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끼 청설모 까치 작은거인 13
장주식 지음, 원혜영 그림 / 국민서관 / 200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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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장주식선생님을 만나면 늘 우직한 오라비를 만나는 느낌이다.

오빠가 아닌 오라비 그것도 큰 오라비처럼 든든하다. <매화꽃 향기>를 읽고

'이런 글을 쓰는 교사가 있구나! 덜 부끄럽겠다.' 하믄 생각을 했다. 하지만 <매화꽃>은 많은 아쉬움을 주는 책이었다. 그 뒤 <깡패 진희>를 거쳐 <전학 온 윤주, 전학 간 윤주>까지 그의 책 속에 나오는 아이들은 오래 기억에 남았다.

그런데 대개 책에 나오는 주인공이 여자 아이라 남자 아이 이야기는 언제 나오나? 혼자 궁금해했던 적이 있다.

장주식선생님은 서울을 거쳐 지금 경기도 여주에서 살고 있다. 자연과 더불어라는 말이 어울릴만한 그런 집에서 넉넉하고 소박한 모습의 삶이 그려진다.

그래서 일까? <토까 청설모 까치>는 작가가 무지 아끼고 살갑게 키운 자식같은 느낌이 들었다. 토끼며 청설모, 까치는 작가가 살고 있는 마을에 가까이 둥지를 틀고 동네 사람들과 눈인사를 하며 사는 건 아닐까?

봄, 조그마한 시골 마을이다.

상미네 집에서 토끼가 풀렸다. 수컷 한 마리, 암컷 두 마리다. 사람들은 참 좋아했다. 하얀 토끼가 마을 고샅길과 텃밭과 뒤란과 마당을 오가며 뛰어노니 평화롭고 한가해서 너무 좋다고들 했다. (10면) 

첫 문장이 깔끔하다. 아이들에게 읽어주니 금방 이야기 속으로 들어왔다. 토끼를 본 아이나 보지 않는 아이라 하더라도 '토끼'라는 말에 아이들은 토끼같은 눈을 뜨고 내가 읽어주길 기다렸다. 그 뒤 토끼 잡는 이야기나 토끼 가죽 벗기는 이야기를 듣더니 신기해 했다.

그런데 교회집 아저씨가 풀어놓은 진돗개에게 잡힌 수토끼를 요리하고 술상차려 먹는 어른들 이야기에 아이들은 고개를 갸웃뚱했다. 어떤 아이는 "웩, 우웩!" 그리기도 했다.

그렇겠지. 자기가 키운 토끼가 죽었는데 그걸 먹으려면 술이 있어야겠지.

남은 두 마리 토끼도 고추 모종을 갉아먹으면서 명을 달리 했다.

인천 할배 그물에 잡혀 <산 채로, 꽁지는 빼앗긴 채로 토끼는 두 귀가 잡혀나왔다.>

토끼가 만들었던 평화로운 풍경은 채 보름이 가지 못했다.

뒤이어 나오는 청설모이야기는 더 현실적이다.

밤잠을 못 자게 하는 청설모 어미와 새끼들을 잡기 위해 다복아빠는 쥐 잡는 틀도 쓰고 찍찍이도 붙이지만 아무 소용이 없다. 청설모들은 기와장을 뚫고 지붕을 점령한다. 몽둥이로 청설모를 잡은 다복아빠는 팔을 부르르 떨며 생명을 없앤 경험 앞에 무기력해진다.

동쪽 산 위로 떠오른는 해를 차마 보지 못했다(77면)

청설모이야기의 마지막 문장이다. 긴 여운이 남는다.  차마 보지 못하는 것이 어찌 다복아빠 뿐이겠나? 고속도로나 국도를 달릴 때면 길 위에서 죽어가는 동물들의 시신들을 볼 때마다 섬찟한 느낌이 들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걔네들이 조심해야지...... 하며 눈을 돌렸던 기억이 났다.

마지막 까치 이야기는 작가 '그들과 같이 살아가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우리 다음에 살 아이들한테 어떤 이야기를 해 줄까?'를 오래 고민하고 쓴 글이 느껴진다.

깊은 뜻이 숨겨져 있지만 그림처럼 글도 간결하고 자세하다. 이야기 속에 나오는 다복이나 다정이는 토끼나 청설모를 잡을 때는 강건너 불구경 하듯 토끼국까지 맛있게 먹더니 까치이야기에는 전면으로 나온다.

