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는 욕망 - 당신은 본능을 이길 수 있는가
최형진.김대수 지음 / 빛의서가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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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하루에도 여러 번 같은 질문을 던진다. 

“오늘 뭐 먹지?”

특히 주부들에게 평생의 퀘스트로 따라붙는 이 미션은 오래전부터 각인된 인간 생존의 흔적이었다.


인류는 수백만 년 동안 에너지를 확보하기 위해 끊임없이 먹을 것을 찾아야 했고, 그 본능은 유전자에 새겨졌다. 뇌는 설탕, 지방, 단백질처럼 높은 에너지를 제공하는 음식에 쾌감을 얻으며 진화했다. 덕분에 우리는 배가 불러 늘어지면서도 ‘다음에 뭘 먹을까’를 묻는 존재가 되었다.



화려한 이력의 뇌과학자와 의사과학자가 만났다. 

김대수• 최형진 공저 《먹는 욕망》은 이 질문이 어떻게 태어나고 왜 사라지지 않는지를 유전학, 뇌과학, 인문학과 철학을 오가며 설득력있게 답한다. 


흥미진진했다. 생각하지 못한 지점을 '먹는 욕망'과 연결해 인간을 탐험하는 여정이었다. 과학자로서의 시선은 물론, 아들이자 교수이자 학자로서의 인격적인 면모까지 글 속에 스며 있어, 머리와 가슴이 동시에 반응하는 즐거운 독서였다.



김대수 교수는 인간을 “메타헌터”라 부른다. 배를 채우는 데서 그치지 않고, 필요 이상의 에너지를 확보하고 활용해 문명을 만든 존재라는 뜻이다. 하지만 현대의 초가공식품은 이  뇌의 쾌락 회로를 과도하게 자극해, 포만감 신호를 늦추고 계속 먹게 만든다.


최형진 교수는 여기에 사회적 관점을 더한다. 라캉의 ‘사회적 욕망’을 빌려, 우리가 욕망하는 것의 상당 부분은 사실 사회가 짜놓은 규범과 타인의 시선에서 비롯된다고 말한다. SNS에 공유하기 위해 맛집을 탐색하는 데에는 타인에게 인정받고 싶은 욕구가 얹혀 있다.



《먹는 욕망》은 식욕을 억누르기보다 ‘이해하라’고 말한다. 배고픔–쾌락–포만감으로 이어지는 뇌의 회로를 구조적으로 인식하는 것이다. 시상하부가 혈당과 호르몬 변화를 감지해 ‘먹어라’는 신호를 보내고, 도파민 회로가 기대와 설렘을 키우며 음식을 찾게 하고, GLP-1·렙틴 같은 호르몬이 분비돼 ‘그만 먹어도 된다’는 메시지를 전하는 일련의 과정. 문제는 식품산업⁠에서 생산된 음식들은 마지막 단계를 지연시키거나 무력화한다는 점이다.


이 구조를 알면 개입할 타이밍도 보인다. 도파민이 예열되기 전에 음식의 시각·후각 자극을 피하는 것이다. 장을 볼 때 배부른 상태로 가고, 군것질 코너를 아예 가지 않는 전략이 여기에 해당한다. 포만감 신호가 도착하기 전, 식사 속도를 늦추거나 중간에 젓가락을 내려놓아 시간을 벌어주는 방법도 유용해보였다. 


여기에 ‘마음 챙김 식사’를 실천하면 포만감은 더 빨리 찾아온다. 식사 중 휴대폰과 TV를 끄고, 음식의 맛과 향, 식감을 온전히 느끼며 천천히 먹는 것이다.



식생활에 꼭 적용하고 싶은 팁도 있었다. 먹방처럼 강한 자극 대신, 초콜릿을 머릿속에서 구체적으로 상상하거나 단순한 음식 사진을 잠깐 보는 것만으로도 뇌의 시간, 미각, 후각 영역이 반응해 ‘조금은 먹은 것 같은 착각'을 줄 수 있다. 카카오닙스나 허브티 향을 맡는 것도 비슷한 효과를 낸다. 도파민을 적당히 자극하되 폭주시키지 않으면 덜 먹고도 포만감을 가질 수 있다. 전을 부치느라 오랫동안 기름냄새를 맡고나면 식욕이 떨어지는 것과 같은 이치다. 




특히 메타헌터와 메타푸드의 개념이 인상적이었다. 젊은 시절의 우리는 “메타헌터”로 살아야 한다. 적극적으로 배우고, 시도하고, 경험과 자원을 모아 에너지를 축적하는 존재다. 

