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
버트런드 러셀 지음, 안정효 옮김 / 열린책들 / 2003년 8월
품절


이념의 힘에 궁극적으로 한계를 설정하는 것은 권태와 피로와 안락함에 대한 사랑이다.-14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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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 시스터즈 키퍼 - 쌍둥이별
조디 피콜트 지음, 곽영미 옮김 / 이레 / 2008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미리니름 다량 포함!)

 엄마니까, 엄마라서, 엄마이기 때문에……. 아이를 가장 사랑하고 가장 잘 아는 것도 엄마요, 아이를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엄마의 선택은 아이를 위한 최선일까? 설마, 그럴 리가. 결혼도, 출산도 안 겪은 사람이 뭘 알겠냐! 식으로 말하는 사람들이 있을지도 모르지만, (솔직히 상당할 것 같다. 하지만 아는가? 그런 사람은 더 이상 이해할 수 없는 것들도 있다는 걸) 책의 내용 같은 최악의 상황은 배제하더라도, 지나친 맹목성과 과한 애정이 긍정적으로 작용하는 경우는 드물다. 크게는 범죄의 원인이 되고, 작게는 마음의 병이 되니까. 뭐든지 지나쳐서 좋을 게 없다는 중용의 미덕은 자식에 대한 애정에도 유효하다. (책에서 엄마 캐릭터가 더 부각되기 때문에 그렇게 썼을 뿐, 기본적으로 한쪽만 지칭한 얘기는 아니다)

 논란이 일어날 수밖에 없는 민감한 소재를 다룬 것보다, 억지감동으로 포장하려다 결과적으로 짜증만 제대로 돋운 허술하고 상투적인 결말보다 더, 더 불쾌함이 들끓게 한 것은 엄마 사라의 캐릭터였다. 아무리 내 아이를 살릴 수만 있다면 무엇이든 해낼 수 있는 엄청난 모성애의 화신이어도, 어떻게 치료용 맞춤 아기를 낳을 수 있을까? 한 생명을 살리기 위해서라는 거룩한 목적이 있다면, 또 하나의 생명을 오로지 "사용" 목적으로 만들어도 되는 걸까? 그것까지도 자식을 위한 부모의 마음으로 이해해야 하는 것인지, 절로 소름이 끼친다. 소설에 그친 문제가 아니라 이미 현실이기에 더더욱.
게다가 애초의 목적대로 모든 생활과 상황이 케이트를 위해 돌아가고 존재하는 안나를 보면서, 아무리 그녀가 안나 역시 아픈 케이트와 똑같이 사랑하지만 달리 방법이 없지 않느냐 부르짖어도 쓴웃음만 나올 뿐, 도무지 납득할 수가 없었다. 과연 안나에 대한 사랑이 (낳은 정은 없어도 키운 정은 있..다고 쳐서;) 케이트에 대한 사랑과 같은 것일까? 차라리 아니라고, 그게 어렵다면 같지는 않다고 (같을 수 없다고) 인정하고 이해를 구했다면 그나마 인간적으로는 보였을 것을. 이미 그녀는 사랑이란 이름으로 결코 해서는 안 될 최악의 선택을 했고, 그 대가를 가련한 자식들까지 치르게 만들었다. 자식인데 안나 역시 사랑하지 않을 리가 없지 않느냐는 설득력 없는 항변도, 전혀 일반적이지 않은 상황을 가족이기에 마땅히 감내해야할 희생으로 포장하는 것도, 사라의 캐릭터에 치를 떨게 하는 것에 크게 일조했다. 가족이라도 자발적이지 않은 강요된 희생은, 소름끼치게 끔찍한 폭력일 뿐이다. 엄마의 권위를 내세워 자신이 저지르고 있는 짓을 어쩌면 그렇게도 모를 수가……. 편향적인 모성애도 모성애의 일부는 분명하지만, 반감을 가질 정도로 그려지는 것은 정말 참아주기 괴롭다. 


