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책] 캐모마일 - 한 여름, 한 청춘, 한 사람
서원균 / 잇스토리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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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공간 '잇스토리'에서 종이책(1권)과 전자책(1,2권)을 지원받아 작성되었습니다.


<캐모마일>은 폭력과 가난, 외면과 고통 속에서도 꺽이지 않고 청춘을 살아낸 주인공 범룡이의 삶을 그려낸 도서이다.

방대한 분량이었지만, 거친 현실 속에서도 작은 꽃처럼 따뜻함을 잃지 않으려는 범룡을 응원하다 보면 순식간에 읽히는 힘이 있다.

이야기는 시간 순으로만 흘러가지 않고, 초등학생·중학생·고등학생·청년 시절의 범룡을 오가며 전개된다. 처음에는 구조가 다소 헷갈렸지만, 과거의 사건이 현재에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 또 현재의 상황이 과거와 어떻게 연결되는지를 자연스럽게 확인할 수 있어 더욱 입체적으로 다가왔다.


책을 읽는 내내 안타까움이 가득했다. 매번 희생을 감내해야 하는 범룡의 삶은 너무나 고단했고, 나였다면 진작 집을 뛰쳐나왔을 것 같아 그의 선택이 쉽게 이해되지 않았다. 끝이 보이면 희망이라도 붙잡을 수 있겠지만, 범룡에게는 끝이 보이지 않아 더 마음이 아팠다. 드디어 웃음을 되찾고 행복해지는가 싶을 때에도, 불행은 또다시 범룡을 찾아왔다. 어떻게 한 사람의 인생에 이토록 많은 시련이 이어질 수 있는지 분노와 슬픔이 동시에 밀려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꺾이지 않고 나아가는 범룡의 모습이 참 대단했다. 때로는 그를 응원했고, 때로는 그의 선택이 이해되지 않아 안타까워했으며, 또 때로는 묵묵히 지켜보았다. 그렇게 한 아이에서 청년으로 성장하는 범룡을 보며, 언젠가는 빛날 그를 믿고 응원했다.

작품 속 인물들이 너무도 생생히 살아 있어 책을 덮고 나니 한편의 드라마를 본 듯한 몰입감을 받았다.

특히 옆에서 늘 그를 지켜주던 주희의 존재가 인상 깊다. 범룡의 아픔을 모른 척하지 않고 함께 감당해낸 주희를 보며 '진정한 친구란 무엇인지'를 깊이 생각해보았다. 어린 시절에 주희라는 따뜻한 존재가 범룡의 곁에 있어주어 참 다행이다. 그리고 범룡의 어머니와 지선 역시 마음 아픈 인물들이다. 사람을 함부로 동정해서는 안 되지만, 그들의 처지는 안쓰러웠다. 그래서 범룡이 아버지와 기룡이를 떠나 어머니, 지선과 함께 행복하게 살기를 바랐다. 그러나 아버지와 동생을 향한 범룡의 복잡한 마음을 알게 되자, 머리로는 이해하면서도 마음은 씁쓸했다.

이 책을 통해 1980년대의 현실을 조금이나마 접할 수 있었다. 지금의 삶을 살아가는 나에게는 부모님 세대가 지나온 시대의 무게를 이해할 수 있는 뜻깊은 시간이기도 했다. 다만 80년대의 화폐 가치를 체감하기 힘들어 돈의 개념이 조금 어려웠다. 그러나 금액 자체보다는 범룡에게 돈이 가진 의미, 즉 꿈을 향해 나아가게 하는 힘이 더 크게 다가왔기에 읽는 데 무리는 없었다.

무엇보다 마음에 남은 것은 범룡이 사람에게서 깊은 상처를 받았지만, 결국 그를 다시 일으켜 세운 힘도 사람이었다는 사실이다. 이 아이러니 속에서 인간의 연약함과 동시에 희망을 발견할 수 있었다.

<캐모마일>은 무겁고 현실적인 문제를 다루지만, 그 안에서 범룡이 희망을 만들어가는 과정을 통해 잔잔한 감동 받았다. 이 책을 읽고 나면 인간다움과 삶의 존엄성, 그리고 끝내 피어나는 꽃과 같은 가능성을 재발견할 수 있다. 읽는 과정은 아프고 시리며 눈물을 자아내지만, 그 속에서 다시 앞으로 나아갈 힘을 얻을 수 있다.

