쉬어달리기 - 되어 가는 삶, 멈추어 묻고 답하다
김지영 지음 / 파지트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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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파지트'에서 도서를 지원받아 작성되었습니다.


<쉬어달리기>는 바쁘게 달려만 오던 삶 속에서 잠시 멈춰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게 만드는 책이다.

짧은 쉼표와 물음표, 그리고 때로는 느낌표처럼 마음속에 오래 머물어, 잊고 있던 내 목소리를 다시 들을 수 있었다.



'멈춤은 온점이 아닌 쉼표'라는 표현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언제부터인가 '멈춤'을 실패의 다른 말로 여겼던 것 같다. 그러나 <쉬어달리기>를 통해 멈춘다는 것은 그만두는 것이 아니라, 삶의 전환을 위한 하나의 방법이라는 걸 알았다. 무작정 목표를 향해 달려가는 것이 아니라, 더 의미 있는 삶을 위한 주체적이고 능동적인 행위로 바라보니 예전만큼 두렵지 않아졌다.

그리고 우리가 멈추지 못하는 이유를 예리하게 짚어 깜짝 놀랐다.

도태될 것 같은 불안감, 타인의 시선 등이 우리를 끝없는 경쟁의 트랙에 붙잡아 둔다는 것이다. 나 역시 열심히 살고 있는 사람들 속에서 흐름에 몸을 맡기듯 '열심히 해야지', '버텨야지'라는 생각으로 하루하루를 살았다.

어디에서 오는지 모를 막연한 두려움과 불안함이 나를 짓눌러 멈추지 못하게 만들었고, 쉬는 것조차 불안해 뭔가를 해야 한다는 강박감에 시달렸다. 그런데 이 책을 통해 나의 내면에 자리 잡은 불안의 근본을 조금이나마 알게 되었고, 내가 원하는 삶의 방향을 재정립하기로 결심했다. 그리고 그 방향으로 나아가는 데 방해가 되거나 어긋나는 습관을 찾고, 내게 필요한 새로운 습관을 길러야겠다고 다짐했다.

이 책의 가장 큰 특징은 단순히 멈추라고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질문을 통한 자기 탐색을 할 수 있다는 점이다.

그동안 내가 느꼈던 감정의 배경과 이유에 대해 사색하는 시간을 통해 내 안의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물론 모든 질문에 바로 대답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어떤 질문들은 좀 더 깊이 생각해봐야 할 숙제가 되었다. 하지만 바로 그 질문들이 진정한 나를 찾아가는 과정이자 삶의 방향성을 찾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 확신한다.

작가님의 말씀처럼 고정된 'Be'가 아니라, 변화하는 'Becoming'의 태도로 삶을 살아가고 싶어졌다. 물론 여전히 바쁘게 살아가겠지만, 예전처럼 무작정 달리지 않을 것이다. 의도적으로 멈추고, 스스로에게 물으며, 나만의 속도로, 나만의 삶을 살고 싶다.



삶에서 필요한 것은 이어달리기가 아니라 쉬어달리기다. 계속 이어달리다 보면 우리는 관성대로 살게 된다. 관성에 갇히면 삶에 대한 새로운 시각이나 가능성을 발견하지 못한 채, 늘 하던 대로 살아가게 된다. - P5

‘열심히 하면 결국 성공한다‘‘끝까지 포기하지 않으면 원하는 결과를 얻을 수 있다‘는 메시지는 우리에게 끊임없이 멈추지 말라고, 계속 달리라고 재촉한다. 그러다 보니 우리는 멈춰야 할 때조차 멈추지 못한다. - P19

사람들은 종종 자신을 이해하는 과정을 양파 껍질을 벗기는 것에 비유하곤 한다. 겉껍질을 하나씩 벗겨내다 보면 ‘진짜 나‘가 드러날 것으로 생각한다. 하지만 IFS에서는 나를 마늘과 같은 존재로 바라본다. 여러 개의 알맹이(쪽)가 모여 하나의 통마늘을 이루듯, 나라는 존재도 다양한 부분들로 구성되어 있고, 그 각각이 모두 나의 일부라는 것이다. - P36

