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의 면
츠치야마 시게루 지음 / 미우(대원씨아이) / 201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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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짱>의 작가 시게루 츠치야마의 한 권짜리 만화입니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면' 요리를 주제로 하는 음식만화죠. 

 

 우동, 라면, 소바 등 총 6가지의 면을 테마로 각각 그 면요리들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놓습니다. 샐러리맨이자 면 애호가인 주인공이 챕터별로 여러 면요리를 먹으러 다니며 마주치는 에피소드를 그립니다. 흐름이 매끄러워 막힘없이 술술 읽히는, 가독성 또한 좋은 만화입니다. 

 

 다만, 에피소드마다 특별한 사건적 재미나 스토리적인 재미가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스토리 있는 만화'를 기대하고 본다면 다소 실망스러울 수도 있겠습니다. '면'에 대한 조금의 지식이나, 맛난 음식들을 눈으로 감상하려는 목적이 아닌 이상 실망스러울 수밖에 없습니다. 즉 만화적 재미 자체는 다소 떨어진다는 것이 단점입니다. 

 

 

 작가의 이전 작품인 <먹짱>에서, 작가의 음식을 그리는 솜씨는 이미 검증이 끝났습니다. 이 작품에서는 더욱 발전하여 세련된 솜씨로 여러 면요리를 맛깔나게도 그려내죠. 면을 좋아한다면 이 만화를 보다가 바로 뛰쳐나가 면요리를 사 먹고 싶어질 만한 힘을 가지고 있는 만화입니다. 

 

 

 이 작가는, 특유의 먹는 장면을 참 복스럽게도 그립니다.  반면 먹는 표정들이 다 똑같아 보여, 표정을 천편일률적으로밖에 그리지 못한다는 비난도 많이 받긴 하지만요. 그래도 저는 이런 점이 개인적으론 꽤 맘에 듭니다. 

 


 

 

 다만, 저는 이 책을 서점에서 사 읽었는데 다소 비싼 가격(8500원)에 비해 딱히 소장할만한 만화는 아니라는 생각이 드네요. 이렇게 리뷰를 해놓고 이런 말을 하는 건 웃기지만요. 딱히 나쁜 만화는 아니지만 소장할만한 가치까지는 없는 것 같아서 아주 조금 후회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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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노의 숲 25 - 신장판
이시키 마코토 지음, 양여명 옮김 / 삼양출판사(만화)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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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는 사람의 마음을 유유히 이끌어갑니다. 마음이 저절로 움직인다고 할까요. 그런 만화입니다. 

만화를 읽으면서 말 그대로 '감동' 이라고 할 만한 느낌을 받은 작품은 극히 드문데, 이 작품은 그 드문 작품 중 하나입니다. 읽기 전에는 별로 기대하지 않았는데, 읽고 나니 큰 보물을 찾은 듯한 기분입니다.

 

 

 읽기 전에 별 기대를 하지 않았던 것은 그림체 때문이었습니다. 책을 몇 장 팔랑팔랑 넘겨 대충 훑어보니, 제가 좋아하는 느낌의 그림은 아니었거든요. 어디선가 좋은 음악만화라는 추천을 받은 까닭에 한번 읽어보기로 했지만, 퍽퍽하고 직선적인 그림체 때문에 내용 또한 크게 기대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런데, 제 기대를 훌쩍 뛰어넘은 작품입니다.

 음악을 다루는 만화 중에서는 <노다메 칸타빌레>와 함께 가장 많이 언급되는 작품인데, 이름난 책은 역시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는 것을 다시금 느꼈습니다. 

 

 한 권 읽을 때마다 다음 권의 내용이 궁금해 안달나도록 하는 책은 오랜만이었습니다. 작화는 약간 투박하지만, 인물들의 감정묘사와 대사처리, 그 밖의 연출들이 군더더기없이 깔끔하고 미려합니다. 쓸데없는 묘사나 잉여로운 장면 없이 스토리를 주욱 풀어 나가며 독자를 매료시키죠. 그만큼 스토리텔링 능력이 특출납니다.