인생의 후반부에는 “메타푸드”가 되어야 한다. 내가 쌓아온 힘과 지혜를 다른 사람에게 내어주고, 그들의 생존과 성장을 돕는 존재로 함께 살아가는 삶이다.


생존을 위해 모으던 힘을, 언젠가는 누군가를 살리는 힘으로 내어줄 준비를 하자는 것이 책이 들려주고픈 진짜 메시지인 것 같았다.


먹는 본능으로 인생을 바라보는 시간이었다. 욕망에 이끌리는 고통의 굴레가 주는 가르침을 읽을 줄 알아야 우리 몸을 지킬 수 있다. 축적만으로는 완성되지 않는 삶, 순환과 나눔이 있어야 닫히는 욕망의 고리. 먹는 행위에서 출발한 인간의 이해 끝에서 지금 메타헌터인가, 아니면 메타푸드로 살아가고 있는가”라는 질문을 얻었다. 




⁠"이제, 우리는 다시 질문해야 한다.

인간이 사는 삶의 목적은 

더 많은 에너지를 사냥하며 축적하는 데 있는가,

아니면 자신의 에너지를 나누려 순환시키는 데 있는가?

대자연이 우리에게 주는 가르침을 실천해야 한다."

- 293면


#도서지원 #먹는욕망 #최형진 #김대수 #뇌과학 #뇌과학책 #욕망 #욕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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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천히 와 시인의 마음을 받아쓰며 내 마음을 들여다보는 필사 에세이
유희경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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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다린다.
나는 기다리는 사람이다.
끌리기를 사로잡히기를
기다리는 사람이다.
장소를 바꿔가며 시간을 옮겨가며
책상 앞에서 거리에서 기다린다.

나는 기다림을 쓴다.
기다리는 대상을 쓰고
기다림을 쓰고
기다림의 앞과 뒤를 쓴다.
내가 쓰는 텍스트 -
이야기는 실은 이것이 전부일지도 모른다."
- 작가의 말



나도 기다렸던 사람이다.
움직이지 못하는 사람,
선택 당하길 바라는 사람.


누군가가, 무언가가 먼저 다가오길
참 길게도 기다렸다.
그랬더니 작아졌다.


기다림과 멀어져야 했다.
한 걸음 더 내딛는 게 옳아 보였다.
주체적인 인간으로 강해지고 싶어
나를 몰아붙였다.



그런데 유희경 시인이 그린
기다리는 사람의 뒷모습은
곱고 강인하다.
부러울 정도로.


어두운 밤에도 빛나고
움직이지 않아도 생명력 있어
비어 있는데도 충만하다.



이제 다시 기다리고 싶다.
내 안에 여전히 남아있던 기다림 때문일까.
기다림이 자아낸 텍스트, 《천천히 와》 때문일까.



시인의 기다림은 삶 전체를 관통하는 태도 같다.
자신이 무엇을 기다리는지 알고,
그것을 끝까지 기다릴 줄 아는 믿음.

그렇게 세상과 자신을 조율하는 시인의 자세가
급변하는 이 시대에 더더욱 가치 있어 보인다.



기다림은 언젠가는 반드시 오고야 말 것이라는
믿음에 대한 적극적인 표현이다.
시집만 파는 작은 서점에서, 버스 창밖을 바라보며,
그는 기다림을 문학의 호흡으로 사유한다.



기다림은 문을 두드리는 일과도 닮았다.
무엇이든 문이 될 수 있다는 믿음,
시인은 누군가의 삶 속에
문 하나를 열어줄 준비가 된 사람 같았다.



샛길 없이 익숙한 길만 다니던 생각에서 벗어나
시인의 머리와 가슴속에서 마음껏 놀다 온 기분이다.
색다른 관점과 시선, 감각과 표현에 물들어
조금은 다른 사람이 된 것 같은 낯선 느낌이 좋다.



계속 뭔가를 해야 할 것 같아 숨이 차는 사람,
조급함에서 벗어나 삶의 속도를 스스로 조율하고 싶은 사람,
기다릴 줄 아는 근육을 단련하고 싶은 사람,
천천히 느긋하게 생각을 걷고 싶은 사람들에게
이 책을 권한다.



