맘대로 아빠 맘대로 아들 작은거인 10
오은영 지음, 소윤경 그림 / 국민서관 / 200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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맘대로 아빠 맘대로 아들 동화이야기

2007/11/27 15:51



http://blog.naver.com/nara967/44634063





오은영의 <맘대로 아빠 맘대로 아들/국민서관>을 읽었다.

요즘 고학년 아이들 이야기 특히 남자 아이들의 마음을 살피고 싶은 생각에 후딱 읽어냈다.

 

주인공 종기란 아이의 캐릭터가 살아있었다.

도시에서 아무 불편없이 엄마의 관리를 받으며 살던 아이가 갑자기 변하게 되는 삶 속에서 나 보다 곁에 있는 사람들의 마음을 아픔을 느끼게 되는 과정이 잘 그려져 있다.

 

의사를 그만두고 옹기장이가 된 아빠를 따라 시골로 내려온 종기는 모든 것이 불만스럽다.

시골 학교에 전학 온 것도 실망인데 유도부인 대주는 종기를 놀리고 괴롭힌다.

하지만 수경이란 아이를 통해 서로의 아픔을 알아가게 된다.

 

하지만 동화에 나오는 다른 인물들을 보면 썩 유쾌하거나 밝은 빛을 주는 인물이 없다.

대주는 너무 단순한 인물로 비춰지고 수경이는 일찌감치 철이 든 아이로 마치 누나같고 애어른처럼 느껴진다.

종기의 아빠도 현실감이 느껴지지 않는다. 의사란 직업을 버리고 옹기장이가 된 아버지

남들이 멋있다고 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멋있다고 생각하는 걸 하는 인물인데, 그런 인물이 아들인 종기에게는 "아들은 아빠랑 사는 게 낫지!"라고 단정적인 말을 한다.

보통의 아빠는 그렇지 않다. 도시에 엄마 곁에 아이를 두지 굳이 아들을 데리고 낙향을 하기가 쉽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종기가 부모님이 이혼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두 번째 가출을 한 후 다시 돌아온 아들에게 이런 말을 한다.

 

"어린 너도 생활이 있고, 하나의 인격체며, 우리 가족의 일원이라는 거지. 그런데 배불리 먹여 주고, 좋은 옷 입혀 주고, 갖고 싶은 거만 사 주면 다 되는 줄 알았으니, 참 생각이 짧았다. 미안하다."

아빠는 말을 끈내고는 한참 가마터에 눈길을 고정한 채 그대로 있었다. 어느새 길어진 소나무 그림자가 아빠 머리와 어깨에 포개져 있었다.<162면>

 

아빠의 고백 속에 지금 어른들이 아이들을 보는 입장이 담겨져 있다. 특히 아버지의 시선이 그대로 담겨있다.

 

아버지와 아들이 이해하는 과정에 촛점을 맞추다 보니 엄마가 그저그렇게 그려졌다.

엄마 또한 남편의 낙향이 그리 탐탁지 않았을텐데.... 어째든 일하는 엄마가 그려지고 부부가 대화로 풀어가는 입장은 부부관계의 진화로 받아들여도 될까? 하는 생각을 했다.

 

종기가 아빠를 이해하는 과정에서 독 안에 들어가 동자승을 만나는 사건이 일어난다.

나중에 아빠에게도 이와 비슷한 이야기를 듣게 된다.

재미도 있고 옹기가 가진 역사와 아빠가 옹기쟁이가 될 수 밖에 없는 과정이 설명이 되기도 하지만 왠지 너무 엉뚱하다는 생각이 든다.

 

사계절에서 나온 <할아버지의 뒤주>는 뒤주 안에서 여러 가지 사건과 사람을 만나면서 아이가 할아버지를 이해하게 되는데 전혀 판타지가 낯설지 않게 느껴진다.

하지만 이번 작품은 그렇지 않다.

 

우연히 동자승을 만나고 마지막 부분에서 모자이크 속 동자승을 또 만나면서

'히, 첫 걸음이 힘든겨. 다음엔 쉽던디.'

하는 마음의 소리를 듣게 되는 것도 아이들의 경험으로 가능할까?

혼자서 고개를 갸웃거려본다.

 

천천히 계단 아래 있는 친구에게 다가가는 종기의 발걸음이 희망으로 가득하기 바란다.

