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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피노자의 거미 - 자연에서 배우는 민주주의
박지형 지음 / 이음 / 2019년 8월
평점 :
이 책은 자연 생태계와 인간 사회의 구성 원리를 비교하는 책입니다.
『스피노자의 거미』는 “자연에서 민주주의를 배울 수는 없을까?”라는 질문에서 출발하며, 자연을 단순히 적자생존과 승자독식의 전쟁터로 바라보는 기존의 시선에 의문을 제기합니다. 저자는 제한된 자원이 소수의 생물에 의해 독점되기보다는 비교적 고르게 분배됨으로써 다양한 생물의 공존을 가능하게 하는 생태계의 원리를 ‘자연의 민주주의’라고 설명합니다. 물론 종과 개체 간의 차이에서 비롯되는 경쟁과 다툼이라는 현실을 외면하며 자연을 이상화하지는 않습니다. 다만 자연을 오직 적자생존의 논리로만 이해해 온 우리의 편견을 넘어, 다른 해석의 가능성을 제시하는 데 이 책의 의미가 있습니다. 더 나아가 우리가 당연하게 받아들여 온 근대 사회의 기본 가정들에 대해서도 다시 질문해 보자고 제안합니다.
이 책은 프롤로그를 시작으로 1장부터 6장, 에필로그와 감사의 말, 주석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그중에서도 저는 2장 ‘스피노자의 시대’를 가장 인상 깊게 읽었습니다. 안토니오 네그리의 문장, “스피노자가 오늘날 현대적인 것은 당연하게도 그가 모든 근대적 사고의 적대자이기 때문이다”라는 문장으로 시작되는 이 장은 스피노자의 철학을 이해하기 위해 그가 살았던 시대를 함께 들여다보게 만듭니다.
스피노자는 흔히 “철학자들의 철학자”로 불리며 그의 사상은 널리 알려져 있지만, 정작 그의 삶은 베일에 가려져 신비화된 경우가 많습니다. 그가 태어난 1632년은 서양 근대사에서 매우 상징적인 해이기도 합니다. 미생물학의 아버지 안톤 판 레이우엔훅,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를 그린 베르메르, 그리고 훗날 자유주의의 아버지로 불리게 되는 존 로크가 모두 이 해에 태어났습니다. 이는 단순한 우연이라기보다, 근대가 태동하던 시대적 분위기를 보여주는 하나의 징후처럼 느껴졌습니다.
15세기까지 유럽 경제의 중심이었던 지중해 지역은 점차 자본의 자기 증식을 어렵게 하는 ‘닫힌 공간’이 되었고, 이를 타개하기 위해 대서양 연안을 중심으로 대항해 시대가 본격화되었습니다. 1632년 전후는 ‘장기 16세기’의 후반부로, 근대의 물질적 토대가 형성되는 과정을 이해하는 데 매우 중요한 시점입니다. 이 시기를 전후로 유럽 사회에서는 이성과 합리성이 부상하는 동시에, 공포와 폭력이 함께 작동하는 모순적인 장면들이 반복해서 나타납니다.
1628년 밤베르크에서 벌어진 마녀사냥은 이러한 시대적 혼란을 단적으로 보여줍니다. 봉건제 사회가 근대적 경제 체제로 이행하던 과도기 속에서 사회·경제 시스템뿐 아니라 종교와 문화 전반에 걸쳐 큰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루터파, 칼뱅주의자, 청교도 등 다양한 신교 분파 간의 갈등은 유럽 전역에서 종교 전쟁으로 번졌고, 이는 수십 년간 지속되었습니다. 특히 독일 지역에서는 1618년 시작된 30년 전쟁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고, 살아남은 이들 또한 깊은 공포 속에서 살아가야 했습니다.
전쟁의 결과로 독일은 수백 개의 소국으로 분열되었고, 지역마다 서로 다른 종교 세력이 지배하게 되었습니다. 종교적 대립은 종교 재판과 마녀사냥으로 이어졌으며, 그 과정에서 매우 잔혹한 고문이 자행되었습니다. 마녀사냥은 유럽 전역에서 일어났지만, 특히 독일에서 그 양상이 심각하게 나타났다는 점이 인상 깊게 다가왔습니다.
이후 이어지는 1637년의 튤립 피버, 그리고 1672년 ‘야만의 해’에 대한 서술은 근대 사회가 급격히 성장하는 과정에서 얼마나 많은 균열과 희생을 낳았는지를 보여줍니다. 불어불문을 전공하고 세계사에 관심이 많은 저에게 이 부분의 목차와 내용은 특히 흥미로웠습니다. 15세기에서 17세기에 이르는 시기 동안, 성장이라는 이름으로 생겨난 수많은 구멍을 메우기 위해 선량한 사람들의 피와 삶이 대가로 바쳐졌다는 사실을 절실히 느낄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역사적 맥락 속에서 스피노자의 말을 함께 읽을 때, 그의 사유는 더욱 설득력을 갖게 됩니다.
스피노자는 “나는 관용을 각자가 오로지 이성의 명령에 따라서 다른 사람들을 돕고 그들을 우애로 결합시키려는 욕망으로 이해한다”고 말합니다. 그는 일평생 이성의 힘으로 인간 갈등을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했습니다. 모든 자원을 둘러싼 경쟁과 그로 인한 갈등이 불가피하다는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용기와 관용의 정신이 필요하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는 파리를 잡아먹는 거미를 관찰하며, 포식자와 피식자의 관계가 영원히 고정된 억압 구조라기보다 삶 속에서 우발적으로 발생하는 사건에 가깝다고 보았습니다.
자연의 질서를 관찰하며 민주주의를 다시 사유하려 했던 스피노자의 태도처럼, 저 또한 『스피노자의 거미』를 읽으며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함께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이 책은 자연을 통해 인간 사회를 성찰하게 만들고, 우리가 당연하게 여겨왔던 가치와 질서에 대해 다시 질문을 던집니다. 자연과 철학, 민주주의, 그리고 인문학적 사유에 관심이 있는 분들께 이 책을 추천하며 글을 마무리하고자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