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낌없이 뺏는 사랑

아낌없이 뺏는 사랑
피터 스완슨 지음, 노진선 옮김 / 푸른숲 / 2017년 6월

빨간 가제본이 눈에 확 띈다. 아마 조지의 모든 것을 탈탈 털어먹는 여자 '리아나'의 색깔이 이렇지 않을까 싶다.

저자 '피터 스완슨'은 <죽여 마땅한 사람들>로 엄청난 인기를 끌었다. 읽어본 사람마다 재밌다고 평하던 그 책을 난 아직도 못 읽어봤다.

그래도 이 책을 먼저 접해보니 왜 인기가 많은지 알 것 같다. 다만 속에 천불이 나서 그런지 생각보다 쉽게 넘어가진 않았다. 쉬엄쉬엄 끊어 읽어야 정서에 도움이 될 것 같은 느낌?^^;


영혼까지 탈탈 털린 주인공 '조지'는 파릇파릇한 대학 신입생 때 만난 '오드리'에게 첫눈에 반해 사랑에 빠진다. 그런데 첫 방학식 후 고향으로 돌아간 오드리가 자살을 했다는 소식이 들려오고, 진위를 밝히고자 찾아간 오드리의 집에서 본 사진 속 오드리가 그 오드리가 아님을 알고(?) 경악하게 된다.

줄거리를 적으면서 내가 더 헷갈리는데ㅎㅎ

아무튼 다른 이의 신분으로 대학생이 된 오드리는 훗날 살인자가 되어 조지를 다시 찾아오는데..


제목에서 이미 알 수 있듯이 이 책의 전반적인 내용은 조지가 오드리.. 행세를 한 '리아나'에게 어떻게 모든 것을 뺏기느냐에 중점을 두고 있다.

제목을 <아낌없이 뺏기는 사랑>으로 해야 할 것 같다. 며칠 전에 읽은 어떤 책에서도 '아름다움에 현혹되지 마라.'는 주제를 내세웠는데 이 책의 주제도 딱이다. 남자들은 정말 아름다운 여자를 조심해야 한다.

원래 스릴러 소설들은 웬만해선 다 재밌다. 어떻게 긴장감을 조성하고 어떤 반전이 있느냐에 따라서 그 느낌이 조금씩 달라질 수는 있다. 이 책도 스릴러소설로서의 기본기는 탄탄하게 짜여져 있는 것 같다. 읽다가 스트레스를 받을 수 있는 남자의 답답함에 처음부터 끝까지 치가 떨렸지만 재미는 있었다.

<죽여 마땅한 사람들>을 읽어봐야 이 저자 소설들의 특성을 더 잘 파악할 수 있을 것 같다. 

펭귄철도 분실물센터

펭귄철도 분실물센터 ㅣ 펭귄철도 분실물센터
나토리 사와코 지음, 이윤희 옮김 / 현대문학 / 2017년 5월

오렌지색 주둥이에 하얗고 톡 튀어나온 배, 짧은 다리를 파닥거리며 걸어다니는 펭귄. 치명적인 귀여움을 가진 이 펭귄은 분실물센터 대형 냉장고 안에서 산다.

한 번씩 전철 타고 외출하는 것을 좋아하고 바다에서 수영하는 것을 즐기는 유쾌한 펭귄이 있는 분실물센터. 진짜 이런 곳이 있다면 꼭 한번 가보고 싶어진다.

표지를 보면서 뭔가 따뜻하고 귀여운, 그런 느낌이겠구나 생각했다. 역시나 잔잔한 일상 속에서 뜻밖의 반전과 감동을 만나는 그런 일본소설 특유의 분위기가 물씬 나는 소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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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우던 고양이의 유골을 ​1년 동안이나 들고 다닌 여자, 똑같은 행동을 반복하는 기억장애 할아버지, 사회 속에서 자신의 자리를 잃어버린 채 숨어 지내는 은둔형 외톨이 남학생 등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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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마다의 사연을 지니고 저마다의 고통을 안은 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우연한 만남이 이루어지고 그 속에서 작은 희망의 빛이 보이게 된다. 그 ​모든 과정의 중심에는 이 '분실물센터'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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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무원인지, 고민 해결 심리 상담사인지 모를 분실물센터 역무원 '소헤이'는 아무렇지 않은 듯 말하는 대화를 통해 이 사람들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 주는 신기한 능력을 가지고 있다. 빨간 머리에 비쩍 마른 모습이 마치 날라리를 연상하게 하지만 실제 소헤이는 가슴이 따뜻한 남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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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로움, 열등감, 사회로부터의 도태 속에서 우연이 운명이 되는 만남이 이루어진 사람들이 있다. 이런 사람들에게는 약간의 도움과 힘만 되어 주어도 다시 일어설 수 있다는 것. ​소헤이와 펭귄이 보여준 따뜻한 이야기들이 내 주변에도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홀라크라시