인생은 정답을 찾는 과정이 아니다. 끊임없이 오답을 수정해 나가는 여정이고, 그 속에서 우리는 배우고 성장하고 변화해 간다. - P70

스스로에게 다정해지기 시작하면 그 다정함을 받는 나는 어느새 더 사랑스러워진다. 그리고 그런 나를 더 사랑하게 된다. 자기 사랑의 긍정적인 순환이 시작되는 것이다. - P101

우리는 종종 변화를 위해 새로운 것을 채우는 데 집중한다. 하지만 진짜 변화는 덜어낼 때 시작된다. 빼기는 단순히 없애는 행위가 아니라, 중요한 것을 선택하고 거기에 집중하는 힘이다. - P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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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상 우체국
호리카와 아사코 지음, 김선영 옮김 / 북다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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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북다'에서 도서를 지원받아 작성되었습니다.


<환상 우체국>은 평범한 취업 준비생이었던 아즈사가 '물건 찾기'라는 특기로 도텐 우체국을 알게 되고, 그곳에서 다양한 사연을 마주하며 점점 변하게 되는 이야기다.

죽음이라는 무거운 주제를 담고 있으면서도, 이야기 전반에 흐르는 것은 절망이 아닌 희망이며, 슬픔보다는 치유였다. 삶과 죽음, 기억과 마음을 이어주는 그 연결고리가 마음에 깊이 남는 작품이다.



현실의 우체국과 도텐 우체국은 비슷하면서도 분명히 달랐다.

두 우체국 모두 편지를 통해 사람들 간의 소통이 가능하다. 그러나 현실의 우체국은 살아있는 사람들 간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현재적 소통을 중시하는 반면, 도텐 우체국은 생과 사의 경계를 넘어선 감정과 기억의 전달을 중요하게 다룬다.

그리고 무엇보다 선택된 자들만이 도텐 우체국을 방문할 수 있다는 점이 달랐다. 책 속 등장인물들이 고인을 기억하며 편지에 담아내는 후회, 사랑, 감사 같은 감정이 고인에게 전달되고, 고인들이 남긴 편지는 살아있는 사람들에게 꿈이나 암시의 형태로 답을 준다는 설정은 매우 신비롭고 흥미로웠다. 이는 죽음이 소통의 단절이 아닌 다른 형태의 연결임을 보여주는 듯했다.

무엇보다 '물건 찾기'라는 특기 덕분에 아즈사가 도텐 우체국의 아르바이트생이 된 것이 인상적이었다.

평범하게만 여겼던 특기가 도텐 우체국에서는 꼭 필요한 능력으로 인정받았을 때, 아즈사는 자신을 필요로 하는 곳이 있음을 확인하고 큰 위안을 받았을 것이다. 이러한 '물건 찾기' 능력은 아즈사의 자존감을 높이고 정체성을 확립하는 데 도움이 되었을 것이라 생각한다. 처음에는 '목간'을 찾기 위해 필요했던 특기가 책의 중간마다 문제를 푸는 열쇠가 된다는 점이 흥미로웠다.

처음에는 잔잔하게 흘러가던 이야기가 후반부에 이르러서는 빠르게 전개되었다. 이상하게 생각하거나 대수롭지 않게 여겼던 요소들이 하나씩 해결될 때는 정말 충격적이었다. 등장인물들은 각자 서로 다른 슬픔과 아픔을 지니고 있으며, 죽음과 이별을 받아들이는 방식 또한 달랐다. 이처럼 죽음을 마주하는 다양한 태도를 통해 삶의 여러 단면을 엿볼 수 있었다.