 

2007.1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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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하고 안 놀아 - 개정판 창비아동문고 146
현덕 글, 송진헌 그림, 원종찬 엮음 / 창비 / 199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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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 덕 동화를 읽어주며 동화이야기

2007/11/12 15:24



http://blog.naver.com/nara967/44097601





11월 12일 달의 날.

오랫만에 교단일기를 쓴다.
11월 3일날 재능 발표회를 하고 나서 아이들도 나도 많이 지쳤었는데
오늘은 아이들이 부쩍 자란 느낌이 들었다.

지난 주부터 <너 하고 안 놀아/현 덕 동화집/원종찬 엮음/송진헌 그림/ 창비>를 읽어주고 있다.
동화를 하루 조금씩이라도 꾸준히 읽고 이야기 나눌 때 아이들과 나의 관계가 평화로워지고
아이들의 생각이 자라는 걸 느끼게 된다.

지난 주 목요일에는 두 시간 꼬박 동화 <강아지>를 읽고 이야기 나누기를 했다.
<1939. 3. 5 - 3. 12>까지 동아일보에 연재된 글인데
수 십년이 지난 지금, 이 자리에서 읽어주어도 그 맛과 인물의 생생함은 그대로 전해진다.

위인이나 꾸며낸 인물이 아니라 우리 속에 살아있는, 우리 아이들과 같이 호흡할 수 있는 인물을 찾아 인물이 한 말과 행동을 견주어 성격을 알아보고 나와 동무들의 생각도 견주는 일은 참 좋은 공부가 된다,

아이들과 같이 하는 <현덕동화 공부> 내 안에 동화에 대한 또 다른 세계를 보여준다.

두 시간 읽어주고 나서 벤다이그램을 그려 노마와 기동이의 성격을 알아보았다.

그리고 나서 동화 제목 알아맞추기도 했다.

여기까지 하자고 했더니 아이들이 책을 읽었는데 그냥 넘어가면 안 되다고 하더니
몸으로 나타내기도 하고
작은 책도 만들고 만화 그리기도 했다.

작은 책 만들기는 내가 하자고 한 것도 아닌데 아이들 스스로 책을 만들어 동화 속 장면을 나름 열심히 그리고 색칠을 했다.

청출어람이다.

지난 8일이 입동이었다.
겨울이라고 한다.
아직 가을이라고 겨울이 아니라고 말하고 싶은데.... 학교 마당에 선 나무들은 저렇게 고운 단풍으로 반짝거리는데.... 겨울을 비껴가고 싶은 마음이 가득하다.

그러나 겨울은 영혼이 깨어나는 계절이라고 했다.
좋은 동화를 만나고 나누고 이야기 하면서 아이들과 나의 영혼이 부쩍 자라기를 바란다.
내가 할 수 있는 것
꾸준히 하는 것이 겨울을 준비하는 또 다른 길인 것을 느낀다.

 

작가 현 덕이 가꾼 동화 세계 속에서 아이들과 나의 자람을 기대한다.

그냥 읽는 것과 아이들에게 읽어주며 느끼는 맛은 참 다르다.

<너 하고 안 놀아>가 그냥 보기에는 지루하고 똑 같은 글의 연속이지만

아이들과 읽고 나누는 순간에 이야기 하나 하나가 보석처럼 빛나게 된다.

이야기가 마술을 부리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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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해순 2007-12-22 07: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7세 9세 두 아이의 엄마입니다.글씨기에 관심을 가지면서 해주지도 못하더라도 알고나 있자 하는마음에 요즘 이호철선생님 이오덕선생님 글을 접하고 있습니다.살아있는 글이 이런거구나...그동안 무지했던 자신을 탄복하며 이제라도 알아서 다행이다라는 안도감을 느낍니다.
책읽어주는 이호철선생님을 보면서 참 존경스럽다 느끼고있는데 은경선생님도 이분들과 코드가 같은 따뜻한 선생님이시군요.책읽어주는선생님!다- 옛날얘기겠지(두분다 연세가있으셔서)
아니군요.은경선생님이 계시군요.처음알게 됩씁니다.마음이 참 따뜻합니다.
우리 아이들도 언젠가 선생님과 같은 열정있는분을 만나리라 기대해 봅니다.

