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하는 인류 - 인구의 대이동과 그들이 써내려간 역동의 세계사
샘 밀러 지음, 최정숙 옮김 / 미래의창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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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쁜 권력은 어떻게 무너지는가 - 탄핵의 정치학
이철희 지음 / 메디치미디어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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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핵의 목적은 처벌(punishment)이 아니다. 탄핵의 용도는 무엇보다 헌정 체제(constitutional government)를 유지하는 것이다.” 미국 하원이 펴낸 탄핵 안내서에 나오는 내용이다. 탄핵은 형사처벌이 아니라 교정 절차라는 얘기다. 아주 중요한 포인트다. 탄핵을 치유의 수단으로 써야지 응징의 수단으로 쓰면 안 된다. 그러면 탄핵 대상이나 그 세력이 격렬하게 저항하고, 탄핵 후에는 앙심을 품고 복수의 칼을 갈게 된다.




...사실 탄핵은 시민이 직접행동에 나서 대중적 저항운동을 전개함으로써 대통령을 몰아내면 유혈 사태 등 불행한 일이 일어날 수 있으므로 평화적으로 질서 있게 대통령을 물러나게 하는 제도적 장치다. 탄핵소추를 의회의 전속 권한(sole power)으로 정한 이유도 국민을 대표하는 의회만이 국민주권을 대리 행사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의 민주화는 운동과 저항에 의해서 추동되었다는 역사적인 특징이 있다.” 이런 역사적 경험을 통해 형성·내장된 민주적 자산(democratic stock)을 탄핵 요인 중 하나로 주목한 이는 마르티네스다.이는 탄핵 요인을 둘러싸고 벌어진 ‘의회 대 광장’ 논쟁에 의미 있는 함의를 제공한다. 즉 광범위한 사회운동이 탄핵 게임의 주요 행위자로 참여하는지가 탄핵의 성패를 좌우하는 요인이 될 수 있다는 얘기다. 특히 운동에 의한 민주화의 역사를 가진 한국 같은 나라에선 그 영향력이 더 클 것이다.






...민주주의를 넘어서는 법은 없다. 정치 논리는 자의성과 당파성을 기본으로 하므로 멀리해야 한다는 주장은 편견이다. 이때의 정치 논리는 당파적 이익을 추구하는 정략을 뜻한다. 정략과 정치는 다르다. 정치는 민주적 절차와 합의를 중시한다. “정치가 없으면 민주주의도 없다.” “민주주의는 정치를 필요로 한다.” 요컨대 정치 논리는 민주주의 논리다. 민주주의는 인민주권의 체제이므로 정치 논리는 국민 의사, 대중적 합의를 존중하는 것이다. 그래서 입법부가 삼권 중 첫 번째다. 배척할 대상은 당파적 판단이지 정치적 판단이 아니다.





....민주주의 법정에서 최고·최종 심판자는 여론이었다. “대중의 감정(public sentiment)이 전부다. 대중의 감정을 얻으면 결코 실패할 수 없다. 대중의 감정을 거스르면 결코 성공할 수 없다.” 링컨의 말처럼 대중의 감정이 성패를 갈랐다. 언제나 그런 것은 아니지만 탄핵이 당파적 프레임을 벗어나지 못하면 부당한 것으로 간주되고, 그와 같은 당파적 탄핵(partisan impeachment)은 대체로 실패한다. 특히 광범위한 사회적 저항에 직면할 땐 십중팔구 대중방패에 막혀 실패한다. 노무현 탄핵 실패가 남긴 차디찬 교훈이다.





...헌법재판에서 특정 정파의 편을 노골적으로 들어주면 안 된다는 것은 지당한 말이지만, 헌법재판 과정에서 정치적인 고려가 개입해서는 안 된다는 주장은 가능하지도 않고 바람직하지도 않은 것을 요구하는 말이다. 헌법재판은 본래 정치적인 사안들을 판단하는 제도이기 때문이다. 헌법재판관이 모두 법관의 자격을 가져야 한다는 요건은 개개의 결정을 내림에 있어서 최소한의 법적인 일관성과 정합성을 갖추어야 한다는 뜻이지 결코 정치적인 고려를 배제한다는 뜻이 아니다.





