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의 전쟁터' - 효창공원
1부 '오래된 망각'을 읽으면서 꼭 보고 싶었던 곳이 '효창공원'과 ''새남터기념성당'이었다. 왜?

'이 곳은 조선 정조의 맏아들 문효세자의 무덤이 있던 곳으로 원래 명칭이 효창원이었으나
1940년 일제가 민족정기 말살정책 차원에서 이름을 효창공원으로 격하하고 묘 자체도 고양 서
삼릉으로 강제이장했다.
이후 백범 김구 선생이 독립투사였던 이봉창 윤봉길 백정기 의사와 이동녕 차리석 조성환 선
생을 안장하고 자신도 사후 이곳에 묻힘으로써 애국지사 묘역으로 거듭났으나, 과거 정권을
거치면서 효창운동장(1961년), 북한반공투사위령탑 및 어린이놀이터, 원효대사동상(1969년),
노인회관 및 육영수 송덕비(1972년) 등의 시설물이 설치됐다.'
연합뉴스 / 2007.5.18
남영역에서 청파동을 지나 숙대 앞까지 걸었다. 숙대에서 왼쪽으로 효창공원이 있다. 공원에 들어서니 제일 먼저 눈에 띄는 건 '원효대사' 동상이다. 원효대사? 기사를 검색해보니 1969년 원효대사를 기리기 위해 건립했다고 한다. 그러고 보니 용산에 원효로라는 거리도 있네? 원효대사와 여기 무슨 인연이 있을까?
원효대사 동상 옆에서 북소리가 들린다. 국악과 학생이 북을 치고 있다. 연습을 하는 모양이다. 그런데 집중을 못하고 자꾸 주변을 두리번 거리는 걸 보니 아마 벌을 받는것 같다.
거기에서 애국지사 묘역으로 내려왔다. 작은 연못, 쉽터, 정자, 꽃밭이 잘 정리되어 있다. 애국지사 묘역에서 망설이다 올라가서 묵념을 했다. 주인을 찾지 못한 안중근 의사의 묘역이 눈에 들어온다. 비석을 세우지 못한 묘가 안중근 의사의 가묘이다. 넋이라도 고이 쉬시길 바란다.
가까운 곳에 이런 곳이 있다는 걸 몰랐다.

묘역에서 내려오면 백범 기념관이 있다. 기념관 입구 정면의 동상이다.
조용하다.
도슨트 선생님께 설명을 듣는 고등학생들 몇 명 외엔 없다.
2층에 전시된 검정 구두가 눈에 들어온다. 2층 복도 안쪽에서는 김구 선생님의 묘도 살짝 볼 수 있다.

기념관 아래가 바로 효창운동장이다.
"이곳에 운동장이 세워진 것은 '아세아축구대회'를 계기로 1959년부터 이승만 정권
이 추진한 것이며, 이때 애국지사 묘소의 이장에 대한 격렬한 반대가 있었으며, 결국
묘소는 유지하고 운동장은 세워지는 결과를 빝었다. 효창운동장은 1960년 학생혁명
이 일어난 그해, 15만 그루의 나무와 숲과 연못을 사라지게 하고 세워졌다. 운동장은
애국지사들의 무덤 옆에서 수없는 나무들의 죽음 위에서 건설되었다. "
"18세기 왕족의 묘소에서 출발한 이곳은, 200여년 동안 외세와 집권 세력에 의해 끊
임없이 그 장소의 의미를 두고 길고 긴 투쟁이 벌어진 곳이다. 장소의 의미를 둘러싼
싸움은 기억에 대한 투쟁이다. 역사의 승자들이 가장 먼저 하는 것은 기억을 다시 세
우는 일이지만 억압된 기억은 긴 우회를 거쳐 언젠가 유령의 얼굴로 귀환한다."
마지막 '언젠가는 유령의 얼굴로 귀환한다.'는 말이 울린다. 우리가 이 귀환한 유령의 시대에
살고 있는 건 아닌지......발길이 끊기지 않고 이어지길 바랄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