 

 

 초반부와 후반부의 작품의 색깔은 많이 다른데요, 초반부에는 주인공 이치노세 카이와 아마미야 슈우헤이의 만남으로 시작하는 초등학생 시절 둘의 관계를 다룹니다. 초반부에 그들의 어린시절을 다룬 8권까지는 인물들의 인간관계 묘사와 강한 스토리텔링에 주력합니다. 반면 그 이후 후반부터는 그들의 5년 후를 배경으로 쇼팽 콩쿠르를 무대삼아, 스토리텔링보다는 인물들의 피아노연주의 음악적 묘사와 연출, 표현에 대부분을 할애합니다.

 그들의 청년기 시점을 다루게 되고 콩쿠르와 피아노 연주 자체에 집중하게 되면서 이야기 진행은 초반부보다 확연히 루즈해집니다. 하지만 스토리텔링의 모자람을 전혀 못 느낄 정도로, 만화가 피아노 콩쿠르 연주 자체를 묘사하는 능력이 기막히다는 것이 작품 후반부의 볼거리죠. 쇼팽 콩쿠르 대회가 진행되며 쉴 틈 없이 여러 참가자들의 연주가 진행되는데, 계속되는 연주에도 지겨움이나 심심한 느낌 없이 등장인물마다 계속 다른 느낌, 다른 분위기로 피아노연주를 묘사해냅니다. 

 

 

 


 

 만화라는 매체는 소리를 담을 수 없습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만화라는 매체를 통해 피아노 연주 장면을 이렇게까지 다양하고 매력적으로 이끌어낼 수 있다는 것이 경이로울 정도입니다. 또한 피아노를 많이 접해보지 않은 사람도 충분히 재미를 느끼고 즐길 수 있을 만큼의 묘사를 해 내죠.

 소리가 없기 때문에 오히려 더 감동적일 수도 있다는 것을 이 만화는 증명해냅니다. 

 

 그림과 문자로만 음악의 느낌을 표현한다는 것은 정말로 쉽지 않은 일입니다. 그것이 악기와 음악을 주제로 하는 문학이나 만화가 안고 있는 숙명적인 고민이죠. 

 하지만, <피아노의 숲>은 보란 듯이 그것을 해내는 만화입니다.

 


 

 

 

 <피아노의 숲>을 이끌어가는 주요 등장인물 두 명은 '이치노세 카이'와 '아마미야 슈우헤이'입니다. 두 사람은 각각 '재능'과 '노력'을 상징하는 위치에 있죠. 물론 재능을 타고났다고 해도 노력이 없으면 그것이 성립되지 않고, 아무리 노력을 해도 기본적인 재능이 없다면 소용이 없겠죠. 여튼 어디까지나 그러한 위치를 상징한다 이겁니다.  

 

 이치노세는 흔히 말하는 '타고난 천재'로써, 어릴 때부터 피아노를 위해 죽어라고 노력했던 아마미야를 번번이 좌절시키면서도 동시에 경쟁심을 불태우게 하는 라이벌 관계이기도 하죠. 막상 이치노세 자신은 자신의 재능으로 자만하지도 않고 아마미야를 둘도 없는 친구로 생각하지만, 이치노세의 무서운 재능을 경험하고 그의 벽에 가로막히는 아마미야는 그를 친구로 생각하기는 하지만 그에게 끝없는 열등감을 가지기도 하죠.

