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수십년이 지난 세월이다. 대학에서 같이 공부하던 언니?뻘되는 이와 상도터널 끝자락에 위치한
고전을 가르치는 곳이 있어서 면접을 보고 그곳에서 수학 한적이 있다.
<논어> <맹자> <사서삼경>등을 배우는 곳이였는데, 물론 단계별로 고전을 골고루 다루고 있지만 한자에 제법 자신있었던
내가 펼쳐본 고전에는 대부분 모르는 한자가 수두룩 했다 하나하나씩 편정구조니 하면서 강사와 뜻풀이를 하는데,
좀처럼 속도가 나질 않았던기억이 난다. 그때 같이 공부했던 그분은
지금은 서울의 모 대학에서 학생들에게 유교경전을 가르치고 있다.
[나의 첫 한문 수업]을 읽다보니 나의 학창시절이 절로 오버랩된다.
전공과는 전혀 다른길을 걷고 있는 저자가 한문과 우연한 계기로 인연이 되어 지금은 한문을 번역하는 일을 업으로 삶고 있다.
이런걸 보면 나는 공부를 정말 모로 한거 같다.
옛말에 사람은 한우물만 파야 대성한다고 했지만. 지금은 반대다. 나름 성공하기위해 서는 한우물만으로는 택도 없이 모자란다.
한가지 재능만으로 미래가치를 논할수 없기 때문인데 지은이는 하고저 하는 일을 하기위해거쳐야 할 과정에서 제2언어로
한문을 선택한 후로 한문의 매력에 빠졌다고 한다.
학창시절엔 그래도 총기가 있어 암기과목은 모조리 만점을 받곤 했지만 이제 다시 한자공부를 하라면
못할거 같다. 알고 있던 한자도 다 잊어가고 있는 판에 이렇게 고전을 이야기하듯 읽어볼수 있어 그나마 위안이 되어주는 책인거 같다.
옛 성인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인생의 지침 서가되고 얼마나 큰 위로가 되는지는 과거보다 지금에야 깨달음이 더 크기 때문이다.
자왈 학이시습지(면) 불역열호(아),
<논어><맹자>와 같은 한문 고전의 커리컬륨은 내가 배웠던 그때나 지금이나 똑 같다.
기초반에서 <논어>를 처음 만난 저자는 한문을 읽을때 토를 다는게 핵심임을 강사에게서 듣는다.
토만 달수 있다면 기초반의 반은 서렵한 셈이다. 이토는 한자 해석이 되야 마음대로 달수 있는건데
잘못하면 영어 오역하듯이 될 수 있기 때문에 토를 달았다면 70퍼센트는 번역이 된 셈이다.
무조건 암기식이 아닌 ,
상형문자에서 따온 한자는 한자 하나하나 뜻을 분석해보면 재미가 생긴다. 그렇게 알게된 한자는 절대 잊힐리 없다.
모르고 넘어가는 부분이 생기면 공부는 흥미를 잃게 마련인데 저자를 가르친 한문 선생님은 꼼꼼히 한자한자 집어가며 해석해주니
배우는 재미가 배가 되어 한자 벅역가가 되지 않았을까?
좋은 스승한테 배운 만큼 저자도 고전 속 구절을 해박하고 정직하게 설명하고 있다.
공자의 풀이를 정석으로 해석하고 이를 다시 저자의 관점에서 설명이 이어지는데 그 예가 군더더기가 없이
간단 명료하게 이해가 된다.
저자는 고전을 통해 새삼 세상의 이치를 배우고 깨우치고 있다.
저자는 한문 선생 소개로 우역곡절끝에 한문선생님에게 이택재라는 한문번역 하는곳에서 이어서 수학을 했는데
이곳서 <맹자>와 <고전진보>를 배우게 된다.
저자가 한문을 읽고 해석하는 방식으로 수업을 진행했다는데 내가 공부했던 때와 똑 같다.
