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상의 심리학 - 예술 작품을 볼 때 머릿속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질까?
오성주 지음 / 북하우스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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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을 객관적으로 감상하는 방법이 있을까? 또한 그림 감상은 배울 수 있을까? 서울대학교 심리학과 오성주 교수는 그렇다는 것을 이 책을 통해 알려준다. 이 책이 기존의 미술 감상 안내서들과 다른 점은 그림 감상을 객관적이고 과학적으로 할 수 있는 방법을 알려준다는 데 있다. 기존의 그림 감상 방법, 즉 전통적인 미학은 작품이나 작가, 역사에 주로 초점을 맞추어 그림을 감상하고 이해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 책은 경험미학, 실험미학이라고도 불리는 예술심리학이라는 분야를 통해 그림 감상을 보다 객관적으로 이해할 수 방법을 알려준다.




예술심리학


예술심리학은 예술 경험을 다루는 학문으로 예술과 관련된 거의 모든 주제를 다룬다. 예술심리학은 실험법, 조사법, 면접법, 관찰법, 생리적 지표 측정, 뇌 활동 측정 등 다양한 과학적 방법을 통해  인간의 예술경험을 측정하고 관찰한다. 예술을 객관적으로 이해하기 위한 이러한 시도들은 매우 주관적인 예술 경험에 대한 폭넓은 통을 제공하는데 목적이 있다. 예술에 대한 객관적 이해는 반드시 옳은 것도 아니며 예술을 이해하는 유일한 길도 아니며 예술을 역사 맥락적으로 해석하는 방식과 상호 보완의 관계에 있다. 


예술에 대한 객관적 이해의 시작은 150여 년 전 독일의 구스타프 페히너라는 사람이 등장하고 나서부터이다. 그는 예술을 실험적으로 접근한 최초의 인물이었는데 경험과 데이터에 기반을 둔 '아래로부터의 미학'을 제창했다. '아래로부터의 미학'이란 눈앞에 보이는 대상과 예술적 반응 간의 관계를 밝히는 것인데 '위로부터의 미학'과 비교하면 더욱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위로부터의 미학'은 미학에 관한 이론이나 법칙을 먼저 정하고 이를 개별 작품들에 적용하는 것이다. 페히너가 수행한 미학 실험으로는 황금 비율 선호 실험이 있다. 사람들이 정말로 황금 비율을 선호할까? 페히너는 347명의 실험 참여자에게 가장 선호하는 사각형을 고르도록 했는데, 실험 결과 35퍼센트가 황금 비율을 가진 사각형을 선택했다고 한다. 한편 페히너의 실험에 대한 반론도 있다. 페히너가 제시한 실험 방법에는 많은 한계가 있음이 분명히 드러났지만 그로 인해 예술심리학에서 감상자의 마음이 가장 중요한 연구 대상이 될 수 있었다. 




감상자가 주인공이 되는 미술감상 수업

미술감상 수업을 본격적으로 진행하기에 앞서 이 책의 1장에서는 먼저 미술의 발전 과정과 그림 감상 발달에 대하여 설명한다. 먼저 미술의 역사를 구분하는 기준은 매우 다양하다고 하지만 이 책에서는 표현 방식에 따라 크게 5가지로 나눈다.


★ (미술 역사 구분) 

 재현의 시대 → 표현의 시대 → 인상의 시대 → 추상과 초현실의 시대 → 개념의 시대


여기서 인상의 시대(인상주의의 출현)를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19세기 인상주의 출현은 그림 역사에서 가장 드라마틱한 변화를 이끌었다고 평가받기 때문이다. 그간의 미술은 대상을 최대한 사실적으로 묘사하는 데 중점을 두었다. 그러나 인상주의 화가들은 오로지 자신의 감각과 감정에 집중해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인상주의는 예술의 주인공을 그림의 대상에서 예술가의 마음으로 옮겨 놓는 예술의 새로운 지평을 열였다. 



