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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압축 교양수업 - 6000년 인류사를 단숨에 꿰뚫는 60가지 필수 교양
임성훈 지음 / 다산초당 / 2025년 5월
평점 :
요즘은 잘 쓰지 않는 교양이라는 단어 대신 인사이트나 센스, 문해력 같은 개념이 자주 오르내린다. 이 책 덕분에 잊고 있던 교양에 대해 곱씹자 꼿꼿하고 우아한 자세로 차 마시는 풍경이 먼저 떠올랐다. 그러나 교양이란 그저 그런 단편적인 이미지를 뜻하진 않을 것이다.
"교양의 핵심이라 불리는 이른바 '문 •사•철' (문학, 역사, 철학)
알고 보면 교양은 그리 거창한 것이 아니다.
인류가 살아온 이야기, 수백 수천 년 동안 켜켜이 쌓여온 이야기 속에서 사람들의 생각과 행동 그리고 감정을 나름의 방식으로 이해하고 체험할 수만 있으면 된다."
-6면
교양은 인간과 세계를 읽고, 그에 맞게 해석해서 말하고 행동하는 감각이라 할 수 있겠다. 사람은 인식의 한계 속에서 상대방을 해석한다. 6000년 인류사의 주요 스토리 안에서 세상의 기초 지식을 이해할 수 있다면, 인식의 틀은 넓어질 수밖에 없다. 지식과 지혜를 세상과 타인을 향한 존중으로 풀어낼 줄 아는 태도와 관점이 교양이라면 어떻게 교양을 기를 수 있을까?
인류가 쌓아온 지식을 현실의 자기 삶에 연결하는 힘을 키우려면, 우선 지식들 사이의 흐름을 잡는 것이 중요하다. 글의 의미가 행간에 더 진하게 녹아있듯, 유구한 인류사를 꿰뚫고 근본이 되는 물줄기를 찾아보는 것이다.
《초압축 교양수업》은 방대한 지식 앞에서 막막해하는 사람들을 위해 인류사의 맥을 짚어준다. 최소한의 필수 교양 60가지를 역사, 철학, 문학의 영역으로 분류하고, 문명에서 시작해 신과 인간, 이성과 자유, 죽음 사랑 인간이라는 학문(인문학)으로 정리했다. 길을 잃지 않도록 6000년 인류사를 한눈에 정리한 연대표와 체계적인 목차로 꼼꼼하게 독자를 챙겼다.
초압축이라 피상적이지 않을까 염려도 했다. 하지만 우려가 무색하게도 이 책은 어렵고 방대한 지식을 군더더기 하나 없이 제대로 응축했다. 핵심을 관통하는 명쾌함으로 깨달음의 쾌감을 선사한다. 저자의 어마어마한 지적 내공에 읽는 내내 감탄했다.
"지나가는 풍경을 바라보듯이, 재미있는 소설을 읽듯이" 즐기면서 이 책을 읽어가길 저자는 권한다. 책 한 권 읽는다고 교양이 높아질까 의문이 들었다. 쉽게 읽히지만 결코 쉽게 쓰지 못했을 이 책을 읽는 동안 파란만장한 스토리에 젖어들어 인류의 큰 그림에 조금씩 윤곽이 잡혔다. 그리고 그것이 나의 시선을 바꾸는 듯했다.
한편으로는 이런 질문이 떠올랐다. 요약하고 정리하는 일이라면 인간이 인공지능을 따라갈 수 없을 텐데, 왜 이런 교양 입문서가 꾸준한 사랑을 받는 걸까? AI는 정확하고 빠짐없이 요약하겠지만 그만의 철학과 신념이 없다. 인간은 자신만의 가치관과 세계관, 시대감각을 기준으로 무엇을 선택하고 무엇을 버릴 것인지 유일무이한 관점으로 세계를 해석한다. 전문가의 훈련된 감각을 따라가며 이유 있는 선택과 생략을 읽는 일은 분명 의미 있다.
역사에 약하지만 철학과 문학을 동시에 즐기며, 핵심 사상을 3가지로 파악할 수 있다는 점이 가장 유익했다. 이데아는 개소리라고 말한 아리스토텔레스부터 공자, 맹자, 장자. 길가메시 서사시와 삼국지. 쇼펜하우어와 늘 궁금했던 비트겐슈타인.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과 인간 실격까지. 동서양 가리지 않고 시공간을 넘어 지식과 지혜의 바다를 유영하는 즐거움은 굉장했다.
"소크라테스는 온전한 지혜란 오직 신만이 소유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므로 인간은 무지하다는 것이 그의 기본 전제였다. 그리고 무지를 자각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주장했다. 내가 무지하다는 것을 깨달아야만 삶에 대해 성찰하고, 지혜를 얻기 위해 노력할 수 있다."
- 53면
"사람은 본디 한 번 죽을 뿐이다.
어떤 죽음은 태산보다 무겁고,
어떤 죽음은 터럭만큼 가볍다.
그것을 사용하는 법이 다르기 때문이다."
- 사마천의 편지, <보임안서> 117면
인류의 흐름을 알고 나니 오늘이 더 커 보이는 것 같다. 그리고 그 커진 오늘 속에, ‘나’라는 점이 어디쯤 있는지도 조금은 가늠할 수 있을 것 같다.
《초압축 교양수업》에서 모든 걸 배우지는 못하지만 질문을 던질 준비는 할 수 있었다. 역사와 문학과 철학에 비친 인간은 왜 죽음을 두려워하고, 왜 사랑을 갈망하고, 왜 자유를 추구하는지 무수한 물음표를 그려보게 됐다. 그 질문의 뿌리는 곧 나와도 직접적으로 연관되기에 큰 의미가 있다.
한 권으로 다 알 수는 없다. 하지만 한 권으로 인해 세상과 인간을 더 알고 싶어지는 마음이 생겼다면, 그것이 진짜 교양의 시작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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