은경샘 2008-01-01 23: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저도 여덟살짜리 남자아이를 키우고 있습니다. 아직도 혼자 책읽기를 싫어하고 만화책과 컴퓨터 게임과 장남감 바쿠간을 너무 너무 좋아하는 아이를 보며 우리반 아이들을 다시 이해하고 있습니다. 책읽어주고 이야기 나눌 때는 아이들하고 싸우지 않게 됩니다. 아이들이 친구같고 선생님 같습니다. 그래서 즐겁습니다. 해순님,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애벌레를 위하여 (양장) - 열세 마리 가중나무고치나방 애벌레 이야기
이상권 지음, 오정택 그림 / 창비 / 200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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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똥이 어디로 갔을까?>나 많은 동화 속에서 구수하고 정겨운 자연이나 고향에 대한 작가 이상권의 느끈한 믿음과 생각들을 아이들과 나누며 난 참 많이 생각하고 되돌아보기를 했었다.

또 책을 읽으면 행간에 작가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 하여 색다른 맛이 있었다.

하지만 <아름다운 수닭/창비어린이>을 읽으며 얼마나 당혹스러웠는지? 내가 아는 작가 이상권이 맞나?
할 정도로 읽기가 힘들었다.
이제 다시 <애벌레를 위하여/창비>를 읽으며 이상권의 세계에 한 발 더 깊숙이 들어가는 느낌이었다.

이상권선생의 글은 온 몸으로 쓴 것이 보인다. 생태라기보다 존재 전체에 대한 묵시록 같은 느낌이다.

가중나무고치나방의 수컷과 암컷의 생애가 조용하지만 묵직하고 죽음을 이긴 사랑과 처절한 생을 흥미로운 상상력의 세계와 맞물려 인상 깊게 보여주고 있다. 특히 암컷과 수컷이 한 몸이 되는 장면은 어떤 종의 결합보다 더 숭고하고 아름다웠다.

둘은 얼굴과 얼굴을 맞대고, 가슴과 가슴을 맞대고, 배와 배를 맞댔다. 마치 오래된 연인처럼 몸과 몸 사이에 한 치의 빈틈도 없이 끌어안았다. 다리와 다리를 서로 엇갈리면서 서로의 몸을 더 강하게 자기의 몸쪽으로 끌어당겼다. 더듬이와 더듬이도 서로 맞닿으면서 무엇인가 느낌을 주고받았다. 그들은 서로를 마주보고 있으므로 천적을 볼 수가 없었다. 그런데도 그들은 황홀했으며, 어둠이 어디론가 사라지고 계곡 아래쪽으로 찬란한 아침 햇살이 드리워지기 시작하자 더욱 단단하게 상대방의 몸을 잡아당겼다.(42-43면)

어떤 짝짓기도 이런 황홀하고 파격적인 몸짓을 할 수 없을 것이다. 진정 오감이 열리는 모습이었다. 스스로 그러한 자연은 이렇게 온 몸을 열어 자신과 세계를 하나로 만들고 나악 건강한 유전자를 남겨 생을 이어가게 하고 있다.

인간이 가진 사랑에 대한 어떤 열망보다 더 강렬함을 알 수 있었다. 작가의 상상력은 마치 정교한 카메라에서 비추는 곤충의 짝짓기를 보는 듯하고 이는 스스로 그러한 자연의 깊은 속살을 들춰 본 경험이었다. 

암컷들의 생존 방식은 가장 건강하고 유능한 2세를 낳을 수 있는 수컷을 알아보는 것이다. 이 능력은 암컷 DNA 속에 내재되었다고 한다.

<여자의 뇌>를 읽으며 흥미로웠던 글 몇 부분을 떠올려본다.

흔히 사랑을 남녀간의 우발적인 ‘화학작용’으로 간주하지만, 그것은 완전한 사실이 아니다. 여자의 뇌는 재생산의 가능성을 높일 수 있는 파트너를 선택할 수 있도록, 즉 최상의 남자가 나타났을 때 미리 알아볼 수 있도록 준비돼 있다. - 106면