 


 

 '재능'과 '노력'의 대립은 언제나 많은 이야기의 중요한 소재로 사용되어 왔으며, 종국에 누가 이기든, 누가 우월하든 간에 사람들에게는 언제나 흥미로운 소재로 받아들여집니다. 그렇기 때문에 '재능있는 자'와 '노력하는 자' 의 대립은, 수많은 매체, 수많은 작품들에서 너무나 흔히 쓰이는 구도에요. 그 예를 들자면 한도 끝도 없지만, 만화 이야기를 하고 있으니 익숙한 만화를 하나 예로 들어본다면 <나루토>라는 만화의 나루토(노력)와 사스케(재능)처럼 말이죠. 최근엔 이러한 구도가 너무나 익숙해지고 범람하게 되니 사람들은 때로 지겹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토록 흔해빠지고 뻔한 구도를 사용함에도 불구하고 <피아노의 숲>은, 흥미진진합니다. '재능있는 자'와 '노력하는 자'. 이 둘이 음악 세계에서 서로 경쟁하고 자극받는 과정과 그 속마음을 세련되고 자연스럽게 잘 끄집어내 표현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특히 작품의 후반부 들어, 음악을 직업으로 하는 사람들이 안고 있는 고뇌와 방황을 직설적이고도 섬세하게 표현한다는 점도 인상깊습니다. 클래식, 혹은 피아노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꼭 한 번 읽어보았으면 하는 만화에요. 

 

 

 취향을 많이 타는 만화라서 사람에 따라선 크게 재미를 못 느낄 수도 있겠습니다만, 몇 개 없는 '좋은 음악만화'라는 것은 확실합니다.

 

 

 

 

만화를 다 읽고 나면 피아노 음색을 들어보고 싶어집니다. 특히 쇼팽의 곡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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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야식당 14
아베 야로 지음 / 미우(대원씨아이)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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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에만 문을 여는 한 식당에서, 요리와 함께하는 사람들은 자신들의 맛깔나는 인생 이야기를 펼칩니다. 각자 맛난 요리를 먹으며 삶의 이야기 또한 맛깔나게 풀어가죠.

 메뉴는 따로 정해져 있지 않고, 손님이 먹고 싶은 음식을 주문하면 주인이 최대한 만들어주는 독특한 식당입니다. 손님들은 각자 다른 삶의 모습의 수만큼 다양한 음식들을 주문해 먹습니다. 

 때로는 다른 손님에게 메뉴를 추천해주기도 하면서, 세상을 살아가는 다양한 삶의 모습들이 식당 안에서 어우러지고, 또 그들은 서로의 삶에 영향을 끼치죠.




 식당이 단순히 밥만 먹고 떠나는 곳은 아닙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식당은 사람 사이의 교류의 장으로써 기능해왔죠. 요즘들어 '빠름'을 강조하는 분위기에 휩쓸려, 식당은 그저 빠르게 한 끼를 때우려는 곳으로 인식되기도 합니다. 

 하지만 '심야식당'은 여전히 이야기와 대화의 공간, 토론의 공간, 더 나아가서는 치유의 공간으로 기능하죠. 사람들은 그곳에서 웃고 떠들고, 서로의 소소한 삶의 이야기들을 나눕니다. 

 극히 단순할 뿐 아니라 '잘 그렸다'라는 느낌이 결코 들지 않는 투박한 그림체임에도 불구하고 이 만화가 재미있게 느껴지는 것은, 어디에나 있을 법한 우리 주변의 삶의 모습들을 그려내었기 때문이 아닌가 합니다.


 어디이든 간에, 자신의 이야기를 터 놓을 수 있는 공간이 존재한다는 것은 행복한 일일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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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얼 Real 14
이노우에 다케히코 지음 / 대원씨아이(만화)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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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램덩크>의 작가 이노우에 타케히코가 심혈을 기울여 그리고 있는 만화입니다. 우리나라에는 2001년부터 정식발매되고 있습니다. <슬램덩크>처럼 농구라는 스포츠가 작중에서 중요한 요소로 등장하기는 하지만, 작품의 포커스는 어디까지나 '농구'가 아닌, '신체적 정신적 결함을 극복하고자 하는 사람들'에 맞추어져 있습니다. 

 현재 농구를 다룬 만화 중, 이 정도로 만화적 과장을 완벽하게 배제한 만화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제목처럼 그야말로 '리얼'한 삶의 모습을 담아내고 있죠. 