 '이런 게, 이래서 가족이구나' 싶은 모습을 보여준 것은 엄마도, 아빠도 아니었다. 할 수 있는 것이 없다는 괴로움으로 차라리 망가지려한 제시, 힘겹고 죄스러워 죽길 원한 케이트, '사용'되기 위해서 존재함에도 모두를 사랑한 안나, 이 눈물겨운 삼남매... 스스로도 버거운 긴 시간동안 서로를 지탱해준 그들이, 끝까지 인내하며 책을 읽게 했다. '피'가 섞여있기 때문에 끊으려야 끊을 수 없는 질기고 무서운 인연이 가족이라지만, 꼭 "피"가 섞여야 가족이 아닌 것처럼 아무리 '피'가 섞인 가족이어도 아껴주고, 이해하는 것이 도저히 불가능한 경우가 오죽 많은가. 하물며 어쩔 수 없는 이유라도 긴 시간 강요된 일방적 희생과 인내는 가족의 붕괴를 가져와도 무리가 아니었을 텐데... 세 아이들이 너무 불쌍하고 가엾어서, 설마 했던 최악의 결말이 맞아떨어진 것에 더 화가 난다. 작가의 역량 부족으로 초반의 흐름을 끝까지 유지하지 못한 것인지, 민감한 사안을 다루다보니 필히 훈훈한(어디가!) 결말이 필요해서 성급하게 뭉뚱그려 마무리 지은 것인지 모르겠다. 하지만 이런 식이라면, 벼랑 끝의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사람들을 괴롭게만 만들 수도 있으니, 더는 유사한 글이 나오지 않았으면 싶다. 개봉예정인 동명 영화가 (원제 My sister's keeper 그대로) 일으킬 파장이 벌써부터 걱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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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5-18 00:5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5-19 21:07   URL
비밀 댓글입니다.
 
이중구속
크리스 보잘리언 지음, 김시현 옮김 / 비채 / 200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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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위대한 개츠비》는 몇 번이나 되풀이해서 읽게 되는 인상적인 작품이지만, 결코 좋아한다고는 말할 수 없다. 비단 결말만의 문제가 아니라, 책의 전반적인 정서에 짓눌려 피폐해진 감정을 추스르는 것이 언제고 버겁기 때문이다. 지나치게 순수하고 무서울 만큼 한결같은 개츠비, 그리고 그와 대비되는 사람들의 이기적이고 추악한 모습. 글이 쓰인 시대부터 하나 달라진 것이 없고, 앞으로도 그럴 것 같기 때문에 그 때나 지금이나 여전히 '시대착오적이라 위대한' 개츠비는 영원성을 갖는지도 모르겠다. 호불호를 쉽게 말할 수 없는 애증의 개츠비... 그런데 그런 개츠비를 모티브로, 실화와 버무려 쓴 스릴러? 개츠비, 실화, 스릴러의 관심을 끄는 3가지 요소가 만난 탓에, 어쭙잖은 팩션이면 어쩌나 하는 불안이 떠나질 않았지만 일단 읽기로 했다. 설마 표지처럼 거슬리는 소설은 아니겠지, 아니어야 하는데…….

 《위대한 개츠비》의 요소들이 상당수 등장하기 때문에 그것부터 읽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도 들지만, 아직 읽지 않은 사람이라면 굳이 먼저 읽을 필요는 없을 것 같다. 모른다고 따라갈 수 없는 설정이 아니니까. 사실 개츠비가 특별한 내용을 담고 있어서 칭송받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어쩌면 접하지 않은 쪽이 이 책에 몰입하기는 더 좋을지도 모르겠다. 익숙한 허구는 확실히 매력적인 장치이지만, 책의 전반을 좌우하고 있지는 않다. 당연한 얘기지만 책의 핵심은 어디까지나 주인공 로렐에 맞춰져 있고, 부가적인 장치보다 그녀에게 집중하는 것이 "이중구속"이라는 책의 제목에도 부합한다. 불쌍한 로렐, 그녀의 운명은 글자 그대로 가련하다. 그나마 희망이 보이기에 절망적이지만은 않지만, 그렇게 될 때까지 이겨내야 할 시간들은 또 얼마나 길고 길 것인가.