사랑에 빠지는 것은 여자나 남자 모두에게 있어 가장 불합리한 행동이다. 새로운 로맨스의 격랑 속에서 뇌는 ‘비논리적’인 상태가 된다. 연인에게 어떤 결함이 있든지 간에 맹목적으로 빠져들며, 이 과정은 거의 무의식적인 상태에서 이뤄진다. 열정적 사랑은 뇌에 기록되면서 강박, 열광, 중독, 갈망, 허기와 같은 뇌회로를 공유한다. 그리고 단순한 하나의 감정으로 존재하지 않고, 다른 감정들을 강화하거나 감소시킨다. 사랑의 신경회로는 성적 충동을 부추기는 신경회로와 다르면서도 일부 겹치기도 한다. 또한 도파민, 에스트로겐, 옥시토신, 테스테스테론과 같은 호르몬이 활발하게 흐르도록 자극한다. -  119면

애무, 키스, 응시, 포옹과 같은 사랑의 행위들과 오르가슴은 뇌에 사랑과 신뢰의 신경화학물질, 즉 도파민과 옥시토신을 공급한다. 그리고 이런 과정을 통해 뇌에 공급된 도파민과 옥시토신은 다시 사랑의 신경회로를 강화하는 한편, 불안과 염려의 신경회로를 억제한다. - 121면

과학적 사실을 토대로 쓴 글이 퍽 인상적이다.
다시 애벌레로 와서, 짝짓기를 마친 암컷나방과 수컷나방의 행로를 따라 가보면 인생은 결국 죽음이란 시간의 문을 행해 가고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그렇다하더라도 가장 낮은 자리에서 가장 연약한 애벌레 한 마리가 험한 자연 속을 헤쳐가며 자신의 존재를 스스로 세워가는 여정을 지켜보며 우리는 우리 안에 또 다른 내 모습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을 다 읽고 나서 베르베르가 쓴 <개미>란 소설을 떠 올렸다.

<애벌레를 위하여>도 좀 더 깊이 장편의 특성을 빌려 역동성과 전환점을 마련하였다면 좋았을텐데.... 아쉬움이 남는다.

특히 수컷 나방의 죽음은 너무 이른감이 있다. 좀 더 살려두고 이야기의 새로움을 주었다면 그 흐름이 깨지 않았을텐데......

작가이상권의 또 다른 작품을 기대하며 그가 꿈꾸는 자연과 인간의 공생관계를 내 삶 속에서 실천할 일만 남았다.

<2007. 10.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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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을 가져온 아이 문지아이들 85
김려령 지음, 정문주 그림 / 문학과지성사 / 200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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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려령의 <기억을 가져 온 아이/문학과 지성사-마해송 문학상 수상작>를 읽었을 때, 한편으로 '아직도 판타지가 이렇게 제자리 걸음일까?' 생각했다.

 



 

이혼한 아빠는 할아버지가 사시던 산 속으로 가고 주인공 차근이는 엄마의 긴 출장과 여름방학을 이유로 아빠에게 간다. 이웃이라고는 이웃집 천수무당 할머니와 꼬마 무당 다래 뿐이다. 차근이가 할아버지가 만든 호롱불을 따라 기억의 호수를 지나 다시 현실 세계로 오는 과정은 여전히 판타지 공간이라 하기엔 섣불리 독자의 마음이 움직이진 않았다. 판타지동화지만 무속 신앙 혹은 그에 대한 애매함이 곳곳에 베여있어 아이들에게 읽어주기 쉽지 않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 뒤 어린이와 문학 9월호에서 옛이야기 <고양이 목에 방울 달기>를 패러디한 <안 되는 게 어디 있어>를 읽으며 작가의 내공을 느낄 수 있었다.

아이들에게 읽어주었더니 무척 재미있게 이야기 속으로 빨려 들었다. 아이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감칠맛나는 문장과 캐릭터 상황들이 작가의 글솜씨와 버무려져 아주 재미난 작품이 되었다.

 

이번 <내 가슴에 해마가 산다/문학동네어린이문학상 대상 수상작>는 입양아와 그 부모 그리고 할머니를 통해 가족의 의미에 대해 깊이있는 물음으로 다가왔다.

 



 

 
책을 딱 보는 순간 '가슴 혹은 해마'라는 의미가 궁금해졌다.
그 궁금증이 책을 읽는 동안 해마를 안고 살아가는 하늘이 이야기에 살짝 눈물도 났다.
단순에 읽어버린 동화책. 그래 결말이 행복하니 동화라고 해야겠지.

 

다시 현실로 돌아와 지난 일을 되돌아보았다. 아토피가 심한 둘째 아이 때문에 날마다 가슴 졸였던 일이며, 남편의 갑작스런 발병. 수술을 앞두고 고향을 다녀올 때 눈물 짓던 부모님들.