'죽은 사람은 사라지는 게 아니다'라는 마음이 듬뿍 담긴 <환상 우체국>을 읽으며, 살아있는 사람과 고인이 서로에게 편지를 주고받을 수 있는 그런 특별한 공간이 실제로 존재했으면 하는 바람까지 품게 된다.

다들 당연하다는 듯 출발한 첫걸음을 나는 아직 내딛지 못했다. - P10

"도텐 우체국은 정말 이곳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만 선택해. 도텐 우체국이 선택한 사람만 올 수 있어." - P124

항상 다니는 길가의 건물이 철거되면 그곳에 원래 무엇이 있었는지 기억하지 못하는 건 흔한 일이다. 네잎클로버는 그것이 행운의 부적이라고 해도 어지간히 눈에 불을 켜고 찾지 않으면 찾을 수 없다.

"인생도 똑같아. 사람은 가고 싶은 곳에 가고,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하잖아. 꿈을 갖고 실현하기 위해 가능한 모든 노력을 하면 분명 이루어져. 말로만 하는 꿈은 꿈이 아니라 허풍으로 끝나버리지만." - P125

‘솔직히‘를 연발하는 것은 솔직함과는 거리가 먼 인생을 살아왔다는 사실을 무의식적으로 변명하느라 그런 걸까? - P202

"어머, 아즈사. 다른 사람하고 싸우지 않고 살고 싶다는 건 훌륭한 꿈이야. 고래가 되는 것만큼이나 이루기 어렵겠지만." - P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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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학생 책 읽는 샤미 52
김화요 지음, sujan 그림 / 이지북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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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이지북'에서 도서를 지원받아, 전체 내용 중 일부만을 읽고 작성되었습니다.


<전학생>은 평화롭던 6학년 3반에 전학생 이하도가 등장하면서 시작된다.

과거에 대한 소문이 무성한 전학생 하도, 남몰래 하도와 친해진 아현, 반의 중심이 되고 싶은 혜정, 누구와도 선을 넘고 싶지 않은 유신까지 네 인물의 시선으로 전개되는 이야기이다.

단순히 학교 폭력을 다룬 작품이 아니라, 집단 속에서 개인이 흔들리고 성장하며 결국 자신의 양심과 마주하는 과정을 섬세하게 그려내고 있어 초등 중고학년 추천도서이다.


분리수거장에서 새끼 고양이를 함께 구조하며 하도의 진짜 모습을 알게 된 후에도, 학교에서는 분위기에 휩쓸려 하도를 외면하는 아현의 모습은 순간 비겁해보였다. 그러나 곧, 진심은 있지만 용기가 부족하고, 선의는 있지만 실행력이 없는 모습이야말로 가장 인간적인 모습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노력하지 않아도 자연스레 주목받는 하도에 대한 부러움과 질투, 그리고 자신의 치부를 들킨 뒤 느끼는 혜정의 분노 또한 조금이지만 이해할 수 있었다. 특히, 하도에게 약점을 들킨 후 미움이 더 깊어진 혜정의 모습은, 누구나 약점을 아는 사람 앞에서 더 방어적으로 변한다는 인간의 본능을 보여주는 듯했다.


사전 서평단으로 읽은 마지막 장면은 혜정이가 '장애인 학교 폭력 사건'을 사실인지 확인도 하지 않은 채 단톡방에 퍼뜨리려는 장면이었다. 아직 뒷이야기를 읽지 못했지만, 이런 소문이 사실처럼 퍼지면서 반 아이들이 '우리는 옳은 일을 하고 있다'는 착각에 빠져 하도를 따돌릴 가능성이 크다. 결국 확인되지 않은 말이 누군가를 배척하는 명분이 되고, 집단 따돌림이 정당화되는 상황이 만들어질 수 있다는 뜻이다. 혜정의 행동은 분명 잘못됐지만, 그 이면에 불안과 경쟁 그리고 집단 속에서 움직이는 보이지 않는 규칙이 작용하고 있다는 점이 씁쓸하게 느껴졌다. (이래서 '카더라통신'이 무서운 것이라고 다시한번 더 깨닫게 되었다.)