만약 이야기가 너무 무겁게 느껴진다면 잠시 책을 덮고 숨을 고른 뒤, 천천히 다시 읽어나가기를 권하고 싶다.

그날 범룡은, 자신을 응원해 주는 가족이 아무도 없었다는 사실이 슬픔이나 서러움이 아닌 아픔으로 다가왔다. - P70

"사람은 한 번 바스라지기 시작하면 끝없이 바스라진대. 그래서 그 굴레에서 벗어나기란 하늘의 별 따기보다 훨씬 힘들다고 하더라. 내가 주희 너를 지켜줄게. 우리 자포자기하지 않도록 서로 응원하면서, 우정만큼은 변하지 말자." - P109

아버지가 무섭고 두려웠지만, 이 통장을 빼앗기는 순간 자신의 미래는 영원히 빠져나올 수 없는 깊고 어두운 수렁 속으로 가라앉을 것이다. 어둠은 빛으로 밝혀낼 수 있지만, 이 통장이 없으면 자신의 삶은 더 이상 빛은 없다고 여겼다.
아버지 때문에 견디기 힘들었기에, 범룡은 희망에 매달릴 수밖에 없었다. 그 희망은 다름 아닌 돈이었고, 포기할 수 없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 희망은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는 물결처럼 느껴졌다.
통장 속의 돈은 범룡의 미래이자, 집을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날개였다. - P165

그 눈속에 분명 범룡이 있었다. 그 눈은 언제나 피로에 지친 눈이었다. 원망보다는 애달픔이 서렸고, 웃음 대신 슬픔으로 가득했다. 자신보다 가족을 걱정하며 근심으로 가득 찬 그 눈빛은 절박하게 도움을 청하고 있었다.
그때, 괴물... 아니, 범룡이 울음을 터뜨렸다. 피맺힌 울음소리는 하늘과 땅을 울릴 정도로 서럽고도 처절했다. 어머니도 가슴이 찢어지는 듯한 고통에 울부짖으며 아들의 이름을 불렀다.
"범룡아! 불쌍한 우리 범룡아!"

어려운 순간마다 곁에서 힘이 되어 주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 그것은 크든 작든 상관없었다. 빈말이라도. 아니, 옆에서 손을 잡아주거나 웃어 주기만 해도 큰 힘이 되었다.

"범룡아, 난 네가 스스로를 망치는 걸 보고 싶지 않아. 그리고 네가 잘 되면 정말 기쁠거야. 높고 푸른 하늘을 마음껏 나는 새처럼, 세상을 자유롭게 누비는 너를 보면 나도 행복할 것 같아.내 친구 범룡아, 부탁이야. 호텔로 가서 , 네 꿈을 다시 펼쳐봐. 그날이 오면 나도 호텔에 가서 스테이크 한번 썰어보고 싶어. 그리고 네가 서빙을 해줘. 내가 너한테 이렇게 부탁하는 건 처음이잖아. 나 박주희가 부탁한다. 서!범!룡! 내 친구야! 호텔에 가서 일해. 지금 이 꾀죄한 모습, 보기 싫어. 가서 너의 날개를 펴란 말이야. 88년 그때처럼 화려하게 퍼덕이는 불사조처럼 날아오르란 말이야. 범룡아, 너란 사람은 이 세상에 단 하나뿐이야. 하나! 둘도 아닌 단 하나뿐인 너 자신을 위해, 세상을 향해 당당히 나아가."

"가족이란, 기분 나쁜 일이 있어도 얼굴만 봐도 웃음이 나는 존재잖아요. 그리고 사랑은 그러쥐는 게 아니라, 같은 방향을 바라보는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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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로카드 읽는 카페
문혜정 지음 / 창비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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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로카드 읽는 카페>는 소설가의 꿈을 접고 타로 리더로 살아가는 신세련과 웹툰 작가 유진주의 만남을 중심으로, 상처받은 마음들이 서로를 어루만지며 성장해나가는 과정을 섬세하게 그려낸 도서이다.

타로카드에 관심은 있지만 잘 알지 못했던 나에게 이 책은 특별한 경험이었다.


'카페'라는 일상적이고 친숙한 공간에서 타로카드를 읽어준다는 설정이 특히 인상적이었다.

신비롭고 비밀스러운 점술소가 아닌, 누구나 편안히 찾을 수 있는 카페에서 타로를 보기 때문에 더욱 친근하게 느껴졌다. 다양한 사람과 삶이 교차하는 카페에서, 손님들은 타로카드를 통해 저마다 자신의 마음과 상처를 마주하고 답을 찾아간다. 그 속에서 나는 질문자의 입장이 되기도, 세련의 시선에서 상황을 바라보기도 하였다. 그래서 그런지 이야기 속 감정과 사연이 더 깊이 다가왔다.

