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 잠에서 깨다 - 일제 강제노동 희생자 유골발굴이 새긴 기억의 공공인류학
정병호 지음 / 푸른숲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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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 잠에서 깨다』는 일제 식민지 시절 조선에서 멀리 일본의 북단 홋카이도에 끌려가서 강제노동을 하다가 희생당한 분들의 유골을 30여 년에 걸쳐 발굴하고 그 유골을 고국으로 송환하여 유족을 찾아주는 여정을 담은 이야기다. 이 책의 프롤로그에서 이 책은 '그 과정에서 일본, 동아시아의 젊은이들이 우정을 쌓아온 이야기다'라고 말한다.


✅도노히라 스님이 정병호 교수를 유골발굴에 이끌다

이 이야기의 중심에는 인류학자 故 정병호 한양대학교 교수가 서있다. 1988년 그는 박사 논문을 위해 일본 어린이집들을 비교하는 현장 연구의 목적으로 일본을 방문했다가 운명처럼 도노히라 스님을 만나게 된다. 1945년생 도노히라 스님은 청년 시절 캄보디아의 킬링필드를 방문했다가 유골 문제에 대한 깊은 각성을 하게 되었다. 故 정병호 교수가 일제 강제노동 희생자 발굴 프로젝트에 깊숙이 연루되게 된 것은 바로 도노히라 스님의 영향이었다. 도노히라 스님은 교육 철학 석사 과정을 마친 뒤 고향 홋카이도로 돌아왔다. 그는 홋카이도 아이누 선주민 문제와 조선인의 드러나지 않은 역사를 연구하다가 홋카이도 슈마리나이 우류댐 공사에 수많은 일본인과 조선인 노동자가 동원됐고, 고된 노동 과정에서 목숨을 잃은 사람이 고향에 돌아가지 못한 채 매장됐다는 사실을 알았다. 도노히라 스님은 1976년에 우연히 슈마리나이 우류댐 근처에 있는 절인 광현사에서 조선인 강제노동 희생자 위패를 발견하게 된다. 이 위패는 우연한 발견이 아니었고 그를 강제노동 희생자 문제를 자신의 주제로 삼아 그들의 흔적을 발굴하는 움직임을 시작하게 만든다. 그리고 도노히라 스님은 한참 뒤 박사 과정에 있는 정병호를 만나게 된다. 스님은 그의 일본 체류를 물심양면으로 도우면서 여기저기 이끌고 다닌다. 그리고 그 속에서 뜻깊은 만남은 이어진다. 1988년 일본에서의 현장 연구가 마무리되고 1989년 크리스마스 즈음 미국에 돌아갔다. 그리고 그는 1994년 한양대학교 문화인류학과 교수가 됐고 1995년부터는 남북어린이어깨동무 일로도 바빠진다. 그러다가 일본 평화교육 쪽에 연락을 받는다. 슈마리나이 유골발굴 관련 건이었다. 이런저런 일로 바쁜 그가 유골 발굴에까지 관여할 수 있을까? 그는 아내에게 조언을 듣는다. 아내는 말한다. " 당신 같은 인류학자에게 이런 중요한 일이 찾아왔는데 언젠가는 해야 하지 않을까? " 정병호 교수는 학생들을 데리고 슈마리나이에 가기로 결심한다. 그는 도노히라 스님과 <한일 유골발굴 실행 위원회>를 꾸려 본격적으로 유골발굴을 시작한다.

❝ 이 인식은 '연루' 개념과 연결된다. 일본의 젊은 세대는 과거사에 대해 자신들의 책임은 없다고 주장하지만, 과거에 일어난 범죄 행위의 결과물을 당연하게 받아들여 삶의 기반으로 삼아 누리고 있다. 비록 자신들이 의도적으로 범죄를 저지르지 않았더라도 이는 '사후 종범'에 해당될 수 있다. 나는 이런 개념을 바탕으로 젊은 세대가 과거사 문제에 참여하도록 언어화하고 이해시키는 일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첫 번째 유골이 출토되던 날,
가해자의 자손과 피해자의 자손들이 함께 울었다

유해발굴이 시작한 지 나흘째 되던 날, 첫 번째 유골이 출토됐다. 무려 영하 42도를 기록한 적이 있는 이 혹한의 땅에 세운 슈마리나이 우류댐 공사 현장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고통스러운 죽음을 맞이했을까. 비가 내려 진흙탕이 되어버린 현장에서 네 구의 유골이 발견되었다. 관도 없이 구덩이 속에 쪼그린 자세로 꺾여 들어가 있는 참혹한 주검. 이 유골이 발굴되든 순간 함께 작업하던 젊은이들 사이에 일순 긴장감이 돌았다고 한다. 가해자의 자손과 피해자의 자손, 그리고 아직도 차별의 역사를 현실로 안고 사는 재일동포와 조선인 자손들은 모두 함께 눈물을 흘렸다. 그리고 이 대목을 읽으면서 나도 함께 울었다. 안전한 곳에서 이 글을 읽고 있던 내가 감히 희생자분들이 얼마나 고통스러웠을지 상상하는 것조차 죄스러워 울었고, 유골현장에서 함께 울었던 그 젊은이들의 눈물이 또 나를 울렸다.

