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고 온 여름 소설Q
성해나 지음 / 창비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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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밀하게 자란 오리나무 사이에서 한 무리 새떼가 날아올랐다. 능을 완전히 나서기 전, 나는 잠시 뒤를 돌아보았다. 아무것도 두고 온 게 없는데 무언가 두고 온 것만 같았다. 푸른 기운을 띄던 숲이 자줏빛으로 서서히 물들고 있었다.




...비정에는 금세 익숙해졌지만, 다정에는 좀체 그럴 수 없었습니다. 홀연히 나타났다가 손을 대면 스러지는 신기루처럼 한순간에 증발해버릴까, 멀어져버릴까 언제나 주춤. 가까이 다가설 수 없었습니다.
가감 없이 표현하고 바닥을 내보이는 것도 어떤 관계에서는 가능하고, 어떤 관계에서는 불가하다는 사실을 저는 알고 태어난 것일까요.



...제게 등을 진 채 어머니는 한참 울었습니다. 고여 있던 것을 흘려보내듯 잠잠히. 어떤 울음이 안에 있던 것을 죄다 게워내고 쏟아낸다면, 어떤 울음은 그저 희석일 뿐이라는 것을 저는 그때 처음 알았습니다. 비워내는 것이 아니라 슬픔의 농도를 묽게 만들 뿐이라는 것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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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릿 GRIT (골드 에디션) - IQ, 재능, 환경을 뛰어넘는 열정적 끈기의 힘
앤절라 더크워스 지음, 김미정 옮김 / 비즈니스북스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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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자와 달리기 - 중년의 철학자가 달리면서 깨달은 인생의 지혜와 성찰
마크 롤랜즈 지음, 강수희 옮김 / 유노책주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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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리기에 다양한 도구적 가치들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가장 순수한 절정의 상태에서 달리는 일은 전적으로 다른 종류의 가치인 본질적 혹은 내재적 가치를 가지게 된다. 어떤 대상이 본질적 가치를 가진다는 것은 그로 인해 우리가 얻거나 소유할 수 있는 것 때문이 아니라 그 자체로서 가치가 있다는 뜻이다. 그래서 나는 달리기에 본질적인 가치가 있다고 주장한다. 합당한 이유로 달릴 때 우리는 삶의 본질적 가치와 조우하게 되는 것이다.




...세계의 밤 속에서 살아가는 것은 본질적 가치를 바라보면서도 알아채지 못하는 무력함으로 인해 더욱 어려워진다. 우리의 삶은 목적을 위해 수단이 되는 일을 하는 과정이다. 그리고 그 목적은 또 다른 목적의 수단일 뿐이다. 평생을 끝도 없이 이어지는 목적과 수단의 쳇바퀴를 돌며 손에 잡히지도 않는 가치를 좇아 달린다. 목적을 위한 수단이 아니라 그 자체로 중요한 무엇인가를 만날 때 비로소 잠시나마 그 좇음은 끝이 날 것이다. 잠시라도 가치를 좇는 대신 그 속에 몰입하는 것이다.





...달릴 때 생각을 한다면 이 달리기는 틀려먹었다. 혹은 최소한 아직 제대로 달리고 있지 않은 것이다. 아직 궤도에 오르지 못한 달리기이고, 아직 심장박동을 느끼지 못한 달리기이며, 아직 리듬이 거는 최면에 걸리지 않은 달리기이다. 장거리 달리기가 궤도에 오를 때마다 생각이 멈추고 사유가 시작되는 시점이 온다. 가끔은 이런 것이 가치가 없지만, 또 가끔은 그렇지 않다. 달리기는 사유가 들어오는 열린 공간이다. 나는 생각을 하려고 달리지는 않는다. 그러나 달릴 때 사유가 들어온다. 사유는 추가적인 보너스나 대가처럼 달리기의 외부에 있는 것이 아니다. 사유는 달리기, 그것도 진정한 달리기의 일부이다. 내 육체가 달릴 때 나의 사유도 내 장비나 선택과는 거의 무관한 방식으로 함께 달린다.