홀라크라시 - 4차 산업혁명 시대, 스스로 진화하는 자율경영 시스템
브라이언 J. 로버트슨 지음, 홍승현 옮김, 김도현 감수 / 흐름출판 / 2017년 5월

요즘 '4차 산업혁명 시대'라는 말이 자주 들린다. 이제는 드디어 일하는 방식에 있어서 급변하는 시기가 도래한 것일까? 경영, 경제 분야와는 상관없는 일을 했었고 지금은 주부로서 육아에 전념하고 있어 관심이 없었지만, 사실 또 경제와 가장 관련 있는 직업(?) 중 하나가 전업주부 아닌가.

직장인의 95퍼센트 이상은 '상사'가 있거나 자신이 상사 역할을 한다. 특히 우리나라는 자율경영 시스템이라는 것이 대체적으로, 아니 전혀 정착되지 않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홀라크라시'란 전체를 뜻하는 그리스어 'holos'와 통치를 뜻하는 'cracy'가 합쳐져서 만들어진 단어이다. 보스가 필요없는 조직, 사람이 아니라 역할을 조직화하고 팀 대신 '서클'이 만들어져 역동적으로 상호관계를 맺는 것을 말한다. 한 마디로 모두 동등한 입장에서 지식을 공유하고 결과를 각자 책임지는 것이다.

이런 시스템을 채택하려면 엄청난 각오와 결심이 필요할 테지만 또 한번 마음 먹으면 순차적으로 진행될 것이고, 시행착오를 거쳐야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만큼 뛰어난 성과를 올릴 수 있을 것 같다는 것이 내 견해이다.

이 책에는 홀라크라시란 무엇인가, 홀라크라시는 어떻게 조직을 변화시키는가, 홀라크라시의 실천 가이드가 담겨 있다. 자율경영 시스템을 이미 시행하고 있는 조직이나 새로운 경영 패러다임을 적용해보고 싶은 조직에 많은 도움이 될 것 같다.

경영에 관해 문외한인 내가 읽어도 그리 어렵지 않았다. 이제 막 경영학을 공부하는 사람들이나 4차 산업혁명 시대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 읽어 봤으면 좋겠다. 이제 상사가 있고 상사에게 스트레스 받는 이전 시대는 지났다. 업무 중심의 의사결정과 스스로 진화하는 조직의 시대가 열린 것이다.

코뿔소를 보여주마

코뿔소를 보여주마
조완선 지음 / 다산책방 / 2017년 4월

제목과 표지만큼이나 강렬한 내용의 책이다. <외규장각 도서의 비밀>이 눈에 자주 띄던데 그 책의 작가가 쓴 신작이 출간되었다.

'코뿔소를 보여주마'

누구에게 어떤 뜻으로 하는 말일까.
코뿔소의 뿔은 아무리 잘려도 죽기 전까지 자라는 것을 멈추지 않는단다. 끝없이 자라는 코뿔소의 뿔처럼 죽기 전까진 포기할 수 없었던 그 마음.

절대 이해해선 안되지만 나도 모르게 이해하는 심정이 더 컸던 사건의 동기들은, 어지러운 나라에서 태어나 아무 죄 없이 희생양이 되어야만 했던 사람들의 하나같은 마음이었다.


총선에 관심이 있는 현직 변호사 '장기국'이 어느 날 갑자기 실종된다. 이 사건을 베테랑 형사 '최두식'과 범죄심리학자 '오수연'이 담당하여 범인을 좇게 되는데 그 사이 범인은 단테의 <신곡> 속 지옥의 문을 형상화하여 장기국의 의식을 치르는 동영상을 보내온다.

결국 장기국의 시체가 발견되고 산전수전 다 겪은 냉혈한 '홍준혁' 검사가 사건에 투입되는데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또다른 살인사건이 발생한다.