유골발굴은 1997년부터 2013년까지 이어졌다. 발굴된 115구의 유골은 광복 70주년에 맞춰 고국으로 모셔하는 '70년 만의 귀향' 프로젝트를 통해 드디어 한국의 땅으로 돌아오게 된다. 이 책의 이야기는 여기서 끝나지 않고 강제노동 현장에 세워진 첫 번째 박물관 이야기로 이어진다. '70년 만의 귀향'이 끝난 2015년 12월 28일, 박근혜와 아베 정부는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최종적이고 불가역적으로 해결한다"라고 발표했다. 양국 관계를 정리하려는 시도에 피해 당사자들의 목소리는 어디에도 없었다. 국가 권력의 이해관계는 기억을 외면하고 서둘러 지우려고 했지만, 양국의 시민 사회는 우리가 살고 있는 곳에서 희생되었던 사람들의 존재를 결코 잊지 않는다. 이 책은 아픔의 역사에 휘말렸던 양국의 사람들이 국가와 민족의 경계를 넘어 화해하고 손잡고 함께 우는 기록을 보여준다. 희망의 증거를 보여준다.

❝일본에는 여전히 수많은 양심적인 시민이 있다. 홋카이도의 민중사발굴운동, 일본 전범 기업에 대한 사죄와 배상 요구, 일본군 '위안부' 문제, 강제노동 문제에 이르기까지 지난 수십 년을 묵묵히 싸워온 사람들이 있다. 그런데 어느 날 한국과 일본 정부가 담합이라도 하듯 문제를 덮어버리고 일본 언론이 일제히 "모든 게 해결됐다"라는 분위기로 보도해버리면 그들 또한 얼마나 허탈할까?❞

✅인간동물은 자극적이고 폭력적인 뉴스에 더 이끌린다고 한다. 우리의 주의력을 훔치는 뉴스들에는 온통 폭력과 살인과 강간과 사기와 타락과 부패가 가득하다. 그러나 각종 매체의 첫 화면을 장식하는 커다란 뉴스들을 인내심을 가지고 스크롤 하여 내리고, 다른 탭들을 눌러 연재기사들을 검색해 보면 의외로 다양한 소식들을 접할 수 있다. 그것도 뭉클하고 인류애가 충전되는 일들이 여기저기에서 이루어지고 있음을 알게 된다. 정병호 교수와 도노히라 스님, 여러 국가에서 온 청년들, 그리고 일본 지역 주민들이 마음과 힘을 모아 유골발굴에 한창일 때 당시의 한국 언론은 이것을 보도하지 않았다. 그 당시에 유골발굴 작업이 여러 매체의 연재기획 뉴스가 되어 널리 펴졌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이 이야기는 한참 뒤에 이 책으로 엮였다. 고통의 역사 앞에 선 선한 마음들이 눈물을 흘리며 단단해지고 어우러져가는 이 여정을 담은 이 책이 최대한 여러 곳으로 퍼져나갔으면 좋겠다. SNS를 가득 메운 혐한 혐중 혐일 글들이 마음을 아프게 한다. 이런 글들을 퍼나르는 젊은이들과 이들을 길러낸 부모들이 이 책을 함께 읽었으면 좋겠다.

❝유골발굴은 단순히 한국과 일본의 과거를 파내는 어둡고 무거운 행사가 아닙니다. 젊은 세대들이 만나 교류하고 미래를 함께 이야기하는 역동적인 현장입니다.❞

✍️ 인간동물은 폭력을 마다하지 않는다. 어느 나라나 떠올리는 것조차 힘든 국가폭력의 기억들을 가지고 있다. 우리는 국가폭력의 희생자에서 국가폭력의 가담자/가해자가 되기도 한다. 이 복잡한 기억들은 쉬운 이해를 허락하지 않는다. 우리는 대체로 잊는 쪽을 택한다. 기억하는 것은 시인과 소설가와 활동가와 연구자들의 몫이 된다. 한편 집단적 침묵과 망각을 택한 나라에 속한 사람들의 정신 상태는 온전한가? 그렇지 못하다. 우리는 기억할 몫이 있다. 알고 나서도 침묵하는 것은 전후 공범이 되는 것이다. 인류 역사에 가득한 아픔이 더 아프도록 만드는 가해자/공범이 되는 것이다.

* 출판사 제공 도서를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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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혹의 괴물들 - 불안에 맞서 피어난 인류 창조성의 역사
나탈리 로런스 지음, 이다희 옮김 / 푸른숲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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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혹의 괴물들』은 우리가 과거에도 만들었고 지금도 지치지 않고 만들고 있는 괴물들이 과연 인류의 어떤 모습을 드러내왔는지 탐구하는 책이다.


먼저 괴물이라는 것이 도대체 무엇이기에 우리 인류의 모습을 드러낸다고 하는 것일까?

우리는 괴물이 무엇인지 직관적으로 안다. 그러나 괴물을 한마디로 정의하기는 어렵다. 왜냐면 괴물은 보는 그것을 보는 사람의 관점에 달려있기 때문이다. 오늘날 현대인들은 도도새나 천산갑(아르마딜로)은 다른 조류들이나 포유류와 비교하여 약간 다른 것을 알고 있지만 어쨌거나 이들을 괴물로 부르진 않는다. 그러나 18세기 사람들은 이들을 괴물로 분류했다. 그 당시 근세 유럽인들의 세계에는 이들을 적절히 분류할 수 있는 체계가 없었기 때문이다. 당시 유럽인들의 신학적 세계에서 괴물의 존재는 당연했다.

