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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원 - 리더십이란 무엇인가 ㅣ 인문플러스 동양고전 100선
문이원 엮음, 신연우 감수, 제갈량 / 동아일보사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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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지은이가 제갈량. 더 이상 말이 필요 없다. 잔뜩 기대에 차서 달려든다. 이내 흥분이 가라앉는다. 평범하다. 참고 읽는다. 상식적이다. 계속 읽는다. 지극히 상식적이고 평범하다. 사람인지 귀신인지 모를 정도라던 전쟁의 신 제갈량이 쓴 장수에 관한 이야기가 이토록 상식적이고 평범하다니. 뭔가 문제가 있다. 제갈량에게? 아니 나에게!
뭘까? 도대체 무엇이 천하의 제갈량이 쓴 장군이야기, 『장원』을 지루하고 평범하게 만드는 걸까? 우선, 제갈량의 현실과 나의 현실은 달라도 너무 다르다. 제갈량은 일상이 전쟁이다. 그는 항상 시퍼런 칼과 활로 무장한 사람들과 일한다. 음모와 암살의 위험이 항상 도사리고 있다. 시체에서 흘러나온 피와 뭉개진 살이 보통 풍경이다. 한 번의 실수는 곧 죽음이다. 몰살이다. 상식과 원칙은 없는 것이 편하다.
제갈량은 알았다. 장군들은 살육이라는 극도의 공포와 흥분상태에 있다. 될 대로 되라 하기 십상이다. 윤리와 도덕은 승리를 위해 언제든지 땅바닥에 버려질 수 있다. 원칙과 상식은 사치다. 일단 이기고 보자. 내일은 없다. 하지만 이래선 언제 끝날지 모르는 전쟁에서 이길 수 없다.
전쟁도 사람이 한다. 사람이 가장 중요하다. 군대도 인간 조직이다. 리더가 가장 중요하다. 이 책이 리더십 관점에서 해설을 붙인 이유다. 제갈량은 조직과 행동 심리학의 대가다. 조직에서 리더가 어떻게 생각하고 행동해야 할지 안다. 인간이 무엇을 좋아하고 싫어하는지 안다. 그래서 『장원』은 공자님 말씀처럼 들리지만 살 떨리는 원칙이요, 전략적인 상식이다.
자신이 죽을 수도 있는 상황에서 명령에 따라 진격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이래 죽으나 저래 죽으나 매 한가지라면 도망칠 수도 있지 않은가? 어째서 충성하는가? 그건 나를 알아주는 누군가 때문이다.
장군은 병사를 인정해 줘야 한다. 장군은 자기 마음 내키는 대로 상이나 벌을 내려선 안 된다. 장군은 자상함과 엄격함의 균형이 있어야 한다. 장군은 부하에게도 예를 갖춰야 한다. 분명한 명분과 윤리의식으로 부하의 정체성을 튼튼히 잡아주지 않는다면 생존 본능에 따라 어떤 돌출행동이 나올지 모른다. 제갈량이 정확하게 꿰뚫고 있는 부분이다. 장군이 갖추어야 할, 혹은 제거해야 할 요소들을 한 마디로 요약한다면 ‘사람중심의 균형감각을 확보하라’이다.
독자의 현실은 이와는 달라도 너무 다르다. 정해진 시간과 장소에서 늘 같은 사람과 같은 일을 하는 기계 같은 현실. 그 속에서 제갈량, 전쟁, 장수라는 단어를 통해 어떤 기대를 할지는 뻔하다. SF무협 판타지와 같은 기상천외한 절대고수의 치명적 전략을 꿈꾼다. 원칙과 상식에 얽매인 리더는 널려 있다. 당연히 싱겁고 재미없다. 제갈량의 현실과 회사원의 현실이 빚어낸 전율과 하품 사이에서 『장원』의 메시지는 무미건조하게 울린다. 제갈량에게 무슨 죄가 있겠나. 죄가 있다면 팍팍한 현실을 퍽퍽하게 살고 있는 나에게 있다. 사람 무서운 줄 모르고 돈만 보고 살아온 탓이다.
책은 원문을 충실하게 해석한 후, 리더십 관점으로 풀어내 해석으로 구성되어 있다. 편저자가 들어 올린 반짝이는 통찰을 발견할 때마다 기쁘고 놀라웠다. 삶의 맥락에 따라 고전은 분명 총명하게 깨어있음을 보여주는 증거이기 때문이다.
눈앞 현실에 허둥대지 않으려면 올곧은 사람됨을 마음에 그려 놓고 있어야 한다. 전쟁 중인 장군님도 회의 중인 회사원도 마찬가지다. 따지고 보면 하늘 아래 안전한 곳은 없다. 바르고 옳은 길을 걷는 사람이 있다. 제갈량은 『장원』에서 전쟁 중에도 잊지 말아야 할 사람의 이데아를 그려 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