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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사이에 금지된 말들 ㅣ Entanglement 얽힘 4
예소연.전지영.한정현 지음 / 다람 / 2025년 12월
평점 :
*출판사 '다람'에서 도서를 지원받아 작성되었습니다.
#얽힘4기서포터즈 #협찬

세 편의 단편은 각기 다른 상황과 인물을 통해, 여성이 자신의 불안과 관계 속에서 어떤 침묵을 선택하게 되는지를 보여주었다. 그리고 단편들을 모두 읽은 뒤 이어지는 코멘터리는 작품을 한층 더 깊고 다각적으로 이해하게 해주었다. 무심코 지나쳤던 장면의 의미나 저자가 왜 그러한 설정을 했는지 짚어주며, 이야기를 다시 바라보게 만든다는 점에서 특히 인상적이었다.
<나쁜 가슴>은 정주못에서 사망한 K산후조리원 원장 김태선의 뉴스를 접한 유진이, 10년 전 딸 지유를 낳고 산후조리를 하던 시절을 회상하며 시작된다. 이 작품을 통해 출산 이후 여성의 몸이 어떻게 인식되는지, 그리고 여성이 자신의 몸에 대한 주체성을 지키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볼 수 있었다. 특히 출산 전까지는 가슴이 여성성의 기준으로 여겨지다가, 출산 이후 수유 과정에서는 철저히 '기능'으로만 평가된다는 저자의 코멘터리는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여성의 몸을 바라보는 시선이 상황에 따라 얼마나 쉽게 대상화되고 규정되는지를 명확히 인식하게 했기 때문이다. 아직 직접 겪어보지 않은 일이지만, 언젠가 마주할지도 모를 현실이라는 점에서 이 이야기는 더욱 깊은 울림을 주었다.
<가짜 여자친구>는 할머니와 할아버지의 자부심이었지만, 데모와 같은 사회운동에 참여하며 대학원 무기한 정학 처분을 받게 된 고모를 바라보는 조카 성은의 시선을 따라간다. 어지러운 세상에 안주하지 않고 자기 삶을 스스로 선택하며 나아가려는 고모의 모습이 기억에 남는다. 관습과 기대에 맞서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일이 얼마나 어렵고 큰 용기를 필요로 하는지, 그 무게를 완전히 이해한다고 말할 수는 없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자신이 원하는 일을 선택하고 그 선택을 감당하며 살아간다는 것이 결코 가볍지 않다는 사실이다.
<나의 체험학습>은 사람들과 어울리고 싶어 하지만, 자신이 마음을 주는 상대는 늘 곁을 떠난다는 불안을 안고 있는 수이와 '미미식당'의 미미 이모의 이야기다. 관계를 갈망하면서도 이별을 먼저 떠올리는 수이의 모습에서, 함께하는 시간이 행복할수록 그 끝을 두려워하는 나의 모습이 떠올랐다. 불안해하지만 관계를 포기할 수 없는 건 무엇 때문일까?
결국 이 작품들은 말하지 못한 마음이 한 개인을 어떻게 흔들고, 또 조금씩 변화시키는지를 돌아보게 만든다는 점에서 서로 얽혀 있는 듯하다. 이야기는 비교적 쉽게 읽히지만, 그 안에 담긴 주제와 마음은 결코 가볍지 않아 책을 덮은 뒤에도 오랫동안 곱씹어 보았다.
그녀의 입에서 나오는 엄마라는 단어는 산모들의 기분을 묘하게 우울하게 만들었다. 우리 중 누구도 제 이름이 아닌, 엄마로 통칭될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으니까. - P14
지유는 결국 실패했다. 그래도 괜찮았다. 모든 일에는 생각보다 많은 연습이 필요하니까. 제 몸을 지키는 일도 마찬가지일 터이다. 그러나 나는 믿었다. 길고 지난한 연습만이 우리의 가슴과 이름을 지켜줄 거라고. - P41
"이해가 안 가. 우리는 닥쳐온 문제에 늘 어쩔 줄 몰라하기만 해." 이모는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나는 이모의 말을 이해할 수 있었다. 사람들은 종종 누군가를 잃지만 잃을 준비는 늘 되어 있지 않은 상태이니까. - P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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