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지식 e - 시즌 1 ㅣ 가슴으로 읽는 우리 시대의 智識 지식e 1
EBS 지식채널ⓔ 엮음 / 북하우스 / 2007년 4월
평점 :
품절
정확히 언제인지는 모르겠지만, 무심코 켠 TV의 채널이 EBS에 맞춰져있는 것에 조금 놀랐던 적이 있다. EBS에서 방송하는 다큐나 영화는 가족들 취향에 안 맞을 텐데, 어쩐 일로 여기 채널이? 하는 중에, 뭔가 달라 보이는, 시선을 잡아끄는 화면이 시작됐다. 강렬한 화면과 의미심장한 멘트들이 듣기 좋은 음악을 배경으로 흐르는. 꽤 시간이 지나서 자세한 내용은 잊었지만, 그 날의 방송분은 톨킨과 C. S. 루이스에 대한 것이었다. 짧은 게 분명한데, 어떻게 생각하면 꽤나 길게 느껴지기도 했던 영상이 끝나고 부리나케 신문의 TV 프로그램 편성표를 찾았다. <지식채널e>라는 낯선 프로그램. 그렇게 어느 날 우연히, <지식e>와 만났다.
안타깝게도 너무도 게으른 나로서는 시간에 맞춰 TV를 챙겨보아야 하는 행위가 좀처럼 쉽지 않은 관계로, 인상적이고 좋은 프로그램이라고 느꼈음에도 방송으로 지식e를 본 건 채 몇 번이 되지 않는다. 다시보기를 통해서 한동안 몰아보는 방법을 택하기도 했지만, 그놈의 게으름이 또 발목을 잡았다. 그런 차에, 방송에서 가려 뽑은 주제를 묶은 동명의 책이 있다는 것을 아주 뒤늦게 알게 됐다. 한 1년 정도 신간 체크는 커녕, 제대로 책을 읽지 못했더니 생긴 일이었다. 얼마나 고맙고 다행스럽던지. 그래, 책으로 보면 되겠구나! 싶었는데 잠시 후, 지식e를 과연 지면으로 접해도 영상을 보는 것만큼의 감동을 줄 수 있을까? 의문이 생겼다. 주제선정이나 내용도 우수했지만 지식e가 좀 더 인상적이고 매력적인 건, 영상과 음악의 영향이 컸는데. 과연 그런 도움 없이 만나는 지식e도 그만큼 좋을까? 차라리 인터넷 다시보기를 주기적으로 애용하는 게 낫지 않을까? 괜히 책으로 봤다가 별 감흥 없이 이건 그냥 상품일 뿐이야, 하는 생각에 좋은 이미지에 손상만 가면 어떡하지……. 그렇게 결론 없는 긴 고민이 시작됐고, 그러면서 다시 또 한동안 다시보기를 애용했다. 그러다 다시 게으름 발동으로 밀리기 시작한지 한참. 이거 다 보는 것도 일이겠구나 싶은 와중에 에잇! 하고 그냥 질러버렸다. 그리고서 읽은 이 책, 꽤 오랜 시간 망설이다 주저하며 구입했지만 정말 잘했다 싶다. 비록 강렬한 영상과 음악의 시너지 효과는 누리지 못할망정, 한 꼭지마다 찬찬히 느끼고 곱씹어 되새길 수 있는, 의미심장한 여운에 취할 수 있는 시간을 좀 더 연장해주니까.
지식e 시즌 1에서 다루고 있는 40개의 꼭지는, 초기 방송분이라서 그런지 (마구잡이로 골라 다시보기로 본) 몇몇 개를 제외하면 이 책으로 처음 본 것이 대부분이다. 영상을 보지 않았어도 알고 있던 내용도 있고, 그렇지 못한 것도 있다. 얄팍하게 주워들은 것에 그친 수준이었던 내용도 있고, 연계된 내용은 알지만 책에 담긴 내용을 접하기는 처음인 것들도 있다. 무수한 방송분 중에 겨우 40개를 가려 뽑아 다루었을 뿐인데도 이런 수준. 무수한 생각의 "꺼리"를 던져주는 주제들 중에서 겨우 40개에 한정해서도 이런 실정이니, "정말로 인간답게 살기 위해서 갖추어야만 하는 앎" 중에서 내가 간과하고 지나치는 것들은 얼마나 많고 많을까. 그리고 그렇게 비롯된 무지가 지금 이 시대의 우리 사회를 더욱 각박하고 비인간적으로 만들어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알아야 마땅한 일을 모르면서 부끄럽게 여기지 않고, 그것을 외면하면서 더없이 당당하고, 분노해야 마땅한 일에 분노할 줄 모르고, 심지어 더러운 흉계로 자신들의 잇속만 채우기 급급한 누군가(들)을 수치를 모르고 따르는 이들이 존재한다. 그렇게 살지 않기 위해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들을 일깨워주는 짧은 기록들이 여기 담겨있다. 더욱 인간답게, 인간으로서 살기 위해서 필요한 智識과 만나는, 5분을 위한 23시간 55분을 사는 이들이 만들어준 소중한 시간의 모음과 만나자. 만나서 우리네 마음을 움직이는 그 울림에 취해보자. 조금이라도 빨리, 당신도 함께.
+) "5분을 채우기 위해 23시간 55분을 미련 없이 버리며 살아왔다"던 지식e의 이전 담당 프로듀서는 괘씸죄로 인사이동 되었다. 광우병 논란으로 온 나라가 들썩이던 지난 5월, 무지한 국민들에게 반드시 알아야 할 "정보"를 제공하려는 선한 의도로 제작한 <17년 후>가 정체를 알 수 없는(?) 누군가들의 심기를 왕창 긁어놓았기 때문이라는 건, 굳이 가르쳐주지 않아도 눈치 빤한 우리는 모를 수가 없다. 안타깝게도 소신 있는 그 프로듀서가 지식e로 복귀할 수 있을 확률은 0에 가까울 테니 (이렇게 쓰지만 안타깝게도 불가능할 거라고 생각한다), 21세기에 벌어진 이런 웃지 못 할 사태를 지켜보면서 절로 분통이 터졌다. 하지만 그런 와중에도 그가 마지막으로 제작한 <괴벨스의 입>를 보면서 실실거릴 수밖에 없었다. 이정도로 만족스럽지는 않겠지만, 찜찜하고 불쾌하기만 할 퇴장명령에도 불구하고 제 역량을 한껏 발휘한 멋진 결과물로 제대로 한 건 보여주고 가는구나 싶어서였다. 이 얼마나 멋진 마지막인가 말이다. 그들이 정말 머리가 있고, 생각이란 것을 하고 산다면 <17년 후>가 아니라 <괴벨스의 입>에 혈압이 올라야했겠지만, 예상대로 그 방영분에는 별 반응이 없었던 걸로 알고 있다. 아무래도 그들은 괴벨스에 대해서 모르거나, 떠나는 마당이니 뭘 하든 자신들의 의도대로 일을 처리하기만 하면 끝이었던 모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