  '이중구속 (The Double Bind)'이란 인류학자인 그레고리 베이트슨이 만들어낸 가설로, 자녀에게 일련의 모순된 메시지를 지속적으로 전달하는 것. 적절한 제목이라고 생각하지만, 책 소개에서 너무 핵심적인 장치를 노출한 것이 아닌가 싶어, 출판사의 '영원히 잊지 못할 충격적인 반전'이라는 홍보문구가 마음에 걸린다. 반전이라는 위험한 장치는 독자의 기대를 충족시킨다면 성공이지만, 반대의 경우는 처참한 결과를 가져오기 마련인데. 책의 성공을 자신한 것일까, 아니면 독자들을 얕본 것일까. 진실은 알 수 없지만, 이 책의 독자로서는 홍보야 어떻든 반전에만 초점을 맞춘 소설이 아니기에 이런 시도를 했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렇지 않다면야 소설의 중요한 실마리를 제시하는 가설을 굳이 노출하지 않았을 테니까. 그리고 '어째서 다른 소설이 아닌 개츠비를 모티브로 삼았는지', '어째서 바비 크로커를 노숙자로 설정했는지'... 그런 요소들에 집중한다면, 이 책이 그저 재미있고 구성이 탄탄한 스릴러만이 아니라는 것을 실감할 수 있으리라. 한숨이 나오는 표지만 아니면 실망할 거리가 없는, 좋은 소설이다. 읽기 전에 어쭙잖은 팩션 운운하던 괜한 걱정을 알 리 없는 작가에게 미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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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로몬의 반지 - 그는 짐승, 새, 물고기와 이야기했다
콘라트 로렌츠 지음, 김천혜 옮김 / 사이언스북스 / 200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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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콘라드 로렌츠가 얼마나 잘나고 똑똑한 사람인지는 소개를 잠시만 들춰봐도 알 수 있다. 그런데, 이 사람 좀 너무하지 않나, 이렇게 글도 재미있게 쓰다니. 딱딱하고 건조한 학술서가 아니라 편하게 쓴 에세이고, 애정의 대상들을 다룬 것이라 더욱 좋은 글이 나왔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렇더라도 대단하다. 백이면 백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소위 과학자라는 사람들 중에 이렇게 재미있고 감칠맛 나는 글을 쓸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으니까. (잘 모르면서 이렇게 생각하는지도)

 결코 싫어하지 않는데도 (사람을 포함한) 모든 동물들을 대할 때면, 겁을 먹어 저절로 경계 태세를 갖추게 되는지라, 이런 사람은 그저 놀라울 뿐이다. (동물이든 곤충이든 (벌레 포함!) 날개 달리고, 다리 많은 것들은 특히!) 아무리 예쁘고 순하기 이를 데 없는 반려동물이라도 한번 쓰다듬으려면 엄청난 용기와 더불어 몇 십분~몇 시간이 걸리기 일쑤인 인생. 많고 많은 동물병원의 의사선생님들조차 일종의 절대자로 보이는 형국이니, 무리도 아니다. (내가 모르는 어린 시절에 무슨 일이 있었나?) 아무리 연구를 위해 필요하다고 해도, 책 속에는 어지간한 사람이라면 참기 힘든 경우가 몇번이나 등장하는데... 어쩌면 그렇게 끊임없는 인내와 한결같은 애정을 유지할 수 있었는지, 마냥 신기할 뿐이다. 그의 화려한 학문적 업적과 성과가 있기까지 무수한 난관이 있었으리라는 건 누구나 짐작하는 바지만, 이렇게까지 헌신적인 애정과 끝없는 인내가 필요했다는 건, 함께 산 가족조차도 다 알지 못했으리라. 어떤 분야든 한 획을 긋는 사람이 되기는 정말 어렵다는, 지극히 당연하고 자명한 이치를 새삼 실감한다. 이런 재능과 열정도 없지만, 야심도 없어서 정말 다행이다;