사전 서평단으로 읽은 분량은 전체의 1/2에 불과해 아쉬움이 크다.

하도의 진짜 과거가 무엇인지, 아현은 결국 어떤 선택을 하게 될지, 그리고 혜정과 하도의 갈등은 어떻게 결말을 맞이할지 궁금증이 꼬리를 문다. 하도가 과연 장애인 학교 폭력 사건에 연루된 것이 사실인지, 아니면 악의적인 소문에 불과한 것인지도 빨리 알고 싶다.

혼자만 알게 되어 기뻤던 하도의 비밀이 흙투성이가 되어 혜정 무리 앞에 내동댕이쳐졌다. - P59

‘뭘 그렇게까지 해‘
혜정은 언젠가부터 그렇게 생각했다. 열심히 입을 놀리며 안간힘을 쓰는 자신을 냉정하게 바라보는 또 하나의 자신이 있다고. - P65

흠 없이 빛나는 가족 사이에서 혜정이 느끼는 구멍은 조금씩 커졌다. 그건 혜정에게밖에 보이지 않는 거라서 그걸 메우기 위한 노력 역시 아무에게도 보이지 않았다. 눈에 보이는 결핍이 아니면 대부분 이해하지 못한다. 그러나 보이지 않는다고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 P67

열등감이 적대감이 되는 것은 혜정이 잘 아는 공식이었다. - P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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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하고 아름다운 할머니가 되고 싶어 - 제12회 브런치북 출판 프로젝트 대상 수상작
김슬기 지음 / 클레이하우스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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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클레이하우스'에서 도서를 지원받아 작성되었습니다.

#서평단 #도서협찬



<강하고 아름다운 할머니가 되고 싶어>는 삶에 지친 청년 '강하고'가 근육질 할머니들에게 납치당해 바다 마을 '구절초리'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이야기이다.

개인적으로 마지막 페이지를 넘기기 아쉬울 만큼 깊은 여운이 남는 책이었다. 작가님의 말씀처럼 어른에게도 어른이 필요한 순간이 있으며, 그 따뜻한 존재가 삶을 다시 일으키는 힘이 된다는 사실을 알았다.



줄거리: 

서른셋 배달 기사 ‘강하고’는 가족과 친구에게 버림받은 채 재개발 철거 지역의 빈집에서 외롭게 살아간다. 절망 속에서 삶의 경계에 다다랐을 때, 근육질 할머니 3인방이 나타나 하고를 바다 마을 ‘구절초리’로 데려간다. 구절초리는 운동으로 몸을 단련하고, 스스로의 삶을 주도적으로 살아가는 할머니들이 공동체를 이루며 살아가는 곳이다. 하고는 할머니들에게 친모 '김명희'에 관한 이야기를 듣고, 엄마가 운영하던 가게 '만나다방'을 이어받기로 결심한다. 구절초리의 할머니들과 유쾌하게 지내며, 하고는 점차 삶의 의미를 되찾고 새로운 하루를 맞이하기 시작한다.


책을 읽으면서 '이름 없는 풀' 차와 '이름 있는 풀' 차가 너무 마시고 싶었다.

'이름 없는 풀' 차는 특별한 맛이 없는 차지만, '이름 있는 풀' 차는 구절초리 할머니들의 이름을 딴 개성있는 차들이다. 하고가 느낀 할머니들의 삶과 성격이 고스란히 담긴 그 차가 과연 어떤 맛일지, 책을 읽는 내내 무척 궁금했다.


그리고 가족을 모두 잃은 하고가 구절초리에서 새로운 형태의 가족을 만나 회복하는 과정이 기억에 남는다. 할머니들은 하고를 무기력한 존재로 여기지 않고, 스스로 자립할 수 있는 한 사람으로 존중하며 그녀가 다시 일어설 수 있도록 힘이 되어준다. 하고는 이들 사이에서 처음으로 타인의 돌봄을 받아들이고, 자신을 돌보는 법을 배운다.