★ (그림 감상의 발달) 미국의 심리학자 마이크 파슨스가 나눈 5단계 

  편애 → 아름다움과 사실성 → 표현력 →  스타일과 형식 → 자율적 판단 


​그림 감상도 몇 단계의 과정을 거치면서 발달하는데, 전문가와 초심자 또는 비전문가가 그림을 감상하는 방식은 차이가 있다고 여러 연구에서 일관되게 보고되었다고 한다. 파슨스는 1~3단계 발달은 나이와 함께 병행하여 발달하며, 나머지 두 단계의 발달은 예술 작품에 대한 다양하고 깊은 경험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한편 이 5단계는 단계가 높아질수록 반드시 더 훌륭하고 더 좋은 것은 아니다. 어떤 그림이 훌륭한 작품인지는 감상자의 몫이다. 다만 단계가 높아질수록 감상자의 더 깊은 수준의 노력과 경험이 요구된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이 책은 이러한 감상 단계가 높아질 수 있도록 돕는다. 앞서 말했듯이 이 책은 미술의 역사 맥락적 방식의 설명을 제공하는 것이 아니다. 미술 작품에 대한 특별한 심리 행동을 중심으로 감상 방법을 알려준다. 눈을 통해 색, 형태, 깊이, 크기, 배치 같은 객관적인 특징과 밸런스, 구성, 리듬, 역동, 감정 같은 심리적 특징을  어떻게 느끼는지 설명한다. 



△ 색과 형태


인간의 시각은 실세계에서 보통 형태를 늘 우선시하고 색을 보조적인 역할로 본다고 한다. 그런데 그림의 세계에서는 색이 형태와 동등한 역할을 하거나 특정한 형태의 구속에서 벗어나기도 한다. 책에는 프란츠 마르크의 <파란 말 I>, 앙드레 드랭의 <채링크로스 다리>, 라울 뒤피의 <로열 새스콧의 끌림>을 통해 색이 형태에서 벗어난다는 것이 무엇인지 설명한다. 이러한 미술 작품들은 우리가 가진 시각적 편견을 내려놓도록 만든다. 이 불편함을 새로움으로 바꾸어가는 과정에서 드디어 미술 감상에 대한 눈을 뜨기 시작하는 것이 아닐까?


풍경화는 시대와 문화권을 초월해서 가장 큰 사랑을 받는 그림의 장르이다. 풍경화를 감상하는 사람들은 화가가 그림을 그렸던 곳에 자신이 앉아 있다는 착각에 빠지게 된다. 우리는 이 특정 위치에 있다는 현장감 또는 몰입감(이것을 생태적 감정이라 부른다)을 느끼게 된다. 풍경화는 다른 장르에 비해 현장감이 큰데 관찰자의 위치를 알려주는 단서가 풍부하고 우리 눈은 이 단서에 매우 친숙하기 때문이다.



한편 사람들은 왜 풍경화를 좋아할까? 


이 책에서는 흥미로운 설명을 제시한다. 먼저 진화적 안전이라는 측면이다. 영국의 지리학자 제이 애플턴은 원시시대부터 존재했던 안전 본능을 제안한다. 그의 전망-도피처 이론에 따르면, 생물체는 잠재적인 적이나 위협을 발견할 수 있고 먹잇감을 찾거나 동족의 안전을 살피기에 유리한 탁 트인 전망을 좋아한다는 것이다. 카페나 식당의 구석진 자리나 창문 옆, 배산임수도 전망-도피처 이론에 부합한다고 한다.

두 번째로 시각 처리의 유창성이다. 풍경화는 추상화에 비해 이해하기에 쉽다. 풍경화는 실세계 경치와 많이 닮아 있기 때문에 시각적으로 처리하는데 인지적 노력이 덜 든다. 

세 번째로 수평적 안정감이다. 풍경화의 수평성은 보는 사람에게 안정감을 주는 성질이 있는데, 이는 인간이라는 동물이 몸의 균형을 잡아야 하므로 중력의 방향에 민감한 데서 비롯한다는 흥미로운 설명이다. 심리학 연구 결과 사람들은 '분노'처럼 강렬한 감정을 표현하라고 요구받으면 종이에 사방으로 뻗어나가는 강렬한 선을 그렸고, '평온'을 표현하라는 요청에서는 대부분 일관되게 수평선을 그렸다고 한다. 

네 번째는 생태적 활력이다. 풍경이 보이는 창문이 심리 건강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연구결과는 익숙하다. 창문이 있는 병실에 입원한 환자가 더 빨리 퇴원하고 진통제 사용량이 더 적다는 것은 공간이나 심리학 계통의 다른 책에서도 접했던 내용이었다.  