이 책에서는 구석기 인류가 동굴에 남겨놓은 혼종 생물부터 요즘 영화에 등장하는 프레데터 등을 종합하여 괴물에 대해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

“ 괴물은 인간인 것과 인간이 아닌 것,
존재하는 것과 존재하지 않는 것을 가리킨다”





✅괴물은 곧 우리이다.
이 책이 괴물을 탐구하는 이유는 분명하다. 괴물이라는 것은 결국 우리가 싫어하는 자신의 모습에서 탄생했기 때문이다. 스토리텔링 애니멀인 인간이 만들어놓은 갖가지 이야기들, 즉 신화와 민담과 동화 속에 등장하는 온갖 괴물들을 살펴보면 결국 괴물은 인간 사회가 집단적으로 거부하고 두려워하는 것임을 알게 된다.

가장 위험한 괴물은 인간 동물인 우리의 동물성에서 비롯되는 공격성, 잔인함, 공포, 불안, 슬픔 등 외면하고 싶거나 멀리하고 싶은 본성과 경험의 부분들로 이루어졌다. 따라서 괴물을 이해하는 일은 곧 인간을 이해하는 일이다.

“ 우리가 만든 괴물의 역사는 우리 자신의 동물적 본성에 대한 이중적인 태도와 동물적 본성의 필요를 드러낸다. 이 까다로운 관계라는 상처 속에 박힌 파편이 바로 괴물이다. 그렇다면 치유의 열쇠를 가진 것 또한 괴물일지 모른다. ”

또한 괴물은 인간이 자연에서 어떤 위치를 차지하는지 이해하도록 돕는다. 서구 문명은 자연의 모든 생명체 위에 군림하는 위계 구조를 만들었다. 이는 그 유명한 그림 ‘존재의 대사슬’에서 확인된다. 인간은 신과 천사 바로 밑에 있고, 그 아래에는 온갖 동물들이 있다. 서구 문명은 아주 오랫동안 인간을 자연과 동물과 분리하려고 노력하였다. 서구의 근대 이후 과학은 자연을 변형하고 통제하고 착취하여 인간생활을 아주 편리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그 끝이 있는 법이다. 현재 ‘자연과 인간의 관계가 벼랑 끝’(p32)에 몰렸기 때문이다. 그래서 저자는 지금 우리는 그 어느 때보다 우리가 만든 우리의 분신인 괴물들을 이해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자연에서 분리된 인간,
영적인 인도자였던 반인반수 모습의 신들을 악마로 퇴출해버리다
이 책 1부에서 선사시대의 인간의 영적인 삶에 대한 흥미로운 설명을 계속하여 만난다. 그간 이런저런 책들에서 선사시대 인간에 대해 설명한 것을 읽어왔는데 이번 책이 가장 인상 깊다. 그 당시 우리의 조상들은 자연에서 완전히 분리되지 않았다. 현대인들이 집단적 고양감을 얻기 위해 교회에 가고 콘서트에 가는 것은 먼 옛날 수렵채취 시절 우리 조상들이 고안했던 공동체 의식에서부터 비롯한다. 소규모 집단 시대의 주술사들이 의례와 초월적 상태의 경험을 통해 공유된 믿음을 만들었고 공동체의 협력을 이끌었다. 공동체가 좀 더 큰 농경 공동체가 되자 이들은 신이 되었다. 한편 이러한 신들은 일신론이 등장하자 그 자리를 잃는다. 초기 기독교를 비롯한 거대 조직 종교가 대두하자 이전의 신들은 저급한 동물적 본성을 가졌다며 퇴출되었다. 기독교는 인간을 동물들의 세계에서 분리시켰고, 신 바로 아래 두었다. 반인반수의 모습을 가졌던 신들은 영적 인도자에서 기이한 괴물이 되었다. 유대교와 기독교는 '사탄'이라고 불렀고, 무시무시한 악마로 취급했다.


“ 고대의 뿔 달린 신들은 어두운 그림자가 되었다. 주류 종교가 우리를 자연 세계에서 떼어 놓았지만 두려움과 상상력의 결합은 계속하여 기이한 존재들을 만들어 냈다. 그러나 이 존재들은 우리가 공포와 한계를 극복할 수 있도록 돕는 영적 인도자가 아니었다. 괴물이 도사린 어둠 속으로 유혹하고 혼돈을 일으키는 악한 세력이었다.”


✅이 책은 괴물들이 가지는 의미를 하나하나 파고들면서 결국 우리의 본성에 대해 알려준다. 우리가 '문명화'라고 '진보'라고 불렀던 시간의 흐름 속에서 우리가 잃어버린 아니 억눌러온 동물적 본성은 '괴물'이라는 존재를 통해 점점 드러난다. 이 섬세하고 지적인 책은 우리의 본성을 우리의 괴물 이야기를 통해 들려준다.

우리 인간동물은 자신을 다른 존재들로부터 구분하려 애써왔다. 다른 동물들에 비해 가녀린 몸집을 지닌 인간동물은 변화무쌍한 자연에서 생명체들과 함께 지내다가 언제부턴가 떨어져 나왔다. 인간동물은 논리적 사고와 과학적 이해 능력을 가졌다고 우리는 스스로를 동물과 짐승에서 분리시켰다. 인간동물은 과학과 철학으로 스스로를 이해할 수 있다고 자신해왔다. 그러나 세상은 '물리와 화학 법칙으로 구성된 세계가 아니다.'(p345)
신과 영웅, 괴물과 마법 이야기는 우리의 인간동물의 불안전한 심리적 경험을 들려준다.

