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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적으로 옳다는 착각 - 누가 왜 가짜 과학을 만들고 퍼뜨리고 악용하는가
지바 사토시 지음, 김종현 옮김 / 부키 / 2026년 8월
평점 :
...이런 식으로 자신들에게 유리한 진실을 자신들의 힘으로 만들어 사회에 퍼뜨릴 수 있다고 믿는 권력과 미디어가 야합한 결과물이 바로, 사실이란 만들어진 서사에 불과하다고 여기는 유사과학자의 등장이다. 이 기만 생성 장치가 바로 과학적 옳음을 위협하는 또 하나의 요인이다.
...다른 포유류에게서 기술적으로 가능하므로 인간 역시 “품종 개량”이 기술적으로는 가능하다는 과학적 사실과, 이를 실행에 옮기는 것이 “악”이며 허용해서는 안 된다는 윤리적 판단은 구분해서 생각해야 한다는 것이 도킨스의 주장이다....요컨대 “과학적 사실과 가치, 가치 판단을 혼동해서는 안 된다”라는 원칙이다. 이 원칙을 깨고 논리를 비약한 사례가 바로 “리센코식 사고”다. 다시 말해 가치관으로 과학적 사실의 옳고 그름을 판단하면 과학적 옳음을 위협하는 존재가 생겨날 수 있다.
...장 보드리야르는 현실을 나타내는 기호, 즉 비유가 단독으로 움직이며 현실을 뛰어넘어버릴 가능성을 논했다. 이 관점을 인용하면 “캄브리아기 대폭발”이라는 용어 역시 본래는 관찰된 사실을 비유적으로 나타내는 표현이었지만, 폭발이라는 강렬한 표현이 독단적인 길을 걸으며 반복 사용되는 사이 급작스럽게 이루어진 “대폭발”이 역사적 사실인 듯한 “초현실”을 만들어냈다고 설명할 수 있다.
...나아가 이 “초현실”은 논문, 교육, 전시, 영상 미디어 등을 통해 전파되는 사이 애초 경위나 비판은 잊히고 “당연한 과학적 사실”처럼 받아들여지면서, 이 설명이 지닌 문제점을 더 이상 문제 삼지 않게 되었는지 모른다. 인류학자 브뤼노 라투르는 이러한 사회 네트워크를 통해 기성사실이 형성되는 과정을 “블랙박스화”라고 불렀다.
...리센코가 초래한 생물학의 파괴와 유사한 사태가 발생할 가능성을 무시할 수 없다. 이 경우 공산주의 이데올로기가 정반대 성격의 신자유주의와 기독교 근본주의 이데올로기로 바뀔 뿐, 이데올로기가 과학적 옳음을 규정한다는 점은 변하지 않는다. 사람들의 “구제”라는 명분 아래 본래 비주류였던 과학이 유사과학으로 변질되고, 교육에 개입하려 하고, 미디어와 정치권력을 이용해 주류 과학을 매장해버리려고 한다는 점 역시 동일하다.
...생물학에서 말하는 진화란 “세대를 거듭하며 이루어지는, 방향성이나 목적이 없는 변화”이지만, 생물학 이외 분야에서 “진화”라는 표현은 흔히 “발전”이나 “진보”라는 의미로 사용되기 때문이다. 이 차이 때문에 생물학자들은 일반 대중을 대상으로 설명할 때는 진화에 진보의 의미는 없다는 주석을 달고, 설명에 포함되는 가치관을 가시화해 가치관의 영향을 낮추려고 힘쓴다. 만약 설명에 포함된 가치관을 자각하지 못하면 “인간의 진화=선”이므로 인류는 더욱 진화해야 한다는 오류를 불러일으킨다.
...요컨대 과학을 사용하는 사람은 입장과 관계없이 자신이 지지하는 사실 주장에 얽혀 있는 가치관을 의식해야 한다. 우리는 과학적 사실의 중립성을 지켜야 한다. 그리고 사실에 딸린 가치가 있다면, 사실과는 별개로 가치 역시 분명히 밝혀야 한다. 가치를 말하지 않는 과학은 결국 언젠가 가치를 의심받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