마지막으로 창문의 대안으로서의 풍경화라는 설명이다. 창문이 없는 실내에 풍경화는 창문과 비슷한 역할을 할 수 있다고 한다. 풍경화 감상만으로도 스트레스가 완화되고 생기가 찾아온다고 한다. 


△ 그림 속 성차별


인물화 속에서 여성과 남성은 다른 방식으로 묘사되곤 한다. 새롭지도 않다. 한편 이 책에서 흥미로웠던 내용은 '얼굴 두드러짐'에 대한 설명이었다. 이 개념은 몸에 비해 얼굴이 얼마나 두드러지는지를 뜻하는 것으로 얼굴의 길이를 얼굴을 포함한 전체 신체의 길이로 나누어 값을 구한다고 한다. 인물화에서 얼굴이 묘사된 영역이 클수록 상대가 더 지적이고 호소력 있으며 인격적인 존재로 평가되는 경향이 있다. 그리고 놀랍지도 않게 연구 결과 여성을 그린 그림에서는 얼굴보다 몸이 더 많이 그려졌다는 것을 발견했고 이는 그림뿐만 아니라 사진, 잡지, 정치 포스터, 영화 등 다양한 매체에서도 확인된다고 한다. 


이 책에서는 신윤복의 <미인도>를 예시로 들고 있다. <미인도>에 그려진 여인의 얼굴 두드러짐 지수는 매우 작다. 물론 전신상이기 때문에 그럴 수 있지만 저자는 여성의 가채, 얼굴의 섬세함, 신체의 가녀림 등을 묘사한 것을 보면 신윤복은 여성을 성적 매력의 대상으로 보고 그렸을 가능성이 크다는 해석을 내놓는다. 이 대목을 읽으면서 앞으로 프로필 사진에서 지적으로 보이고 싶다면 얼굴을 큼지막하게 신체는 극히 적게 노출된 사진으로 올려야겠다는 생각이 얼핏 스쳤다. 



문학이나 음악, 회화나 조각 등 예술이 삶을 구원하거나 적어도 지속할 만한 이유가 된다는 것은 많은 글들을 통해 접했다. 그래서 과거의 나는 아르놀트 하우저의 <문학과 예술의 사회사>와 헨드릭 빌렘 반 룬의 <예술의 역사>와 같은 책들을 구입했다. 이번 책 『감상의 심리학』은 내가 역사 맥락적 방식으로 예술에 접근하려 했다는 것을 확인하게 되었다.『감상의 심리학』은 이렇게 치우친 미술 감상 방법을 보완해 준다. 

저자는 감상을 배우는 일은 정답이 없다고 반복해서 이야기한다. 이 책에서 설명하는 객관적 과학적 감상 방법은 역사 맥락적 감상과 짝을 이루어 함께 갈 때 비로소 풍요로운 예술 경험을 할 수 있다. 이 점을 염두하고 이 책에서 전하는 실증적인 지식을 흡수한다면 앞으로의 미술 관람이 훨씬 풍요로워질 것이다.



