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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로몬의 반지 - 그는 짐승, 새, 물고기와 이야기했다
콘라트 로렌츠 지음, 김천혜 옮김 / 사이언스북스 / 2000년 7월
평점 :
콘라드 로렌츠가 얼마나 잘나고 똑똑한 사람인지는 소개를 잠시만 들춰봐도 알 수 있다. 그런데, 이 사람 좀 너무하지 않나, 이렇게 글도 재미있게 쓰다니. 딱딱하고 건조한 학술서가 아니라 편하게 쓴 에세이고, 애정의 대상들을 다룬 것이라 더욱 좋은 글이 나왔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렇더라도 대단하다. 백이면 백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소위 과학자라는 사람들 중에 이렇게 재미있고 감칠맛 나는 글을 쓸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으니까. (잘 모르면서 이렇게 생각하는지도)
결코 싫어하지 않는데도 (사람을 포함한) 모든 동물들을 대할 때면, 겁을 먹어 저절로 경계 태세를 갖추게 되는지라, 이런 사람은 그저 놀라울 뿐이다. (동물이든 곤충이든 (벌레 포함!) 날개 달리고, 다리 많은 것들은 특히!) 아무리 예쁘고 순하기 이를 데 없는 반려동물이라도 한번 쓰다듬으려면 엄청난 용기와 더불어 몇 십분~몇 시간이 걸리기 일쑤인 인생. 많고 많은 동물병원의 의사선생님들조차 일종의 절대자로 보이는 형국이니, 무리도 아니다. (내가 모르는 어린 시절에 무슨 일이 있었나?) 아무리 연구를 위해 필요하다고 해도, 책 속에는 어지간한 사람이라면 참기 힘든 경우가 몇번이나 등장하는데... 어쩌면 그렇게 끊임없는 인내와 한결같은 애정을 유지할 수 있었는지, 마냥 신기할 뿐이다. 그의 화려한 학문적 업적과 성과가 있기까지 무수한 난관이 있었으리라는 건 누구나 짐작하는 바지만, 이렇게까지 헌신적인 애정과 끝없는 인내가 필요했다는 건, 함께 산 가족조차도 다 알지 못했으리라. 어떤 분야든 한 획을 긋는 사람이 되기는 정말 어렵다는, 지극히 당연하고 자명한 이치를 새삼 실감한다. 이런 재능과 열정도 없지만, 야심도 없어서 정말 다행이다;
먼저 올라온 리뷰들을 읽다가, 딸기님의 글로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됐다. 이렇게 따뜻하고 훈훈한 글을 쓴 사람이 나치 부역 경력이 있다니, 영 입맛이 쓰다. 편협한 독자라 글과 작가를 철저하게 분리시켜서 생각하는 것이 좀처럼 쉽지 않기 때문에. 미리 알았다면 불편한 마음에 읽지 않았을지도… 나치 부역 전력이 학문적 성과의 가치를 떨어뜨리거나 내용의 진위논란을 일으키는 것은 아니지만, 어쩌겠는가? 아무것도 몰랐다면 고스란히 느낄 수 있었을 감동이 지금처럼 이렇게 퇴색되어버리는 것을. 차라리 이 책이 작가에 대한 호감따위 일으키지 않는 딱딱하고 이론적인 학술서라면 이런 식의 불편함없이 깔끔하게 읽고 정리할 수 있어 좋으련만.
책 자체만 보자면 재미에 감동까지 갖췄고, 본문에 마음을 불편하게 할 거리는 전무하다. 그런 고로 작가의 전력을 모르거나 개의치 않는다면, 내가 처음에 그랬듯이 즐거운 독서를 할 수 있으리라. 하지만 찜찜함으로 마음이 불편해질 소지가 있다면, 무수히 많은 재미있고 감동적인 다른 책을 읽는 것이 현명한 선택이 될 듯 싶다. '야생 거위와 보낸 일 년'도 보고 싶었는데, 과연 읽게 되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