 작가는 넓은 세상 속에서 다양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담아내는데, 특히 사회에서 소외된 사람들을 주인공으로 내세웁니다. 골육종을 앓아 다리를 절단한 청년, 사고를 당해 하반신이 마비된 학생.
 이 두 명은, 바로 우리가 평소에 '장애인' 이라고 통틀어 부르는 사람들입니다. 작품은 이들을 중심으로 이들의 이야기, 그리고 그들 주변의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펼쳐나갑니다.

 주요 등장인물은 세 명입니다. 골육종이라는 선천적인 병 때문에 중학생 때 다리를 절단하고 휠체어농구 에이스로 활약하고 있는 청년인 토가와 키요하루. 그리고 비장애인이지만 다른 사람을 사고에 휘말려들게 해 다치게 했다는 죄책감에 휩싸여 방황하고 있는 고교 중퇴 학생인 노미야 토모미. 그리고 토모미와 함께했던 고교 농구부의 에이스였지만 한순간의 실수로 사고를 당해 하반신 마비가 오게 된 타카하시 히사노부. 

 

 이 세 사람의 시점을 계속 전환시키며 여러 시점에서 물 흐르듯이 이야기를 진행시킵니다. 여러 주인공들은 서로 간에 한두개씩 접점을 가지고 있고 서로에게 영향을 주기는 하지만, 작품이 보여주고자 하는 것은 결국 이들이 헤져나가는 각자의 리얼한 삶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작중 인물들의 개인적 트라우마와 육체적 정신적 상처를 헤집어내 펼쳐놓고는, 하나하나 복기하면서 그 상처들을 천천히 치유해 나가는 느낌입니다. 


 이 작품이 특히 좋았던 점은, 작품 속 인물들의 생동감있는 삶의 형태를 담아내면서도 만화적 재미 또한 살아있다는 겁니다. 등장인물들의 캐릭터리티가 잘 살아 있고, 심리묘사나 감정 표현을 워낙 느낌있게 잘 해내 작품을 보는 내내 인물에 저절로 몰입하게 되죠. 그렇다고 그들에 감정이입이 잘 된다고 해서, 불편하거나 피곤한 느낌을 남기는 만화는 결코 아닙니다. 
 그리고 특별한 큰 사건이나 화려한 연출은 없지만, 이 만화에서는 인물들이 가진 삶의 역동성이 참 생생하게도 느껴집니다. 잔잔하지만, 한편으로는 한없이 인간적이고 삶의 냄새가 짙게 배어있는 만화입니다. 



 '장애인' 이라는 존재는 누구에게나 익숙하지 않습니다. 작가는 그 익숙치 않은 세계, 그러나 누구에게나 금방이라도 찾아올 수도 있는 그 세계를 파헤쳐 보여줍니다.
 장애자를 만화의 주인공으로 내세운 많은 작품의 경우, 대부분의 작품 내에서 그에 대한 취급, 혹은 그에 대한 이미지에 대한 한계가 분명하게 드러나기 마련입니다. 하지만 이 작품은 장애자에 관련한 어둡고 칙칙하기만 한 분위기를 벗어나, 진중하면서도 잔잔하고 몰입감있는 전개를 펼칩니다. 과도하게 우울함에만 빠지지도 않고 그렇다고 무작정 쾌활하지도 않게, 작품 분위기의 완급조절에 있어서의 능수능란함이 느껴집니다. 무거운 주제를 다루고 있지만, 작품이 내내 보여주는 것은 은근한 '희망'입니다. 


 장애인이든 비장애인이든, 자신들의 절망과 개개인의 공포 좌절, 트라우마와 마주하고 그것들을 어떻게든 극복해나가려는 '과정'에 작품은 초점을 두고 있습니다. 실제로 극복하는지 아닌지는 중요하지 않고, 성공보다는 극복에 실패하는 일이 부지기수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전하는 것 자체에 의미가 있다고 만화는 말합니다. 도전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시작되지 않기 때문이죠. 