군사정권의 폭압이 절정에 이르던 시기인 1986년. 수많은 시국사건들이 벌어지고 그 속에서 무고한 시민들이 소리소문 없이 사라져 고문과 죽임을 당했다.

지금의 민주주의를 이루기 위해 끊임없이 나라에 반기를 들어야만 했던 사람들과 그 과정에서 억울하게 끌려갔던 사람들, 그들의 자녀들이 겪은 고통과 한숨의 세월들은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아마 모를 것이다.

불과 몇십년 전만 해도 사람이 사라지고 어떻게 되었는지 가족조차 모르는 실상이 있었다는 것은 그것이 알고싶다 속 먼 세상 이야기인 줄만 알았다. 오히려 소설을 읽고 그 사건들에 대해 더 관심이 생기고 공감할 수 있었다는 것은 참 아이러니한 일이다.

저마다의 상처를 지닌 채 살아가는 형사, 범죄심리학자, 검사의 인생이야기도 흥미로웠다. 시대를 잘못 타고난 불우한 환경 속에서 처절하게 살아온 그들의 삶이 바탕이 되었기 때문에 이 책에 나오는 시국사건들에 더욱더 감정이입이 잘 되었지 않을까. 작가의 필력이 대단하다.

추리 소설이라고 단지 재밌게 읽었다기에는 묵직한 주제와 상처 입은 존재들에 대한 안타까움이 더 크게 남는다. 마지막 장을 덮고 난 후의 여운이 가시지 않는다.

어쩌다 너랑 가족

어쩌다 너랑 가족
츠지무라 미즈키 지음, 신미리 그림, 서수지 옮김 / 사람과나무사이 / 2017년 4월

표지랑 챕터 대표 그림들이 한국 샌드아트협회 회장이신 분이 만든 그림이란다. 아 모래로 그린 그림이구나 하면서 새삼 첫장부터 그림들을 다 찾아 보았다.

자극적인 소재와 극적인 반전! 이런건 없지만..^^ 일상 이야기들 속에서 생각이 많아지게 만드는 스타일의 소설. 어떻게 표현하면 좋을까 하는 심리들을 감탄을 자아낼 만큼 굉장히 공감 가도록 쓰는 츠지무라 미즈키 신간이다.

어쩌다 너랑 가족.

청소년기때 언니를 보며 진짜 맨날 했던 생각인데ㅋㅋ
연년생 언니와 하루가 멀다 하고 격투를 했었는데 대학생 되고 나니 둘도 없는 친구가 되어 함께 쇼핑하고 영화보고 그랬더랬다^^

이 책의 첫번째 이야기가 바로 연년생 언니와 여동생의 이야기였다. 자신만의 세상에 빠져 사는 언니와 소위 '날라리' 여동생이 갈등을 겪고, 그래도 가족인지라 서로 이해하고 풀어가는 내용이다. 내가 날라리었다는 건 아니지만ㅋㅋ 어쨌든 공감 가는 장면이 많았다.

다섯 번째 이야기도 연년생 언니와 동생 이야기. 우주를 사랑하는 이성적인 동생과 만화를 좋아하는 감성적인 언니와의 갈등이 나온다. 알고 보면 이렇게나 멋지고 감수성 풍부한 동생이었다는 것을 알게 된 언니. 나도 이런 반전있는 동생이고프다.

엄마한테 막대하는 지 잘난 고2 딸, 록그룹 빠순이 누나와 아이돌 빠돌이 남동생, 서먹하고 어색하기만 한 아빠와 아들, 되바라진 손녀와 지혜로운 할아버지, 신기한 도라에몽 부부까지.

그냥 단순 설명을 해놓으면 이렇지만 결국에는 가족이라는 거. 때로는 어색하기도 하고 때로는 남보다 더 치열하게 싸우기도 하지만 가족이 있어 힘이 될 수 있다는 것은 엄청난 행복일 것이다.

사춘기 딸이 엄마와의 갈등 속에서 가시 돋힌 말로 쏘아붙이는 장면에서 이런 얘기가 나온다.
피는 물보다 진하다는 말을 믿고 있다간 큰코 다칠거라고. 그렇지만 결국에 결론은 하나다.

피는 물보다 진하다.

어쩌다 너랑 가족이 되었지만 너랑 가족이 되어 너무나 행운이라고. 우리 가족이 눈물나게 생각나는 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