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와 영성을 묻다 - 다원주의 시대, 복음의 다리를 놓는 12인의 현장 기록
팀 켈러.존 이나주 지음, 홍종락 옮김 / 두란노 / 202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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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무지 공감할 수 없는
사람과 상황 속에서"

극심한 갈등과 변화 속을 걷는 우리에게 이 책은 "기독교적인 대응법"을 전한다. 그리스도인이 세상과 공존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타협이나 배제가 아니다. 하나님의 사랑에서 우러난 실천이었다.



책은 일목요연한 명제를 처방하기보다 설명으로는 다 담지 못할 풍부한 서사를 택해 독자의 이해를 넓힌다. 팀 켈러 목사와 법학자 존 이나주는 신학자, 목회자, 의사, 선교사, 교수, 작가, 힙합 뮤지션, 싱어송라이터 등 각계에서 본보기가 되는 필자들을 모아 "정답이 아닌 그들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하나님은 이야기를 통해 자신을 계시하셨을 뿐 아니라,
이야기와 그 속에 담긴 미묘함과 복잡성을 통해
가장 잘 배우는 존재로 인간을 창조하셨다."
- 18면


"이야기는 다른 방식으로는 결코 말할 수 없는 무언가를
말하는 방법이다. 이야기의 의미를 온전히 전하려면
그 안의 모든 단어가 필요하다. 단순한 진술로는
충분하지 않기에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이다."
- 플래너리 오코너



하나님의 자녀이자 세상의 소금으로 살기 위해 치열하게 고민하고 시행착오를 겪은 이들의 진솔한 고백이었다. 핵심은 존 이나주가 제시한 세 덕목(겸손, 인내, 관용)에 팀 켈러의 용기를 더한 '공통 기반' 위에서 관계를 유지하며 복음을 증언하는 것이다.



겸손은 나의 확신을 절대화하지 않고 상대 관점을 경청하는 태도, 인내는 즉각적인 승리를 포기하고 장기적 관계를 우선하며, 관용은 가치관 차이에도 불구하고 문을 닫지 않는 선택이다. 여기에 팀 켈러는 용기를 더해, 사랑 속에서 진리를 담대히 말하라고 강조한다.



여러 지체가 한 몸을 이루듯, 갈등과 차이는 배제의 이유가 안 된다. 서로의 부족함을 메우며 하나님의 형상을 온전히 완성해가는 필수 과정인지도 모른다. 정답지 같은 명제보다 투박한 삶의 서사가 더 깊은 위로와 도전이 되는 이유다.



특히 팀 켈러 목사의 이야기가 흥미롭다. 그는 진보적이고 다원적인 북부와 보수적인 남부 문화를 모두 겪으며 알게 됐다. "한쪽에서 결혼과 가정이 붕괴하고 자기 성취와 개인적 행복에 대한 집착이 커졌다면, 다른 쪽에서는 독선과 편협함과 권력 남용이 만연했다."(55면) 복음은 어느 한편에 갇히지 않고 모든 문화를 날카로우면서도 겸손하게 비판하는 역할을 하고 있었다.



"소금이 고기와 화학적 조성이 똑같다면
고기에 도움이 될 수 없다.
그리스도인들이 사회의 다른 모든 사람과 똑같아진다면
사회를 도울 수 없다. 우리가 문화를 사랑하고
혜택을 줄 수 있으려면 그 문화와 달라야 하고,
세속적 정체성을 받아들일 게 아니라
기독교적 정체성을 유지해야 한다."
- 59면



소금이 짠맛을 유지해야만 다른 재료에 도움이 되듯, 예수님은 우리가 구별된 거룩함을 유지해야만 세상을 도울 수 있다고 말씀하셨다. 전도를 위해 세상 방식을 따르거나 지성인을 자처할 필요는 없다. 그저 설교와 가르침, 기도와 예배, 성찬과 교제 같은 소박한 은혜의 방편들이면 신앙의 불길은 타오를 수 있다. 주님 안에서 누리는 사랑과 기쁨이면 두려움을 이긴다.



세상 속에 스며들되 짠맛을 잃지 않는 소금으로 살 때, 그리스도인이라는 고결한 정체성을 지키며 겸손히 인내하고, 관용하며, 용기있게 사랑을 실천할 때, 우리는 세상이 진정으로 원하는 기쁜 소식을 전하는 편지가 될 것이다.