 이 만화가 장애인이라는 보편적에서 약간 벗어난 존재를 다루고 있음에도 읽었을 때 묘한 공감대와 감동이 느껴지는 것은, 작품의 장애인들과 우리는 전혀 다를 것 없기 때문일 것입니다. 써놓고 나니 진부한 말이긴 하지만, 우리는 '장애인들과 우리는 다른 점이 없다'는 그 진부한 사실을 항상 잊고 삽니다. 그리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알게 모르게 그들에 대한 선입견을 가지고 있을 겁니다.
 하지만 <리얼>에서, 그들은 우리가 보통 '장애인' 하면 떠오르는 유약하고 돌봐주어야 하는 존재라는 이미지를 산산이 부숴버리죠. 인상부터 다릅니다. 부리부리한 눈을 하고는, 항상 힘이 가득 들어간 표정으로 휠체어농구에 임하는 키요하루만 봐도 말이죠.


 선천적 장애가 아닌 이상, 장애를 가지게 된 사람들이 재할하는 과정에서 난관을 극복하기 위한 첫번째 단계는 '자신의 상태가 어떤지 인지하는 것', 그리고 '자기 자신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모든 것은 이것을 극복하고 난 다음의 일이죠. 
 또한 이것은 장애인들에게만 해당되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읽으면서 끊임없이 여러 생각을 하게 만드는 책입니다.



  <리얼>은, '장애는 극복할 수 있는 것이다', '끝까지 희망을 놓지 말아야 한다'는 등의 직접적이고 상투적인 어조로 훈계를 하지도 않고, 의도적으로 감동이나 교훈을 전달하려고도 하지 않습니다. 그저 '우리와 조금 다른 사람들' 의 삶을 담담하게, 있는 그대로 그려내고 있을 뿐이죠. 
 하지만 우리는 그들의 삶을 보면서 저절로 느끼게 됩니다. 그들은 우리와 조금 다르지만, 한편으론 전혀 다르지 않다는 것을. 신체적, 정신적으로 무력한 사람들에게 세상은 결코 자비롭지 않지만, 그럼에도 그들은 힘을 내어 살아간다는 것을. 
 또 세상은 누구에게나 가혹하고 삶은 언제나 힘들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갈 가치가 있다는 것을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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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의 꽃 11
오시미 슈조 지음 / 학산문화사(만화)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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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러지주제에'
 표지부터 섬뜩했던 이 만화는 여러모로 강렬하고 충격적인 만화였습니다. 




 평범한 남자 중학생 카스가 다카오는 어느 날 교실에 짝사랑하던 미소녀 사에키의 체육복이 떨어져 있는 것을 발견하고는 자신도 모르게 그것을 집으로 가져와 버립니다. 그런데 그것을 하필 같은 반의 나카무라라는 여자애에게 들키게 되고, 나카무라는 그것을 빌미로 카스가에게 온갖 변태적 요구를 하게 됩니다. 와중에 나카무라의 가학적이고 변태적인 요구가 계속되고, 여기에서 점차 충실감을 느낀 카스가는

자신의 존재 의의를 나카무라와의 변태적인 행동에서 찾게 됩니다. 

 



 거기다 자신의 위에서 군림하면서 이끌어주던 나카무라도 사실은 자신과 비슷한 방황을 겪고 있는 것을 알게 된 카스가는 나카무라에게 더욱 빠지게 됩니다. 얼떨결에 동경하던 사에키와 사귀게 되고 사에키가 카스가의 모든 걸 품고자 할 정도로 사랑하게 되지만, 이미 나카무라가 자신의 전부가 된 카스가에게 있어 사에키는 장애물일 뿐입니다. 이런 카스가를 어떻게든 돌려보고자 하던 사에키는 점점 자신을 망가뜨리게 되죠.

 

 이야기의 무대가 되는 마을은 카스가의 말을 빌려 "녹슨 철"입니다. 파도 한 번 일지 않는 지루한 가운데 조금씩 녹슬어 가면서 가라 앉고 있는 곳이죠. 카스가와 나카무라는 "버러지의 바다"와도 같은 마을을 벗어남으로써 해답을 찾고자 하지만, 조금씩 깨닫게 되는 "마을의 너머"는 그들의 이상향이 아니었습니다.