"아빠, 까치 좀 밟로 밟아!"    

"응?"

"발로 밟으라니? 까치를 어떻게 발로 밟아?"

"아빠가, 청설모를 발로 밟아 죽였잖아. 그러니까 까치도 발로 밟아."

"........"

"시끄러워서 텔레비젼을 못 보겠어." 다정이는 그 말만 해 놓고는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84면)

아이들 세계에서 토끼나 청설모나 까치는 별 영향을 주지 않는 존재들인가 보다. 그러니까 까치의 시끄러운 소리에만 신경을 쓰지...... 하지만 아이들은 다 보고 있다. 그러니까 아빠가 나중에 큰 벌 받을지도 모른다는 말도 하고, 옛날이야기에 작은 동물 해치면, 그 동물이 엄청나게 커져서 원수를 갚는다는 말을 하면서.

다복이 이모부가  "사람 사는 집에 동물이 들어오면 좋은 거여......"

하는 말은 오래 것이 아니다. 우리 어릴 적엔 다 그렇게 살았던 기억이 있다.

하지만 이젠 다복이 아빠나 엄마처럼도 살지 못하고 있다.

두꺼비나 꽃뱀의 움직임을 전혀 눈치 챌 수 없는 그들이 다 떠난 곳에서 우리는 살고 있다.

더 늦지않게 그들과 우리가 함께 살아갈 수 있는 길을 찾아나서야 한다. 그 길에 동화도 시도 이야기도 같이 동무하여 가야함을 잊지 말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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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빛으로 사라진 아이 보름달문고 24
백은하 지음, 유기훈 그림 / 문학동네 / 200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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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빛으로 사라진 아이 동화이야기

2007/11/28 14:11



http://blog.naver.com/nara967/44665709





푸른빛으로 사라진 아이(백은하 글/유기훈 그림/문학동네)
 

영혼의 세계에는 여러 마을이 있다. 빛도 보지 못한 태아 영혼들이 사는 '달개비 마을', 네 살이 되기 전에 죽은 아이들이 오는 '돌잔꽃 마을', 열여덟 살이 되기 전에 죽은 아이들이 오는 '돌콩 마을'이 있다. 열아홉 살 넘은 총각들이 죽어서 오는 '쇠비름 마을'이 있고, 처녀들이 죽어서 오는 '쉬땅나무 마을'이 있다. 결혼을 하고 자식까지 낳고 키우다가 죽은 아주머니, 아저씨들이 오는 곳을 '참싸리 마을'이라 한다. 마지막으로 예순살이 넘은 할아버지들이 죽어서 오는 '피마자 마을'. 할머니들이 죽어서 오는 '땅비싸리 마을'이 있다.

모든 영혼들은 각자 정해진 장소에 자리를 잡고 산다. 사람들이 사는 세상 곳곳에 이름이 있듯이, 영혼들이 모여 사는 마을에도 각각 이름이 있는 것이다. (98면)

 
영화 <중천>을 보면 영혼들의 세계가 나온다.

푸른빛, 흰빛으로 정갈하며 소박한 세계가 그려진다.

중천을 보며 영계를 그려낸 감독의 상상력이 부러웠다.

 
그런데 아이들이 읽는 동화 <푸른빛으로 사라진 아이>에도 그런 영혼의 세계가 그려진다.

할머니와 살던 슬기가 할머니의 죽음으로 도시에서 힘들게 살아가는 부모님 곁으로 오면서 사건은 일어난다.

도시 학교에서 적응하지 못하는 슬기는 가끔 여자 아이의 목소리도 듣고 엉뚱한 오해를 받기도 한다.

슬기와 다르지만 비슷한 솔찬이를 친구로 삼고 가슴 속에 담긴 이야기를 나누게 된다.

 
이 작품에서도 할머니가 나온다.

솔찬이 할머니는 절에 가서 불공을 지성으로 드리는 분이다. 그리고 두 아이를 편견없이 바라보는 넉넉한 어른이다. 이런 어른이 있어 아이들은 스스로 관계맺기를 배우고 도와가며 사는 것을 배운다.
 

솔찬이 할머니는 나중에 솔찬이와 슬기를 대신하여 거대한 할아버지가 사는 영혼계로 간다. 두 아이들의 생명을 살리고 대신 자신이 스스로 죽음을 맞이한다.