할머니들과 하고의 관계는 강자가 약자를 돕는 일방적인 구조가 아닌 서로에게 기대며 성장하는 관계다. 그렇기에 할머니들은 때로는 엄격하게, 때로는 유쾌하게 하고를 품어준다. 그중에서도 금복자 할머니의 말이 특히 기억에 남는다. "쓴 건 콱 뱉고, 얼른 단 걸 집어삼켜야지"라는 이 문장은 아픔과 상처에만 머물지 말고 삶의 즐거움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라는 따뜻한 조언처럼 느껴졌다.


이 책은 '늙음'과 '약함'이라는 편견을 시원하게 깨뜨린다. 늙어도 강할 수 있고, 노년에도 아름답게 살 수 있다는 사실을 할머니들의 삶을 통해 배웠다. 또한, 겉으로는 강한 척 살아가지만 내면은 무너져 있던 하고가 진짜 강한 할머니들을 만나 진정한 '강함'의 의미를 깨닫는 과정을 따라가다 보면, 누군가의 따뜻한 손길을 통해 다시 삶의 중심으로 돌아올 수 있음을 알게 된다. 무엇보다, 이름처럼 하고가 언젠가는 정말로 '강하고 아름다운 할머니'가 되기를 응원하게 되는 작품이다.


+ 하고가 태수와 정아와의 관계를 끊지 못할 땐 답답하고 화가 났다.

계속 상처받으면서도 관계를 놓지 못하는건, 함께했던 따뜻한 기억 때문인 걸까?

이해는 되지만, 답답함과 안타까움이 더 컸다.




처음엔 더위를 씻어냈고, 다음엔 온갖 냄새를 지우기 위해, 그 다음엔 오늘 어쩔 수 없이 들었던 말들을 지우기 위해 씻었다. - P21

저승사자가 데리러 올 거라는 생각은 왜 하지 못했을까. 누구에게나 죽음은 딱 한 번뿐이라 배달 후기처럼 진짜 리뷰를 확인할 수도 없다. 내가 아는 죽음이란 죽어본 적 없는 자들이 지어낸 이야기가 전부인 셈이었다. - P39

"오래전부터 우리 마을 사람들은 그렇게 믿어왔어. 이름 없는 풀이 세상의 향과 빛깔을 다 담아내서, 오히려 아무런 맛이 느껴지지 않는 거라고. 너무 많은 걸 품으면, 끝내는 아무것도 아닌 게 돼버리는 거지. 비워서 빈 게 아니라, 가득 채워서 빈 거야. 그 모든 것이자, 아무것도 아닌 걸 들이켜는 거야." - P129

"앞으론 달게 살어."
"네?"
"아까도 말했잖아. 온통 쓴 것만 삼키는 인생이, 기다린다고 달콤해져? 쓴 건 콱 뱉고, 얼른 단 걸 집어삼켜야지. 그래야 인생도 끈적해지지. 꼭 달고나 녹은 거처럼 놓고 싶지 않아진다고." - P162

"보람찬 하루를 보낸 어른들은 좀비로 변하곤 하니까." - P191

"아픈 기억이 없는 건 아니다만, 요 제습기 같은 걸 마음에도 돌리면 아주 보송한 것만 남는다. 지금도 얼마나 좋으냐. 비 올 때마다 배추전 챙겨주는 친구도 있고, 그걸 배달해주는 너도 있고. 왕영춘이 인생도 헛살진 않았다." - P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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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완벽한 무인도
박해수 지음, 영서 그림 / 토닥스토리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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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창비'에서 도서를 지원받아 작성되었습니다.

#서평단 #협찬


관계에 지치고 혼자만의 시간이 절실할 때면, 아무도 없는 섬에서 조용히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생각일 뿐, 실제로 모든 걸 내려두고 떠날 용기는 나에겐 없었다.