...한국의 두 탄핵 사례는 한국 민주주의에 대한 모순적 사실을 확인해준다. 하나는 탄핵이란 극단적 조치가 권력투쟁의 수단으로 동원될 정도로 한국의 대통령제 민주주의가 아직 성숙하지 못했다는 사실이다. 의회도, 대통령도 권력을 절제할 줄 아는 분별력, 제도적 자제력을 발휘하지 못했다. 다른 하나는 탄핵이란 헌법적 처방을 통해 대통령제 민주주의의 병폐를 평화적으로 해결할 정도로 한국의 민주주의가 공고화했다는 사실이다. 특히 시민이 나서서 권력 남용을 응징한 점은 한국 민주화의 특징, 즉 운동 주도의 민주화를 계승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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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두울 때에야 보이는 것들이 있습니다 - 슈테판 츠바이크의 마지막 수업
슈테판 츠바이크 지음, 배명자 옮김 / 다산초당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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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오늘날 우리 각자가 정신적 자유의 필수성과 신성함을 그 어느 때보다 새롭고 절절하게 인식하고 있다고 믿습니다. 지금 우리는 삶의 가장 신성한 가치를 아주 특이한 방식으로 체험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밝은 대낮에 별을 보지 못하듯, 삶의 신성한 가치가 살아 있을 때는 그것을 망각하고, 삶이 평온할 때는 삶의 가치에 크게 관심을 두지 않습니다. 영원한 별들이 얼마나 찬란하게 하늘에 떠 있는지 알려면, 먼저 어두워져야 합니다. 몸과 숨을 분리할 수 없듯이 영혼과 자유를 분리할 수 없음을 인식하기 위해, 먼저 어둠의 시간이, 아마도 역사상 가장 어두운 시간이 우리에게 닥쳐야 했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강력한 도구인 돈을 주체적으로 피하는 기술, 그리고 단 한 명의 적도 만들지 않고 사람들과 어울려 사는 기술. 매우 어려운 이 두 가지 기술을 내게 보여준 사람이 있다.



...그는 사람들의 인성을 믿었다. 그는 은행에 적금을 넣는 것보다 이 작은 도시의 거의 모든 사람의 마음에 도덕적 의무라는 유동자산을 저축하기를 더 좋아했다. 그는 자신이 가진 약간의 재산을 눈에 보이지 않는 자산에 투자한 것이었다. 제아무리 완고하고 의심이 많은 사람이라도 기술이나 노동을 돈벌이 수단으로 거래하지 않고 부탁받은 모든 일을 당연한 듯 흔쾌히 처리한 후 즉각적인 대가를 요구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마음의 빚을 진 기분을 느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사람들 대부분은 평범하지 않은 모든 사건에 관심을 둘 의향이 매우 강하고, 그것에 몰두하고 참여하려는 의지가 있으며, 심지어 그것을 소망한다. 그러나 동시에 우리는 모두 더 강한 자연법칙의 지배를 받는다. 이 자연법칙은 우리의 참여 의지와 공감 능력을 현명하면서도 경제적으로 제한한다. 강한 흥분이 연속되면 필연적으로 피로가 누적되고, 너무 오래 계속되는 과도한 긴장은 일종의 마비를 일으킨다. ... 전쟁에 대한 끊임없는 생각은 마음을 파괴하고, 시대가 우리에게 연민을 더 많이 요구할수록, 우리의 지친 영혼이 느낄 수 있는 연민은 더 줄어든다. 그러므로 전쟁 첫해 말에 우리가 더는 전쟁에 신경 쓰지 않았던 것처럼 보였다면, 그것은 우리가 비인간적이어서가 아니라, 작은 심장 하나를 가진 인간이기 때문이다. 우리의 심장은 너무 작아서 일정량 이상의 불행을 감당하지 못한다. 공감 능력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그런 ‘역사적 시대’에 너무 많은 일이 벌어지기 때문이고, 우리의 마음이 당장 벌어지고 있는 일에서 잠시 떠나 아무런 감정도 일지 않는다면, 이는 그것을 감당할 힘이 부족하기 때문이지 선한 의지가 없어서가 아니다.