카페에 찾아온 다양한 손님들의 사연과 그들이 선택한 타로카드를 통해, 카드의 상징과 의미가 실제 삶에 어떻게 적용되고 해석될 수 있는지를 자연스럽게 보았다. 덕분에 타로카드의 이미지가 추상적인 개념이 아닌 구체적인 이야기로 다가와 이해하기 쉬웠다. 또한, 각 장마다 등장하는 타로카드는 인물들의 심리를 상징적으로 드러낸다. '소드3'이 보여주는 슬픔으로 상처 입은 마음, '컵4'가 상징하는 권태와 정체감처럼, 카드 한 장 한 장은 미래에 대한 예언이 아니라 질문자의 현재 마음 상태를 비춰주는 메시지 역할을 한다. 그리고 세련이 그 카드의 상징을 해석해줌으로써 손님들은 스스로의 생각과 감정에 집중해 자신의 내면을 마주한다. 때론 세련의 따끔한 해석에 흠칫 놀랐지만, 제3자의 시선에서 감정에 치우지지 않고 객관적으로 상황을 판단할 수 있다는 점이 매력적이었다.

세련의 까칠했던 마음이 따뜻하게 변화하는 과정, 진주의 솔직하고 담백한 성격이 세련에게 미치는 영향, 그리고 두 사람이 서로의 결핍과 상처를 나누며 가까워지는 순간들이 급하지 않고 천천히 진행되어 더 진실되게 다가왔다.

우리는 모두 자신만의 상처를 안고 살아간다. 어떤 이는 그 상처를 숨기려 애쓰고, 어떤 이는 그것에 매몰되어 살아간다. <타로카드 읽는 카페>는 그런 상처받은 마음들이 모여드는 공간에서 펼쳐지는 따뜻하고 치유적인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이 책을 통해 상처와 마주하는 용기, 자신을 받아들이는 과정의 어려움과 소중함을 알았다.

그녀는 스스로를 속이려 들었다. 노력은 하지 않으면서 결과의 달콤함만을 꿈꾸는 사기꾼이 꼭 바깥에만 있는 건 아니다. 어쩌면 우리를 가장 자주 속이는 건 자기 자신일지도 모른다. - P12

몹시 탁하고 끈적거리고 지저분한 감정이다. 감정은 수채화 물감과도 같아서 여러 색이 섞이면 섞일수록 탁해진다. 처음의 색은 무엇이었는지 알아볼 수도 없이 뒤섞여 빛을 잃어버린다. - P28

"싫으면 그만두셔도 돼요. 그렇게 억지로 하는 건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아요. 어르신에게도, 어르신에게 도움을 받는 분들에게도." - P41

"내가 노력하든 하지 않든 슬픈 상황은 생길 수 있어요. 내가 뭘 잘못해서도 아니고 뭘 덜 해서도 아니에요. 애를 써도 무언가 자꾸만 어긋나고 잘못되는 듯한 기분이 들 때는 그냥 아무런 노력도 하지 말고 가만히 그 상황이 흘러가도록 내버려 둬보세요. 어쨌든 시간은 흘러가고, 지나간 것들은 언젠가 잊히기 마련이니까요." - P67

본인도 알까? 복잡한 인생에 비해 너무 심플한 답변이라는 걸. 왜 우리는 타인의 인생에 대해서만은 모든 것이 단순한 공식에 따라 술술 풀릴 거라고 생각하는 걸까? 내 인생은 점심 메뉴를 정하는 사소한 일부터 시작해 모든 것이 복잡하게 꼬여 있는 것 같은데. - P97

"모든 것이 채워지면 반대로 아무것도 없는 상태와 마찬가지가 되죠. 아무것도 없을 때는 필요한 것을 하나씩 채워가면 되지만 이미 채워져 있으면 느낄 수가 없어요. 공허해요. 비어있기 때문이 아니라 빈 곳이 없어서. 채워진 덩어리가 그 자체로 하나의 큰 구멍이 되는 거예요." - P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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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를 보다 2 - 역사의 변곡점을 수놓은 재밌고 놀라운 순간들 역사를 보다 2
박현도 외 지음 / 믹스커피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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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에서 도서를 지원받아 작성되었습니다.

