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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빛으로 사라진 아이(백은하 글/유기훈 그림/문학동네)
영혼의 세계에는 여러 마을이 있다. 빛도 보지 못한 태아 영혼들이 사는 '달개비 마을', 네 살이 되기 전에 죽은 아이들이 오는 '돌잔꽃 마을', 열여덟 살이 되기 전에 죽은 아이들이 오는 '돌콩 마을'이 있다. 열아홉 살 넘은 총각들이 죽어서 오는 '쇠비름 마을'이 있고, 처녀들이 죽어서 오는 '쉬땅나무 마을'이 있다. 결혼을 하고 자식까지 낳고 키우다가 죽은 아주머니, 아저씨들이 오는 곳을 '참싸리 마을'이라 한다. 마지막으로 예순살이 넘은 할아버지들이 죽어서 오는 '피마자 마을'. 할머니들이 죽어서 오는 '땅비싸리 마을'이 있다.
모든 영혼들은 각자 정해진 장소에 자리를 잡고 산다. 사람들이 사는 세상 곳곳에 이름이 있듯이, 영혼들이 모여 사는 마을에도 각각 이름이 있는 것이다. (98면)
영화 <중천>을 보면 영혼들의 세계가 나온다.
푸른빛, 흰빛으로 정갈하며 소박한 세계가 그려진다.
중천을 보며 영계를 그려낸 감독의 상상력이 부러웠다.
그런데 아이들이 읽는 동화 <푸른빛으로 사라진 아이>에도 그런 영혼의 세계가 그려진다.
할머니와 살던 슬기가 할머니의 죽음으로 도시에서 힘들게 살아가는 부모님 곁으로 오면서 사건은 일어난다.
도시 학교에서 적응하지 못하는 슬기는 가끔 여자 아이의 목소리도 듣고 엉뚱한 오해를 받기도 한다.
슬기와 다르지만 비슷한 솔찬이를 친구로 삼고 가슴 속에 담긴 이야기를 나누게 된다.
이 작품에서도 할머니가 나온다.
솔찬이 할머니는 절에 가서 불공을 지성으로 드리는 분이다. 그리고 두 아이를 편견없이 바라보는 넉넉한 어른이다. 이런 어른이 있어 아이들은 스스로 관계맺기를 배우고 도와가며 사는 것을 배운다.
솔찬이 할머니는 나중에 솔찬이와 슬기를 대신하여 거대한 할아버지가 사는 영혼계로 간다. 두 아이들의 생명을 살리고 대신 자신이 스스로 죽음을 맞이한다.
꿈에서 가련이를 따라 솔찬이와 슬기를 보고 가련이도 꼭 안아준다.
가여운 것, 죽어서까지 동생들을 살려 보겠다고 애를 썼구나. 이렇게 예쁘게 잘 자랄 수 있었는데 태어나지도 못하고.......
할머니 품에 안긴 가련이는 가슴에 맺린 뭔가가 조금이나마 풀어지는 느낌이었다. (143면)
할머니의 말씀은 마치 씻김굿의 사설처럼 읽는 이의 마음도 어루만지는 힘을 가졌다.
아이들이 이 동화를 읽으며 어떤 생각을 할까?
응석이란 응석은 다 받아주던 할머니, 맛난 것도 챙겨주고 엄마 아빠에게 혼날 때 든든한 바람막이가 되어주는 할머니가 있어 아이들은 그 등에 기대어 심한 바람 앞에서도 당당하게 가슴을 펼 수 있는 힘을 키워가는 것이 아닐까?
솔찬이의 부모님과 슬기의 부모님 모두 먹고 살기 바쁘거나 자기 만의 세계에 갇혀 일상이 고달픈 사람들로 나온다.
마치 나를 보는 듯하다.
아이를 자신의 소유로 생각하고 공부며 진로며 사사건건 모든 걸 간섭하려는 솔찬이 부모님이나
생계를 꾸리기 위해 바쁘고 힘든 날을 보내 슬기에게 관심이나 따뜻한 말 한마디 건내지 못하는 슬기의 부모들.
네 사람의 모습은 지금 여기를 사는 세상에서 가장 많이 볼 수 있는 어른의 모습이다.
누군들 상처가 없겠나?
하지만 아이들의 타계 여행과 할머니의 도움으로 태아 때 죽은 슬기의 언니 가련이와 세 살 때 교통사고를 당한 솔찬이 쌍둥이 동생 유찬이 모두 서로의 아픔을 감싸는 법을 배우고 자기가 선 자리에서 굳굳하게 살아가는 법을 배운다.
가족의 결속과 사랑의 힘은 두 아이를 성숙하게 만든다.
책을 읽는 내내 마음이 아팠다.
그리고 지긋이 눌려오는 그 아픔 사이로 아이들의 목소리가 들린다.
모든 만물에는 생명이 있고 그들 모두 행복할 권리가 있다고....
2007. 11.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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