심장 수술을 해 본 사람이나 그 가족은 안다.

얼마나 힘든 일인지! 변한 목소리와 조금만 힘든 일을 해도 금방 지치는 체력과 더불어 예민해지는 성격을. 그리고 가슴에 난 지울 수 없는 수술 자국을.

이 세상에 태어난 것 하나만으로 사람은 누구나 자신만의 상처와 자국들을 보듬어 안고 살고 있다는 것을. 힘든 순간마다 우리를 일으켜 세웠던 것은 무엇일까? 가족이란 관계는 또 어떤 존재감으로 다가오는 것일까?

 아기였을 때 입양된 하늘이는 정신과 전문의인 엄마와 치과의사인 아빠의 보호아래 공주처럼(?) 자란다. 하지만 입양아인 것이 공개되고 자신의 사소한 일상이 카메라와 방송 혹은 잡지에 노출되면 될수록 그것을 통해 자아를 실현하려는 엄마를 미워하는 어쩔 수 없는 갈등을 겪게 된다.

 친부모 자식간이라도 십대가 되면 갑자기 의무와 책임을 내세우며 쌀쌀해지는 부모와 자신의 고민을 이해하지 못할 방식으로 푸는 아이들 간에 싸움은 일상이 되는 것이 현실이다.

 
3년 전 6학년 담임을 할 때, 나는 아침마다 교실문을 열기 전에 심호흡을 했다.

적대적이 관계가 되지 않기 위해, 뭔가 명령하려는 나 자신을 좀 더 너그럽게 확장시키기 위해, 아이들을 미워하지 않기 위해........ 날마다 그렇게 싸웠고 고민했다.

 

하늘이는 해마란 이름으로 자기 안의 다른 나를 보듬어 안는다.

마음이 따뜻하고 살가운 아이다. 한 살 아래 한강이의 가출 앞에서도 대학생이 될 때까지 참아야 한다는 범생이기도 하다.
 

책을 읽으며 하늘이 엄마 캐릭터가 보편적 인물이란 생각이 들지 않는다. 머리로는 이해하나 가슴으로 다가오지 않는 인물이다. 전형적인 지식인 혹은 상류층 인물인 것 같다. 그 아픔이 크게 와 닿지 않는다. 아빠도 마찬가지다.

마치 잘 포장된 세련된 가족 <여성 동아, 미시 전문 잡지>란에 소개되는 그런 인물처럼 보인다.

 

이 책을 읽는 아이들은 어떤 느낌일까?
할머니의 사투리와 손길 속에 아빠와 할머니 사이에 흐르는 애정을 느끼는 하늘이.
정말 이럴까?
 이럴 때 나는 외할머니와 엄마 사이가 더 궁금해진다. 왜 그럴까? 

태몽을 꾼 할머니에게 또 다시 남자아이의 입양을 전하는 부모님.
새로운 가족을 맞으며 하늘이와 할머니 아버지, 어머니는 가족의 또 다른 의미를 몸으로 배워간다. 

성적, 친구 관계, 경쟁, 학원....... 그리고 입양이란 또 다른 삶이 무게를 견디며 살아가는 아이들과 이웃에 대해 나는 또 다른 시선을 갖게 되었다.

따로 또 같이 더불어 살아가는 희망을 꿈꾸며.


5, 6학년 아이들과 같이 읽으며 많은 이야기 나눌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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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일락 피면 - 10대의 선택에 관한 여덟 편의 이야기 창비청소년문학 4
최인석 외 지음, 원종찬 / 창비 / 200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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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비청소년문학 4  <라일락 피면 - 10대의 '선택에 관한 여덟 편의 이야기>

 

공선옥, 방미진, 성석제, 오수연, 오진원, 조은이, 최인석, 표명희 여덟명의 작가들이 청소년 10대의 '선택'이란 주제를 놓고 여덟편의 이야기를 꾸려놓았다.

이야기라지만 동화가 아닌 소설의 무게를 감당하고 있는 인물들과 만나야 한다.

고독하고 힘든 일상은 나의 길이 무엇인지? 묻고 또 물어도 희미한 모습으로 그렇게 떠돌게 한다.

 

학원과 성적 그리고 경쟁, 상품의 가치를 높이기 위해 오늘도 최선을 다해 잠을 줄이고 자유를 억압하며 살고 있는 이 땅의 10대들에게 일류 대학 이외에 또 다른 선택이나 대안이 있을까?