<나의 완벽한 무인도>는 그 생각을 실천에 옮긴 한 사람의 이야기다.


줄거리: 도시에서의 인간관계와 사회생활에 지친 '지안'은 아무도 살지 않는 작은 섬으로 떠난다. 그러나 섬에서의 삶은 생각만큼 낭만적이지 않다.

불편함도 많고, 때로는 외롭다.

하지만 그 고요함 속에서 지안은 조금씩 숨을 돌린다.

자신만의 루틴을 만들고, 텃밭을 가꾸고, 바다에서 직접 해산물을 얻어 끼니를 해결한다. 하루하루가 조용히 쌓이며, 점점 '나로 살아가는 감각'을 되찾아간다.


<나의 완벽한 무인도>는 드라마틱한 사건이나 갈등 없이, 담백하게 지안의 삶을 보여준다. 특히, 아무런 준비 없이 무인도로 떠난 것이 아니라 최소한의 준비를 마친 후 떠났다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그 선택에는 충동이 아니라 의지와 자신감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또한, 이야기가 단순히 시간 순으로 흘러가는 것이 아니라 주인공의 감정에 따라 전개되어 더욱 몰입되었다. 섬에서의 삶, 도시에서의 삶 속에서 지안이가 느낀 감정들을 함께 따라가다 보면, 누구의 시선도, 기대도 없이 오롯이 나로 살아가는 시간이 얼마나 귀하고 단단한 일인지 새삼 느끼게 된다.


혼자라는 이유로 외롭지 않고, 고요해서 더 충만한 삶이 있다는 것도 알았다.

누군가에게 인정받지 않아도 괜찮고, 꼭 무언가를 이뤄내지 않아도 괜찮다는 메시지가 마음에 남는다.


고독은 견디기 어렵다. 즐긴다고 말하는 건 나를 속이는 일이다. 그럼에도 분명한 건, 무인도에서 대부분의 시간 동안 나는 혼자여서 편하고 가끔은 몹시 행복하다는 점이다. - P11

바닷물이 차다. 신기하게도 처음 발을 담글 때는 몸이 움찔할 정도로 차가운데 찰나의 순간만 지나면 언제 그랬나 싶게 수온과 나의 체온이 비슷하게 맞춰진다. 내 몸의 온도가 낮아지는 것일까, 아니면 서로의 온도는 판이한데 그저 각자의 것에 익숙해지는 것일까. 잡념은 딱 여기까지다. 이제는 깊은 물로 들어가야 하니 마음을 다잡아야 한다. - P16

살아 있는 모든 것이 각자의 내음, 향을 갖고 있구나. 그렇다면 내가 풍기는 냄새는 어떨까. 바다는, 숲은 나의 냄새를 어떻게 생각할까. 나는 앞으로 어떤 향을 만들어 풍기며 살아갈까. - P63

나는 지금 과거의 삶과 새로운 삶을 동시에 짊어지고 있다. 사춘기 때로 돌아간 것 같다고나 할까. 무엇인가를 결정해야 할 것 같은, 어딘가 약간은 불편한, 그러나 싫지 않은 긴장감. 말로는 다 표현할 수 없는 이런 싱숭생숭함마저도 나쁘지 않다고 느꼈다.
- P188

몸이 아픈 것과 마음이 아픈 것은 이렇게 다른 것이구나. 마음은 마치 하나의 댐과 같아서 몸의 고통을 어떻게든 붙잡아두다가, 그 통증이 어느 눈금을 넘기면 감당하지 못하고 놓아버리는 것일까. 그렇다면 눈물은 몸과 마음이 끝까지 실랑이한 끝에 결국엔 넘쳐 흘러버린 고통의 결정체인 걸까. - P210

"자신감은 언제 어디서나 품을 수 있는 마음 아닐까? 지안이 네가 몇달 전에 ‘저 섬에서 살 자신 있어요!‘ 할 때 그 마음이 자신감이지, 안 그래?" - P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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