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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쁜 동물의 탄생 - 동물 통제와 낙인의 정치학
베서니 브룩셔 지음, 김명남 옮김 / 북트리거 / 2025년 2월
평점 :

이 책은 쥐, 뱀, 비둘기, 생쥐, 코끼리, 고양이, 코요테, 참새, 사슴, 곰 총 열 종의 동물과 인간과의 관계를 다루고 있다. 이 열 종의 동물들은 인간의 관점에 따라 유해동물이 되고 반려동물이 되기도 하며 멸종 위기에 처한 보호동물이 되기도 한다. 인간동물인 우리가 지구라는 행성에서 함께 살고 있는 이웃인 비인간 동물들을 어떻게 대해왔는지 탐구하고 있는 이 책은 우리 인간동물의 모순과 위선을 드러낸다. 쥐라는 동물은 마오리족에겐 식량이 되고, 카르니 마타 사원에서는 선조로서 숭배되며, 뉴욕시의 타임스퀘어 광장에서는 혐오의 대상이 된다.
" (p35) 늑대는 긍정적인 뉴스 보도, 문신, 진짜 별로인 티셔츠 디자인의 소재다. 자연의 상징이다. 하지만 사실은 우리 중 일부에게만 그렇고, 또 그들의 수가 너무 많아지지 않는 한에서만 그렇다. 늑대는 우리의 관용으로 살아가고 있다. 늑대는 우리 가축을 죽일 힘이 없을 때만 아름답다. 제자리를 알 때만 아름답다."
'유해동물'과 '유해동물 아님'의 구분은 전적으로 인간의 변덕스러운 마음에 달려있다. 일부 자연보호론자들은 '유해생물이란 자연 생태계를 교란시키는 생물이다'라고 말하지만 이마저도 철저히 인간중심주의적 생각이다. 인간이 정착생활을 하고 농경을 시작하기 전, 즉 자연계에 완전히 포함되어 있어 집도 없고 작물도 기르지 않았을 때 '유해동물'의 개념은 없었다. 인간동물이 비인간동물들과 먹이를 놓고 다투었겠지만 그들은 유해동물이라는 지위를 부여받지 않았다.
인간들이 정착을 하고 집을 지으면서 주변 환경을 바꾸기 시작하면서 인간중심적 생태계를 지었다. 인간들이 만들어 놓은 생태계에 우리가 초대하지 않은 동물들이 들어오면 우리는 이것을 침입이라고 생각했고 그들은 '유해동물'이라 불렀다. 인간들은 이 동물들을 쫓아내거나 죽이거나 하면서 통제하려 했다.
유해동물에 관한 이야기는
인간동물이 자연을 통제하고 지배하려 한 역사다
유럽의 백인들은 그들이 둘러보는 모든 것의 주인이 되려 했다. 이들이 자연을 지배하고자 했던 역사에 유해동물의 이야기가 포함되어 있다. 인간이 자연을 지배하려 했던 노력은 서구 역사의 대부분을 관통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을 동물 위에 두었고, 데카르트는 동물이 살아 있는 기계일 뿐이라고 선언했다. 인간이 세상을 지배한다는 감각은 유대-기독교적 사고방식으로 서구 문화에 깊게 뿌리내리고 있다. 서구 사회가 자연계와 담을 쌓고 분리되어 살게 되면서 백인들은 '자연계 거주자'를 두 그룹으로 나뉘었다. 우리가 거의 볼 수 없는 동물과 너무 자주 보는 동물이다. 인간의 거주지에서 멀리 떨어진 자연에 살고 있는 동물들, 예를 들어 판다는 귀엽고 사랑스럽고 보호하고 싶은 동물이다. 반면 흔히 우리의 거주지에 살고 있는 흔히 볼 수 있는 동물들 중 운이 나쁘면 유해동물이 된다. 인간이 지구 전체로 확장하면서 점점 더 많은 땅을 차지하니 이 땅에서 한때 살았던 동물들은 갈 곳이 없어진다. 인간의 공원과 뒷마당으로 내몰린 동물들은 적응하거나 죽거나 둘 중 하나의 운명을 선택할 수밖에 없다.
인간의 역사(= 구체적으로 유럽 백인의 역사)는 자연에서 떨어져 나온 인간이 자연을 통제하고 지배하려 한 이야기로 가득 차 있다. 우리 인간동물은 인간이 만물의 영장이라며 오랫동안 착각해왔다. 그러나 최근 서구의 백인들도 생각을 바꾸기 시작했다. 생태주의라고 부르는 생각들은 지구에서 함께 살고 있는 다른 이웃 동물들을 신경 쓰는 것처럼 보인다. 결국은 관점의 문제다. 그러나 관점만 바꾸는 것은 별 소용이 없다. 행동이 뒤따라야 한다. 지구는 인간동물이 비인간 동물들과 함께 사는 곳이는 당연한 사실을 새로 배워야 한다. 인간들이 다른 동물들의 거주지를 침범했거나 없애버렸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다른 동물들, 그러니까 곰이 인간의 마을에 내려와 어슬렁거리며 쓰레기통을 뒤지는 것에 경악해서는 안 된다. 저자는 다른 동물들과 공존하기 위해서는 먼저 그들에 대해서 배워야 하며, 상대에 대한 깊은 이해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그리고 공존은 늘 평화롭고 달콤할 수 없다. 저자는 "공존은 약간의 손실을 뜻한다"라고 말한다. 한편 다른 동물들과의 공존에서 오는 갈등과 손실을 줄이는 현명한 방법도 있다. 가령 곰이 열 수 없는 쓰레기통을 보급해서 주민들의 불만을 줄이는 방법도 있다.
" (p417) 우리가 지금의 방식대로 계속 사는 한, 그러니까 계속 새 공간과 새 쓰레기를 만들고, 새롭고 이국적인 반려동물을 들이고, 야생의 공간으로 이주하고, 우리가 귀하게 여기지 않는 공간은 싹 밀어 버리는 한, 동물들은 계속 우리를 이용하려고 찾아와서 우리 앞을 막아설 것이다. 계속 우리를 성가시게 만들 것이다. 유해동물은 늘 존재할 것이다. "
저자는 이 책의 생각에서 새로운 것은 하나도 없다고 말한다. 야생동물과 공존했던 역사를 가진 다른 문화에 대한 이야기는 곳곳에서 발견된다. 단지 서구 백인 문명이 그렇지 못했을 뿐이다. 서구의 백인인 저자는 이점을 인정하고 동물을 우리 세상에 끊임없이 침입하는 불청객으로 보는 대신 우리와 더불어 사는 존재로 받아들이자고 거듭 반복하여 이야기한다.
우리는 낯설게 보는 방법을 배워야 한다. 지구라는 행성에 인간동물들은 왜 이렇게도 많은지, 다른 동물들은 도대체 다 어디로 사라졌는지, 판다의 일거수 일투족에는 열광하고 그들이 삶에서 온갖 행복을 누리길 바라면서 거리에서 만나는 비둘기는 두려워하고 혐오해 마지않는지 말이다.
* 출판사 제공 도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