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중구속
크리스 보잘리언 지음, 김시현 옮김 / 비채 / 2008년 6월
평점 :
절판


《위대한 개츠비》는 몇 번이나 되풀이해서 읽게 되는 인상적인 작품이지만, 결코 좋아한다고는 말할 수 없다. 비단 결말만의 문제가 아니라, 책의 전반적인 정서에 짓눌려 피폐해진 감정을 추스르는 것이 언제고 버겁기 때문이다. 지나치게 순수하고 무서울 만큼 한결같은 개츠비, 그리고 그와 대비되는 사람들의 이기적이고 추악한 모습. 글이 쓰인 시대부터 하나 달라진 것이 없고, 앞으로도 그럴 것 같기 때문에 그 때나 지금이나 여전히 '시대착오적이라 위대한' 개츠비는 영원성을 갖는지도 모르겠다. 호불호를 쉽게 말할 수 없는 애증의 개츠비... 그런데 그런 개츠비를 모티브로, 실화와 버무려 쓴 스릴러? 개츠비, 실화, 스릴러의 관심을 끄는 3가지 요소가 만난 탓에, 어쭙잖은 팩션이면 어쩌나 하는 불안이 떠나질 않았지만 일단 읽기로 했다. 설마 표지처럼 거슬리는 소설은 아니겠지, 아니어야 하는데…….

 《위대한 개츠비》의 요소들이 상당수 등장하기 때문에 그것부터 읽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도 들지만, 아직 읽지 않은 사람이라면 굳이 먼저 읽을 필요는 없을 것 같다. 모른다고 따라갈 수 없는 설정이 아니니까. 사실 개츠비가 특별한 내용을 담고 있어서 칭송받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어쩌면 접하지 않은 쪽이 이 책에 몰입하기는 더 좋을지도 모르겠다. 익숙한 허구는 확실히 매력적인 장치이지만, 책의 전반을 좌우하고 있지는 않다. 당연한 얘기지만 책의 핵심은 어디까지나 주인공 로렐에 맞춰져 있고, 부가적인 장치보다 그녀에게 집중하는 것이 "이중구속"이라는 책의 제목에도 부합한다. 불쌍한 로렐, 그녀의 운명은 글자 그대로 가련하다. 그나마 희망이 보이기에 절망적이지만은 않지만, 그렇게 될 때까지 이겨내야 할 시간들은 또 얼마나 길고 길 것인가.

  '이중구속 (The Double Bind)'이란 인류학자인 그레고리 베이트슨이 만들어낸 가설로, 자녀에게 일련의 모순된 메시지를 지속적으로 전달하는 것. 적절한 제목이라고 생각하지만, 책 소개에서 너무 핵심적인 장치를 노출한 것이 아닌가 싶어, 출판사의 '영원히 잊지 못할 충격적인 반전'이라는 홍보문구가 마음에 걸린다. 반전이라는 위험한 장치는 독자의 기대를 충족시킨다면 성공이지만, 반대의 경우는 처참한 결과를 가져오기 마련인데. 책의 성공을 자신한 것일까, 아니면 독자들을 얕본 것일까. 진실은 알 수 없지만, 이 책의 독자로서는 홍보야 어떻든 반전에만 초점을 맞춘 소설이 아니기에 이런 시도를 했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렇지 않다면야 소설의 중요한 실마리를 제시하는 가설을 굳이 노출하지 않았을 테니까. 그리고 '어째서 다른 소설이 아닌 개츠비를 모티브로 삼았는지', '어째서 바비 크로커를 노숙자로 설정했는지'... 그런 요소들에 집중한다면, 이 책이 그저 재미있고 구성이 탄탄한 스릴러만이 아니라는 것을 실감할 수 있으리라. 한숨이 나오는 표지만 아니면 실망할 거리가 없는, 좋은 소설이다. 읽기 전에 어쭙잖은 팩션 운운하던 괜한 걱정을 알 리 없는 작가에게 미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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