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영역은 이 도시에서 가장 초라하고 소박한 역의 하나일 거이다.

           '남영(南營)'이라는 이름은 서울 남쪽에 군영이 있다 하여 명명되었다고 하는데, 일본군

          병영의 흔적과 무관하지 않다는 애기도 들린다. 전철 1호선 개통과 함께 세워진 이 역은

          철로의 다리 아래에 입구가 있다. 용산역과 서울역이라는 거대한 역 사이에 있는 이 역은

          마치 지방 소도시의 간이역을 연상시킨다. 역의 입구가 하나밖에 없다는 측면에서 이 역

          은 거대 도시 속의 생뚱맞은 간이역처럼 보인다.  

 

       

 

       

    

          

          남영역. 개찰구까지 들어가지는 않았다. 개찰구가 있기는 할까?

          사라지지 않고 자리를 지키고 있는게 신기하다.

         

 

          남영역의 건너편에서 시작되는 청파동 골목길은 회화적인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있다.

 

          이곳은 식민지 시대의 일본인 주거지역의 흔적이 남아 있는 곳이며, 그 여파로 인해 아파

        트 단지 등으로 개발되지 않아 여러시대에 걸친 다양한 형태의 주택들 전시장과 같다.

 

          한때 이곳이 일본인 고급 주택지의 하나였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수도 있다.

 

          하숙이라고 쓰여 있는 작은 간판들이 무수히 붙어 있는 다세대죽택들 사이로 골목 안에

        아무렇지도 않게 숨겨져 있는 어두운 적산가옥들은 이곳이 청파동이라는 것을 말해준다.

 

 

          '청파동' 동네 이름에 끌린다. 무슨 뜻일까? '靑 - 푸를 청, 坡 -  고개 파' 푸른 고개?

          푸른 고개? 있었나?

 

           청파(靑坡)란 이름은 한자의 뜻대로 해석하면 ````푸른언덕````인데, 이 동이 연화봉(蓮花

          峰)이라는 푸른 야산에 위치한 데서 유래했다는 설과 조선 세종대왕 때 명인인 청파 기건

          이 살았기 때문이라는 설이 있습니다. 청파동1가는 현재는 모두 주택가로 변했지만 과거

          에는 연화봉 동쪽 기슭에 위치하고 있었는데, 연화봉은 산 모습이 연꽃 봉우리같이 생겨

          서 붙여진 이름이며 이곳에는 목동산(牧童山)과 옻나무가 많아 생긴 옻나무골도 있었습니

          다. 서울역 남쪽의 역촌인 청파는 수륙교통의 연계소인 용산의 배후 취락이자 내륙으로

          이어지는 교통 상 요지였으며, "청파삼대불문지례"란 속설이 있을 정도로 역졸들이 많이

          살았다고 합니다.

                                                                                                    - 용산구청 홈페이지

 

           

        

 

        

 

            회화적 아름다움? 그림을 그려놓은 것같은 인위적인 아름다움?

            깨끗하다.

            골목을 타고 들어가면 저런 의외의 건물이 보인다. 만들어 놓은걸까?

            연꽃봉오리를 닮았다는 연화산. 어떤 모습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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