"하나님의 은혜로 태어난 사랑은
길을 찾기 마련이다."
- 65면



#두란노 #시대와영성을묻다 #팀켈러 #크리스천 #책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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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자의 저주 - 인간의 비합리성을 밝혀낸 행동경제학, 그 시작과 완성
리처드 탈러.알렉스 이마스 지음, 임경은 옮김, 최정규 감수 / 리더스북 /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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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처드 탈러 알렉스 이마스 《승자의 저주》

늦은 밤, 거실에 있던 남편이 말없이 집을 나갔다.
잠시 후 돌아온 그의 양손엔 빵빵한 편의점 봉투가 들려 있었다. 오늘까지 쓸 수 있는 5,000원 할인 쿠폰을 버리기가 아까워서 다녀왔다는 것이다. 남편은 그 쿠폰을 쓰기 위해 굳이 사지 않아도 될 간식을 16,000원어치나 사 왔다. 5,000원을 아끼려다 생돈 16,000원을 더 쓴 셈이다.


웃음이 터지는 이 상황은 이 책이 말하는 행동경제학의 실사판이었다. 남편은 5,000원을 '절약'했다며 뿌듯했을지 모르지만, 이 책을 읽고 있던 내 입장에서는 명백하게 '승자의 저주'에 빠진 상황으로 보였다.


우리는 돈을 계산할 때 숫자만 보지 않는다.
손실회피 경향은 쿠폰을 버리는 것을 손해로 느끼게 해 충동구매를 일으킨다. 매몰비용 효과는 이미 받은 쿠폰을 활용해야 한다는 불필요한 욕구를 자극한다. 여기에 할인이라는 별도의 지갑을 머릿속에 만들어 계산하는 '심리적 회계'까지 더해지면, 돈을 더 쓰고도 합리적으로 절약했다고 믿는 역설이 완성된다.


리처드 탈러와 알렉스 이마스의 《승자의 저주》는 이런 순간들을 행동경제학의 관점으로 풀어낸다. 전통 경제학이 인간을 언제나 합리적인 존재로 가정했다면, 행동경제학은 그 합리성이 얼마나 자주 감정과 착각에 의해 흔들리는지 증명한다.


이 책은 <넛지>의 저자이자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리처드 탈러가 연재했던 논문 「이상 현상(anomalies)」을 바탕으로 한 개정판이다. 33년 만에 돌아온 만큼 70%를 새로 쓰며 방대한 최신 연구를 더했다.


'이상 현상'은 기존 경제학이 전제로 삼는 합리적 인간 모델과 맞지 않는 실제 인간의 돌발 행동을 의미한다. 편향된 인간이 만든 시장은 주식 거품이나 과도한 경매 가격, 과소비 같은 비합리적 선택을 반복된다. 돈 문제는 합리적인 계산보다 “심리” 문제이기에, 사람은 돈을 객관적으로 보지 못하고 다양한 인지 오류의 함정에 빠진다.


똑똑한 사람이라도 별 수 없다. 인지 편향은 지능과 별개이기에 경제학자나 노련한 투자자조차도 동일한 오류를 반복한다.


이겼는데 왜 눈물이 날까: 승자의 저주
책의 제목이기도 한 ‘승자의 저주’가 흥미로웠다. 경매에서 가장 높은 가격을 써내 물건을 차지했지만, 막상 낙찰을 받고 나면 “너무 비싸게 샀나?” 하고 후회하는 현상이다. 기업 인수합병이나 부동산 경매처럼 가치를 정확히 알기 어려운 상황일수록 이 저주는 강력해진다.


경쟁자들보다 높은 가격을 써냈다는 건, 남보다 똑똑하다는 증거라기보다 경매 대상의 가치를 남보다 더 크게 착각했을 가능성이 크다는 신호일 수 있다. 경쟁에서 이긴 사람이 경제적으로는 가장 큰 손해를 입는 역설은 과신과 경쟁심이 결합할 때 인간이 얼마나 쉽게 스스로를 속이는지 날카롭게 보여준다.



나라는 존재가 투영된 물건의 무게
재미있는 실험이 하나 있다. 5,000원 주고 산 컵을 팔 때는 10,000원을 받아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드는데 이를 보유 효과라고 한다. 물건이 내 손에 들어오는 순간, 나의 소유라는 딱지가 붙으며 심리적 가치가 뻥튀기되는 것이다.


