 공자는 부를 쫓는 인생을 옳지 않다고 생각했다. 옳지 않다면 달리 고민할 이유가 없다. 그냥 좋아하는 일을 따라가면 된다. 공자식 단순 선택이 나에겐 한없이 어렵다. 이 어려움은 길들여진 습관으로부터 나온다. 패러다임에서 벗어나기 위해 나는, 책장을 앞으로 넘긴다. 배움! 계속해서 질문하고 질문하고 또 질문하라. 공자는 나를 이렇게 위로했다.
소인배를 어떻게 다룰 것인가가 동양고전을 읽어내는 중요한 키워드 중 하나라고 한다. 소인배는 생계만을 위해 습관적으로 정해진 길을 오고가는 누군가에게 어울리는 이름이다. 반면, 군자란 먹고사는 것 외에 다른 의미와 목적 때문에 불가능한 줄 알면서도 정해지지 않은 길을 걸어가는 사람이다. 자신의 삶을 손수 디자인하는 사람이 바로 군자다. 타인에게 제작당한 삶이 바로 소인배다. 자, 그럼 이제 어쩔 셈인가?
짧고 잘 읽히는 책이다. 하지만, 나를 비취는 거울 같아 다 읽고서도 툭 던질 수 없다. 살면서 어른이 그리울 때마다 다시 읽고 싶은 책이다. 마치 조상을 모신 사당을 찾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