....또 다른 가능성은 Z라는 것이 없는 것이다. 본질적 가치를 가진 것을 절대 찾을 수 없다면, 다른 모든 것의 도구적 가치의 기반이 되는 것도 없을 것이다. 삶에서 모든 것의 가치는 항상 미뤄지고 언제나 손에 잡히지 않는다. 삶은 신들을 능멸한 죄로 과일이 주렁주렁 열린 나무 그늘 아래의 못 속에 서 있는 형벌에 처한 탄탈로스와 같다. 탄탈로스가 과일을 따 먹으려 손을 뻗으면 나뭇가지는 손이 닿을 수 없게 위로 올라가 버린다. 또 물을 마시려고 몸을 숙이면 못의 물은 바닥으로 빠져 버린다. 그 자체에 본질적 가치가 없는 삶은 이처럼 ‘사람을 애태우는(영어로 탄탈로스의 발음을 딴 탄탈라이징tantalizing)’ 것이다.





...우리의 기억과 기대는 좋은 것보다 나쁜 것을 더 선호해서, 나쁜 것은 재발하지 않도록 예방하거나(기억) 아예 일어나지 않게 막아 버린다(기대). 인식이 더 정교해짐에 따라 고통과 즐거움의 불균형은 더 커진다. 삶은 모든 생명체에게 나쁜데 아무리 그렇지 않다고 증명하려 발버둥 쳐도 다른 특별한 조건이 없는 한 삶은 인간에게 가장 나쁘다.




...니체는 강해지라고 말했다. 나를 죽이지 못하는 것은 나를 강하게 만든다. 그러나 아마도, 불행하게도 곧 무언가가 나를 죽일 것이다. 또한 그는 행복은 힘이 증가하는 감정이라고 덧붙였다. 이것은 참으로 불행한데, 왜냐하면 현세에서 대부분 우리는 힘이 줄어드는 것을 느낄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현세를 어떻게 살 것인가 하는 질문은 이 명백한 사실을 출발점으로 삼아야 하며, 안이하게 무시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었다.




...젊음은 행동이 놀이가 되는 곳마다 존재한다. 젊음은 다른 어떤 것을 위해서가 아닌 그 자체로 의미 있는 행동을 하는 곳마다 존재한다. 젊음은 목표가 아닌 행위 자체에 혼신을 다하는 곳마다 존재한다. 환희는 본질적 삶의 가치를 인식하는 것이기에 이런 열정과 함께 환희가 온다. 이것이 우리 모두가 석호로 되돌아가는 삶이다. 그리고 현세를 구원하는 것은 방법만 안다면 보일, 그 속에 있는 본질적 가치이다.





...자유의 경계는 구체적이고 확실한 것이 아닌 가능성들의 그림자가 살고 있는 땅이다. 내가 이런 유의 통증을 느끼며 달릴 때, 나는 이유와 원인을 나누는 경계를 달리는 것이다. 특히 이런 경미한 통증은 이유이며 결코 내 달리기를 멈추지 못한다. 그러나 이 통증은 특별한 종류의 이유이다. 나를 짓뭉갤 수 있는 원인이 곧 등장할 것을 암시하는 이유이다.
두 달 전 나를 찾아온 무릎 통증은 훨씬 더 심각했지만 이런 종류의 통증은 전혀 아니었다. 그저 그 자체의 통증이었다. 곧 다가올 것은 아무것도 암시하지 않았다. 오늘 느끼는 이런 통증이 오면, 내가 가진 이유가 내게 닥친 원인이 되기 직전까지 계속 나를 밀어붙이고 또 밀어붙여야 한다. 나는 원인의 땅의 경계까지 가차 없이 달린다. 그러나 절대 그 선을 넘어서는 안 된다.