* 출판사 제공 도서를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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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쁜 동물의 탄생 - 동물 통제와 낙인의 정치학
베서니 브룩셔 지음, 김명남 옮김 / 북트리거 / 202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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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쥐, 뱀, 비둘기, 생쥐, 코끼리, 고양이, 코요테, 참새, 사슴, 곰 총 열 종의 동물과 인간과의 관계를 다루고 있다. 이 열 종의 동물들은 인간의 관점에 따라 유해동물이 되고 반려동물이 되기도 하며 멸종 위기에 처한 보호동물이 되기도 한다. 인간동물인 우리가 지구라는 행성에서 함께 살고 있는 이웃인 비인간 동물들을 어떻게 대해왔는지 탐구하고 있는 이 책은 우리 인간동물의 모순과 위선을 드러낸다. 쥐라는 동물은 마오리족에겐 식량이 되고, 카르니 마타 사원에서는 선조로서 숭배되며, 뉴욕시의 타임스퀘어 광장에서는 혐오의 대상이 된다. " (p35) 늑대는 긍정적인 뉴스 보도, 문신, 진짜 별로인 티셔츠 디자인의 소재다. 자연의 상징이다. 하지만 사실은 우리 중 일부에게만 그렇고, 또 그들의 수가 너무 많아지지 않는 한에서만 그렇다. 늑대는 우리의 관용으로 살아가고 있다. 늑대는 우리 가축을 죽일 힘이 없을 때만 아름답다. 제자리를 알 때만 아름답다." '유해동물'과 '유해동물 아님'의 구분은 전적으로 인간의 변덕스러운 마음에 달려있다. 일부 자연보호론자들은 '유해생물이란 자연 생태계를 교란시키는 생물이다'라고 말하지만 이마저도 철저히 인간중심주의적 생각이다. 인간이 정착생활을 하고 농경을 시작하기 전, 즉 자연계에 완전히 포함되어 있어 집도 없고 작물도 기르지 않았을 때 '유해동물'의 개념은 없었다. 인간동물이 비인간동물들과 먹이를 놓고 다투었겠지만 그들은 유해동물이라는 지위를 부여받지 않았다. 인간들이 정착을 하고 집을 지으면서 주변 환경을 바꾸기 시작하면서 인간중심적 생태계를 지었다. 인간들이 만들어 놓은 생태계에 우리가 초대하지 않은 동물들이 들어오면 우리는 이것을 침입이라고 생각했고 그들은 '유해동물'이라 불렀다. 인간들은 이 동물들을 쫓아내거나 죽이거나 하면서 통제하려 했다.

유해동물에 관한 이야기는 인간동물이 자연을 통제하고 지배하려 한 역사다 유럽의 백인들은 그들이 둘러보는 모든 것의 주인이 되려 했다. 이들이 자연을 지배하고자 했던 역사에 유해동물의 이야기가 포함되어 있다. 인간이 자연을 지배하려 했던 노력은 서구 역사의 대부분을 관통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을 동물 위에 두었고, 데카르트는 동물이 살아 있는 기계일 뿐이라고 선언했다. 인간이 세상을 지배한다는 감각은 유대-기독교적 사고방식으로 서구 문화에 깊게 뿌리내리고 있다. 서구 사회가 자연계와 담을 쌓고 분리되어 살게 되면서 백인들은 '자연계 거주자'를 두 그룹으로 나뉘었다. 우리가 거의 볼 수 없는 동물과 너무 자주 보는 동물이다. 인간의 거주지에서 멀리 떨어진 자연에 살고 있는 동물들, 예를 들어 판다는 귀엽고 사랑스럽고 보호하고 싶은 동물이다. 반면 흔히 우리의 거주지에 살고 있는 흔히 볼 수 있는 동물들 중 운이 나쁘면 유해동물이 된다. 인간이 지구 전체로 확장하면서 점점 더 많은 땅을 차지하니 이 땅에서 한때 살았던 동물들은 갈 곳이 없어진다. 인간의 공원과 뒷마당으로 내몰린 동물들은 적응하거나 죽거나 둘 중 하나의 운명을 선택할 수밖에 없다. 인간의 역사(= 구체적으로 유럽 백인의 역사)는 자연에서 떨어져 나온 인간이 자연을 통제하고 지배하려 한 이야기로 가득 차 있다. 우리 인간동물은 인간이 만물의 영장이라며 오랫동안 착각해왔다. 그러나 최근 서구의 백인들도 생각을 바꾸기 시작했다. 생태주의라고 부르는 생각들은 지구에서 함께 살고 있는 다른 이웃 동물들을 신경 쓰는 것처럼 보인다. 결국은 관점의 문제다. 그러나 관점만 바꾸는 것은 별 소용이 없다. 행동이 뒤따라야 한다. 지구는 인간동물이 비인간 동물들과 함께 사는 곳이는 당연한 사실을 새로 배워야 한다. 인간들이 다른 동물들의 거주지를 침범했거나 없애버렸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다른 동물들, 그러니까 곰이 인간의 마을에 내려와 어슬렁거리며 쓰레기통을 뒤지는 것에 경악해서는 안 된다. 저자는 다른 동물들과 공존하기 위해서는 먼저 그들에 대해서 배워야 하며, 상대에 대한 깊은 이해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그리고 공존은 늘 평화롭고 달콤할 수 없다. 저자는 "공존은 약간의 손실을 뜻한다"라고 말한다. 한편 다른 동물들과의 공존에서 오는 갈등과 손실을 줄이는 현명한 방법도 있다. 가령 곰이 열 수 없는 쓰레기통을 보급해서 주민들의 불만을 줄이는 방법도 있다. " (p417) 우리가 지금의 방식대로 계속 사는 한, 그러니까 계속 새 공간과 새 쓰레기를 만들고, 새롭고 이국적인 반려동물을 들이고, 야생의 공간으로 이주하고, 우리가 귀하게 여기지 않는 공간은 싹 밀어 버리는 한, 동물들은 계속 우리를 이용하려고 찾아와서 우리 앞을 막아설 것이다. 계속 우리를 성가시게 만들 것이다. 유해동물은 늘 존재할 것이다. " 저자는 이 책의 생각에서 새로운 것은 하나도 없다고 말한다. 야생동물과 공존했던 역사를 가진 다른 문화에 대한 이야기는 곳곳에서 발견된다. 단지 서구 백인 문명이 그렇지 못했을 뿐이다. 서구의 백인인 저자는 이점을 인정하고 동물을 우리 세상에 끊임없이 침입하는 불청객으로 보는 대신 우리와 더불어 사는 존재로 받아들이자고 거듭 반복하여 이야기한다. 우리는 낯설게 보는 방법을 배워야 한다. 지구라는 행성에 인간동물들은 왜 이렇게도 많은지, 다른 동물들은 도대체 다 어디로 사라졌는지, 판다의 일거수 일투족에는 열광하고 그들이 삶에서 온갖 행복을 누리길 바라면서 거리에서 만나는 비둘기는 두려워하고 혐오해 마지않는지 말이다.