이런 질문을 하면 안 되는 것일까?

 

똑같은 교복을 입고 똑같은 책으로 10년을 넘게 사육(?)되어 온 나와 우리 아이들.

하지만 삶의 갈피마다 똑같은 날은 없었고 그 날 그날 가슴 두근거림과 파닥거리는 우정이 숨쉬고 있음을 살아있는 몸을 가진 존재란 것을 잊지 말아야겠다.

그래, 그런 믿음으로 여전히 보이지 않는 소설의 길로 함께 가 보는 거다.

 
첫 장을 열면 작가 공선옥의 <라일락 피면>을 만나게 된다. 라일락 피면을 라일락꽃 피면으로 읽으면 어떤 느낌일까? 혼자 궁시렁 거리며 석진과 윤희의 만남을 작게 수줍게 피어나는 연애 감정을 기대했는데 .......핏빛 오월은 그 젊은 청춘들을 부끄러움과 염치아는 인간이란 이유로 죽음의 길을 가게 한다. 거대한 폭력 앞에 두 사람의 선택은 영화 <화려한 휴가>가 주지 못한 인물의 갈등과 날 것으로 다가오는 생생함(석진엄니의 걸죽한 사투리만큼)을 느끼게 한다.

 
오월 광주.

결코 잊어서는 안 될 우리의 유산이자 우리가 넘어서야 할 또 하나의 경계인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사실 나는 책을 읽을 때면 뒤에서부터 읽는 버릇이 있다. 아님 휙휙 건너뛰며 읽거나.

다시 차례를 펴서 오진원의 <굿바이, 메리 개리스마스>를 읽기로 했다.

 

가족이야기다. 입양도 아니고 남자 둘이 서로 가정을 이루고 사는데 대리모를 통해 아기를 낳아 키운다. 아빠는 폴이라는 네덜란드인이고 또 다른 아빠는 뜨개질을 하며 자기 안에 여자로 사는 아빠이다.

그런 아빠들 사이에 보린은 나름 당당하게 옹골차게 커 왔다. (이건 순전히 육감이다.)

 

맨발...... 당신들은 나를 업고 맨발로 뛸 수 있는 사람. 내 아픔과 함께해줄 수 있는 사람. 날 위해 대신 웃어줄 수 있는 사람이었다. 나는 발가벗겨지는 기분이 들었다. 사랑받는 것은 발가벗겨지는 일.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자신을 보여주는 일인지도 모른다고 나는 생각했다. 나는 눈을 감았다. 태양이 눈부셨기에. 나는 태아처럼 움츠러들었다.

(148면)

 

오진원은 1981년생이고 장편동화 <플로라의 비밀>을 썼다. 나는 오진원의 장편동화를 아주 재미나게 읽었다. 마지막 주인공의 죽음을 두고 여러 가지 생각이 떠올랐고, 동화라면 아이들에게 주는 이야기라면 죽음으로 내몰지는 않겠다는 생각을 여러 번 했었다.

굉장히 산뜻하고 특별한 느낌으로 다가온 작가였다.

이 작품도 마찬가지다. 어쩌면 이 젊은 친구가 이다지도 사랑에 대해 속살깊은 이야기를 할 수 있단 말인가? 또 한 번 놀랐다.

 

하지만 이 작품도 마지막 내 예감을 확 빗나가 버렸다. 예린의 선택이 아닌 폴의 선택이 전면으로 나왔다. 작가의 말이 불쑥 끼어든 느낌. 아주 낯설다. 이 때부터 작품은 변주되었고 나는 그 라인을 따라가지 못해 끝가지 읽어낼 수 없어 힘들었다.

나만 그럴까? 그래서 많이 아쉽다.

 

주인공 이름이 이렇게 찾기 어려워서야..... 일곱번째 이야기 최인석의 <쉰아홉 개의 이빨>의 한 줄 서평이다.

주인공은 순근이다. 별 어렵지도 않으면서. 주인공 이름 알아내느라 힘들었다. ㅋㅋㅋ

엄마가 재혼했다. 그리고 순근은 목사님 아들이 됐다. 내가 아는 목사님 아들은 개망나니(?)였는데......

 

엄마들의 선택이 좀 지혜로웠으면 좋겠는데. 엄마들은 늘 이 모양이야? 혼자 성질이 났다.

