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공식 계정의 신간 소식 피드를 접하고 몇 초간 가만히 굳어 제목을 빤히 바라보았다. ‘이 책은 완전 내 얘기인데? 꼭 봐야겠다.’는 생각이 더해졌다. 기대평을 댓글로 달고나서 피드에 남겨진 댓글을 하나씩 읽어보니 모두가 구구절절 간절하게 책을 원하고 있었다. 교직에 종사중인 교육자분들은 제자들을 위해, 학부모분들은 혹여나 내 아이가 학교 생활중에 상처 받지 않길 바라며, 그리고 나와 같은 학폭 피해자들은 옛날이 떠올라 이 책을 독파하고자 했다.감사하게도 책의 서평단에 선정 되었다는 연락을 받은 뒤 얼마 안 되어 출판사의 쓰레드 계정에서 원래 예정 모집 인원은 10명이었는데 신청 글을 읽어보니 간절한 마음이 가득 담겨 있어 무려 3.5배인 45명을 선정 하셨다고 한다. 상처와 마음을 어루만져 주는 책을 만들어 주신 데에도 감사한데 이리도 따스한 감동을 느끼게 해주시다니 진심이 전해져 더욱 더 감사함이 커졌다. 책을 펼쳐들고 학교에서 받은 상처가 학폭 피해자만의 상처나 트라우마가 아님을 알게 느끼게 되었다. 공감과 함께 적극적으로 치유를 위한 내용들에 마음이 풀려갔다. 중학교 입학후 얼마 안 돼 일진 친구들과 싸우고 3년간의 왕따를 당했고 어릴 때 에피소드라 치부하고 넘겨서 거의 까먹었지만 그 기억중 일부 큰 피해의 기억은 여전히 남아있었다. 이 책을 진작 알았더라면 35살의 내가 20년이 넘게 따라온 학폭의 기억을 진작 흘려 보낼 수 있지 않았을까 싶다. 올 해 새로운 취미인 글쓰기와 이 책을 통해 상처를 마주하고 풀어내는 법을 배웠다. 나는 이전의 기억으러 인하여 내면이 아주 강인해졌고 사람을 보는 혜안이 생겼다. 너무나 감사한 일이다.
칸트의 300주년을 기념하여 발간 된 역사 시그니처 4번째 시리즈는 김혜숙 교수님의 <인식의 대전환>입니다. 철학을 좋아하지만 칸트의 철학은 독해가 어려운 걸로 유명하니만큼 몇 년 뒤 도전하려 생각 해왔으나 귀한 서평 진행의 인연이 되어 생각보다 빨리 설명서로 만나보게 되었습니다. 자랑스런 국제철학연맹의 아시안 최초 회장이자 한국철학회 회장, 국제여성철학회의 이사, 국내 저명한 칸트 연구자로 역임중인 김혜숙 교수님의 친절한 설명으로 많은 지성인들도 읽기를 포기한다는 그 어려운 칸트 철학도 조금은 가벼이, 보다 쉽게 한 발짝 다가갈 수 있었다랄까요. 칸트가 철학사에 미친 영향력이 큰 만큼 그의 등장 전후의 철학계, 그리고 그의 철학관을 이해하기 쉽도록 설명함과 더불어 현재에도 여전히 적용 가능한 그의 사상이 담긴 질문들을 접하며 세월을 거스른 그의 통찰력에 이래서 “칸트, 칸트”하는구나 고개가 절로 끄덕여졌습니다. 칸트 철학 입문서로 강력 추천 드리며 칸트의 철학관을 조금 더 폭 넓게 이해하고 싶은 분이나 저처럼 칸트 철학에 대한 독해가 어렵다는 평에 그간 도전을 미루어 왔다거나 읽기를 중도 포기하신 분들께서 읽으시면 확실히 이 전과는 훨씬 더 확장 된 칸트의 세계관을 알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칸트 철학에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간 느낌이라 내년엔 칸트의 저서를 직접 읽어보리라 다짐하며 그 직전에 이 책을 한 번 더 재독할 생각이고요, 지난 ‘시대정신으로 읽는 지성사, 역사의 시그니처‘ 시리즈물 세 권도 북킷리스트에 추가 했습니다.
저자는 인스타그램 철학 컨텐츠 계정인 @pacerskorea 를 운영하는 21만 팔로워 보유중인 인플루언서인데 피드에 올라오는 내용도 단순 이목만 집중 받기 위한 어그로성 게시물이 아니라 울림과 깊이가 있어 오래 전부터 팔로잉중이었는데 작가님의 책이라니 더 기대가 갔다. 외국의 어느 일간지 같은 예쁜 겉표지에 눈이 가는 이 도서는 고윤 작가님의 인문 저서 시리즈의 3번째 책이다. 이전 시리즈물인 첫 작인<당신의 첫 생각이 하루를 지배한다>는 책을 사랑하는 인친분들의 피드에서, 두번째 <왜 당신은 다른 사람을 위해 살고 있는가>를 통해서도 제목만으로 철학적 사유를 갖게 되어 관심이 가서 북킷리스트에 담아 뒀었는데 서평 활동을 통하여 3권을 먼저 보게 되었다. 3권인 이 책을 읽고나니 와닿는 구문이 너무 많아서 정말 좋았고 이전에 출간된 1권과 2권도 더 빨리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기 발전을 위하여 꾸준히 공부를 하고, 책을 읽는 사람들의 어휘력은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 비해 훨씬 더 풍부하고 품격이 있다. 지적 허영심으로 인한 보여주는 독서에 대하여 여러 의견이 있지만 결과적으로 그렇게라도 책을 가까이 하고, 제대로 읽기만 한다면 좋은 것 아닌가 생각이 든다. ‘삶의 품격을 올리고 어휘력을 높이는 국어 수업’이라는 부제처럼 별 생각 없이 자주 사용해 왔던 ’양말‘같은 단어들이나 대략 유추해 왔었는데 ‘황소’나 ‘까치설’처럼 잘 못 알고 있던 단어의 유래와 본 뜻을 알 수 있어 이전보다 훨씬 더 풍성한 어휘력을 지닐 수 있게 되었다. 새로운 지식을 알아가는 재미도 있어 술술 읽혔다. 세상은 넓고 똑똑한 사람도 정말 많은데 누군가의 말을 듣거나 글을 보았을 때 상대에 따라 사용하는 단어의 선택에 있어 대화의 난이도를 조절하는 다방면으로 잘 배운 이들에겐 존경심이 들고 나도 그렇게 되고 싶다는 마음이 들게 한다. 상대적으로 개인의 학식이나 견문을 뽐내기 위해 전문적인 어휘를 남용하는 사람을 접하게 되거나 많이들 햇갈려 하는 맞춤법 혹은 띄어쓰기 실수가 아닌 기본적인 문법이나 맞춤법도 모르고 표준어를 제대로 사용하지 않는 사람을 보면 개인적으로는 공감 능력이 떨어져 보여 멀리 하게 된다. 내가 하는 말과 쓰는 글은 나를 나타낸다는 말에 깊이 공감한다. 다른 이들이 나를 마주하였을 때 내가 멀리 하려는 후자들처럼 겸손과 배려심 없는 모습이나 깊이 없고 가벼운 모습을 느낄까 싶어 꾸준히 돌아보고 공부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