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술 넘어가는 우리역사 2 - 후삼국 시대부터 고려 시대까지
한우리역사독서연구회 엮음 / 해와나무 / 2006년 11월
평점 :
절판


  이 책은 후삼국 시대부터 고려 시대까지의 내용을 적은 책 입니다. 저는 이 책을 읽고 간략하게 정리하여 썼습니다. 

  고구려는 장수왕 시기 이후에 나라 이름을 고려라고 불렀다. 왕건은 고구려를 계승하기 위해 나라 이름을 고려라고 정했었다. 또 궁예가 901년에사용한 나라 이름도 고려이다. 하지만 궁예의 고구려는 후고구려라고 부른다. 옛 고구려 왕건이 세운 고려와 구분하기 위해 그렇게 부르게 된 것이다. 궁예의 본래 이름은 선종이었다. 고구려의 계승자임을 선언하고 난 뒤 이름을 궁예로 바꾸었다. 궁예란 말은 활의 후예 즉 고구려를 세운 추모왕의 별칭인 주몽을 닮겠다는 뜻이 담긴 것이다. 

  이 내용을 보면서 궁예는 비록 백성들에게 악독한 행동을 저지르면서 또한 만은 사람들을 죽이고 자신의 이익만을 바라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그가 존경하는 분과 고구려를 만든 뜻과 의지는 다른 사람들 보다도 훨씬 나았다. 비록 자신의 힘이 강하다 하여 자신의 선한 마음이 깊숙히 들어져간 것이지 없어진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였다. 

  북한에서는 고려의 통일을 진정한 민죽 통일이라고 여긴다. 신라의 삼국 통일과 비교해 볼 때 그렇다는 것이다. 신라는 고구려의 옛 터를 회복하지 못했지만 고려는 고구려의 후예인 발해인들을 적극받아들였다. 발해 태자 대광현을 비롯해 무려 5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고려에 왔기 때문이다. 고려는 고구려의 옛 터를 회복하려는 의지를 갖고서, 고구려의 옛 수도인 서경을 제 2의 수도로 삼았다. 따라서 고려의 통일을 진정한 민족의 재통합이었다고 높게 평가하는 것이다. 

  이 내용을 보면서 나 또한 그렇게 생각이 된다. 삼국시대 때에는 신라가 삼국을 통일하는 대신 고구려의 영토를 회수하지 못하였고, 그 나라의 힘으로 한 것이 아니라 다른 나라의 도움으로 삼국을 통일한 반면 후삼국시대 때에는 자신들만의 힘으로 삼국을 통일하였고 다른 나라의 도움이 없이 성공하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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