꿈에서 가련이를 따라 솔찬이와 슬기를 보고 가련이도 꼭 안아준다.


가여운 것, 죽어서까지 동생들을 살려 보겠다고 애를 썼구나. 이렇게 예쁘게 잘 자랄 수 있었는데 태어나지도 못하고.......

할머니 품에 안긴 가련이는 가슴에 맺린 뭔가가 조금이나마 풀어지는 느낌이었다. (143면)

 
할머니의 말씀은 마치 씻김굿의 사설처럼 읽는 이의 마음도 어루만지는 힘을 가졌다.

아이들이 이 동화를 읽으며 어떤 생각을 할까?

응석이란 응석은 다 받아주던 할머니, 맛난 것도 챙겨주고 엄마 아빠에게 혼날 때 든든한 바람막이가 되어주는 할머니가 있어 아이들은 그 등에 기대어 심한 바람 앞에서도 당당하게 가슴을 펼 수 있는 힘을 키워가는 것이 아닐까?

 
솔찬이의 부모님과 슬기의 부모님 모두 먹고 살기 바쁘거나 자기 만의 세계에 갇혀 일상이 고달픈 사람들로 나온다.

마치 나를 보는 듯하다.

아이를 자신의 소유로 생각하고 공부며 진로며 사사건건 모든 걸 간섭하려는 솔찬이 부모님이나

생계를 꾸리기 위해 바쁘고 힘든 날을 보내 슬기에게 관심이나 따뜻한 말 한마디 건내지 못하는 슬기의 부모들.

네 사람의 모습은 지금 여기를 사는 세상에서 가장 많이 볼 수 있는 어른의 모습이다.

 누군들 상처가 없겠나?

하지만 아이들의 타계 여행과 할머니의 도움으로 태아 때 죽은 슬기의 언니 가련이와 세 살 때 교통사고를 당한 솔찬이 쌍둥이 동생 유찬이 모두 서로의 아픔을 감싸는 법을 배우고 자기가 선 자리에서 굳굳하게 살아가는 법을 배운다.

가족의 결속과 사랑의 힘은 두 아이를 성숙하게 만든다.

 책을 읽는 내내 마음이 아팠다.

그리고 지긋이 눌려오는 그 아픔 사이로 아이들의 목소리가 들린다.

 
모든 만물에는 생명이 있고 그들 모두 행복할 권리가 있다고....

 
2007. 11.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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맘대로 아빠 맘대로 아들 작은거인 10
오은영 지음, 소윤경 그림 / 국민서관 / 200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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맘대로 아빠 맘대로 아들 동화이야기

2007/11/27 15:51



http://blog.naver.com/nara967/44634063





오은영의 <맘대로 아빠 맘대로 아들/국민서관>을 읽었다.

요즘 고학년 아이들 이야기 특히 남자 아이들의 마음을 살피고 싶은 생각에 후딱 읽어냈다.

 

주인공 종기란 아이의 캐릭터가 살아있었다.

도시에서 아무 불편없이 엄마의 관리를 받으며 살던 아이가 갑자기 변하게 되는 삶 속에서 나 보다 곁에 있는 사람들의 마음을 아픔을 느끼게 되는 과정이 잘 그려져 있다.

 

의사를 그만두고 옹기장이가 된 아빠를 따라 시골로 내려온 종기는 모든 것이 불만스럽다.

시골 학교에 전학 온 것도 실망인데 유도부인 대주는 종기를 놀리고 괴롭힌다.

하지만 수경이란 아이를 통해 서로의 아픔을 알아가게 된다.

 

하지만 동화에 나오는 다른 인물들을 보면 썩 유쾌하거나 밝은 빛을 주는 인물이 없다.

대주는 너무 단순한 인물로 비춰지고 수경이는 일찌감치 철이 든 아이로 마치 누나같고 애어른처럼 느껴진다.

종기의 아빠도 현실감이 느껴지지 않는다. 의사란 직업을 버리고 옹기장이가 된 아버지

남들이 멋있다고 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멋있다고 생각하는 걸 하는 인물인데, 그런 인물이 아들인 종기에게는 "아들은 아빠랑 사는 게 낫지!"라고 단정적인 말을 한다.

보통의 아빠는 그렇지 않다. 도시에 엄마 곁에 아이를 두지 굳이 아들을 데리고 낙향을 하기가 쉽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종기가 부모님이 이혼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두 번째 가출을 한 후 다시 돌아온 아들에게 이런 말을 한다.

