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와바타 야스나리 - 설국에서 만난 극한의 허무 클래식 클라우드 10
허연 지음 / arte(아르테)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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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읽은 일본 소설을 손으로 꼽으라면 한 손으로 가능하다. 일본이라서가 아니라 읽으려고 고른 일본 소설에 마음이 가지 않았다. 처음 부분만 읽고 덮기도 했다. 몇 번 그러면서 일본 소설과는 인연이 없나 싶어 관심을 버렸다. 그러나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는 일본 근대작가와 소설, 그리고 ‘탐미주의’라는 말은 어쩌다 한 번씩 귀를 기울이게 했다. 그 중에서도 『설국』은 ‘눈’ 때문에 읽고 싶지만 선뜻 손이 가지 않는다. 궁극의 아름다움? 절대미? 눈 뒤에 있을 이런 것들을 간파하지 못할 걸 알기 때문이다.

 

그 이유를 허연 시인이 쓴 『가와바타 야스나리』를 읽고 나서 알았다. ‘허무’, ‘아름다운 허무’다. 허무는 일본근대 문학의 공통점이라고 한다. 시인은 설국의 아름다움은 허무라고 한다. ‘아름다운 허무’, 겪어보지 않는 한 느끼지 못할 말이다. 그러나 책은 독자 나름 이해하면 되는 것이라는 말로 얼버무리지만 닿지는 못하더라도 가까이 가보고는 싶다.

 

허연 시인은 오사카부터 설국이 탄생한 에치고유자와, 이즈반도, 그리고 35년을 살고 자살한 가마쿠라까지, 가와바타 야스나리가 흔적을 남긴 공간과 장소를 찾아다니며 그의 문학과 삶을 톺아간다. 『가와바타 야스나리』는 그 여정을 담았다.

 

오사카에는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고향이다. 그러나 가와바타 야스나리에게 고향이라는 말을 붙이지 못하겠다. ‘고향’하면 떠오르는 애틋함, 따뜻함, 애증 등 이런 감정들이 그에게는 없을 것 같다. 두 살 때 아버지를 시작으로 어머니, 할머니, 누나, 할아버지까지 15살 이전에 모두 죽는다. 중학교 5학년 때는 존경하던 선생님도 죽는다. 그리고 선생님 영결식 장면을 묘사한 산문을 써서 잡지에 발표한다. 죽음은 반복되는 현실이었다. 계속되는 죽음 가운데서 가와바타 야스나리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그가 자살하기 두 해전인 1970년에는 그가 추천하고 그를 스승처럼 따르던 작가 미시마 유키오가 할복자살한다.

 

가와바타 야스나리는 ‘고독과 죽음에 대한 집착으로 삶을 살았고 글을 썼다’고 한다. 죽음에게 자신의 존재 이유를 묻고 싶지 않았을까? 죽음은 그의 평생의 화두였으며, 집착한 만큼 멀리 두고 바라봤을 것이다. 그리고 ‘작품을 통해 죽음을 미화하고자’ 했다. 그래야 자신의 존재 이유에 한 발짝 더 가까이 가고, 글을 시작할 수 있는 ‘절대절명의 체념’이 가능했을 것이다. 그 체념이 가능하지 않아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을까?

 

『가와바타 야스나리』에 실린 사진들 속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눈빛은 강렬하다. 타오름이 아니라 체념이다. 말하지 않으면 들을 수도 물을 수도 없는 것을 담고 있다.

 

가와바타 야스나리는 “평생 동안 아름다움을 얻기 위해 애썼다”고도 한다. 그가 작품들을 쓰면서 얻어낸 아름다움은 있을까? 무엇일까? 시인의 말처럼 허무? 허무는 그 순간일까, 그 순간에 이르는 과정일까?

 

『가와바타 야스나리』에서 『설국』에 들어갈 방법 하나는 찾았다. 이미지. 허연 시인은 ‘나열된 이미지 하나하나를 감상하듯 읽어야 한다’고 한다. 그 감상들이 하나로 그려내는 게 ‘아름다운 허무’라는 말 같다. 그 끝 ‘아름다운 허무’를 글로 느끼기는 힘들지만, 각인될 만한 장면들은 갖고 싶다. 그 중 하나가 ‘삼나무’다.

 

‘삼나무’는 『설국』보다 『고도』속에서 찾아야 할 것 같다. 헤어진 쌍둥이 자매가 태어난 곳, 서로 자매였다는 사실을 깨닫는 곳, 쌍둥이의 아버지가 추락한 곳, 나에코가 다시 돌아가는 곳, 모두 ‘삼나무숲’이다. 책에서 곧게 뻗은 삼나무 숲을 봤다. 어쩌면 끝이 없을 것 같은 그 길이 ‘아름다운 허무’가 아닐까 싶다.

 

『가와바타 야스나리』에 나오는 곳 중에서도 가장 가보고 싶은 곳은 그 삼나무 숲이다. 나에게는 그 삼나무숲이 ‘국경의 긴 터널을 빠져나오자’ 맞닺뜨리는 눈의 고장이 될 것 같다.

 

작가를 알고 작품을 읽는 건 '가와바타 야스나리'가 처음이다. 기대는 없고, 가와바타 야스나리 속으로, 그의 작품 속으로 들어간다는 두근거림만 있다. 얻어낼 무언가를 기대하지 않는다. 기대에 집착해 포기할지도 모른다. 그 여정 동안 느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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