저자는 이 책에서 괴물들이 가지는 의미를 탐구하며 우리가 마법에 걸린 존재라는 말을 전하고 싶었다고 한다. 인간이 세상과 상호 작용하는 방식에 대해서 괴물이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 귀 기울여야 한다고 말한다. 우리가 다른 민족, 다른 종, 심지어 지형까지 괴물로 만들어 말살해온 야만적인 역사를 인정해야 한다. 인류세 시대에 우리 인간동물은 스스로의 위치를 재고해야 한다. 우리는 위계의 꼭대기에 있지 않다. 우리는 지구상에 존재하는 다른 생명체들처럼 불완전한 존재이다. 우리가 우리 안의 괴물을 받아들이고 이와 불화하지 않는다면, 우리의 동물적 본성을 깨닫는다면, '짐승'과 '동물'이라는 단어에 깃든 부정적 의미가 사라진다면, 우리는 보다 나은 미래를 꿈꿀 수 있을 것이다.


* 출판사 제공 도서를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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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인 오스틴을 처방해드립니다
루스 윌슨 지음, 이승민 옮김 / 북하우스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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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기가 삶을 살아가는 방법인 사람

책읽기가 곧 삶인 사람들이 있다. 평생에 걸쳐 차곡차곡 쌓아온 독서로 생각과 가치관을 형성한다. 삶에서 겪은 온갖 경험들과 쓰디쓴 인생의 고비들을 해석하는 데 가장 중요한 것은 그간 읽어온 것들이다. 기억은 읽어온 것들과 비교하여 반추하는 과정에서 비로소 해석된다. 이들은 본인의 삶을 변화시킨 ‘인생책’이 있다고, 문학이 본인을 구원했다고 말한다. 바로 이 책의 지은이 루스 윌슨이 대표적인 사례이다.

저자는 1932년 호주의 유대인 이민자 가정에서 태어난 백인 여성이다. 저자의 조부모는 20세기 초에 팔레스타인(당시는 오스만 제국)을 떠나 호주로 정착했다. 저자의 아버지는 의학을 공부해서 의사가 되었다. 저자는 오빠와 비교해서 별 차별 없이 자랐고 공교육을 받았으며 대학도 졸업했다. 안락한 집에서 풍족하게 자랐다고 회상한다.

저자의 아버지는 밤마다 본인과 오빠에게 동화를 읽어주었다. 저자는 타고난 독서애호가라고 말한다. 나는 저자의 가정배경(부모님의 교육관, 넉넉한 가정 형편), 제2차 세계대전 이후 호주의 사회적 환경, 여성에 대한 차별 없는 교육 등이 무수히 많은 요소들이 교차하여 읽는 인간으로서의 저자 루스 윌슨을 만들어가는 것을 지켜보았다. 한국에서 1930년대에 태어난 여성이었다면 이 책의 지은이의 형편과 사뭇 달랐을 것이다.

저자의 독서는 주로 소설이었다. 저자는 독서 생활의 진정한 출발점으로 제인 오스틴의 『오만과 편견』을 꼽는다.


🌿예순 즈음 세상에 정나미가 떨어졌다는 것을 깨닫다.

저자는 예순 즈음 삶에 정나미가 떨어졌음을 깨달았다. ‘행복이 대체 뭐란 말인가’라는 질문을 품는다. 이룰 수 있었는데 못 이룬 것들이 서럽고 다가올 날도 서러워졌다. 한편 저자는 꽤 운이 좋은 여성이다. ‘자기만의 방’이 아니라 ‘자기만의 집’을 가질 수 있는 형편이었기 때문이다. 그 역시 가부장제에 예속되어 결혼생활 이후의 삶 대부분은 가족의 것이었을 것이다.

제인 오스틴을 읽으며 성장한 사람이 가부장제에 아무런 불만 없이, 집안의 천사로 살아온 삶에 만족할 수 있을까? 아마 불가능할 것이다. 이 책의 저자처럼.

“ 그도 그럴 것이 나는 오스틴의 여자 주인공들에게서 내가 되고 싶은 여성상을 발견했던 것이다. 그 작품들에 대한 향수가 가슴에 밀려들었다. (…) 오스틴의 작품을 출발점으로 삼아서 그 세계관의 프레임에 비추어 내 인생의 만족과 불만족을 탐색해 보기로 했다. ”
___19쪽


🌿제인 오스틴을 다시 읽다

저자는 제인 오스틴의 소설을 여섯 권을 다시 읽어가는 것을 재활 치료라고 생각하고 독서에 열중한다. 읽은 책을 다시 읽는다. 독서 생활의 맥락에서 지나온 삶을 복기하고, “헝클어진 내 마음 상태를 제대로 이해하고 변화를 모색”해보기로 한다.

저자는 “결혼 생활의 참을 수 없는 외로움을 겪어본 사람들” 중 한 명으로 나이 일흔에 제인 오스틴을 다시 읽는다.

“ 읽는 사람은 상호 교섭의 일환으로 저마다 ‘과거 경험의 저장소‘에 든 것을 끄집어낸다는 로젠블랫의 단순 명료한 설명을 듣고 나도 글을 읽는 눈이 뜨였다. “
__36쪽


🌿제인 오스틴 소설을 해독제처럼 섭취하다

제인 오스틴의 소설의 어떤 점이 해독제로 작용했을까? 한편 해독해야 할 것은 무엇인가?

이 땅의 모든 여성은 다양한 교차성을 가지고 있다. 이 책을 읽으면서 1930년대 즉 종전 이후 호주 대륙에서 유대인 가정의 의사 딸로 태어난 어느 여성(이 책의 저자)을 비롯하여 그녀 주변의 또 다른 호주 여성들의 삶이 어떠했는지 아주 희미하고 피상적인 그림을 그려나갔다.