여기에 얻는 기쁨보다 잃는 고통을 훨씬 크게 느끼는 ‘손실 회피’ 심리까지 더해지면 판단은 더욱 꼬인다. 떨어지는 주식을 팔지 못하고 붙들고 있거나, 입지 않는 옷을 버리지 못하고 쌓아두는 것도 사실은 내 일부가 된 무엇을 놓지 못하는 감정 때문이다.


스토아주의와 행동경제학이 만나는 지점
비합리적인 행태들을 읽으며 고대 스토아 철학이 떠올랐다. 인간의 고통이 사건 그 자체가 아니라 왜곡된 해석과 판단에서 비롯된다고 본 스토아적 통찰은 현대
행동경제학의 인지 편향 이론과 궤를 같이한다. 문제는 현실이 아니라 인간의 인식 구조에 있다.


고대의 지혜와 현대의 이론은 우리에게 같은 결론을 남긴다. 인간은 끊임없이 스스로를 합리화하는 존재이기에 자신의 판단에 오류가 있을 수 있음을 전제로 늘 깨어 경계해야 한다 판단을 고치기 어렵다면 환경을 설계하고, 그 환경 속에서 끊임없이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보라. 그것이 승자의 저주가 가득한 세상에서 평온을 지키며 합리적으로 승리하는 길이다.


시장은 차가운 숫자로 움직이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숫자를 만드는 것은 욕망과 불안에 흔들리는 뜨거운 마음들이다. 그러니 인간이라는 존재의 인지 구조를 이해한다면 우리는 어제보다 조금 더 지혜로운 선택을 할 수 있게 될 것이다.



#도서지원 ​#승자의저주 #리처드탈러 #행동경제학 #인지편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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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모든 초록은 즐겁다 - 테마파크 식물 총감독의 정원 이야기
이준규 지음 / 시공사 / 202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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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원을 정원답게,
에버랜드의 조경 디자이너가 풀어놓는
정원의 성장 에세이.


이상하다.
에버랜드의 정원이라면 대규모 공원과 맞먹는데 왜 '조경'이 아닐까? 저자는 조경을 전공했지만 정원을 공부하고 싶은 열망으로 영국 유학을 떠났다. 현재 그는 정원과 조경의 경계를 넘나들며 에버랜드를 '대형 정원 프로젝트'로 이끌고 있다. 그 흥미진진한 변화가 고스란히 책에 담겼다.


책장을 넘기면서 '정원'이라는 다정한 이름이 왜 테마파크와 어울리는지 깨달았다. 저자는 시종일관 정원사의 마음이었다. 거대한 테마파크를 관리하는 엄격함보다 계절의 변화를 예민하게 살피고, 사람과 자연이 함께 자라는 소통의 철학을 중시했다. 그는 영락없이 '정원 가꾸는 사람'이었다.


"시인이 쓴 시구절을 읽으며
각자의 감성을 통해 다른 감정을 느끼듯이
정원사가 고른 식물을 통해 각자가
다채로운 이야기를 만나게 되는 것이다.
다양함을 상실한 정원,
과정을 보여 주지 못하는 정원,
성장하지 않는 정원은
정원다움을 잃어버린 그냥 공간에 불과한 것이다."
- 프롤로그


저자가 만드는 "정원은 멋진 것을 소유하는 게 아니라 즐거운 문화를 만들어 가는 곳(16면)"이다. 가장 자극적인 공간이라 할 수 있는 테마파크는, 정원이 가장 정적이지만 살아 성장하는 즐거운 문화일 수 있음을 대중이 체험할 수 있는 가장 최적의 장소였다.


"순간의 쾌락을 위해 강렬하게 소비되고 장렬히 사라지는(15면)" 식물이 아닌, 함께 성장하고 오래 동행하는 생명의 즐거움을 이 책은 가르친다.


"꽃도 사람이 있어야 꽃이다"
정원 콘셉트를 고민하던 저자에게 김용택의 시구절이 깊은 울림을 주었다. 그는 울타리를 제거하고 경계를 허물어 액자에 갇혀있던 공간을 사람과 꽃이 가까이에서 소통하는 정원으로 바꾼다. 우려하던 화단의 훼손은 크지 않았고 관리비 증가나 컴플레인도 없었다. 오히려 사람들은 꽃을 가까이서 보게 되자 더욱 조심해서 사진을 찍고 산책을 했다. 정원의 혁신이었다.


