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결혼했다 섹스했다 그리고 절망했다
작자 미상, 곽영미 옮김 / 이레 / 2004년 3월
평점 :
절판


이 책은 한 어머니가 의문의 자동차 사고를 당한 딸의 유품을 정리하면서 발견한 원고를 출판한 것이다. 소심하고 내성적이었던 딸의 결혼생활과 갈등, 그리고 또다른 선택이 되었던 출산에 이르기까지, 그 누구도 알아차리지 못했던(심지어, 남편조차도) 그녀의 충격적인 생활을 드러내기란 쉽지 않았을 것이다. 일반적이지 않았던 유년시절과 언제나 큰 소리로 끝을 맺었던 모녀관계, 진정한 행복이라 여겼던 결혼생활의 미세한 분열은 그녀를 전혀 다른 사람이고자 하는 열망으로 가득차게 했고, 결국, 스스로를 망가뜨리는 결과를 가져온다.

그녀의 삶을 지배한 것은 처음부터 그녀가 아니었다. 항상 남들의 시선을 의식하고, 맞춰가며 조용히 살고자 했던 그녀에게 새로운 충격을 가져다 준 것은 지하실에서 발견한 작자 미상의 오래된 책이었다. 여성들의 인내가 당연시되었던 시대에 씌어진 그 책은 여성도 주체적이 될 수 있는 존재이며, 오히려 남성들보다 위대한 개체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가장 친한 친구와 남편의 외도를 의심하게 된 것은 그 즈음이었다. 유일하게 믿고 있던 존재들로부터 버림받았다고 여긴 그녀는 새로운 도피처를 찾게 되고, 이윽고 새로운 자신을 실험할 수 있는 대상을 발견한다.  위험한 줄타기같은 외도는 그녀의 불안감을 해소시켜 주기 보다는  안정적인 가정을 갖고 싶은 열망을 더욱더 강하게 각인시켜주게 된다.

그녀가 선택한 새로운 방법은 새 생명을 갖는 것이었다. 자신이 결코 경험하지 못했던 기쁨과 함께 그토록 염원하던 안정을 찾게 되었지만, 결국 그녀의 분신과 함께 낭떠러지로 돌진하게 된 그녀의 결정은 어떤 이유인 것일까. 서양권 문학답지 않은 간결한 문체와 미묘한 심리묘사가 뛰어나다. 조용한 그녀의 음성 이면에 숨겨져 있는 필사적인 몸부림이 너무도 안타깝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