” 종전 이후 생활이 안정되면서 세상은 올드 노멀로 되돌아갔고 젠더 관계를 재조정하려는 가시적인 움직임들이 나날이 후퇴했다. 지금 생각하면 결혼 초기가 일종의 과도기였던 것 같다. 그때 나는 하룻밤 사이에 사랑하는 남자와 함께한다는 기쁨이 아니라 가장에게 순응을 요구하는 현실에 적응해야 했다. “ _88쪽

” 나는 자율과 독립이 당연히 보장되는 것이라 믿었고 우리 어머니 세대에게는 어림도 없었을 대학 교육을 당연하게도 받은 입장이었는데도, 가만 보니 내가 불이익을 당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 정확히 말하면 이건 현실과의 대립이었다. 페미니즘 역사에서 잘못된 쪽에 태어난 자의 굴레라고 해야 하나.“ _88-89쪽


저자는 제인 오스틴의 소설에서 그려지는 동반자적 결혼 관계를 기대하였으나, 실제 결혼 생활은 그렇지 못했다. 이를 두고 저자는 “어느 결엔가 나는 결혼 공화국의 이등 시민이 되어버렸더라.”라고 말한다.

나의 어머니는 저자보다 대략 20년 뒤에 태어난 베이비붐 세대인데 대중문화에서 그려지는 동반자적 결혼 관계에 세뇌되었고 여기서 비롯된 환상을 품고 산 나머지 가부장적이고 권위적인 아버지와 평생에 걸쳐 불화했다. 문득 나는 이 세상의 여성들이 저마다 가진 결혼관에 어떤 것들이 스며들었는지 떠올려보았다.

“늙어가는 처지에 여전히 로맨틱한” 저자가 만약 제인 오스틴을 읽지 않았다면 다른 결혼관을 가졌을까? 그랬다면 결혼 생활을 해석하는 방식이 달라졌을까? 어쨌거나 저자는 제인 오스틴의 지대한 영향을 받은 결혼관으로 인해 현실의 결혼 생활에 불행을 느끼기도 되지만, 결국 제인 오스틴으로 스스로의 불행을 해독할 수밖에 없는 처지다.

“ 1950년대와 1960년대, 그 시절 내 주변의 여자들은 하나같이 인생이 던져놓은 예상을 빗나간 패를 받아 들고 그걸 어찌 처리하나 고심하고 있었다. 가까운 여자 친구들 대부분이 대학 교육을 받고 곧바로 결혼을 했다. 자진해서 이혼을 진지하게 고려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
불륜이 원인이었는지 증상이었는지 잘 모르겠지만 사방이 불륜이었다. ”
_89-90쪽



저자는 인생의 희비고락을 제인 오스틴을 읽으며 다시 해석한다. 우리 모두는 어떤 식으로든 삶을 해석한다. 저자는 제인 오스틴을 통해 자기 인생 스토리를 이해하고 자기 삶과 타협점을 찾았다.

이 책을 읽으면서 서구의 백인들이 가진 행복, 삶, 자기애, 이성, 감성 등에 대한 관념을 계속하여 의식했다.

나는 저자와 같은 수준의 삶에 대한 통찰 따위는 없다. 그러나 나 역시 책들의 도움으로 위에 언급한 단어들에 덕지덕지 묻어있는 환상, 거품 등은 몇 마디 보탤 수 있다. ‘행복’이라는 단어에는 20세기 이후의 소비주의 사회가 주입한 환상이 강박적으로 작용한다는 것, 우리는 개개인의 감정을 너무나 중시한다는 것(나르시시즘적 문화), 서구식 이성과 감성의 대립항 대비는 틀렸다는 것, 삶이 평탄해야 한다는 기대는 환상이라는 것, 불행과 실패라는 단어는 틀렸다는 것, 나의 기대 대부분이 어리석다는 것 등등.

저자는 『이성과 감성』을 읽으며 서구식 이성-감성 대립항 구조는 잘못된 것임을 깨닫는다. 이성과 감성은 인간 성장의 필수 요소이다. 『에마』를 읽으며 나르시시즘적 자기애를 버리는 법을 배우며, 자신과 타자에 대한 더 나은 이해에 다가간다.

****
책 읽기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이 책에 밑줄 그을 부분이 상당히 많을 것이다. 지금의 나는 오로지 읽기 위해 산다. 읽는 것 말곤 그 어떤 것에도 의미를 찾을 수가 없다.

이 책의 <나가며>에 굵은 밑줄을 그은 부분을 소개하며 이 독후감을 끝내야겠다.

“ 좋은 뜻에서 책을 선물로 받았는데 간혹가다 그 의미가 불가사의하게 느껴지는 때가 있다.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나는 그것을 섭리라고 생각하는데, 섭리라는 것이 내 의식 안에 상주하기 때문일 것이다. 이 선물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나 당장은 알 듯 말 듯 하다가 수년을 돌고 돌아서야 인생에서 그것의 자리가 밝혀지기도 한다. ” __ 393쪽


* 출판사 제공 도서를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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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미디어 생태학 - 인공지능이 재편하는 지식과 권력 방송문화진흥총서 252
이광석 지음 / 안그라픽스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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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미디어 생태학』은 우리 사회의 새로운 신앙이 된 실리콘밸리 산 기술을 근본적으로 의문시하고, 인류세 위기 현실에서 공동 번영의 길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인간의 기술을 어떻게 다루어야 할지 모색한다.