* 출판사 제공 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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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크스가 옳았던 이유 - 프로메테우스의 꿈과 좌절
테리 이글턴 지음, 박경장 옮김 / 21세기문화원 / 202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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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크스가 옳았던 이유』는 대표적인 마르크스주의 문화 비평가이자 문학 평론가 테리 이글턴이 마르크스 사상에 대한 가장 표준적인 비판 열 가지를 택하여 하나하나 반박하고 있는 책이다. 마르크스에 대한 비판에 대한 테리 이글턴의 역비판을 차근차근 읽어가다 마르크스의 사상에 대한 밑그림을 그릴 수 있게 된다. 이 책은 일반 독자들을 위해 쓴 마르크스 입문서로 한 페이지 한 페이지 꼭꼭 씹어가면서 읽으면 ‘위대한 도덕 사상가’이자 자본주의 분석의 끝판왕인 마르크스의 사상에 대한 밑그림을 그려나갈 수 있다. 이 책을 지팡이 삼아 앞으로 더 많은 마르크스 사상에 대해 읽어갈 계획이다.

마르크스주의를 오해하지 말자.
왜냐하면……

1. 마르크스주의는 끝나지 않았다
2. 마르크스주의는 도그마가 아니다
3. 마르크스주의는 결정론이 아니다
4. 마르크스주의는 유토피아를 꿈꾸지 않았다
5. 마르크스주의는 경제 환원론이 아니다
6. 마르크스는 기계적 유물론자가 아니었다
7. 마르크스주의는 계급 강박증이 없다
8. 마르크스주의는 폭력 혁명을 옹호하지 않았다
9. 마르크스주의는 국가를 믿지 않는다
10. 마르크스주의는 급진적 운동에 기여했다

위 열 가지는 이 책의 목차로, 마르크스 사상에 대한 대표적인 비판 열 가지에 대한 테리 이글턴의 답이다.
이 책의 <옮긴이의 말>(박경장 성프란시스대학 작문교수)에서는 테리 이글턴의 반박을 5페이지로 요약하고 있다. 이 5페이지의 요약을 또 요약해서 이 독후감에 써볼까 고민을 잠시 했는데, 블로그 글이 상당히 길어질 것 같아서 첫 번째 반박만 언급하기로 한다.
이 반박은 우리가 왜 마르크스의 사상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는지, 또 왜 우리 시대에 마르크스의 사상을 읽어야 하는지가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마르크스를 비판하는 사람들은 마르크스주의가 끝났다고 말한다. 비판자들은 마르크스주의의 핵심인 사회계급론은 21세기 탈산업화시대엔 더 이상 적용 가능하지 않다고 말한다. 테리 이글턴은 이러한 비판에 대해 ‘마르크스는 자본주의 체제가 모든 역사 체제 가운데 가장 역동적으로 변화할 것이라는 것을 이미 잘 알고 있었고, 그럼에도 이 체제에는 이상하게도 정태적이고 반복적인 어떤 것이 있다는 것을 간파했다’(p333, <옮긴이의 말> 중)라고 반박한다.