"정원은 명사가 아니라 동사다."
정원의 본질은 한철 아름다움이 아니라 과정의 아름다움에 있었다. 정원은 멈춰 있는 물건이 아니라 움직이는 생명체다. 씨앗에서 싹이 트고 잎이 무성해져 꽃이 피고 시드는 모든 모습이 아름다운 것이었다.


330일 넘게 이로움을 주는 은행나무를 고작 한 달 남짓 열매에서 고약한 냄새가 난다고 흉물로 여겼다. 길어야 한 달도 안 되는 꽃에만 집중하고, 잎과 줄기의 아름다움은 볼 줄 모르던 지난 날을 반성했다. 누렇게 바랜 잔디의 생동감, 말라버린 겨울의 나무 줄기와 잎, 시든 꽃이 주는 겨울의 색감과 질감에 눈뜨게 됐다.


"분명 시들었는데 아름답고,
화려하지 않지만 매혹적이었으며,
모노톤이면서도 매우 선명한 느낌의
겨울 경관을 만드는 요소였다.
이렇게 영국의 겨울은 나에게
식물이 가진 아름다움의 영역을 넓혀 주었다."
- 79면



"모래 한 알에서 세상을 보고
들꽃 한 송이에서 천국을 보려면,
그대의 손바닥에 무한을 쥐고
한 시간 속에 영원을 담아라."
- 윌리엄 블레이크


식물을 돌보는 이야기 같지만 사실 이 책은 세상을 보는 이야기였다. 우리는 대개 화려한 결과만 보지만 정원이 비춰주는 세상은 나고 자라서 죽는 모든 과정 그 자체였다.


정원이 곧 자연이라고 생각했지만 아니었다. 정원은 흙과 미생물, 식물과 곤충, 정원사와 가꾼 정원을 즐기는 자가 모두 연결되어 협업한 관계의 결과였다.



​손바닥 위에 무한을 쥐어본다. 한 시간 속에서 영원을 발견하라는 시구처럼, 오늘 내 곁에 가만히 싹튼 초록을 들여다본다. 세상 모든 초록은 즐겁다. 그 즐거움을 발견할 줄 안다면 우리는 이미 천국을 보고 있는 것이 아닐까.


​'동사'로 활기차게 움직이는
우리의 정원에 봄이 오고 있다.
이 봄은 분명 더 눈부실 것이다.


#서평단 #이준규 #세상모든초록은즐겁다 #시공사 #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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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책감 내려놓기
도리스 볼프 지음, 장혜경 옮김 / 생각의집 / 202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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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마음을 짓누르는 돌 하나가 있다면"

내 마음에도 돌이 있다. 그릇된 마음을 품고 있는 내가 나를 짓누른다. 무겁고 버겁지만 버려지지 않는 돌을 짊어지고 살다 보면, 죄책감이 올라올 때마다 내가 얼마나 나쁜 인간인지를 확인한다. 그 컴컴한 자리에서 나는 스스로를 처벌하며 고통받아 마땅한 사람으로 굳어간다.


"그들의 마음 저 깊은 곳에는
자신은 문제가 많은 나쁜 사람이기에
사랑을 못 받는 것이 당연하다는 생각이
깊이 뿌리를 내리고 있다."
- 39면


이 책은 "특정 가치관이 우리를 단죄하기 때문에" 죄책감이 생긴다고 설명하며 기준이 된 가치관의 정당성을 되짚는다.


그것들은 대개 부모와 어른들, 종교와 사회에서 왔다. "고맙습니다! 해야지. 인사 안 하면 엄마 창피해." 부모들은 죄책감을 교육의 수단으로 이용한다. "몇 학년인데 아직 이것도 몰라?" 교사들 역시 죄책감으로 공부를 독려한다. 법, 광고나 매체, 문화 규범까지 온갖 규칙들이 우리 안에 넘쳐난다.


세상에 일조하는 사회 일원이 되려면 규칙을 지켜야 한다. 그러나 인간은 완벽할 수 없다. 실수하고 잘못한다. 그 행동은 수억만 가지 행동 중 하나에 불과하다. 옳지 못한 '행동'을 했다고 인간으로서의 '자기 가치'와 '정체성'까지 훼손해서는 안 된다.


