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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한 사람들 ㅣ 담푸스 세계 명작 동화 4
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 지음, 키아라 피카렐리 그림, 김하은 옮김 / 담푸스 / 2019년 11월
평점 :
<가난한 사람들>

문학사의 거장 톨스토이의 짧은 이야기에 그림이 더해진 명작동화입니다.
특이하게도 이 작품은 프랑스 작가 빅토르 위고의 전작을 톨스토이가 다시 쓴 작품이라고 하네요.
책을 읽어보면 왜 뛰어난 작가들이 계속 관심을 가졌는지 알게 되실 거에요.
이야기는 가난한 어부의 부인 잔나의 시점에서 시작합니다.
홀로 세 아이를 챙기고, 가사일을 하면서도 잔나는 오로지 한 가지 생각 뿐입니다.
남편의 무사귀환.
아이들과 바다를 바라보면서도 요동치는 파도 소리에 민감해지고, 빨래를 널면서 불어오는 바람소리도 예사롭게 넘기지 못합니다.
먹여살려야 하는 식구들과 가난 때문에 남편은 폭풍우가 치는 날에도 바다에 나가야 했고, 쉬지 않고 일해야 하는 것이었지요.
문제는 이렇게 열심히 살아도 가난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는 것이에요.
잔나는 남편이 이웃들의 남편처럼 혹여 돌아오지 못할까 매일 걱정으로 하루하루를 보냅니다.

가난하지만 부부는 서로 사랑하며 시간을 함께해 왔네요.
먹구름 때문에 온통 시커먼 하늘과 검은 빛의 파도가 일렁이는 바다 장면과 대조적으로 잔나의 집은 촛불 하나로도 온기가 느껴집니다.
잔나가 뺨에 대고 있는 건 아마 남편의 옷가지이겠죠?
남편과 다른 공간에 있지만 잔나의 마음은 남편과 함께입니다.

폭풍우에 남편이 돌아오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불길한 생각, 그리고 그렇게 남편을 잃은 옆집 여자.........잔나의 생각이 여기에 이르자 그녀는 아무도 돌보는 이 없는 이웃을 찾아가게 됩니다. 그리고 죽어있는 옆집 여자를 발견하게 되지요.
곁에는 이불도 없이 옷가지를 덮고 있는 두 아이들만 덩그러니 남아 있습니다.
잔나는 조금의 지체함도 없이 한 명 씩 업고서 자신의 집으로 데려옵니다. 우유를 먹이고, 자신에 침대에 눕히고 나서야 현실감을 찾게 되고요.
가난한 집에 식구를 더했으니 앞으로 어떻게 먹고 살 것인가? 부터 남편이 화를 내면 어떡할까? 라는 걱정과 불안감.
그러다 결국 남편이 돌아오지 않는 다면 다섯 아이들과 정말 살 수 있을까라는 막막한 마음도 생깁니다.
그 때 잔나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성호를 긋고 기도하는 일 뿐이었죠.
"하느님, 제발 남편을 지켜 주세요."
그 때 어렴풋이 발소리가 들리고 찢긴 그물을 들고 남편이 돌아오게 됩니다.
서로의 안부를 묻고 난 후, 잔나는 조심스레 이웃집 여자의 죽음을 알리고 남겨진 아이들 이야기를 꺼내죠.
그리고 어부의 입에서는 예상치 못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아이들을 일단 우리 집에 데려옵시다. 그 다음엔 어떻게든 또 되겠지.
여보, 어서 가서 아이들을 데려옵시다."
가난은 인간의 기본적인 욕구가 충족되지 못하는 극한의 상황입니다.
끼니를 때우기 어려워 목숨이 위태로운 날씨에도 나가 일하는 어부와 잔나의 식구들은 생존의 욕구와 안전의 욕구 모두 위협받는 처절한 상황인 것이죠.
이런 상황이라면 인간성은 위태로워 지기 마련입니다. 내가 살기도 힘들고, 게다가 내가 책임져야 할 아이들도 있는 상황에서는 더 말할나위 없고요.
하지만, 잔나는 자신의 상황에서는 도무지 행동에 옮기기 힘든 일을 하는데요.
남편의 생사가 불분명한 가운데서도 아픈 이웃을 떠올리고, 돌보려고 했습니다. 그리고 일순간 고아가 된 그 집 아이들을 망설임없이 자신의 집으로 데려오지요.
남편이 돌아온 후 어떻게 될까? 고민하는 잔나의 모습을 보면 이 모든 것이 이것저것 따지고, 고민한 끝에 행동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 수 있어요.
남편 역시 찢어진 그물을 들고 돌아온 걸 보면 물고기를 많이 낚지 못했을 거란 걸 예상할 수 있어요.
계속되는 가난의 굴레 속에서 희망이 보이지 않는 상황. 그런 막막한 상황인데도 아내의 말을 듣고는 아이들을 데려오자는 결정을 내렸던 거에요.
풍요롭고, 부요할 때는 누구나 너그러운 행동을 하기 쉽습니다.
하지만 반대의 상황에서 게다가 실날같은 희망도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는 인간성의 발현을 기대하기가 쉽지 않지요.
어부와 그의 아내 잔나의 행동을 보고 감동하게 되는 이유는 바로 그런 이유 때문입니다.
속지 첫 페이지를 장식했던 어부의 다섯 식구 사진이, 책 마지막 장에는 이웃의 아이 두 명을 포함한 일곱 식구의 사진으로 바뀌어 채워집니다.
옷차림도 표정도 전혀 달라지지 않고, 다만 두 명의 아이들만 더해졌을 뿐입니다.
아무것도 변한 것 없는 어부의 식구들의 모습은 여전히 가난한 형편이고, 앞으로 더 나아질리 없는 상황을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부와 아내는 두 아이를 품었고, 마지막 사진에서 오래도록 시선을 떼지 못하게 되네요.
어부가 칠흙같이 어두운 망망대해에 배를 띄우고 그물을 던지는 일,
어부의 아내가 묵묵히 자신의 일을 하면서 남편을 위해 기도하는 일,
그리고 자신들의 형편으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음에도 두 아이들을 거둔 일.
어부와 아내를 보면서 사람이 얼마나 아름다울 수 있는지, 극한의 상황에 매몰되지 않고 인간성을 지키는 일이 얼마나 숭고한 일인지 깨닫게 됩니다.
<우리 모두는 살아야 합니다>
검은 먹구름들 사이로 밝은 빛의 태양이 솟아 오르는 마지막 장면의 글귀입니다.
어떤 선택을 했든 어부와 아내의 삶에는 매일의 태양이 떠오르겠죠.
그리고 햇빛 찬란한 영광의 날이나 먹구름 가득한 슬픈 날에도 그들은 여전히 한결같이 잘 살아낼 거란 걸 알 수 있습니다.
위고와 톨스토이가 우리에게 보여주고자 했던 가난하지만 가난하지 않은 그들의 모습을 보면서
어떤 삶의 태도와 자세로 인생을 살아갈 것인가에 대한 답을 얻으셨으면 좋겠네요.
*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은 도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