 

"어린 너도 생활이 있고, 하나의 인격체며, 우리 가족의 일원이라는 거지. 그런데 배불리 먹여 주고, 좋은 옷 입혀 주고, 갖고 싶은 거만 사 주면 다 되는 줄 알았으니, 참 생각이 짧았다. 미안하다."

아빠는 말을 끈내고는 한참 가마터에 눈길을 고정한 채 그대로 있었다. 어느새 길어진 소나무 그림자가 아빠 머리와 어깨에 포개져 있었다.<162면>

 

아빠의 고백 속에 지금 어른들이 아이들을 보는 입장이 담겨져 있다. 특히 아버지의 시선이 그대로 담겨있다.

 

아버지와 아들이 이해하는 과정에 촛점을 맞추다 보니 엄마가 그저그렇게 그려졌다.

엄마 또한 남편의 낙향이 그리 탐탁지 않았을텐데.... 어째든 일하는 엄마가 그려지고 부부가 대화로 풀어가는 입장은 부부관계의 진화로 받아들여도 될까? 하는 생각을 했다.

 

종기가 아빠를 이해하는 과정에서 독 안에 들어가 동자승을 만나는 사건이 일어난다.

나중에 아빠에게도 이와 비슷한 이야기를 듣게 된다.

재미도 있고 옹기가 가진 역사와 아빠가 옹기쟁이가 될 수 밖에 없는 과정이 설명이 되기도 하지만 왠지 너무 엉뚱하다는 생각이 든다.

 

사계절에서 나온 <할아버지의 뒤주>는 뒤주 안에서 여러 가지 사건과 사람을 만나면서 아이가 할아버지를 이해하게 되는데 전혀 판타지가 낯설지 않게 느껴진다.

하지만 이번 작품은 그렇지 않다.

 

우연히 동자승을 만나고 마지막 부분에서 모자이크 속 동자승을 또 만나면서

'히, 첫 걸음이 힘든겨. 다음엔 쉽던디.'

하는 마음의 소리를 듣게 되는 것도 아이들의 경험으로 가능할까?

혼자서 고개를 갸웃거려본다.

 

천천히 계단 아래 있는 친구에게 다가가는 종기의 발걸음이 희망으로 가득하기 바란다.

 

2007.1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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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하고 안 놀아 - 개정판 창비아동문고 146
현덕 글, 송진헌 그림, 원종찬 엮음 / 창비 / 199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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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 덕 동화를 읽어주며 동화이야기

2007/11/12 15:24



http://blog.naver.com/nara967/44097601





11월 12일 달의 날.

오랫만에 교단일기를 쓴다.
11월 3일날 재능 발표회를 하고 나서 아이들도 나도 많이 지쳤었는데
오늘은 아이들이 부쩍 자란 느낌이 들었다.

지난 주부터 <너 하고 안 놀아/현 덕 동화집/원종찬 엮음/송진헌 그림/ 창비>를 읽어주고 있다.
동화를 하루 조금씩이라도 꾸준히 읽고 이야기 나눌 때 아이들과 나의 관계가 평화로워지고
아이들의 생각이 자라는 걸 느끼게 된다.

지난 주 목요일에는 두 시간 꼬박 동화 <강아지>를 읽고 이야기 나누기를 했다.
<1939. 3. 5 - 3. 12>까지 동아일보에 연재된 글인데
수 십년이 지난 지금, 이 자리에서 읽어주어도 그 맛과 인물의 생생함은 그대로 전해진다.

위인이나 꾸며낸 인물이 아니라 우리 속에 살아있는, 우리 아이들과 같이 호흡할 수 있는 인물을 찾아 인물이 한 말과 행동을 견주어 성격을 알아보고 나와 동무들의 생각도 견주는 일은 참 좋은 공부가 된다,

아이들과 같이 하는 <현덕동화 공부> 내 안에 동화에 대한 또 다른 세계를 보여준다.

두 시간 읽어주고 나서 벤다이그램을 그려 노마와 기동이의 성격을 알아보았다.

그리고 나서 동화 제목 알아맞추기도 했다.

여기까지 하자고 했더니 아이들이 책을 읽었는데 그냥 넘어가면 안 되다고 하더니
몸으로 나타내기도 하고
작은 책도 만들고 만화 그리기도 했다.

