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까이, 그녀
왕딩궈 지음, 김소희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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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거라면 내가 제일 잘 알지. 절망감도 실은 날 두려워해. 절망스러울 때마다 나는 낚시를 갔어. 밤을 꼬박 새우며 필사적으로 고기를 잡고 나면 그걸 다시 바다에 하나하나 놓아줬지. 방생하려던 게 아니라 그보다 더 미친 생각이 있었거든. 그 고기들이 다시 내게 와서 잡히길 바랐어. 근데 정말이지, 단 한 번도 다시 잡히질 않더라. 바다가 너무 넓어서가 아니라 한낱 물고기도 아는 거야. 또다시 상처받을 순 없다는 걸.”




...그날 저녁, 남자들은 가시를 발라내느라 조용했다. 농사로 언쟁을 벌인다거나 주먹으로 식탁을 내리치며 화를 낸다거나 입을 꾹 닫고 있다가 끝에 가서야 폭발해버리는 일도 없었다. 그렇게 조용한 날은 처음이었다. 모든 갈등이 전부 혀끝에만 모여 있는 것 같았다. 가시가 한가득 모여 있으니 찔리지 않으려면 조심해야 했다.
소란스럽고 혼란한 거리에서의 대항과 절규가 낯설었던 건 어쩌면 어릴 때부터 익숙하게 먹어온 붕어 요리와 무관하지 않다. 침묵의 이유가 민주주의적 소양의 부재라고 할 수는 없었다. 사랑에 대한 관점 역시 마찬가지였다. 쑤가 나를 사랑해서 함께한 게 아니라는 걸 알게 된 순간부터 그 이후까지, 나는 오히려 쑤를 깊이 사랑했다. 붕어를 먹을 때 그랬듯 섬세하면서도 고요하게, 조금이라도 아프지 않기를 바라면서.




...처음부터 모를 수 있는 일이었다면 모르고 싶었다. 아무것도 알지 못한 채로 살고 싶었다.
하지만 그러한 감정은 사랑일 수 없었다. 그건 방임이자 차가운 무관심이었다. 나는 그런 삶을 원하지 않았다. 차라리 모든 걸 알고 괴로움을 겪는 게 나았다. 그게 나였다. 상대로 인해 고통을 느낀 적이 없다면 그건 진정으로 사랑이 없었다는 의미다. 아는 것도 없지만, 또 무엇이든 잃을 수 있다는 뜻이다.




...진짜 시간을 묻는 건 줄 알고 소매를 걷어 올렸을 때, 슬픈 듯 웃으며 이야기하는 종잉을 보고 일부러 건넨 질문이라는 걸 알았다.
“그럴 줄 알았어요. 아직도 시계를 항상 차고 다니는구나. 선배한테는 시간이 그렇게 중요한 거죠? 그런데 그 시간이 선배 손에 마냥 멈춰 있는데 왜 그냥 두는 거예요……?”




...삶의 경험을 창작의 맥락에 대입해본다면, 소설 속의 진정한 사랑은 만 겹의 산이다. 산 넘고 재 넘어 천 리를 걸어야 한다. 그렇다면 문학에 대한 작가의 사랑 역시 마찬가지다. 글을 쓰고자 하는 의지를 끝없이 추구함으로써 끝없는 기다림에 대한 절대적인 믿음을 증명하는 것. 키에르케고르의 말을 빌리자면, 글쓰기란 ‘믿음의 도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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