그런데 몽둥이를 휘두르는 주의 사자는 장목사라 불리는 양아버지로 순근이를 목사가 되라고 중국어를 시키고 의대를 가라고 강요한다. 날마다 식사 자리에서 기도를 인도하라는 명령과 함께.

 

쉰아홉개의 이빨을 가진 친아버지는 치은암으로 돌아가셨다. 다혈질의 아버지는 노조활동을 했고 그의 남자다움에 마음을 빼앗긴 엄마는 아버지와 결혼을 했다.

 

아직도 우리는 근대를 살아간다. 옆집 부부싸움에는 경찰도 못 말리고 성폭력과 성희롱은 은밀하게 남성의 팔을 들어주고 있다. 대부분 아버지들이 이런 폭력과 억압으로 가정을 다스린다.

거울 앞에 입을 벌리고 이빨을 세는 순근의 선택에 지지를 보낸다.

한 편으로 내 아이가 자라 이빨을 세어보라 하면 어쩌지? 하는 생각도 떠오른다.

나는, 우리는 어떤 부모인가?

 

수다에 무슨 의미가 있을까? 분명 아이들의 수다 속에 그들만의 문화와 생각이 동동 떠 다닌다.
뭔가 있다. 그게 뭐냐고? 방미진의 <영희가 O형을 선택한 이유>를 읽어보면 안다.

그들만의 언어와 상상력과 관계가 수다 속에 고스란히 녹아있다. 가끔은 나도 그 수다 속에 친구처럼 천연덕스럽게 앉아 있고 싶다.

 

문학이 필요한 나이는 언제일까? 스무살 아니 서른 즈음일까?
아닐 것이다. 그 때는 펄펄 뛰는 심장과 혈기왕성한 몸이 문학의 자리를 대신 할 때가 아닐까?
마흔이 넘어 인생의 전환점을 돌 때, 그 때부터 문학은 좋은 길동무가 되는 건 아닐까?
성석제의 <내가 그린 히말라야시다 그림>을 읽으니 이런 생각이 떠 올랐다.

 
멈춰서서 되돌아보기의 힘을 가진 문학, 소설이야말로 내 안에 가장 인간다운 소망스런 기운을 불어넣어준다. 그래서 이랬을거다. 앞으로 나의 삶은 ....... 다른 주인공 둘의 이야기 속에 삶이란 참 알 수 없는 또 다른 공간인 것을 느낀다.

그렇다면 소설이 곧 판타지란 말인가? 알쏭달쏭하다.

 

제일 따뜻한 느낌으로 읽은 것은 표명희의 <널 위해 준비했어>이다.

조은이의 <헤바>도 그렇지만..... 나는 따뜻한 사랑이야기가 좋다. 그런 영화만 만들어졌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했다. 왜냐고? 아이들이 살아 갈 이 세상은 그리 살만한 곳이 못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거짓말을 할 수도 없으니......

 

빔이 할리를 타고 앨리스를 만나러 간다.

섬진강 꽃길을 달리는 모습을 상상해 본다.

아, 좋다.

 

유지태, 김지수, 엄지원이 주연한 영화 <가을로>의 마지막 장면이 오버랩 된다.

지수는 이렇게 적었다.

<여행을 하면서 우리는 '다시 살아갈 용기'를 얻지. 그것이 바로 여행이 주는 힘이니까.>

 

빔과 앨리스가 여행에서 돌아오면 그 아이들의 마음엔 살아갈 용기가 가득하길......

그리고 이 책을 읽고 난 많은 이들, 아름다운 우리의 청춘들의 가슴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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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래사냥 2007-10-29 13: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은경님의 리뷰 너무 좋네요. 저도 그런 생각을 했는데. 저는 개인적으로 오진원의 굿바이랑 표명희의 널 위해가 좋았어요. 둘다 감각적이라는 생각이 들고, 특히 오진원 굿바이는 진짜 좋은 문장 너무 많죠.... 그런데 마지막에는 은경님과 생각이 좀 다른게 마지막은 보린의 선택이라고 봐요. 폴이 배신을 하지만 여전히 아빠곁을 지키잖아요. 그래서 더 감동적이었는데.... ^^ 암튼 이렇게 많은 얘기가 나올 수 있다는 걸 봐서도 좋은 글이겠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