작은 책 만들기는 내가 하자고 한 것도 아닌데 아이들 스스로 책을 만들어 동화 속 장면을 나름 열심히 그리고 색칠을 했다.

청출어람이다.

지난 8일이 입동이었다.
겨울이라고 한다.
아직 가을이라고 겨울이 아니라고 말하고 싶은데.... 학교 마당에 선 나무들은 저렇게 고운 단풍으로 반짝거리는데.... 겨울을 비껴가고 싶은 마음이 가득하다.

그러나 겨울은 영혼이 깨어나는 계절이라고 했다.
좋은 동화를 만나고 나누고 이야기 하면서 아이들과 나의 영혼이 부쩍 자라기를 바란다.
내가 할 수 있는 것
꾸준히 하는 것이 겨울을 준비하는 또 다른 길인 것을 느낀다.

 

작가 현 덕이 가꾼 동화 세계 속에서 아이들과 나의 자람을 기대한다.

그냥 읽는 것과 아이들에게 읽어주며 느끼는 맛은 참 다르다.

<너 하고 안 놀아>가 그냥 보기에는 지루하고 똑 같은 글의 연속이지만

아이들과 읽고 나누는 순간에 이야기 하나 하나가 보석처럼 빛나게 된다.

이야기가 마술을 부리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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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해순 2007-12-22 07: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7세 9세 두 아이의 엄마입니다.글씨기에 관심을 가지면서 해주지도 못하더라도 알고나 있자 하는마음에 요즘 이호철선생님 이오덕선생님 글을 접하고 있습니다.살아있는 글이 이런거구나...그동안 무지했던 자신을 탄복하며 이제라도 알아서 다행이다라는 안도감을 느낍니다.
책읽어주는 이호철선생님을 보면서 참 존경스럽다 느끼고있는데 은경선생님도 이분들과 코드가 같은 따뜻한 선생님이시군요.책읽어주는선생님!다- 옛날얘기겠지(두분다 연세가있으셔서)
아니군요.은경선생님이 계시군요.처음알게 됩씁니다.마음이 참 따뜻합니다.
우리 아이들도 언젠가 선생님과 같은 열정있는분을 만나리라 기대해 봅니다.

은경샘 2008-01-01 23: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저도 여덟살짜리 남자아이를 키우고 있습니다. 아직도 혼자 책읽기를 싫어하고 만화책과 컴퓨터 게임과 장남감 바쿠간을 너무 너무 좋아하는 아이를 보며 우리반 아이들을 다시 이해하고 있습니다. 책읽어주고 이야기 나눌 때는 아이들하고 싸우지 않게 됩니다. 아이들이 친구같고 선생님 같습니다. 그래서 즐겁습니다. 해순님,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애벌레를 위하여 (양장) - 열세 마리 가중나무고치나방 애벌레 이야기
이상권 지음, 오정택 그림 / 창비 / 200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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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똥이 어디로 갔을까?>나 많은 동화 속에서 구수하고 정겨운 자연이나 고향에 대한 작가 이상권의 느끈한 믿음과 생각들을 아이들과 나누며 난 참 많이 생각하고 되돌아보기를 했었다.

또 책을 읽으면 행간에 작가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 하여 색다른 맛이 있었다.

하지만 <아름다운 수닭/창비어린이>을 읽으며 얼마나 당혹스러웠는지? 내가 아는 작가 이상권이 맞나?
할 정도로 읽기가 힘들었다.
이제 다시 <애벌레를 위하여/창비>를 읽으며 이상권의 세계에 한 발 더 깊숙이 들어가는 느낌이었다.

이상권선생의 글은 온 몸으로 쓴 것이 보인다. 생태라기보다 존재 전체에 대한 묵시록 같은 느낌이다.

가중나무고치나방의 수컷과 암컷의 생애가 조용하지만 묵직하고 죽음을 이긴 사랑과 처절한 생을 흥미로운 상상력의 세계와 맞물려 인상 깊게 보여주고 있다. 특히 암컷과 수컷이 한 몸이 되는 장면은 어떤 종의 결합보다 더 숭고하고 아름다웠다.

