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는 날마다 축제
어니스트 헤밍웨이 지음, 주순애 옮김 / 이숲 / 201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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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가에서 온종일 시간을 보내는 낚시꾼들. 강을 오가는 아름다운 바지선들, 화통으로 연기를 길게 뿜으며 그 바지선을 끌고 다리 밑을 지나가는 예인선들, 돌로 쌓은 제방에 죽 늘어선 키 큰 플라타너스와 느릅나무들, 그리고 군데군데 서 있는 미루나무들을 쳐다보며 센 강을 따라 산책하노라면 나는 결코 혼자라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그토록 많은 나무가 있는 파리에서 우리는 하루하루 가까워지는 봄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으며, 어느 날 밤 따뜻한 바람이 불더니 다음 날 아침 봄이 갑자기 눈 앞에 와 있음을 실감했다. -44쪽

나는 그 동안 내가 얼마나 인색하게 굴었으며, 우리 집 형편이 얼마나 어려웠는지 잘 알고 있었다. 나처럼 자기 일에 만족하는 사람은 가난을 그다지 힘겨워하지 않는다. 그래도 당시 우리는 스스로 가난하다고 생각한 적이 없었다. 그런 사실을 인정하지 않았던 것이다. 우리는 다른 사람들보다 우월하다고 스스로 자부했으며,부자들을 경멸하고 불신했다. 몸을 따뜻하게 하려고 속옷 대신 스웨터를 입는 것이 내게는 전혀 이상하게 여겨지지 않았다. 그런 것을 이생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은 부자들뿐이라고 생각했다. 우리는 값싼 음식으로 잘 먹고, 값싼 술로 잘 마셨으며, 둘이서 따뜻하게 잘 잤고, 서로 사랑하고 있었다. -50쪽

다음 날 아침이 되자 나는 일찌감치 일어나 젖병과 고무 젖꼭지를 끓여 소독한 다음, 우유를 타서 젖병에 넣어 범비에게 먹이고는 고양이 F. 푸스와 나만이 깨어 있을 뿐 아무도 깨기 전에 식탁에 앉아서 글을 썼다. 우리는 둘다 조용했고 서로 방해하지 않는 좋은 동반자였으므로 다른 어느 때보다도 글이 잘 써졌다. 그 시절에는 정말 필요한 것이 아무것도 없었고 심지어 토끼발마저도 필요하지 않았으나, 그거시 주머니 속에 들어 있다는 것이 느껴질 때마다 마음이 놓였다. -23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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