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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풍에도 쓰러지지 않는다 -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의 불안한 시대를 버티는 단단한 문장들
모옌 지음, 허유영 옮김 / 필로틱 / 2026년 1월
평점 :
...할아버지는 그 거센 바람에 맞서고 있었다. 수레는 한 뼘도 나아가지 못했지만 반 발짝도 뒤로 밀리지 않았다. 바람이 잦아든 다음에도 할아버지는 동상처럼 그대로 서 있다가 한참이 지나서야 천천히 허리를 폈다. 손가락은 굽어진 채로 펴지지도 않았다. 할아버지가 광풍에 맞서는 모습은 영원히 내 뇌리에 새겨졌다. 그렇다면 우리는 승자인가 아니면 패배자인가?
...사실 그 노파는 자부심을 가질 만했고, 씨돼지를 기르는 남자도 마찬가지다. 그들은 어쨌든 쓸모가 있다. 하지만 소설 쓰는 사람은 교만할 자격이 없다. 소설가가 밖에서는 낯 두껍게 으스댈 수 있겠지만, 고향에 돌아가서도 으스댄다면 아버지에게 뺨을 맞고, 고향 사람들의 코웃음을 살 뿐이다. “사기꾼이 가장 두려워하는 건 고향 사람이다.” 이 말은 바로 소설가를 두고 한 말이다.
...우주는 고사하고 지구의 일만이라도 온전히 이해하게 된다면, 산다는 것은 그 순간 의미를 잃고 말 것이다. 우리 모두 알 듯 모를 듯 애매한 상태에 있기에 이렇게 많은 윤리 기준과 가치 척도가 있고, 시시비비와 희로애락이 존재하는 것이다. 삶의 의미는 결국 ‘인간은 반드시 죽는다’는 사실을 아는 데 있고, 투쟁의 의미는 투쟁을 통해 인간이 더 이상 투쟁하지 않아도 됨을 증명하는 데 있다.
...영감의 빛에 둘러싸인 작품은 훌륭한 작품이 되고, 영감이 부족하면 평범한 작품에 머문다. 영감이 떠오르길 바란다면 삶으로 깊숙이 들어가야 한다. 영감이 자주 찾아오길 바란다면 책과 신문을 많이 읽어야 하고, 영감이 끊이지 않길 바란다면 몸에 군살이 붙지 않게 관리하듯 ‘입은 닫고, 몸은 부지런히 움직여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한밤중에 들판으로 달려 나가는 일도 꼭 나쁘지만도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