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핵의 목적은 처벌(punishment)이 아니다. 탄핵의 용도는 무엇보다 헌정 체제(constitutional government)를 유지하는 것이다.” 미국 하원이 펴낸 탄핵 안내서에 나오는 내용이다. 탄핵은 형사처벌이 아니라 교정 절차라는 얘기다. 아주 중요한 포인트다. 탄핵을 치유의 수단으로 써야지 응징의 수단으로 쓰면 안 된다. 그러면 탄핵 대상이나 그 세력이 격렬하게 저항하고, 탄핵 후에는 앙심을 품고 복수의 칼을 갈게 된다. ...사실 탄핵은 시민이 직접행동에 나서 대중적 저항운동을 전개함으로써 대통령을 몰아내면 유혈 사태 등 불행한 일이 일어날 수 있으므로 평화적으로 질서 있게 대통령을 물러나게 하는 제도적 장치다. 탄핵소추를 의회의 전속 권한(sole power)으로 정한 이유도 국민을 대표하는 의회만이 국민주권을 대리 행사할 수 있기 때문이다....“한국의 민주화는 운동과 저항에 의해서 추동되었다는 역사적인 특징이 있다.” 이런 역사적 경험을 통해 형성·내장된 민주적 자산(democratic stock)을 탄핵 요인 중 하나로 주목한 이는 마르티네스다.이는 탄핵 요인을 둘러싸고 벌어진 ‘의회 대 광장’ 논쟁에 의미 있는 함의를 제공한다. 즉 광범위한 사회운동이 탄핵 게임의 주요 행위자로 참여하는지가 탄핵의 성패를 좌우하는 요인이 될 수 있다는 얘기다. 특히 운동에 의한 민주화의 역사를 가진 한국 같은 나라에선 그 영향력이 더 클 것이다....민주주의를 넘어서는 법은 없다. 정치 논리는 자의성과 당파성을 기본으로 하므로 멀리해야 한다는 주장은 편견이다. 이때의 정치 논리는 당파적 이익을 추구하는 정략을 뜻한다. 정략과 정치는 다르다. 정치는 민주적 절차와 합의를 중시한다. “정치가 없으면 민주주의도 없다.” “민주주의는 정치를 필요로 한다.” 요컨대 정치 논리는 민주주의 논리다. 민주주의는 인민주권의 체제이므로 정치 논리는 국민 의사, 대중적 합의를 존중하는 것이다. 그래서 입법부가 삼권 중 첫 번째다. 배척할 대상은 당파적 판단이지 정치적 판단이 아니다.....민주주의 법정에서 최고·최종 심판자는 여론이었다. “대중의 감정(public sentiment)이 전부다. 대중의 감정을 얻으면 결코 실패할 수 없다. 대중의 감정을 거스르면 결코 성공할 수 없다.” 링컨의 말처럼 대중의 감정이 성패를 갈랐다. 언제나 그런 것은 아니지만 탄핵이 당파적 프레임을 벗어나지 못하면 부당한 것으로 간주되고, 그와 같은 당파적 탄핵(partisan impeachment)은 대체로 실패한다. 특히 광범위한 사회적 저항에 직면할 땐 십중팔구 대중방패에 막혀 실패한다. 노무현 탄핵 실패가 남긴 차디찬 교훈이다....헌법재판에서 특정 정파의 편을 노골적으로 들어주면 안 된다는 것은 지당한 말이지만, 헌법재판 과정에서 정치적인 고려가 개입해서는 안 된다는 주장은 가능하지도 않고 바람직하지도 않은 것을 요구하는 말이다. 헌법재판은 본래 정치적인 사안들을 판단하는 제도이기 때문이다. 헌법재판관이 모두 법관의 자격을 가져야 한다는 요건은 개개의 결정을 내림에 있어서 최소한의 법적인 일관성과 정합성을 갖추어야 한다는 뜻이지 결코 정치적인 고려를 배제한다는 뜻이 아니다....한국의 두 탄핵 사례는 한국 민주주의에 대한 모순적 사실을 확인해준다. 하나는 탄핵이란 극단적 조치가 권력투쟁의 수단으로 동원될 정도로 한국의 대통령제 민주주의가 아직 성숙하지 못했다는 사실이다. 의회도, 대통령도 권력을 절제할 줄 아는 분별력, 제도적 자제력을 발휘하지 못했다. 다른 하나는 탄핵이란 헌법적 처방을 통해 대통령제 민주주의의 병폐를 평화적으로 해결할 정도로 한국의 민주주의가 공고화했다는 사실이다. 특히 시민이 나서서 권력 남용을 응징한 점은 한국 민주화의 특징, 즉 운동 주도의 민주화를 계승한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