둘은 얼굴과 얼굴을 맞대고, 가슴과 가슴을 맞대고, 배와 배를 맞댔다. 마치 오래된 연인처럼 몸과 몸 사이에 한 치의 빈틈도 없이 끌어안았다. 다리와 다리를 서로 엇갈리면서 서로의 몸을 더 강하게 자기의 몸쪽으로 끌어당겼다. 더듬이와 더듬이도 서로 맞닿으면서 무엇인가 느낌을 주고받았다. 그들은 서로를 마주보고 있으므로 천적을 볼 수가 없었다. 그런데도 그들은 황홀했으며, 어둠이 어디론가 사라지고 계곡 아래쪽으로 찬란한 아침 햇살이 드리워지기 시작하자 더욱 단단하게 상대방의 몸을 잡아당겼다.(42-43면)

어떤 짝짓기도 이런 황홀하고 파격적인 몸짓을 할 수 없을 것이다. 진정 오감이 열리는 모습이었다. 스스로 그러한 자연은 이렇게 온 몸을 열어 자신과 세계를 하나로 만들고 나악 건강한 유전자를 남겨 생을 이어가게 하고 있다.

인간이 가진 사랑에 대한 어떤 열망보다 더 강렬함을 알 수 있었다. 작가의 상상력은 마치 정교한 카메라에서 비추는 곤충의 짝짓기를 보는 듯하고 이는 스스로 그러한 자연의 깊은 속살을 들춰 본 경험이었다. 

암컷들의 생존 방식은 가장 건강하고 유능한 2세를 낳을 수 있는 수컷을 알아보는 것이다. 이 능력은 암컷 DNA 속에 내재되었다고 한다.

<여자의 뇌>를 읽으며 흥미로웠던 글 몇 부분을 떠올려본다.

흔히 사랑을 남녀간의 우발적인 ‘화학작용’으로 간주하지만, 그것은 완전한 사실이 아니다. 여자의 뇌는 재생산의 가능성을 높일 수 있는 파트너를 선택할 수 있도록, 즉 최상의 남자가 나타났을 때 미리 알아볼 수 있도록 준비돼 있다. - 106면

사랑에 빠지는 것은 여자나 남자 모두에게 있어 가장 불합리한 행동이다. 새로운 로맨스의 격랑 속에서 뇌는 ‘비논리적’인 상태가 된다. 연인에게 어떤 결함이 있든지 간에 맹목적으로 빠져들며, 이 과정은 거의 무의식적인 상태에서 이뤄진다. 열정적 사랑은 뇌에 기록되면서 강박, 열광, 중독, 갈망, 허기와 같은 뇌회로를 공유한다. 그리고 단순한 하나의 감정으로 존재하지 않고, 다른 감정들을 강화하거나 감소시킨다. 사랑의 신경회로는 성적 충동을 부추기는 신경회로와 다르면서도 일부 겹치기도 한다. 또한 도파민, 에스트로겐, 옥시토신, 테스테스테론과 같은 호르몬이 활발하게 흐르도록 자극한다. -  119면

애무, 키스, 응시, 포옹과 같은 사랑의 행위들과 오르가슴은 뇌에 사랑과 신뢰의 신경화학물질, 즉 도파민과 옥시토신을 공급한다. 그리고 이런 과정을 통해 뇌에 공급된 도파민과 옥시토신은 다시 사랑의 신경회로를 강화하는 한편, 불안과 염려의 신경회로를 억제한다. - 121면

과학적 사실을 토대로 쓴 글이 퍽 인상적이다.
다시 애벌레로 와서, 짝짓기를 마친 암컷나방과 수컷나방의 행로를 따라 가보면 인생은 결국 죽음이란 시간의 문을 행해 가고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그렇다하더라도 가장 낮은 자리에서 가장 연약한 애벌레 한 마리가 험한 자연 속을 헤쳐가며 자신의 존재를 스스로 세워가는 여정을 지켜보며 우리는 우리 안에 또 다른 내 모습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을 다 읽고 나서 베르베르가 쓴 <개미>란 소설을 떠 올렸다.

<애벌레를 위하여>도 좀 더 깊이 장편의 특성을 빌려 역동성과 전환점을 마련하였다면 좋았을텐데.... 아쉬움이 남는다.

특히 수컷 나방의 죽음은 너무 이른감이 있다. 좀 더 살려두고 이야기의 새로움을 주었다면 그 흐름이 깨지 않았을텐데......

작가이상권의 또 다른 작품을 기대하며 그가 꿈꾸는 자연과 인간의 공생관계를 내 삶 속에서 실천할 일만 남았다.

<2007. 10.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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