...어떤 종류든 모든 도덕은 이런 무자비한 권력 행사에 방해만 될 뿐이고, 여기서 이미 이 매력적인 교수는 나치 정책의 전체 개념을 정립했다. 그는 다음과 같이 강의한다.
“개인 차원에서 도덕은 어느 정도 정당성을 가질 수 있습니다. 도덕은 개인이 규정을 더 잘 준수하고 규율에 더 순응하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정부 차원에서 도덕은 아무런 이익도 주지 않는 장애물에 불과합니다. 국가는 진실이냐 거짓이냐를 신경 쓸 필요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채택된 수단의 장점과 효율성뿐입니다. 약속과 법률 같은 것에 왜 신경을 씁니까? 독일은 힘을 가졌고, 힘은 새로운 법을 만듭니다. 역사는 승자에게 정당성을 요구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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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의 쓸모
로랑스 드빌레르 지음, 박효은 옮김 / FIKA(피카)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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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전 손택은 암에 대해 “질병은 은유가 아니며, 질병에 대해 우리가 가질 수 있는 가장 정직한 태도이자 환자가 되는 가장 건강한 방법은 질병에 따라붙는 잘못된 은유에 저항하고 거기에서 벗어나는 것”이라고 말했다...질병은 다만 또 다른 삶을 사는 것이다. 그런데 “그 다른 삶에 속하려면 많은 비용이 든다. 우리는 건강의 세계와 질병의 세계라는 두 세계의 이중 국적을 가지고 태어난다. 우리는 언제나 건강의 세계에서 쓸 여권을 갖고 싶어 하지만, 잠시라도 질병의 세계에 다녀올 수밖에 없는 순간은 누구에게나 닥치게 마련이다”.



....산다는 것은 우리가 결정하지 않은 현실의 상황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우리의 의지에 따라 자유로워질 수 있고, 가능성을 시도해볼 수 있는 삶 속에서 “우연에 의해 존재하는 우리 자신에게서 벗어나 능동적으로 존재할 수 있다”.우리는 혁명이나 영웅주의에 기대지 않고, 우리 내면의 힘을 기르면서 새로운 것을 시작할 수 있는 능력, 곧 탄생성(natality)을 발휘할 수 있다. 한나 아렌트에 따르면, 탄생성이란 늙음이나 젊음에 좌우되는 생물학적 현상이 아니라 비루하고 보잘것없더라도 무언가를 새롭게 시작할 수 있는 인간의 능력이다.우리는 새롭게 시작하면서 자기 주도권을 가질 수 있다.



...철학을 마음에 위안을 주는 메시지나 요가 명상으로 소비하는 사람들이 있다고 해도, 철학은 본래 극도로 고통스럽고 괴로운 학문이다. 철학은 토론의 기술도, 감정의 공유도 아닌 이성으로 개념을 생산하는 일종의 ‘개념 제작소’다. 개념은 모든 일에 본능적이고 즉흥적인 의견을 내려는 본성을 거스르는 고행의 결과로 얻어진다. 우리가 개념을 통해 무언가를 이해한다면, 그것은 우리가 항상 생각하고 믿어왔던 모든 것, 즉 이미 널리 알려진 것을 거부하는 조건하에서만 가능하다.