먼저 인공지능으로 대표되는 이 시대의 핵심 신기술을 왜 근본적으로 의문시해야 하는가? 저자는 우리 사회에도 기술 숭배 정서가 뿌리 깊게 자리하기 때문이라 말한다.

❝우리 사회에 첨단 테크놀로지는 성장 중독을 효과적으로 방어하는 스테로이드 약물이 된 듯하다. 불과 몇 년 전 우리는 코로나19 감염병 재난 시기 방역을 위해 바이러스 공포의 면역제로 각종 감시 기술을 도입했고 가상의 메타버스 일상에 열광했던 적이 있다. (…) 이제는 생성형 인공지능이 우리 사회의 기술 축복이자 또 다른 신성장 동력으로 떠오르고 있다. 하지만 불행히도 그것이 미칠 사회와 노동시장 변화에 대한 비판적 분석이나 대응책은 크게 부재하다.❞

❝성장 숭배, 기술 과진화, 지대 욕망 등에 허우적거리는 것 외에 자본주의의 바깥을 아예 상상하기조차 어려운 그런 우울한 ‘리얼리즘’ 현실에 있는 것이다. 그 가운데, AI 테크놀로지가 사회 구원의 메신저처럼 군림하는 모양새다.❞

만성화된 경기 침체, 고용 불안이 일상화된 한국 사회에 신기술은 구세주처럼 여겨진다. 저자는 “대체로 우리 사회는 신기술 선점과 기업 경쟁력 확보를 통한 경제 발전의 낙수 효과에 집중하는 경향이 크다”고 지적한다.

미디어는 빅테크 회사의 소식을 앞다투어 보도해왔다. 반면 시민 데이터 인권 상실, 기술 대체 효과로 인해 사라지는 일자리, 기술 변화에서 배제된 사회 약자들의 소외, 플랫폼 노동 현실, 탈진실, 디지털 도파민에 사로잡힌 데이터 소비 방식 등 기술이 가져온 온갖 사회 문제들은 그렇게 비중 있게 다루지 않았다.

저자는 숭배나 신앙의 대상이 된 우리 사회의 미디어 기술을 제자리로 돌리기 위한 문제의식에서 출발한다. 먼저 인공지능 둘러싼 주요 쟁점들을 짚고, 기후재난 시대에서의 인공지능 기술의 지위와 위상에 끊임없이 의문을 던진다.

그다음에는 생성형 AI 문제를 깊게 파고든다. 우리가 과연 생성형 AI를 잘 활용할 수 있을까? 챗GPT는 나의 훌륭한 협업도구가 될 수 있을까? 저자의 분석은 ‘그렇지 않다’이다. 협업이라는 동등한 위치는커녕 기계와 인간의 지위가 역전될 것이라고 내다본다. 우리는 그럴듯한 일자리를 점점 잃어갈 것이라 전망한다. 저자는 인간과 인공지능 사이에 권력이동 현상이 내밀하게 이루어지고 있다고 분석한다.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AI 기업과 인력 브로커 업체의 하청이나 도급을 받고 ‘어시’ 일감을 수행하거나, 인력시장 플랫폼에서 단기 계약직을 수행하는 유령노동자나 미세노동자라는 불안한 지위를 가지게 될 것이다.

❝애초 인공지능 자동화 시스템을 발 빠르게 도입한 은행들은 업무의 기본적인 고객 문의를 AI 챗봇이 처리하는 대신, 인간 상담사는 고객들의 복잡한 상담 서비스 문제 해결에 집중할 수 있다고 낙관했다. 그런데 실제 AI 챗봇의 활용 효과는 은행이 의도했던 것과 전혀 달랐다. 많은 경우에 콜센터 상담원이 AI 챗봇에 지쳐 화가 잔뜩 나 있는 고객을 상대해야 하는 상황을 만들어냈다. (…) 오히려 상담사들의 업무 난이도가 실제 높아졌다. (…) 생성형 AI 챗봇과 일하는 콜센터 상담 노동자들에게 이른바 ‘AI 뺑이’를 가속화해 노동자들을 편하게 만드는 상황이 생각처럼 쉽게 이루어지지 않았다.❞

책의 3부부터는 인공지능이 만들어내는 기술 환각에서 깨어나 다른 삶을 꿈꾸는 상상력과 대안을 논한다. 이 책은 AI 기술의 생태주의적 접근과 해법을 강조한다. 인공지능이 모든 것을 압도하는 디스토피아적 미래가 새로운 현실이 되는 것을 원치 않는다면 우리 인간은 비인간 존재와 평화롭게 얽혀야 한다.

인공지능 기술은 보통 인간계나 자연계와 무관하며 비물질이거나 탈물질의 것으로 다뤄져 왔다. 우리는 인공지능을 청정의 거대 과학기술 발전 논리로 추앙하면서, 기실 그것이 물질적 실체 없이 존재할 수 없고 물질 논리와 긴밀히 연계돼 있다는 사실을 종종 잊는다. 가령 인공지능은 인간의 노동과 인간 활동 데이터 등 비물질 자원은 물론이고, 에너지, 토지 광물, 냉각수, 데이터센터, 중앙처리장치(CPU), 그래픽처리장치(GPU), 반도체, 클라우드 등 물질 자원과 미디어 인프라의 동원 없이는 그 어떠한 연산처리도 불가능하다.

저자는 페미니스트 이론가 캐런 바라드의 ‘얽힘’ 개념, 문화 인류학자 애나 칭의 송이버섯 이야기(『세계 끝의 버섯』)를 가져와 인간/비인간 존재들의 상호의존적 관계와 얽힘, 돌봄 등을 이야기한다.