오랫동안 그걸 몰랐다. 행동과 정체성을 분리하지 못했다. 죄책감은 '나'라는 존재 자체를 부끄러워하는 수치심으로 변질됐고, 자기비난을 일삼는 열등감이 되었다. 이 일련의 과정을 직시하니 죄책감의 무용함을 분명히 깨닫는다.


죄책감을 가진 덕분에 현재의 문제를 외면했다. 마음껏 나를 미워하며 용서하지 않아도 됐다. 스스로 벌하니 잘못된 행동을 계속할 수 있었다. 도덕적이고 선한 인간이라는 증거로 삼으며 자기 연민에도 빠질 수 있었다. 타인의 규칙을 따르면 되니 나만의 규범을 만들려 애쓸 필요도 없었다. 이 얼마나 아늑하게 정체된 삶인가.


저자는 "자기 대화"를 바꾸라 강조한다. 말에는 놀라운 힘이 있다. 나 자신에게 들려준 말대로 내가 된다. 죄책감은 우리 자신이 만드는 것이다. 자신과 나누는 부정적 대화의 결과이다. 상황을 잘못 평가하고 결론 내린 탓이다. 그러니 자신과의 대화를 새롭게 고쳐야 한다.




정말 어느 정도 죄책감을 내려놓은 것 같다.
객관적인 눈으로 죄책감의 부정적 파급력을 확인한 덕분이다. 자기연민으로 무턱대고 나를 두둔하는 대신 내 잘못인지 아닌지를 구분하게 되자 왠지 자신감이 생겼다.


그것은 곧 죄책감으로부터의 해방이며, 개선과 해결에 집중할 수 있는 능력이자, 무엇보다 자기 용서와 자기 사랑이었다.


이 책을 읽으며 생각보다 깊이 박혀있는 수치심과 열등감, 생각의 오류들을 발견할 수 있어 기뻤다. 알게 되자 뽑아내고 싶었고, 책을 여러 번 읽으며 내 생각으로 바꿀 수 있었다.




돌은 여전히 곁에 있다. 다만 예전처럼 나를 짓누르진 않는다. 돌의 무게가 줄어서가 아니라 내 시선이 달라진 덕분이다. 죄책감이 치밀 때마다 묻는다. '이것은 진짜 내 목소리인가, 오래전 누군가가 심어놓은 목소리인가. 나를 나아가게 하는가, 제자리에 붙잡아 두는가' 이 질문만으로도 돌이 더 가벼워진 것 같다.


돌이 놓인 자리에도 햇빛이 비친다. 돌 곁에 용서와 사랑의 싹이 돋아난다. 이 봄에 참으로 어울리는 장면이다.



​#도서지원 #죄책감내려놓기 #도리스볼프 #모스그린출판사 #죄책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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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려워할 필요 없는 삶에 대하여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지음, 노윤기 옮김, 로빈 워터필드 편역 / 푸른숲 / 202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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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단

명상록의 지혜를 선별해 엮은 이 책을 읽으며 그동안 내가 스토아 철학을 단순하게 이해하고 있었다는 걸 깨달았다. '마음 편한 삶이 최선이란 말인가?' 하는 질문을 떠올리며, 속 편하게 내면의 평온을 추구하는 철학 정도로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통제할 수 없는 외부의 상황은 버려두고, 현실에 자족하며 통제할 수 있는 내면을 수양하라는 철학은 체념이 아니었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무려 로마 제국의 황제였다. 그는 19년을 통치하며 대부분을 전쟁터에서 지냈다.


반란과 사투가 반복되는 전장에서 단지 마음 편하게 살고자 매일 밤 일기를 썼을 리 없다. 내가 무언가를 놓친 게 분명했다.



현대 철학이 '나는 누구인가' 정체성을 묻는 것과 달리 고대 철학은 '어떻게 올바르게 살아야 하는가'를 고민한다. 정체성은 이미 정해져있었다. 우주는 이성적 질서로 이루어져 있고, 인간은 그 안에서 역할을 수행하는 존재다. 우주의 질서에 합당하게 사는 것이 인간의 의무였다.