...삶은 그저 버티는 것이 아니라 자신만의 것을 쌓아가는 일이다. 그러니 하루의 어떤 순간도 의미 없이 허투루 보내서는 안 된다.  의미 없는 일들을 이것저것 다양하게 해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벽돌을 하나하나 쌓듯, 주의를 기울이고 집중력을 발휘해 조금씩 차근차근 자기만의 삶을 쌓아가야 한다. 라이프니츠는 “우리가 보내는 시간들의 가장 소소한 부분까지 경험하고 느낄 수 있다면, 우리는 그런 능력 덕분에 오래도록 살 수 있다”고 말했다. 우리가 하는 행동을 통해 삶을 확장하고 무력감과 타성에서 벗어날 수 있을 때에야 우리는 비로소 온전히 자신만의 삶을 영위할 수 있다.




...전문가들은 스트레스란 할 수 없어서 하지 못한 일이 아니라 할 수 있었으나 하지 않은 일에서 비롯된다고 말한다. 이것이 바로 끊임없이 다시 자라는 잡초처럼 우리의 삶을 잠식하고, 음악 소리에 묻어 있는 잡음처럼 우리 내면의 삶을 어지럽히는 아크라시아다. 해야만 하는 일을 하지 않은 나는 나 자신으로 존재하지 못한다. 다시 말해, 의지박약은 취약한 의지 때문에 목적한 바를 실행하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죽지도 살지도 못한 채 나 자신으로 온전하게 존재하지 못하는 상태다.




...경험은 아무것도 가르쳐주지 않는다. 경험은 누적되지 않으며, 경험들이 쌓인다고 해서 절대적 진리가 되는 것도 아니다. 각각의 경험은 단 한 번만 할 수 있고 비교가 불가능하다. 즉 같은 경험을 두 번 할 수는 없기에 한 번의 경험으로 다른 경험을 대비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또한 경험은 부정적 확신만을 제공한다. 경험을 통해 우리는 진실 대신 우리가 오해하고 있었던 것들을 알게 된다(자신, 세상, 타인에 대해). 경험이 보여주는 것은 진리가 아닌 우리의 그릇된 생각이다. 경험은 우리의 예측과 반대되는 사실이나 상황을 보여준다. 경험의 힘은 가설이나 신념을 확신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에 오류가 있음을 드러내고 그것을 반박하는 데 있다.




...우리는 우리가 보고자 하는 것만 본다. 우리를 만드는 것은 우리에게 일어나는 일이 아니라 일어난 일에 대한 우리의 판단이다. 경험은 아무것도 보여주지 않는다. 우리는 경험을 통해 우리가 취해야 한다고 판단한 것만 취한다. 칸트는 이렇게 말했다. “이성은 그가 스스로 생성한 것만을 식별한다.” 이성은 자신의 판단과 원칙으로 무장한 채 앞장서서 “목줄에 묶인 것처럼 현실에 끌려가는” 대신 현실이 자신의 질문에 답하도록 강요한다. “선생님이 말하고자 하는 모든 것을 듣고만 있는 학생의 태도가 아니라, 증인에게 자신의 질문에 대답할 것을 종용하는 재판관의 태도를 가져야 경험을 통해 무엇이든 배우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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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가 죽였다
마크 에드워즈 지음, 김항나 옮김 / 모모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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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레나는 같은 말을 또 했다. “난 벌 받는 게 맞아.”
무슨 소리를 하는 거지? 왜 벌을 받아야 마땅하다고 생각하는 거지? 그리고 지옥에서 자기를 기다린다니 누가? 리를 말하는 건가?



...우리 사이는 그냥 폭탄이 아니었다. 시한폭탄이었다.
그리고 그것이 우리 관계를 지탱하는 기반이었다.
나는 헬레나를 끌어안았다.
“이제부터 우리 정말 지루하게 살아야 해. 준비됐어?”
“준비 완료야. 다사다난하지 않을수록 좋아.”
“더는 비밀은 없어.” “더는 거짓도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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