 먼저 올라온 리뷰들을 읽다가, 딸기님의 글로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됐다. 이렇게 따뜻하고 훈훈한 글을 쓴 사람이 나치 부역 경력이 있다니, 영 입맛이 쓰다. 편협한 독자라  글과 작가를 철저하게 분리시켜서 생각하는 것이 좀처럼 쉽지 않기 때문에. 미리 알았다면 불편한 마음에 읽지 않았을지도… 나치 부역 전력이 학문적 성과의 가치를 떨어뜨리거나 내용의 진위논란을 일으키는 것은 아니지만, 어쩌겠는가? 아무것도 몰랐다면 고스란히 느낄 수 있었을 감동이 지금처럼 이렇게 퇴색되어버리는 것을. 차라리 이 책이 작가에 대한 호감따위 일으키지 않는 딱딱하고 이론적인 학술서라면 이런 식의  불편함없이 깔끔하게 읽고 정리할 수 있어 좋으련만.   
책 자체만 보자면 재미에 감동까지 갖췄고, 본문에 마음을 불편하게 할 거리는 전무하다. 그런 고로 작가의 전력을 모르거나 개의치 않는다면,  내가 처음에 그랬듯이 즐거운 독서를 할 수 있으리라. 하지만 찜찜함으로 마음이 불편해질 소지가 있다면, 무수히 많은 재미있고 감동적인 다른 책을 읽는 것이 현명한 선택이 될 듯 싶다. '야생 거위와 보낸 일 년'도 보고 싶었는데, 과연 읽게 되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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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09-05-05 11:53   좋아요 0 | URL
아, 저는 kircheis님의 퍼스나콘이 귀여운 고양이라서 동물을 굉장히 좋아하실거라고, 그러니까 무섭게 생각하지 않으실거라고 생각했어요. 더불어 고양이도 키우고 계실거라고 말이죠. (저는 고양이를 딱 싫어라 해요!) 그런데 쓰다듬는데도 용기가 필요한 분이셨군요! 전 그래서 누군가의 글을 읽는게 좋아요. 그 사람에 대해 잘못 생각하고 있는 부분들을 자연스레 알게 되잖아요.

저 역시 글과 작가를 철저하게 분리시킬 자신은 없지만, 그래도 재미있게 읽으셨으니 이번만큼은 독서에 대한 느낌만으로 정리된다면 좋을텐데요, kircheis님. 사실 작가가 나치 부역 경력이 있다 한들, 그가 그 시간을 보내는 동안 어떤 생각을 했는지 어떤 행동을 했는지는 우리가 모르잖아요.

'이런 재능과 열정도 없지만, 야심도 없어서 정말 다행이다'-->초공감이요!!

Kir 2009-05-05 23:23   좋아요 0 | URL
저희집에서 반려동물을 키우는 건 불가능해요. 어머니가 털 날리고, 지저분하다고 싫어하시거든요. 거추장스러운 건 사람으로 충분하시대요^^; 게다가 전 보면서 아, 예뻐라! 했다가 정작 보면 겁에 질리는 이상한 타입이예요... 대체 왜 이러는지 모르겠는데, 주로 제 앞에서 주인 등 동물들이 잘 따르는 사람이 놀아주는 걸 보면서 좋아한답니다ㅠㅠ 그렇게 시간을 보내면서 '조금만 더 지나면 나도 만질 수 있어!' 이렇게 꿈을 꾸지요;;;
 
영화처럼 사랑을 요리하다 - 식탁 위에 차려진 맛있는 영화 이야기
송정림 지음, 전지영 그림 / 예담 / 2003년 11월
평점 :
절판


 좀처럼 읽지 않는 분야의 책인데, 마구잡이 웹서핑 중 어떤 블로그에서 목차를 보고 읽어봐야겠구나 했다. 같은 걸 접하고도 받아들이기는 사람마다 제 각각인지라 이런 식으로 구입하는 건 위험하지만 좋아하는 영화들의 제목이 꽤나 포함되어 있었기 때문. 책이든, 음악이든, 영화든... 대체로 '남들이 뭐라 해도 내가 좋으면 그만'하면서 살지만 그래도 가끔은, 우연치 않게 나와 주파수가 맞는 사람을 만났을 때의 기쁨을 느끼고 싶기 때문일까. 고맙게도 중고샵에 있었기에, 가벼운 마음으로 구입할 수 있었다. 페이지수를 보지 않아서 막연히 얇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예상외의 두께였다. 물론 책의 특성상(?) 빵빵하고 알찬 편집과는 거리가 있기 마련이지만 그래도 준수한 편이니 내용도 괜찮으려나? 페이지수가 예상 외였던 것처럼 내용도 썩 괜찮았다, 제 값을 다 주고 샀으면 또 어땠을지 모르지만, 중고샵 가격으로 구매해서 이정도면 확실히 남는 장사.  