“ (20~21페이지) 마르크스주의는 이제껏 시도된 그 어느 비판보다 가장 면밀하고 엄격하며 포괄적인 자본주의 비판이다. 따라서 자본주의가 위력을 떨치는 한 마르크스주의도 마찬가지로 자기 본분인 비판을 멈추지 않을 것이다. (……)

자본주의의 다양한 역사적 형태라는 개념 - 상업적‧농업적‧독점적‧금융적‧제국주의적 등 -은 마르크스주의 자체에서 유래한 것이다. 그러면 자본주의가 최근 몇십 년 사이에 형태를 바꾸었다고 해서, 자본주의 본질을 변화로 본 마르크스 이론을 왜 불신한다는 말인가? 게다가 마르크스 자신은 노동계급이 쇠퇴하고 화이트칼라 노동이 가파르게 증가할 것이라고 예고까지 했다. ”


마르크스주의는 여전히 유효하다. 우리 시대 자본과 권력은 그 어느 때보다 소수에 집중되어 있으며, 불평등은 갈수록 심화되어 간다. 자산의 규모를 표현하는 숫자가 너무나 커서 가늠조차 안되는 부를 가진 부자에 대한 뉴스와 최저임금도 되지 않는 월급을 떼 먹히는 사람들의 뉴스가 뒤섞여 흐른다. 국가의 억압은 평소 때는 그 모습을 잘 감추고 있다가 결정적인 순간에 언제나 그 모습을 드러낸다. 우리의 평범한 대화 속에 ‘주권은 국민에게서 나온다’라는 헌법 조문을 읊게 만들고, 헌법 조문을 필사하게 만들고 있다.

국가와 사회에 순응하며 대체로 순종적이며 평범하기 그지없는 대표적으로 나와 같은 사람들이 마르크스 사상을 조금이라도 이해하고 싶어 한다. 왜냐면 우리는 ‘고삐 풀린‘, ‘폭주기관차같이 내달리는’ 자본주의 사회가 안겨주는 고통과 불안과 번뇌에 매일매일 신음하고 있기 때문이다. 신자유주의는 개인들로 하여금 인생의 모든 문제를 스스로 알아서 해결하도록 우리를 세뇌시켰다. 나는 그간 스스로가 ‘금융맹’, ‘재테크맹’이라서 다소 부끄러웠다. 나는 여기에 하나 더 추가해서 ‘마르크스맹’(이라는 단어는 들어본 적 없지만)도 부끄럽게 여길 것이다.

* 출판사 제공 도서를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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밑줄과 생각
정용준 지음 / 작가정신 / 202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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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밑줄과 생각』은 젊은작가상, 황순원문학상 등 주요 문학상을 수상한 정용준 소설가의 산문집이다. 현재 서울예술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로 있는 정용준 작가는 2009년 《현대문학》을 통해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이 책은 작가가 읽기와 쓰기를 주제로 여러 지면을 통해 발표한 글 37편을 수록하고 있다. 문예지, 일간지, 단행본 등으로 발표한 글들이기에 형식과 내용이 다채롭다. 내밀한 자기 고백적 에세이, 소설 창작자들을 위한 조언, 각박한 사회 분위기에 대한 쓴소리, 서평, 짧은 소설처럼 읽히는 글 등 다양한 글들이 이 책에 함께 엮여 있다.



이 책의 지은이 정용준 작가는 밑줄 긋는 것이 좋다고 말한다. 그 문장이 몸과 마음에 천천히 스며드는 시간도 좋다고 말한다. 그 언어와 내 언어가 섞이고 남의 언어를 닮은 새로운 나의 언어가 생기는 것이 좋다고 한다. 나도 밑줄 긋는 것을 좋아해서 책을 한 번도 중고로 팔아본 적이 없다. 책을 읽을 때는 꼭 밑줄을 긋고 색깔별로 나만의 고유한 규칙이 부여된 인덱스를 붙인다. 독서에 관한 책들, 뇌과학이나 인지신경학 책들은 한결같이 강조한다. 인간은 눈으로 손으로 입으로 다양한 감각적 경험을 통해 책을 읽는다고 말이다. 정용준 작가는 이 책을 여는 첫 번째 글 <작가의 말>에서 독자들이 자신의 책을 지저분하게 읽어주면 좋겠다고 말한다.