.....여기에 신, 철학자 그리고 아테네의 운동선수들 사이의 연결 고리가 있다. 신은 우리에게 놀이는 인간이 살 수 있는 최고의 삶의 핵심적 요소이자 삶을 살 만한 가치가 있게 만드는 것이라고 말한다. 철학자들로부터 우리는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선을 사랑하는 것이라고 배운다. 삶에서 본질적 가치를 발견할 때마다 사랑하라고. 그리고 페이디피데스의 발자취를 좇아 달리기를 하면서, 우리는 달리기가 놀이이며 그렇기 때문에 본질적 가치를 지니고 삶에서 그 모습을 드러내는 선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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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야부사 - 일본 우주 강국의 비밀
쓰다 유이치 지음, 서영찬 옮김 / 동아시아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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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까이, 그녀
왕딩궈 지음, 김소희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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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거라면 내가 제일 잘 알지. 절망감도 실은 날 두려워해. 절망스러울 때마다 나는 낚시를 갔어. 밤을 꼬박 새우며 필사적으로 고기를 잡고 나면 그걸 다시 바다에 하나하나 놓아줬지. 방생하려던 게 아니라 그보다 더 미친 생각이 있었거든. 그 고기들이 다시 내게 와서 잡히길 바랐어. 근데 정말이지, 단 한 번도 다시 잡히질 않더라. 바다가 너무 넓어서가 아니라 한낱 물고기도 아는 거야. 또다시 상처받을 순 없다는 걸.”




...그날 저녁, 남자들은 가시를 발라내느라 조용했다. 농사로 언쟁을 벌인다거나 주먹으로 식탁을 내리치며 화를 낸다거나 입을 꾹 닫고 있다가 끝에 가서야 폭발해버리는 일도 없었다. 그렇게 조용한 날은 처음이었다. 모든 갈등이 전부 혀끝에만 모여 있는 것 같았다. 가시가 한가득 모여 있으니 찔리지 않으려면 조심해야 했다.
소란스럽고 혼란한 거리에서의 대항과 절규가 낯설었던 건 어쩌면 어릴 때부터 익숙하게 먹어온 붕어 요리와 무관하지 않다. 침묵의 이유가 민주주의적 소양의 부재라고 할 수는 없었다. 사랑에 대한 관점 역시 마찬가지였다. 쑤가 나를 사랑해서 함께한 게 아니라는 걸 알게 된 순간부터 그 이후까지, 나는 오히려 쑤를 깊이 사랑했다. 붕어를 먹을 때 그랬듯 섬세하면서도 고요하게, 조금이라도 아프지 않기를 바라면서.




...처음부터 모를 수 있는 일이었다면 모르고 싶었다. 아무것도 알지 못한 채로 살고 싶었다.
하지만 그러한 감정은 사랑일 수 없었다. 그건 방임이자 차가운 무관심이었다. 나는 그런 삶을 원하지 않았다. 차라리 모든 걸 알고 괴로움을 겪는 게 나았다. 그게 나였다. 상대로 인해 고통을 느낀 적이 없다면 그건 진정으로 사랑이 없었다는 의미다. 아는 것도 없지만, 또 무엇이든 잃을 수 있다는 뜻이다.




...진짜 시간을 묻는 건 줄 알고 소매를 걷어 올렸을 때, 슬픈 듯 웃으며 이야기하는 종잉을 보고 일부러 건넨 질문이라는 걸 알았다.
“그럴 줄 알았어요. 아직도 시계를 항상 차고 다니는구나. 선배한테는 시간이 그렇게 중요한 거죠? 그런데 그 시간이 선배 손에 마냥 멈춰 있는데 왜 그냥 두는 거예요……?”




...삶의 경험을 창작의 맥락에 대입해본다면, 소설 속의 진정한 사랑은 만 겹의 산이다. 산 넘고 재 넘어 천 리를 걸어야 한다. 그렇다면 문학에 대한 작가의 사랑 역시 마찬가지다. 글을 쓰고자 하는 의지를 끝없이 추구함으로써 끝없는 기다림에 대한 절대적인 믿음을 증명하는 것. 키에르케고르의 말을 빌리자면, 글쓰기란 ‘믿음의 도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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