 총 29개의 영화를 다루면서 간단한 줄거리와 영화에 등장한 음식에 대해서 소개해놓은 이 책이, (만든 이들을 생각하면 너무도 미안한 표현이지만) 누군가에게는 남는 게 없다 싶은 책일지도 모른다. 등장하는 영화를 보지 않은 사람에게는 독이 될(지도 모를) 미리니름, 작가 자신도 대단치 않다고 한 (영화에 등장한 음식의) 레시피, 그리고 취향을 탈 수 있는 영화 이미지 일러스트. 딱히 기발할 것도, 특별한 것도 없는 구성이니. 이런 책이 나오기 시작한 초반이라면 또 모를까, 흥미를 끌만한 요소는 솔직히 별로 없다. 하지만 이 책에 등장하는 영화들이, 그리고 음식들이 개인적으로 의미 있는 것이라면? 아무리 하잘 것 없는 것이라도 나와 관련된 순간부터 유일무이하게 되기 마련인데, 인연이 있고 게다가 좋아하는 것이라면 두말할 나위 없는 것이 당연지사. 새삼스럽지만 땡큐, 알라딘! 이다. 

 분명 반짝반짝~ 했었는데 어느새 가물가물, 잊지 말자! 다짐했는데 '그랬던가?' 하고 까맣게 잊어버린 순간, 맛, 사람... 기억처럼 단순하고 간사한 게 또 있을까 싶지만, 그렇기에 살아갈 수 있다는 걸 알아버린 어른이 되면서 뒤로 했던 시절들을 오랜만에 떠올렸다. 울다가 웃다가 혼자 제대로 쇼를 하면서, '나도 나이가 들었구나' 반가울 것 없는 사실도 되새기고. (읽는 데 시간이 걸릴만한 책이 아닌데, 잡생각들 때문에 찬찬히 읽다 보니 더 그렇게 된 것 같다) 더 많은 시간이 흐르고, 나이가 들어서 책 속의 영화들을 보면 무슨 생각이 들려나... 지금보다 더 흐릿하게 바랜 기억들이 그 때도 스물스물 떠오를까. 갑자기 다시 보고 싶은 영화들이 많아져서 마음이 바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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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시장미 2009-05-04 03:37   좋아요 0 | URL
앗..마지막 문단.. 너무 공감됩니다. ^^ 그러게요. 그 순간에는 그게 전부일 줄 알았는데, 지나고보면 하찮은 감정이였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그 순간에는 하찮다고 여겨졌던 감정인데, 지나고나니 전부였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게 하는 감정이 있는 것 같아요.
왜 예전에 아프지 않았던 일이 이제와서 아픈걸까.. 요즘 전 그런 생각도 들어요. 참 사람일이라는 게 시간의 흐름과 자신의 성장속도에 따라 수많은 해석이 가능한 것 같아요. 아마 과거의 그 시간속에 있는 내가 지금의 나였다면 잃지 않았을지도 모른다고 생각되는 감정이 있어요. 시간을 되돌릴 수는 없으니, 마음 아프지만, 운명이였다고 생각해요. ^^ 저 완전 늙은이같죠? ㅋㅋ 제가 남긴 댓글을 다시 읽어보니.. 그렇네요. 으흐

Kir 2009-05-04 20:17   좋아요 0 | URL
장미님 댓글에 마음이 참 편안해졌어요. 아프더라도 지나간 시간은 흘러가는대로 그렇게 떠나보내는 게 순리인데, 왜 가끔씩 쓸모없는 걸 알면서도 공연히 돌이켜 생각하면서 자학을 하는지 모르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