소설이 아니었다면

나는 세계에 도착하지 못했을 것이다


소설가가 쓴 산문집이다 보니 소설가는 어떻게 읽을지, 어떻게 쓸지, '소설'이라는 언어들의 묶음을 어떻게 바라보는지 눈여겨보게 된다. 내 책장에는 이미 소설가들이 쓴 창작론이나 독서 에세이들이 가득하지만 그래도 또 눈길이 간다. 이 세상엔 무수히 많은 소설가들이 존재하고 있고 그들은 각자 어느 점에서는 비슷하고 어느 점에서는 다를 테니 말이다. 나는 정용준 작가가 '소설이 아니었다면 나는 나라는 세계에 도착하지 못했을 것이다. 표면 밑에 심연이 있다는 것을 몰랐을 것이다. 타인의 마음에 숲과 바다가 있다는 것을 알지 못했을 거고 인간의 감정과 감각에 바람과 별자리가 있다는 것도 몰랐을 거다.'라고 쓴 문장에 밑줄을 그어 두었다. 저자가 말하는 내용이 새로워서가 아니다. 이 사람이 골라 쓴 언어가 좋았기 때문이다. 독후감을 쓰다 보니 쓰는 것이 얼마나 괴롭고 번거로운 것인지 알게 된다. 좋은 글들은 내가 의도하지 않아도 내게 생각과 감정들을 밀어 넣는다. 얼마 전 읽은 책에서 개념으로 정리되지 않은 이 생각들과 감정들을 '표상'이라고 부른다고 알려주었다. 독후감을 쓰기 위해 이 표상들을 단어와 문장으로 끄집어 내려고 노력하지만 정말로 어렵다. 정용준 작가도 '소설을 쓸 때마다 생각한다. '생각하는 거 힘들다. 쓰는 것도 힘들다. 아, 귀찮아. 번거로워. 왜 나는 소설을 쓰는 사람이 되었나. 현실의 삶을 살아내는 것도 잘 못하면서 허구의 세계를 만들어 새로운 인물과 함께 새로운 삶을 살겠다고?'라고 말한다. 독자인 나는 안다. 이렇게 말하면서 그는 얼마나 치열하고 고통스럽게 성실하게 글을 썼을지 말이다. 독자인 나는 소설가들이 고통스럽게 쓴 언어들을 통해 언어를 배운다. "표면 아래 심연"이 있다고 말이다.



사인칭의 마음을 갖는다는 것


이 책을 읽고 나니 늘 그렇듯 서점 장바구니가 조금 더 무거워졌다. 제일 먼저 올가 토카르추크의 『다정한 서술자』를 구입할 것이다. 작가가 읽은 책 중에 이 책만큼 마음을 일렁이게 만든 적이 없다고 하니 말이다. 이 책을 읽고 쓴 글에서 작가는 '언젠가부터 나는 작가도 인물도 아닌 서술자라는 존재를 인식하기 시작했다.'라고 말하는데 나는 여기에 밑줄을 그었다. 책을 읽고 또 읽으면 일인칭에서 이인칭으로 삼인칭으로 서서히 옮겨가는 순간을 만나게 된다. 그런데 사인칭이라니. 더 나아가 작가는 '사인칭의 마음을 갖자'라고 제언한다.' 먼저 사인칭은 누구인가. 저자는 서술자를 사인칭으로 표현한다.







