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자와 달리기 - 중년의 철학자가 달리면서 깨달은 인생의 지혜와 성찰
마크 롤랜즈 지음, 강수희 옮김 / 유노책주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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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리기에 다양한 도구적 가치들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가장 순수한 절정의 상태에서 달리는 일은 전적으로 다른 종류의 가치인 본질적 혹은 내재적 가치를 가지게 된다. 어떤 대상이 본질적 가치를 가진다는 것은 그로 인해 우리가 얻거나 소유할 수 있는 것 때문이 아니라 그 자체로서 가치가 있다는 뜻이다. 그래서 나는 달리기에 본질적인 가치가 있다고 주장한다. 합당한 이유로 달릴 때 우리는 삶의 본질적 가치와 조우하게 되는 것이다.




...세계의 밤 속에서 살아가는 것은 본질적 가치를 바라보면서도 알아채지 못하는 무력함으로 인해 더욱 어려워진다. 우리의 삶은 목적을 위해 수단이 되는 일을 하는 과정이다. 그리고 그 목적은 또 다른 목적의 수단일 뿐이다. 평생을 끝도 없이 이어지는 목적과 수단의 쳇바퀴를 돌며 손에 잡히지도 않는 가치를 좇아 달린다. 목적을 위한 수단이 아니라 그 자체로 중요한 무엇인가를 만날 때 비로소 잠시나마 그 좇음은 끝이 날 것이다. 잠시라도 가치를 좇는 대신 그 속에 몰입하는 것이다.





...달릴 때 생각을 한다면 이 달리기는 틀려먹었다. 혹은 최소한 아직 제대로 달리고 있지 않은 것이다. 아직 궤도에 오르지 못한 달리기이고, 아직 심장박동을 느끼지 못한 달리기이며, 아직 리듬이 거는 최면에 걸리지 않은 달리기이다. 장거리 달리기가 궤도에 오를 때마다 생각이 멈추고 사유가 시작되는 시점이 온다. 가끔은 이런 것이 가치가 없지만, 또 가끔은 그렇지 않다. 달리기는 사유가 들어오는 열린 공간이다. 나는 생각을 하려고 달리지는 않는다. 그러나 달릴 때 사유가 들어온다. 사유는 추가적인 보너스나 대가처럼 달리기의 외부에 있는 것이 아니다. 사유는 달리기, 그것도 진정한 달리기의 일부이다. 내 육체가 달릴 때 나의 사유도 내 장비나 선택과는 거의 무관한 방식으로 함께 달린다.




....또 다른 가능성은 Z라는 것이 없는 것이다. 본질적 가치를 가진 것을 절대 찾을 수 없다면, 다른 모든 것의 도구적 가치의 기반이 되는 것도 없을 것이다. 삶에서 모든 것의 가치는 항상 미뤄지고 언제나 손에 잡히지 않는다. 삶은 신들을 능멸한 죄로 과일이 주렁주렁 열린 나무 그늘 아래의 못 속에 서 있는 형벌에 처한 탄탈로스와 같다. 탄탈로스가 과일을 따 먹으려 손을 뻗으면 나뭇가지는 손이 닿을 수 없게 위로 올라가 버린다. 또 물을 마시려고 몸을 숙이면 못의 물은 바닥으로 빠져 버린다. 그 자체에 본질적 가치가 없는 삶은 이처럼 ‘사람을 애태우는(영어로 탄탈로스의 발음을 딴 탄탈라이징tantalizing)’ 것이다.





...우리의 기억과 기대는 좋은 것보다 나쁜 것을 더 선호해서, 나쁜 것은 재발하지 않도록 예방하거나(기억) 아예 일어나지 않게 막아 버린다(기대). 인식이 더 정교해짐에 따라 고통과 즐거움의 불균형은 더 커진다. 삶은 모든 생명체에게 나쁜데 아무리 그렇지 않다고 증명하려 발버둥 쳐도 다른 특별한 조건이 없는 한 삶은 인간에게 가장 나쁘다.




...니체는 강해지라고 말했다. 나를 죽이지 못하는 것은 나를 강하게 만든다. 그러나 아마도, 불행하게도 곧 무언가가 나를 죽일 것이다. 또한 그는 행복은 힘이 증가하는 감정이라고 덧붙였다. 이것은 참으로 불행한데, 왜냐하면 현세에서 대부분 우리는 힘이 줄어드는 것을 느낄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현세를 어떻게 살 것인가 하는 질문은 이 명백한 사실을 출발점으로 삼아야 하며, 안이하게 무시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었다.




...젊음은 행동이 놀이가 되는 곳마다 존재한다. 젊음은 다른 어떤 것을 위해서가 아닌 그 자체로 의미 있는 행동을 하는 곳마다 존재한다. 젊음은 목표가 아닌 행위 자체에 혼신을 다하는 곳마다 존재한다. 환희는 본질적 삶의 가치를 인식하는 것이기에 이런 열정과 함께 환희가 온다. 이것이 우리 모두가 석호로 되돌아가는 삶이다. 그리고 현세를 구원하는 것은 방법만 안다면 보일, 그 속에 있는 본질적 가치이다.





...자유의 경계는 구체적이고 확실한 것이 아닌 가능성들의 그림자가 살고 있는 땅이다. 내가 이런 유의 통증을 느끼며 달릴 때, 나는 이유와 원인을 나누는 경계를 달리는 것이다. 특히 이런 경미한 통증은 이유이며 결코 내 달리기를 멈추지 못한다. 그러나 이 통증은 특별한 종류의 이유이다. 나를 짓뭉갤 수 있는 원인이 곧 등장할 것을 암시하는 이유이다.
두 달 전 나를 찾아온 무릎 통증은 훨씬 더 심각했지만 이런 종류의 통증은 전혀 아니었다. 그저 그 자체의 통증이었다. 곧 다가올 것은 아무것도 암시하지 않았다. 오늘 느끼는 이런 통증이 오면, 내가 가진 이유가 내게 닥친 원인이 되기 직전까지 계속 나를 밀어붙이고 또 밀어붙여야 한다. 나는 원인의 땅의 경계까지 가차 없이 달린다. 그러나 절대 그 선을 넘어서는 안 된다.





.....여기에 신, 철학자 그리고 아테네의 운동선수들 사이의 연결 고리가 있다. 신은 우리에게 놀이는 인간이 살 수 있는 최고의 삶의 핵심적 요소이자 삶을 살 만한 가치가 있게 만드는 것이라고 말한다. 철학자들로부터 우리는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선을 사랑하는 것이라고 배운다. 삶에서 본질적 가치를 발견할 때마다 사랑하라고. 그리고 페이디피데스의 발자취를 좇아 달리기를 하면서, 우리는 달리기가 놀이이며 그렇기 때문에 본질적 가치를 지니고 삶에서 그 모습을 드러내는 선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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