이 책은 제목에서도 드러나듯 처음부터 끝까지 기술을 생태주의적으로 다루고 접근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기술적 대상은 그 내적 논리를 지닌 독립된 인공물이나 따로 떨어진 개체적 존재가 아니다. 인공지능 기술은 생태계, 마음계, 인간계, 자연계와 함께 복잡하게 얽혀있다. 우리는 이 얽힘을 제대로 이해해야 한다.
이 책의 마지막 장에서는 동시대 첨단 기술과 생태주의적 조화로운 동거를 모색하는 방법을 이야기한다. 저자는 인류세 파국을 막기 위해서 기술 폭주에 대한 ‘감속주의적 전회’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여기서 감속주의란 기술 ‘가속주의’와 반대되는 개념이다. ‘기술 가속주의’는 저렴한 자연에 기대어 자본주의적 생산 기계의 산출 가능성을 최대치로 끌어올리면서 성찰 없는 성장과 발전을 꾀하는 것을 말한다.

감속주의는 기술의 생태 사회적 숙의 과정을 통해 생명과의 공존을 위해 기술의 속도를 조절하려는 성찰적 태도로, 인간중심주의에 대한 반성적 성찰과도 닿아 있다.
감속주의는 단순히 기술의 포기나 폐기를 뜻하지 않는다. 감속주의는 우리 사회의 기술 숭배 정서, 기술만능주의적 허상을 비판하는 개념이다.

저자는 마지막 장에서 기술 감속주의를 가로막는 몇 가지 장벽들을 검토한 뒤 책을 마무리한다. 인공지능은 전혀 청정하지 않다. 우리 모두는 인공지능이 가진 물질적 독성을 전체 생애주기별로 평가할 수 있어야 한다.

책의 마지막 소제목은 <테크노 리얼리즘의 감각>이다. 이 책은 마크 피셔의 『자본주의 리얼리즘』의 용어법을 빌려 인공지능이 모든 것을 휩쓸려고 하는 우리 사회의 우울한 현실을 ‘테크노 리얼리즘’라고 표현한다.

이 책은 우리 시대를 구석구석 비판하고 성찰한 여러 사상가들을 지속적으로 호출한다. 문화인류학자, 비평가, 미디어학자, 사회학자, 신유물론자 등등.

저자는 마지막 글 <테크노 리얼리즘의 감각>에서 도나 해러웨이, 로지 브라이도티의 말을 인용한다.

해러웨이는 “기술이 버릇이 없지만 매우 영리한 자손들을 어떻게든 구하러 올”것이라 철석같이 믿는 인간의 기술 신앙과 그 어리석음을 크게 꾸짖은 적이 있고, 브라이도티는 우리 인간은 “기술 공포증적이어도, 순진하게 기술애호적이어도 안되며, 중간적 입장에서 오히려 우리의 역사성에 의해 야기된 복잡성을 다루기에 충분히 냉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저자는 기술 감속주의가 인류세 위기를 멈춰 세우는 중요한 방법이 되어야 한다고 강조하고 책을 마무리한다.

최근 읽은 어떤 책에서는 인공지능을 매일 꾸준히 공부하라고 조언했다. 자기 계발서적 같은 인공지능 관련 책들이 넘쳐난다. 이런 책들의 존재를 비판하는 것은 전혀 아니다. 다만 인공지능을 보다 종합적이고 비판적으로, 균형감 있게 이해하고 싶다는 마음이 커졌을 뿐이다. 이 책 『AI 미디어 생태학』은 그런 내 바람을 들어주고 내 독서의 빈틈을 메워준다. 인공지능이 재편하는 지식과 권력의 흐름을 잘 정리하여 알려준다.

이 책은 서울과학기술대학교 IT 정책대학원 디지털문화정책 이광석 교수님이 쓰신 책으로 대중적인 글쓰기와 학술적인 글쓰기 중간에 걸쳐있다. 그러나 생태주의, 신유물론 등 분야에 관심이 있는 독자라면 유익하게 읽을 수 있다.



* 출판사 제공 도서를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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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통의 편지로 읽는 세계사 - 가장 사적인 기록으로 훔쳐보는 역사 속 격동의 순간들 테마로 읽는 역사 11
콜린 솔터 지음, 이상미 옮김 / 현대지성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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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통의 편지로 읽는 세계사』는 역사 속 편지에 관한 이야기로, 역사책에 이름을 남긴 사람부터 잘 알려지지 않은 사람들이 남긴 편지들이 담겨 있다.
기원전 346년경 스파르타인이 마케도니아 필리포스 2세에게 쓴 짧은 답장에서부터 2019년 스웨덴의 여학생 크레타 툰베리가 기후 변화에 대응을 촉구하여 인도 나렌드라 모디 총리에게 쓴 편지까지 담겼다.
책에서는 사적인 편지부터 공적인 편지, 명령하는 편지, 반항하는 편지, 처음 보낸 편지, 계속 주고받은 편지, 마지막 편지, 잃어버린 편지, 전쟁 중에 보낸 짧은 편지, 전투 직전에 보낸 중요한 편지까지 다양한 편지를 다룹니다.

❝ 이 편지들이 실제로 역사를 바꾸지는 않았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모두 역사적으로 중요한 가치를 지니고 있습니다.❞


이번 독후감에는 100통의 편지 중 몇 편을 소개하려고 한다.