#도서지원 #천천히와 #밤에만착해지는사람들 #필사 #필사노트 #필사단 #위즈덤하우스 #필사책 #필사책추천 #필사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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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명한 개입은 어떻게 삶을 바꾸는가
그레고리 월튼 지음, 고현석 옮김 / 더퀘스트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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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명한 개입은 어떻게 삶을 바꾸는가》는 사람의 마음과 행동이 바뀌는 미묘한 순간을 포착하고, 그 순간에 맞춘 짧고 정밀한 개입이 얼마나 큰 변화를 만들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책장을 넘기며 나는 계속 같은 질문에 붙잡혔다.
“인생의 방향은 어떻게 정해지나?”
삶을 바꾸는 결정적인 선택이 인생의 궤도를 어떻게 바꾸는지, 600쪽에 달하는 벽돌책에서 그 메커니즘이 촘촘히 드러난다.


사람을 바꾸는 건 거대한 결심이나 극적인 사건이 아니라, 아주 짧은 순간이었다. 단 하나의 질문과 단 한 번의 편지, 단 21분의 대화가 삶의 방향을 완전히 바꾼 사례처럼 말이다. 그레고리 월튼은 바로 그 '타이밍'에 ‘현명한 개입’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의지가 약해지는 갈림길에 서 있을 때, 맥락을 읽어 삶의 방향을 틀어주는 일. 이 책은 그 짧은 개입이 어떻게 지속적인 변화를 만드는지, 심리학 실험과 실제 사례로 보여준다.


저자가 말하는 개입의 본질은 정보 전달이 아니었다. 핵심은 해석이다. 사람은 사건 그 자체보다, 그 사건을 해석하는 방식에 따라 선택과 행동을 달리한다. 고정관념에 갇히거나 갈등 상황에 매몰되지 않고, 영화를 보듯 큰 그림으로 상황을 인식하며 근원적인 질문을 긍정적인 방향으로 던질 수 있는 힘 말이다. 실패를 능력 부족으로 해석하면 의욕이 꺾이지만, 성장의 일부로 보면 다시 시도한다. 개입이 필요한 순간은 바로 이 해석이 만들어지는 찰나다.


예를 들어, 새 학교에 들어간 학생이 “여긴 나랑 안 맞아”라고 결론 내리기 전, 같은 어려움을 겪었던 선배들의 적응 이야기를 들려주며 '너만 그런 게 아니야. 당연한 과정이야.'라는 메시지를 전한다. 시험을 망친 학생에게 “너는 원래 수학에 약하다”가 아니라 “아직 배우는 시간이 더 필요할 뿐이다”라는 해석을 심어준다. 개입은 길 필요가 없었다. 짧고 구체적이어도, 머릿속에서 작동하는 해석의 틀을 충분히 바꿀 수 있었다.


얼마나 오래 관찰해야 하고, 얼마나 많은 지식을 습득해야 정확하게 맥락과 타이밍을 읽고 정교하게 계획을 설계할 수 있을까 싶었다. 그런데 책을 읽다 보니, 머리로 익힌 기술보다 마음에 스민 태도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에 대한 존중과 배려, 진심으로 잘되기를 바라는 사랑이 있다면, 방법과 시기는 경청 속에서 자연스럽게 보이지 않을까. 교육학을 배우지 않아도 자녀를 잘 키운 이전 세대 부모들처럼 말이다. 그 사랑은 우리 모두가 이미 가지고 있지 않던가!


"현명한 개입은 '사람들에게' 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과 함께' 하는 것이다."
-97면


현명한 개입은 ‘사람들과 함께’ 하는 것이라는 말에서도 희망을 얻었다. 상대를 변화를 받아들여야 하는 수동적인 대상이 아니라, 변화의 공동 설계자라면 현명한 개입은 부담스러운 과제가 아닌 게 된다. 함께 이뤄가는 개입은 간섭이 아니라 도움이 되고, 변화는 그 사람의 것이니 주체적인 역할은 상대여야 하는 것이다.


스스로 믿는 만큼 성장할 수 있다. 자신의 가능성과 관점을 바꾸는 건 결국 그 사람 자신뿐이다. 공감과 대화, 질문과 피드백과 같은 작은 개입으로 우리가 가닿아야 할 곳은 한 사람의 깊은 마음속이다. 강제적이고 일방적인 리드가 아니라 한발 물러선 자리에서 결정적으로 투입하는 개입, 혼자가 아니라 상호작용으로 이뤄지는 개입이라면 나도 해낼 수 있겠다는 용기가 생겼다.


이 책이 주는 가장 큰 통찰은 변화는 거대한 계획에서 오지 않는다는 것이다. 자신의 이야기를 부정적인 하강 소용돌이에서 벗어나 상승 소용돌이로 바꿔 쓰게 하는 현명한 개입은 사랑에서 시작된 짧고 정밀한 순간에서 출발한다. 나비의 날갯짓이 폭풍우로 돌아오는 인생의 서사는 사랑 없이는 불가능하다.


