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어머니 이야기 세트 - 전4권
김은성 지음 / 애니북스 / 2019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내 어머니의 이야기 1-4의 첫인상은 생소하지만 친근한 이름이었다. 주인공인 이복동녀’, 아명은 놋새’. 놋새 엄마는 이초샘’, 형제들은 이노금, 이노향, 도화선, 귀동녀’. 이 이름들에도 당시의 남아선호 사상이나 그 비슷한 정서가 담겼을지 모르지만 요즘 이름과는 다른, 세상에 하나뿐인 이름 같은 이름이다. 이름에는 기원을 담는데 놋새에 담긴 기원은 무엇인지 궁금하다.

 

작가의 외할머니이자 놋새의 엄마, ‘이초샘’. 어린 시누이 둘과 홀시아버지 모셨고, 남편과 농사를 지으며 자식 일곱을 낳아 키웠다. 병으로 누운 시아버지를 지극정성으로 간호한다. 남편 이근호는 어쩌다 한번 드나들 뿐이다. 시집살이 시키는 심술궂고 극성맞은 시아버지. 며느리는 갖가지 병간호에도 차도가 없는 시아버지에게 자신의 젖을 물린다. 놋새는 엄마의 젖을 할아버지와 나눴다. 시아버지는 며느리에게 착한 널 못 살게 군 것은 말하지 말라며 죽는다. 며느리의 지성이 하늘은 감동시켰는지 모르겠지만 시아버지의 뉘우침에는 진심이 모자란 듯하다.

 

이복동녀 씨는 1927, 함경남도 북청군 신북청면 보천리 미산촌에서 태어났다. 내 어머니의 이야기 1~4는 이초샘에서 이복동녀로 다시 이복동녀의 딸인 작가의 이야기로 이어진다.

일제강점기, 해방과 전쟁, 공업화, 민주화 시기까지의 역사가, 인물들의 삶과 생활을 만나 구체적이고 생생하게 살아난다.

 

토지조사사업과 함께 일본의 식민지 수탈의 기초를 세운 임야조사사업. 놋새네는 산을 빼앗기지 않으려고 5년 동안 재판을 한다. 산은 지켰지만 가세는 기울고 빚까지 얻었다. 놋새네는 산골짜기로 이사하고 빚을 갚기 위해 결국 산을 다시 팔았다. 20년 만에 그 산을 다시 산 건 4대 독자 외아들 찬세다.

찬세의 아명은 억석. 억석은 13살에 조촌사램(사람)과 혼인하지만 어려서인지 덩치 큰 신부가 무서웠는지 5년 동안 정을 주지 않는다. 조촌사램이 떠나고 몇 년후에 거산 사램과 다시 결혼한다. 놋새는 올케인 일산 시이(거산사람) 70년을 의좋게 지낸다.

 

거산 사램아 마이 먹어라”, 함경도 북청에서는 시부모가 며느리를 부를 때 며느리의 친정마을 이름을 사람앞에 붙였다고 한다. 작가는 외숙모 외삼촌을 큰아버지, 큰어머니라고 부른다. 북청에서는 친가와 외가 구분 않고 엄마, 아버지를 기준으로 손위면 큰어머니, 큰아버지로 손아래면 아지미, 아지비로 불렀다. ‘화다분하다(홀가분하다)’, ‘애질애질하다(사랑스럽다)’, ‘집낭(시집간 딸)’, ‘헤뚤헤뚤하다(침착하지 못하다)’ 내 어머니 이야기는 낯설지만 엄연히 우리말인 함경도 사투리를 맛깔나게 살려놨다. 작가 녹음한 엄마의 목소리를 들으며 한 자 한 자 새기듯 정성들여 옮겼으리라.

 

놀지 않으면 구럭이 슨다(구더기가 꼬인다)는 구럭다기날(21), 아낙들이 마을 큰집에 모여 음식을 나눠먹고 돈돌라리같은 노래를 부르며 춤을 추며 흥겹게 놀았다. 아마도 바빠질 농사철을 앞두고 몸도 마음도 쉬어가는 날이 아닐까?

 

절기 행사나 혼인잔치, 손님대접, 종교, 새집짓기 등 당대 함경도의 의식주 문화, 전기와 축음기, 기차와 같은 근대문물의 유입 등 점점 잊혀진, 어쩌면 잃어버릴지도 모르는 그 시대 사람들의 삶과 생활상을 생생하게 살려놔서 반갑고 고맙다. 이복동녀 씨의 놀라운 기억력이 더 감사하다.

 

작가는 내 어머니의 이야기 1-48년이나 그렸다. 달리 말하면 8년 동안 엄마를 새롭게 알아간 셈이다.

 

작가의 엄마는 딸이 자신의 인생 이야기를 들어준다는 것만으로도 기뻤고, 작가는 그런 엄마를 보며 기뻤다고 한다. 엄마의 이야기를 듣는 시간들이 모두 순조로웠을까? 미쳐 몰랐던 사실에 놀라고 마음 아프고 답답하기도 하고, 그동안 엄마에 대해 이해하지 못했던 일들이 있었다면 풀리기도 했을 것이다. 작가는 그러면서 엄마의 삶을 이복동녀의 삶으로 이해하고 바라보게 됐다. ‘이복동녀의 삶이 더 애잔하지 않았을까?

작가는 엄마의 삶을 만화로 그리면서, 엄마를 더 넓고 깊게 알게 되고 이해했다. 엄마의 삶이 객관화된 만큼 더 애틋해졌을 것이다.

 

내 어머니의 이야기 1-4를 읽는 내내 머리 한쪽은 엄마가 차지했다. 이런저런 일로 엄마의 삶과 거리를 두려는 나를 돌아봤다. 그 거리가 작가처럼 엄마를 더 깊게 느끼는 계기가 되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작가의 말처럼 앞으로는 엄마가 나를 이해하는 것보다, 내가 엄마를 이해해야 하는 시간이 더 많을지도 모르겠다. 엄마를 잘 이해하면서 엄마와의 우정이 더 단단해질 수 있을까? 이런 생각들이 잘 표현된다면 엄마의 얼굴도 많이 달라지겠지.

 

엄마의 달라진 얼굴, 엄마를 위한 것보다 결국은 나를 위한 얼굴이라는 것을 안다. 그래서 엄마가 더 애틋하다. 기록으로 남을지는 모르겠지만 엄마를 만날 때마다 궁금한 것부터 하나씩하나씩 물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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