✅ 정말 짧은 편지
이 책의 첫 번째 편지는 기원전 364년 스파르타인이 마케도니아 필리포스 2세에 보낸 두 통의 짧은 편지다.
영단어 형용사 ‘laconic’은 ‘말이 짧지만 함축성 있고 간결한’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라코닉 화법’은 거창하고 장황한 생각을 군더더기 없이 짧게 축약해 전달하는 화법이다. 이 영단어의 뜻은 알고 있었는데 그 유래가 스파르타의 지역 이름인 ‘라코니아’에서 온 것은 이 책을 읽기 전까지 몰랐다.

대중문화 속 스파르타 남성의 이미지는 영화 「300」에 잘 묘사되어 있다. 7세부터 기초 군사훈련과 학문 교육을 받은 스파르타 남성은 질문에 대답하는 기술도 배웠다고 한다. 만약 라코닉 화법에 부합하지 않게 대답을 하면 벌을 받았다고 한다. 이웃 국가 마케도니아의 필리포스 2세는 영토 확장에 힘썼다. 그는 스파르타 지도자에게 전쟁 없이 항복하라며 편지를 보냈다. 스파르타가 보낸 답장은 한마디만 적혀 있었다.

❝ IF(만약) ❞
__스파르타가 마케도니아 필리포스 2세에게 보낸 첫 번째 편지 내용

필리포스 2세는 이 편지에 대한 답장을 보낸다. 필리포스 2세 편지도 나름 라코닉 화법인 것 같다. “내가 당신들 땅에 친구로 들어갈까, 적으로 들어갈까?” 그랬더니 스파르타가 두 번째 편지를 보냈다. 이번 편지도 딱 한 단어다.

❝ Neither(둘 다 아니다) ❞
__스파르타가 필리포스 2세에게 보낸 두 번째 편지 내용


✅ 콜럼버스가 스페인 왕에게 자신의 발견을 알린 편지

1492년. 역사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이 연도는 외울 것이다. 바로 콜럼버스가 신대륙을 발견한 해다. 콜럼버스는 페르디난드 왕과 이사벨라 여왕에게 본인의 항해에 발견한 것과 겪은 일들에 대하여 편지를 썼다.

(여기부터의 단상은 저자가 책에 언급한 내용은 아니다. 그러나 더디지만 나름 진지하게 역사책을 읽어나가는 독자로서 그냥 넘어갈 수가 없다. 먼저 콜럼버스가 발견한 것은 다들 알겠지만 신대륙이 아니다. )

나는 이 편지를 읽으면서 왠지 불편했다. 콜럼버스를 비롯한 유럽인들의 항해가 이 대륙을 어떻게 침략했고 약탈했고 학살했고 불태웠는지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인간악의 역사를 확인하고 싶으면 유럽인들의 온갖 식민지 수탈의 역사를 읽으면 좋다.


✅ 세기의 연애편지

헨리 8세와 앤 불린의 사랑은 역사책에 길이길이 남는 연애 이야기다. 이 책에서도 빠질 수 없다. 1526년 25세의 젊은 청년 헨리는 10살 연하인 앤에게 정신없이 빠져들었다. 그는 앤을 쫓아다니며 계속 연애편지를 썼다고 한다. 이 책에는 그 연애편지 중 한 편이 실려 있다. 헨리 8세의 필체와 함께 그 절절한 편지의 내용을 한번 보자.



❝ 이렇게 아름답고 완벽한 선물은 없을 것이도. 진심으로 감사를 #세계사 #역사 #책추천 #편지표하오. 멋진 다이아몬드와 여인이 홀로 타고 있는 배도 인상적이지만, (…)
당신의 애정을 보여주는 표현과 편지의 아름다운 문구는 영원히 당신을 존경하고, 사랑하며, 섬기게 만드는구려. (…) 나 역시 당신을 기쁘게 하려는 열망과 충성으로 당신을 향한 마음이 더 커지도록 노력할 것을 약속하오.
또한 전에 내가 어떤 식으로든 당신을 서운하게 했다면, 당신이 구했던 용서를 내게도 베풀어주기를 간청하오. (…) ❞

__헨리 8세가 앤 불린에게 보낸 연애편지 중


📌『100통의 편지로 읽는 세계사』의 저자 콜린 솔터는 대중 교양서 전문 작가로, 과학, 자연사, 역사, 전기 등 다양한 주제에 대해 책을 써왔다. 나는 『해부학자의 세계』를 통해 저자의 글을 만나게 되었고 이번 책은 두 번째 만남이다. 광범위한 주제에 대한 철저한 조사와 명쾌하고 재밌는 설명으로 독자의 교양 수준을 높여준다. 이번 책도 『해부학자의 세계』와 동일하게 하드커버에 올 컬러, 훌륭한 내용과 편집 등 소장 가치가 무척 높다.
운 좋게 저자의 책 두 권을 만났고 의학사와 세계사에 대한 교양을 높일 수 있었다. 저자의 다음 책도 무척 기대된다.

❝ 이 편지가 발견된다면, 우리가 죽어가는 동료를 버리지 않고 끝까지 잘 견뎌냈다는 것이 밝혀질 것입니다. 우리가 이 경주에서 용기와 인내를 아직 잃지 않았음을 이 편지가 증명할 것입니다. ❞
__남극 탐험대 스콧 대장이 탐험대 재정 후원자 슈파이어 경에게 보낸 편지 중


* 출판사 제공 도서를 읽고 쓴 리뷰입니다


#세계사 #역사 #책추천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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