 결국 또 다른 돌파구를 찾아나서게 되면서 이야기는 더욱 파국으로 치닫습니다.

 



 
<악의 꽃>은, 우유부단한 성격의 남자 주인공이 사춘기라는 미묘한 시기에 맞물려 순간 실수를 저지르고 이상한 여자애의 변덕으로 악의 수렁으로 빠지는 과정을 세심하게 묘사합니다. 사람의 심리적인 일탈과 혼란, 그리고 방황을 당황스러울 정도로 적나라하게 묘사해냅니다.
주인공인 카스가와 나카무라는 '나는 빈 껍데기에 불과해' 라는 심적 방황을 겪으며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혼란스러움을 느끼고, '저 너머' 를 꿈꾸며 자신들의 좁은 세상과 자꾸 부딪히게 됩니다.
 제목인 '악의 꽃'은 보들레르의 시집으로, 주인공의 허세, 즉 빈 껍데기를 표현하는 주요한 아이템으로 등장합니다.
 
 이 만화는 심리적으로 방황을 겪는 사람의 심정, 그 과정을 지독히 끈적끈적하게도 묘사해냅니다. 중학생인 주인공들의 파괴적이고 소모적인 도피, 변태성, 돌발성을 숨 돌릴 새 없이 모두 까발려 보여주고 독자를 쉼없이 몰아붙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몰입감이 정말 뛰어난 좋은 만화이기도 합니다. 이만큼 독자를 몰아붙일 수 있는 책도 많지 않을 테니까요. 
 읽는 동안 내내 캐릭터들에게 휘둘린다는 느낌마저 듭니다. 만약 캐릭터에 감정을 이입하고 본다면 상당히 피곤할 겁니다. 

 

 7권 정도부터 작품의 반환점으로 들어서면서 주인공들의 중학생 시기가 지나고 고등학생 시기로 이야기가 넘어감에 따라, 폭풍같이 휘몰아치던 작품의 분위기는 극도로 차분해집니다. 주인공들은 고등학생이 되고 나서 중학생 때의 방황과 혼란에서 벗어나게 되고, 비로소 그제서야 그 시절을 되돌아볼 수 있게 됩니다. 작품에서 주인공들의 방황은, 말 그대로 찰나의 폭풍이었다는 것이죠. 
 이 작품은 사람들 대부분이 가지고 있는 방황의 시기를 그려내고 싶었던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감수성 넘치고 예민했던, 절로방황하게 되고 일탈의 욕구만이 샘솟던 그 시기를 말이죠. 그러나 한편으로는, 누구나 그 잠깐의 방황기를 거쳐야만 어른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이야기하는 것 같기도 합니다. 어떤 의미에서는 청춘 성장물이라고도 볼 수 있겠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적어도 한번쯤 겪어봤을 법한 방황과 일탈을, 이렇게 작품 속으로 온전하고 적나라하게 옮겨놓은 것만으로도 대단히 흥미로운 작품입니다. 
 다만 '만화는 무조건 밝고 유쾌해야 한다' 는 생각을 가진 사람에게는 추천하기 꺼려지네요.



 작화도 상당히 뛰어나고, 특히 인물들의 미묘한 표정변화를 잘 표현합니다. 등장인물들의 캐릭터리티 또한 매력있게 잘 살려냈고요.
 수려한 작화와 함께 몰입감 넘치는 스토리텔링이 맞물려 무척 재미있게 볼 수 있는 작품입니다. 또한 사람의 심리를 파고드는 연출, 특히 불안감이나 불쾌함 등의 막연한 머릿속 이미지를 '악의 꽃'이라는 특정한 사물에 이입해 구체화시키는 데에서 보이는 연출도 정말 기가 막히고요.

 
권두에 써 있는 작가의 말은 이렇습니다. 

"이 만화를 지금 사춘기로 힘들어하는 모든 소년소녀, 
일찍이 사춘기로 힘들었던 옛 소년소녀에게 바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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