아마 이분들이 나도 가르쳤을거 같다. 오래전 일이라 기억이 잘 안나지만 우리나라에서 내놓라하는 분들이 옛옷을 입고
점잖게 강의 하셨던 기억이 난다.
나와 다른점이 있다면 저자는 번역서와 원문을 같이 두고 대조해가면서 해석순서를 외웠으니까 그 습득이 훨씬 빠를수도 있겠다 싶다.
한문선생과의 인연으로 저자는 한문 번역가의 길로 들어서게 된다.
저자는 <일성록>을 번역하면서 그 꼼꼼함에 자연스레 혀를 내둘렀다고 하는데, 수원화성이 유네스코에 등재신청을
처음했을때 반려되었다가 다시 등재가 된 까닭이 <화성성역의궤> 덕분이였다니, 모든 것에는 기록이 왜 중요한지
알수 있었다. <화성성역의궤>내용 일부를 언급했는데 주먹구구식이 아닌 비용을 어떻게 꾸렸는지, 빌린 것을 어떻게
갚을것인지등 엄청 꼼꼼하게 계획했다는걸 보고는 뿐만아니라 남고 모자라는 것을 또 기록으로 남긴 조선이 왜 건재
할수 있었는지 알수 있었다.
<일성록>을 번역하면서 정조의 면모를 깨닫게 된 저자는 정조를 좋아하게 되었다고 하는데, 책을 읽다보니
<일성록>을 한번 읽어보고 싶단 생각이 들었다. 정조가 역사 드라마에서도 워낙에 총명한 분이라 알려졌지만
이토록 주도면밀하고 후세에 그의 명성이 길이 입에 오르내릴 만한단 생각이 든다.
역시 <일성록>이 '유네스코 세계 기록유산'에 등재 될만한 우리의 값진 유산이다.
이어, 저자는 <조선왕조실록>을 번역하게 된다. 500년 조선왕조실록이라는 전집을 읽은 적이 있었는데,
여인천하 야사 와 같은 이야기가 머리를 지근거리게 했던 기억이 있다. 왕이 죽은 뒤에 집필한 만큼
왕정을 행한 다른 나라들에 비해 확실히 정제되고 이성적이며 합리적인 통치를 행하는 나라일수 있었다고
저자는 회자한다. 이어 <정조실록>을 번역하고 번역으로만 그치지 않고 현대화산업으로 진행할 예정으로
그 과정을 밟고 있다고 한다. 뿐만아니라 <세종><세조>등 다양한 우리나라의 역대 왕들을 번역에 참여하면서
접하게 되면서 얼마나 뿌듯했을까 짐작이 쉽게 간다.
한문을 배우면서 세종대왕이 얼마나 위대한 분인지 재차 깨닫게 되었다고 마지막 장에서는 번역하면서 있었던
어려움과 즐거움을 이야기 하고 있다. 페이스북을 하면서 책도 몇편 출간하게 되었던 저자는 자신의 성찰을
고스란히 글에 녹여 내어 독자들도 이에 부응하며 새로운 길을 여는데 불끈 불끈 자신감이 들게 한다.
한문과 연이 없던 저자가 한문가 인연이 되고 이어 글을 쓰게 되고 가지 하나가 또 가지를 치듯이
저자는 이제는 가지가 제법 많은 풍성한 나무가 되었다.
공자께서 말씀 하셨다. 배우고 생각하지 않으면 얻는것이 없고 , 생각하기만 하고 배우지 않으면 위태롭다.
을 통해 '온고지신'의 방향성을 찾을수 있었다고 한다.
<나의 첫 한문 수업>을 읽으면서 잊고 지냈던 오래전 유교경전을 배웠던 그때가 절로 떠올랐다.
지인이 출간한 고전책이 집에 몇권 있는데, 구입만하고는 아직 펼쳐 보질 못했다.
얼마나 유익하게 번역했는지 새삼 궁금해 졌다. 시간을 내어 다시 한번 들쳐보고
나도 인생 2막의 길을 갈수 있도록 타진 해보아야 겠단 결심도 생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