그는 '작가가 회복해야 하는 능력은 개인에게 집중하는 일인칭도, 이 세계를 조명하고 조망하는 삼인칭도 아니다.'라고 말한다. 작가는 서술자가 되어서 나와 타인이 함께 있는 세계를 바라보고 스토리텔러로서 이야기를 건넨다. 독자인 내가 오늘 하루 더 버티고 살아낸 것은 서술자들이 들려준 이야기들 덕분이라는 것을 다시 한번 확인한다. 서술자가 전해주는 이야기에는 항상 이야기 그 이상의 것이 있다. 나는 이것들을 거의 대부분 나의 언어로 표현 못 하지만 이상하게 하루를 더 버틸 힘을 받는다. 서술자들에게 받은 것들을 되돌려주는 방법은 내가 다정한 서술자가 되는 것이 아닐까 한다. 나는 별로 괜찮지 않은 사람이고 뭉툭하고 나르시시즘에 허우적대는 사람이지만 무수히 많은 서술자들이 쓴 글들을 읽고 인간의 구실을 흉내낸다. 나는 읽어야 할 운명인가 보다.




* 출판사 제공 도서를 읽고 쓴 독후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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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정원이면 좋겠습니다 - 릴케 수채화 시집 수채화 시집
라이너 마리아 릴케 지음, 한스-위르겐 가우데크 엮음, 장혜경 옮김 / 모스그린 / 202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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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너 마리아 릴케는 20세기 최고의 독일어권 시인 중 한 명으로, 그의 시는 수없이 많은 사상가와 예술가의 사랑을 받아오고 있다.

『내가 정원이면 좋겠습니다』는 1941년 베를린에서 태어난 화가 한스-위르겐 가우데크가 그린 그림과 릴케의 시를 함께 엮은 책이다. 화가는 청소년 시절부터 릴케의 시를 많이 읽었다. 그는 릴케의 시는 고요한 언어로 신비한 세상을 그려내고, 다양한 차원에서 자신의 주제를 서정적으로 풀어가는 방식에 매료되었다고 한다. 그는 릴케의 문학으로 들어가서 그림으로 그의 시와 대화를 나누고자 했다. 그는 릴케의 작품 중에서 자연과 직접 관련이 있는 시들을 골랐고, 이 시들에 가장 잘 어울리는 기법으로 수채화를 선택하여 이 책을 만들었다.



내가 정원이면 좋겠습니다


<내가 정원이면 좋겠습니다>는 릴케가 1897년에 쓴 시로 이 책의 제목이기도 하다. 이 시를 처음 읽을 때는 언어적인 아름다움이 주로 느껴졌다. 두 번째 이후부터는 꽃들이 말 없는 대화로 하나가 되었다는 장면을 상상해 보고, 꽃들의 말을 엿듣고 싶다는 릴케의 마음을 생각해 본다.



가을날

가을이 오면 어김없이 소환되는 시, 그 유명한 시 <가을날>이다. 이 시는 워낙에 유명해서 이 책을 읽기 전에도 알고 있던 시였다. 제1연과 제2연을 지나 만나는 제3연을 제일 좋아한다. 줄곧 방랑가의 삶을 살다가 간 시인 릴케의 생애를 조금이라도 알게 된다면 제3연이 주는 호소력을 음미할 수 있다.



문학평론가 신형철은 그의 책 『인생의 역사』에서 시는 그를 사랑했다고 말한다. 나는 이 문장을 읽으면서 내가 왜 평론가의 글들을 좋아하는지 깨닫는 한편 부러움도 느꼈다. 나는 시가 아직 어렵다. 왜일까. 직관적으로 바로 이해되는 평범한 일상어로 쓰인 시는 위로를 주곤 했지만 나를 매료시키지 못했다. 내가 읽고 싶은 시는 시인의 삶을 먼저 이해하여야 하고, 시인이 팬을 든 시대의 정신을 공부해야 하며, 거듭 반복해 읽어야 그 뜻을 이해할 수 있는 정제된 언어로 쓰인 시들이었기 때문이다. 이런 시는 보통 쉽지 않다. 그래서인지 릴케의 시집 『두이노의 비가』는 오랫동안 내 장바구니에 담겨서 결재만 기대리는 중이다. 선뜻 구입하지 못했던 이유는 앞서 말한 이유 때문이 아닐까 한다. 그리고 최근에는 『젊은 시인에게 보내는 시』도 장바구니에 담았다. 피아니스트 임윤찬이 구입했다고 했기 때문이다. 한스-위르겐 가우테크가 엮음 릴케의 시들을 읽고 나니 『두이노의 비가』를 빨리 결재해야겠다는 결심이 선다.

* 출판사 제공 도서를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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