"우리는 진심을 다하여 옳은 일을 하고,
옳은 말을 해야 한다."
- 69면

"고귀한 인격을 가진 사람은 이러하니,
매일을 마지막 날처럼 살고,
매사에 우왕좌왕하지 않고,
일상에서 게으르지 않고,
헛된 꾸밈이 없는 삶을 산다."
- 71면


우주의 질서를 믿고 덕 있게 사는 것이 인간의 길이라면 평안은 목표가 될 수 없다. 쓸데없는 감정으로 에너지가 소비되는 것을 막고 통제력을 발휘해 정의로운 선택, 곧 "올바르게 행동" 하는 것을 중시했다. 개인의 인생을 중심에 두지 않고, 우주적 관점으로 인간을 바라보며 자연의 일부로 정의한 것이다.


"사물을 바라볼 때는 언제나 그것이
우주라는 거대한 체계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지 생각해야 한다."
- 78면


관점을 바꾸자 스토아 사상이 용기와 겸손으로 읽히기 시작했다. 인간의 한계를 겸허히 인정하고, 죽음과 고통마저도 자연의 수많은 이치 중 하나로 여기며 당연한 과정으로 담담히 받아들인다. "우리 삶이 끝나는 것도 결코 우리에게 해롭지 않다. 삶이 끝나는 일은 적당한 우주의 시간에 일어나는 선하고 조화로운 일이다." (49면)


어찌할 수 없는 폭풍우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내면의 질서를 잡고, 주어진 상황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을 묵묵히 이행하는 것, 그것이 스토아적 삶의 정수였다. 교만은 패망의 선봉, 세상 일을 통제할 수 있다는 오만을 버릴 때 진정한 자유가 시작되고, 그렇게 올바르게 살아가는 사람들의 행동이 모이면 현실은 변할 수밖에 없다.


"하루를 시작할 때 이렇게 다짐해라.
나는 오늘 오만한 사람과 불충한 사람과
비열한 사람과 배신하는 사람과 사악한 사람과
이기적인 사람을 만나게 될 것이다.
그들이 그러한 사람이 된 이유는
선과 악에 무지했기 때문이다."
- 147면


황제는 무너지지 않기 위해 매일 자신을 성찰하며 멘탈을 훈련했다. 모든 권력과 부를 가졌음에도 선하고 성실하고 너그러운 사람의 눈빛을 떠올렸을 그의 밤을 상상해 본다. "오늘 나는 더 나은 인간이 될 수 있는가?"의 기준을 그는 이성과 덕에서 찾았고, 이는 AI 시대에 혼란과 고통 속을 헤매는 우리에게 고전의 지혜로 남았다.


"너의 믿음과 행위가 이성의 길 위에
머물러 있다면, 그래서 올바른 길로 계속해서
나아간다면, 언제나 스스로 만족하는 삶을
살 수 있을 것이다."
- 201면


목표 달성, 성장, 성공, 도전을 강조하는 현대에 스토아 철학이 계속 읽히는 이유를 깨닫는다. 불확실성이 큰 시대일수록 통제감이 절실하다. 태도를 다스리고 마음의 균형을 유지하라는 조언들은 큰 안정감을 준다. 결과보다 성품과 행동의 올바름을 더 중시하는 태도는 성과 중심의 사고가 일으키는 피로를 씻어낸다.


로마의 황제이자 철학가인 아우렐리우스조차 스스로를 일깨우기 위해 매일 기록했다. 우리도 이 고귀한 문장들을 가까이 두자. 스토아의 가르침은 한 번 읽고 이해하는 지식이 아니라, 매일 흐트러진 마음의 질서를 바로잡아 다시 세워주는 오래된 지혜다.


폭풍 같은 세상에서 중심을 잃지 않으려면 지혜를 끊임없이 복구해야 한다. 매일 밤 나의 일기와 황제의 기록을 콜라보해 새로운 명상록을 써보는 건 어떨까.


"너는 지금껏 무수히 많은 고초를 겪었고
그것을 당당히 이겨 냈다는 사실을 기억해라.
이제 네 삶의 서사는 결말을 향하여 나아가고 있으며,
너에게 주어진 임무도 마무리되고 있다.
네가 목격한 누군가의 훌륭한 행위들을 기억해라.
네가 이겨 낸 허다한 고난들을 기억해라.
네가 고사한 헛된 명예들을 기억해라.
그리고 너에게 무례했던 이들에게 예를 다한
수많은 일을 기억해라."
- 39면


#도서지원 #두려워할필요없는삶에대하여 #명상록 #마르쿠스아우렐리우스 #스토아학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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