<역사를 보다2>는 대한민국 대표 지식 채널 보다(BODA)의 명불허전 시리즈 2번째 단행본이다. 5명의 저자가 서로 대화하는 형식으로 이야기가 진행되며, 교과서에서 접했던 사건과 인물뿐만 아니라 역사 속에서 주목할 만한 변곡점들을 흥미롭게 풀어낸 책이다.

한반도의 정요근, 중동의 박현도, 이집트의 곽민수, 유라시아의 강인욱, 그리고 진행을 맡은 허준까지.

각 분야 최고 전문가들의 다양한 시각으로 역사를 바라볼 수 있어 좋았다. 한 명의 저자가 쓴 책에서는 만나기 어려운 다층적이고 입체적인 해석을 통해, 단순한 사건 나열이 아닌 살아 있는 이야기처럼 역사를 접할 수 있었다. 대화형식으로 진행되어 편안하게 읽히는 점도 인상적이다.

또한, 각 장이 독립적이지만 체계적으로 구성되어 있어 어느 부분부터 읽어도 무리가 없었다.

학술적 질문과 기발한 질문이 절묘하게 조화를 이루어 무겁지도, 가볍지도 않게 읽을 수 있었다. 특히 개인적으로 궁금했던 '버뮤다 삼각지대'와 '스핑크스'의 이야기를 알 수 있어, 2장 '풀릴 듯 풀리지 않는 미스터리의 정체' 부분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여러 분야의 전문가들이 참여했기 때문에 한 권으로 다양한 영역의 역사적 지식을 접할 수 있어 좋았다. 그러나 다양한 사건을 폭넓게 다루다 보니 일부 사건은 상대적으로 짧게 언급되어 아쉬웠다. 특히 흥미로운 주제일수록 더 자세한 설명을 원했지만 지면상 한계로 아쉬움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역사를 보다2>는 무겁지도 가볍지도 않게 역사를 즐길 수 있는 책이다.

묵직한 질문들과 가벼운 궁금증들이 절묘하게 조화된 구성되어 있어 무겁지도, 가볍지도 않게 역사를 즐길 수 있었다. 물론 깊이 있는 분석을 원하는 독자들에게는 아쉬움이 있을 수 있지만, 역사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더 깊은 탐구의 출발점을 제공하는 훌륭한 입문서로서의 역할은 충분히 해낸다고 생각한다.


제가 생각하기에 성공의 기준은 영토의 크기가 아니라 ‘국가의 번성과 유지를 위해 어떤 시스템을 만들고 어떻게 유지 시켰는가‘예요. - P19

‘별 생각 없이‘ ‘깊은 고민 없이‘ 국경선을 그어버렸다고 알려져 있는데, 사실은 고도의 계산을 갖고 국경선을 그었던 거죠. 오히려 그래서 자를 대고 그린 듯 반듯한 모양새인 겁니다. - P45

제가 생각하기에 우연히 발견되는 유물, 유적이 대부분입니다. 실제로 진짜 중요한 유물은 모두 다 우연히 발견되죠. 어디에 무엇이 있다는 걸 안다는 건 이전에 이미 다 도굴되었다는 뜻이기 때문이에요. - P124

저는 특정 기록의 전체를 위조라고 단정하는 걸 조심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중요한 건 그 기록이 쓰였을 당시의 맥락을 파악하고 저작자의 의지와 의도가 무엇이었냐를 파악하는 거라고 봐요. - P168

모든 걸 정통 아니면 이단이라고 단정하지 말고, 당시 사람들의 입장에서 이해하면서 끊임없이 교차 검증하며 우리의 시야를 넓혀가는게 진정한 ‘역사‘의 모습이 아닐까 싶습니다. - P173

문화 현상을 관찰할 때 맥락을 살펴보는 게 중요한 것 같습니다. 일반적으로 갖고 있는 상식이나 직관으로 평가하는 게 아니라, 특정 문화 현상에 관련해 상하좌우 모든 걸 최대한 자세하게 파악해야 한다는 거죠. - P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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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루먼 스쿨 악플 사건 미래인 청소년 걸작선 4
도리 힐레스타드 버틀러 지음, 이도영 옮김 / 미래인(미래M&B,미래엠앤비)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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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미래인'에서 도서를 지원받아 작성되었습니다.


<트루먼 스쿨 악플 사건>은 트루먼 중학교 학생들이 사용하는 '트루먼의 진실' 온라인 사이트를 중심으로, 선의에서 출발한 공간이 어떻게 악의의 온상으로 변질되는지를 보여주는 작품이다.

