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생애 - 개정판
이승우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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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사랑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사람이 빠질 사랑의 웅덩이가 대체 어디 있단 말인가!) 사랑이 사람 속으로 들어온다. 사랑이 들어와 사는 것이다. 숙주가 기생체를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기생체가 숙주를 선택하는 이치이다. ...어떤 경우에도 숙주가 기생체를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은 바뀌지 않는다. 사랑할 만한 자격을 갖춰서가 아니라 사랑이 당신 속으로 들어올 때 당신은 불가피하게 사랑하는 사람이 된다. 자격을 갖추고 있어서 사랑이 당신 속으로 들어오는 것이 아니라 사랑이 당신 속으로 들어와서 당신에게 자격을 부여하는 것이다. 사랑이 들어오기 전에는 누구나 사랑할 자격을 가지고 있지 않다.




...우리는 기쁨과 보람을 느끼게 하는 대단한 일을 하며 살 수 있기를 바라면서, 그 순간을 기다리면서, 기쁨과 보람을 느끼지 못하는 일을 견딘다. 그 대단한 일을 하기 위해, 혹은 그 일을 하기를 갈망하며 이 대단하지 않은 일을 한다. 이 일을 소홀히 하지 않는 건 그 일 때문이다. 그 일에 대한 기대가 이 일을 감당하게 한다.




...사회주의자와 공화당원이 사랑할 수 있다. 종교가 달라도 사랑할 수 있다. 그러나 사랑의 패턴이 다르면 사랑하기 어렵다. 사랑의 패턴이란, 이를테면 만남의 양식과 보폭이라고 할 수 있는데, 사랑의 이름으로 기대하는 만남의 유형이 다르거나 걷는 걸음의 폭이 다르면 어긋나고 뒤틀리고 결국 짜증스럽게 되어 관계를 접어버릴 마음을 먹게 된다.




...사랑은 모든 사랑(하는 사람)들을 품고 있다. 모든 사랑(하는 사람)들은 사랑 안에 포섭되어 있다. 사랑 자체인 이 사랑이 두 사람 사이로 들어와 자기 생애를 시작한다. 그 생애가 연애의 기간이다. 어떤 생애는 짧고 어떤 생애는 길다. 어떤 생애는 죽음 후에 부활하고, 어떤 생애는 영원하다.




...그러나 현미경으로 보지 않아도 보이는 것은 굳이 현미경으로 볼 필요가 없고, 또 현미경으로 보지도 말아야 한다. 현미경으로 보아야만 보이는 것을 현미경으로 보았을 때 나타난 것이 실체, 혹은 진실이지, 현미경으로 보지 않아도 보이는 것을 현미경으로 보았을 때 나타나는 것이 실체, 혹은 진실이라고 할 수 없기 때문이다...질투하는 사람은 결코 실체를 보지 못한다. 그는 자세히 보고 있다고 생각하지만(왜냐하면 현미경으로 들여다보고 있으니까), 실은 다른 것, 엉뚱한 것을 보고 있다(왜냐하면 현미경으로 들여다볼 필요가 없는 것, 들여다보면 안 되는 것을 현미경으로 들여다보고 있으니까).




...사랑하느라 바쁜 사람은 사랑이 무엇인지, 그것의 근거나 방식이 어떠한지 궁금해하지 않는다. 진정으로 살지 않는 자가 삶이 무엇인지 묻는다. 참으로 사랑하지 않는 자가 사랑이 무엇인지 알고자 한다. 중요한 것은 아는 것이 아니라 ‘삶을 하고’ 사랑을 하는 것이다. 정의 내리는 것이 아니라 경험하는 것이다. 그 속에 들어가는 것이다. 어떻게 해도 정의되지 않는 것이 신이고 삶이고 사랑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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