초등학생 때 읽었던 도서인데, 어느새 16년이 지났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40만 부 기념 개정판이 출간되어 다시 읽게 되어 반가우면서도 그때는 미처 깨닫지 못했던 작품의 깊이와 무게를 제대로 느낄 수 있던 시간이었다.


이 책의 가장 큰 특징은 여러 인물의 시선을 따라 이야기가 펼쳐진다는 점이다.

'트루먼의 진실' 사이트에 릴리의 과거 사진이 올라오고, '익명'이 던진 날카롭고 악의적인 글들이 퍼지면서 사건은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된다.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긴장감은 점점 높아지고, 과연 '익명' 뒤에 숨은 인물이 누구인지, 그들의 진짜 동기가 무엇인지 다양한 인물들의 시선을 오가며 추리할 수 있었다. 각 인물의 속마음을 들여다보며 인간의 복잡한 내면을 엿볼 수 있는 흥미로운 경험이었다.

이야기의 중심에 놓인 것은 결국 '익명성'이라는 이름의 두 얼굴이었다.

익명은 때로 표현의 자유를 지켜주고 약자를 보호하기도 하지만, 동시에 가장 무거운 폭력을 숨겨주는 가면이 되기도 한다. 이 작품은 익명성을 단순히 선악의 틀 안에 가두지 않는다. 대신 익명을 사용하는 우리의 마음가짐과 책임 의식을 되돌아보게 만든다. 얼굴을 드러내지 않는다고 해서 양심까지 가려지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인물들의 갈등과 성찰을 통해 조용하지만 깊게 깨닫게 해주는 작품이었다.

가해자와 피해자, 선과 악에 대한 완벽한 해답을 제시하지는 않지만, 함께 고민하고 성찰할 수 있는 출발점을 마련해 준 작품이었다. 읽는 내내 씁쓸함이 교차했지만, 동시에 '나는 어떤 태도로 사람들을 대하고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져 보았다. 특히 온라인에서 무심코 하는 말이나 행동들이 누군가에게는 큰 상처가 될 수 있다는 점을 새삼 깨닫게 되었다. 단순히 보고만 있는 것도 때로는 공범이 될 수 있다는 생각에 한동안 마음이 무거웠다. 하지만 그런 불편함이야말로 이 책이 주는 가장 값진 선물이 아닐까 싶다.

우리가 온라인과 현실에서 맺는 관계의 책임을 되새기게 하는 작품으로, 디지털 시대를 살아가는 모든 이들에게 꼭 필요한 이야기다. 책을 덮고 나서도 한참 동안 여운이 남아, 평소 내가 하는 말과 행동들을 다시 한번 점검해보았다.


나도 똑같이 하려고 노력했지만 사람들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다는 게 참기 어려웠다. 사람들이 우릴 보며 즐거워할까, 아니면 바보 같다고 생각할까? - P62

내가 하고 싶은 말은, 릴리나 리스처럼 인기 있는 애들은 자기가 가진 능력을 좋은 일에 쓸 수 있다는 점이다. 네로처럼 말이다. 모든 애들이 그들의 말에 귀를 기울인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그저 더 이상 아이들을 괴롭히지 않겠다고 말해주면 되는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그러지 않는다. 오히려 나쁜 일에 힘을 쓰고 있다. - P76

나는 <트루먼의 진실>이 학교생활에 관한 진실하고 솔직한 정보가 모이는 곳이길 바랐다. 그것이 모든 학생과 연결된 무엇이기를 바랐고, 모두가 그 안에 속한다고 느끼길 바랐다. 좋지 않은 생각과 감정일지라도 누구나 자유롭게 대화할 수 있기를 바랐다. 그러나 어쩌면 내 기대가 너무 지나쳤는지도 모른다. - P145

"그건 정말 쉬운 일이야, 제이비. 넌 사이트 편집자야. 어떤 글을 보여 줘도 좋은지 결정할 수 있다는 뜻이야."​ - P166

어쩌면 나는 도망치는 건지도 모른다. 하지만 때로는 도망치는 것이 괜찮은 선택일 수도 있다. - P199

아무도 당신을 지켜보지 않을 때, 혹은 아무도 당신이 누구인지 모를 때... 그 모습이 진정한 당신의 모습이다! - P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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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의뢰: 너만 아는 비밀 창비교육 성장소설 14
김성민 지음 / 창비교육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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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창비교육'에서 도서를 지원받아 작성되었습니다.


<오늘의 의뢰: 너만 아는 비밀>은 어떤 의뢰든 해결해 주는 비밀 채팅방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이야기다.

나에게는 어려운 일이 남에게는 쉬운 일일 수 있고, 그 쉬운 일 하나만 해주면 자신의 문제도 해결받을 수 있는 공간이 있다. 이 시스템 속에서는 누구든지 가해자가 될 수 있다는 점이 무섭게 다가왔다.


해민이와 도경이의 일상적인 학교생활과 '해결사이트'의 사건이 번갈아 전개된다.

처음에는 두개의 이야기가 병렬적으로 전개되는 줄 알았는데, 해민이의 표절 의뢰가 올라오는 순간 관계없어 보였던 이야기들이 하나로 맞물리기 시작했다. 서로 다른 두 세계가 점차 연결되면서 만들어지는 긴장감과 몰입도가 상당했고, 그 과정이 탄탄하게 짜여있어 놀라웠다.

해민, 도경, 소정, 주영 네 명의 인물은 각각 다른 가정과 성격, 고민을 지니고 있다.

특히 소정이의 캐릭터가 기억에 남는다. 주변의 기대에 부응하려 자신을 채찍질하며 모든 면에서 최선을 다하려는 모습은 현실에서도 쉽게 볼 수 있는 모습이기에 더욱 눈길이 갔다. 완벽을 추구하면서도 내면의 불안감을 감추지 못하는 소정이의 복합적인 면모는 오늘날 우리들의 실상이 아닐까?

읽는 동안, 나에겐 힘든 일도 전혀 관계없는 누군가에게는 쉬운 일일 수 있다는 사실이 묘하게 충격적이었다.

해결 사이트에서는 혼자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를 대신 해결하면, 다음 의뢰를 올릴 자격을 얻는다. 의뢰를 성실히 수행해야만 기회를 얻고, 약속을 어기면 영원히 사이트 이용이 금지된다. 단순해 보이는 규칙이지만, 익명이라는 가면 뒤에서 이루어지는 선택과 행동들은 생각보다 훨씬 긴장감 있고 묵직하게 다가와, 온라인 세계 속 책임과 자유의 경계가 얼마나 위태로운지 느낄 수 있었다.

또한, 디지털 시대의 윤리에 대해 되돌아보는 시간을 가졌다. 익명성은 자유를 주기도 하지만, 동시에 책임감을 잃게 만들기도 한다. 아이들이 그 위태로운 경계선 위에서 고민하고 선택하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서로를 이해하고 배려하며 함께 성장해 나가는 과정이 얼마나 소중한지 다시금 느낄 수 있었다.


"그래. 그게 진짜 네 이야기지. 통쾌한 반전은 필요 없어. 기쁘면 기쁜대로, 슬프면 슲픈 대로 네 인생을 응원해 주고 싶게 하면 되는 거야." - P54

자식들은 생각보다 눈치가 빨라서 부모님이 자신에게 어떤 기대를 갖고 있는지, 자신이 그에 얼마나 부응하고 있는지를 직감으로 알았다. 그래도 도경이는 아빠가 일구어 놓은 삶의 방식을 기꺼이 따라가고 싶었다. - P98

내가 어디에서 왔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건 ‘내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다. 도경이는 눈을 감았다. 소녀의 손을 잡고 함께 날아오르는 자신의 모습이 그려졌다. - P119

"맨날 넌 네 인생 살라고, 엄마 인생은 엄마가 알아서 할 거라고 해. 엄마가 힘들어 보여도 대신 짊어지려고 하지 말라고. 고통은 충분히 고통스럽고 나면 괜찮아지는 거라고 했어. 괜찮아지려고 힘든 거니까 걱정하지 말래."

도경이는 아무 말 없이 해민이를 보고 있었다.

"너한테 중요한 건 네 문제니까, 그거나 잘하래. 잠깐은 외면할 수 있지만 결국 마주 봐야 끝이 나는 것, 그게 진짜 자기 문제랬어." - P121

주영이는 산소가 모자란 금붕어처럼 입을 뻐끔거리다가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라, 곧 빨간 금붕어가 되었다. - P205

어제의 김해민보다 오늘의 김해민이 더 마음에 든다는 거다. 더해서, 내일의 김해민이 다시 쭈글하고 못나게 굴어도 참고 기다려 줄 마음이 있다는 거고. 그거면 됐다. - P2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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