Ordinary Magic.
인간의 삶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키는 마법은 비현실적인 초능력이 아니라 우리가 놓치기 쉬운 평범한 일상 속에서 일어나는 작은 심리적인 힘이다. 인생은 이렇게 신비한 가능성의 연속이라는 것을 믿게 됐다.


그 믿음을 찾는 방법에 정답은 없다. 저마다의 해답을 각자의 자리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다만 이 책이 알려주는 건 분명하다. 변화를 만드는 힘은 우리 모두의 일상 속에 이미 있고, 그 힘은 작지만 결코 사소하지 않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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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에만 착해지는 사람들 시인의 마음을 받아쓰며 내 마음을 들여다보는 필사 에세이
오은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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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은 밤
한 문장씩
따라 쓰다 보면
우리는 조금 더 착해진다"


《밤에만 착해지는 사람들》은
박인환문학상, 구상시문학상, 현대시작품상, 대산문학상 등
화려한 수상 경력을 가진 오은 시인의 필사 에세이다.


24편의 에세이와 저자의 손글씨.
독자에게 내어준 필사 공간.
밤으로 스며든 일러스트까지.
해가 져야만 펼쳐질 듯한 마법 같은 책이다.


오은 시인의 글은 처음이다.
시라곤 거의 읽지 않는 나도
들어볼 정도로 유명한 시인이지만
사실 큰 기대는 하지 않았다.


알듯 말듯 한 시의 언어와
세심하고 감성적인 시의 세계는
여전히 멀고 멀기에...



하지만 시인의 에세이가 좋았다.
한 잎 두 잎 꽃잎처럼
시인의 언어로 곱게 물든 글은
그것이 에세이든 시든
특유의 향기를 머금고 있었다.


"자꾸 두드리다 보면 문이 열릴 것이다.
문이 열리지 않더라도 누군가는 반응할 것이다.
문고리라도 떨어져 나올 것이다.
손을 쥐었다 펼 때마다 땀이 묻어났는데,
그는 그게 꼭 눈물 같았다."


별다를 것 없는 단어로도
시의 리듬에 실려 노래가 되는 문장들.
밤에 태어나 밤을 싣고 온 글을 읽노라니
밤을 지새울 수도 있을 것 같았다.


낮의 나는 돌아눕고
시선도, 소리도, 해야 할 일도 잠이 든다.
오로지 나라는 존재만이 눈을 뜨는 시간.
빛에 가려졌던 착함이 드러나는 시간.



우리는 밤에야 비로소
진짜 얼굴을 꺼내는지도 모르겠다.


다음 낮의 나를 밀어주기 위해.
밤의 착함을 낮에도 끌어오기 위해.
밤마다 찾아오는 나의 감각을 쓰다듬는다.


"그런 날이면 무언가를 쓰고 싶다.
아니, 무언가를 쓰지 않으면
잠들 수 없을 것 같다.
흐르던 것이 다시 흐를 수 있게
벽을 걷어내야 한다.
제대로 끝내지 못했던 대화를 이어가야 한다.
고맙다고 해야 한다.
미안하다고 해야 한다."



쓰다 보면 나와의 대화가 이어진다.
나를 만나고 눈을 마주치고
못다 한 말을 터트리며
어김없이 겸허해지는 착해짐을
조금은 알 것 같다.


착해진다는 건
내 안의 말을 놓아주는 일인지도 모른다.


낮에는 삼켰던 말들을
사각사각 밤에 쓰는 필사로
훨훨 풀어주는 건 어떨까.


식은 공기가 내려온 여름밤,
《밤에만 착해지는 사람들》을
한 문장씩 따라 쓰며
나를 조금 더 안아준다.



고요한 밤이 되면 나를 찾고 싶어지는 사람,
종일 괜찮은 척하느라 지친 사람,
글은 쓰고 싶은데 마음이 열리지 않은 사람,
자신에게 다정해지고 싶은 사람,
필사를 사랑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밤에만 착해지는 사람들》을
추천합니다.


#도서지원 #밤에만착해지는사람들 #오은 #필사 #필사노트 #필사에세이 #위즈덤하우스 #필사하기좋은책 #밤에피는필사 #시인의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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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도관찰자를 위한 가이드 - 경이롭고 유쾌한 파동의 과학 관찰자 시리즈
개빈 프레터피니 지음, 홍한결 옮김 / 김영사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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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구름관찰자를 위한 가이드》로 알려진 개빈 프테러피니의 파도 관찰기다. 영국왕립학회 과학도서상 수상작이기도 하다.


저자를 따라 간 여정은 쉽지 않았다. "파동 관찰자를 위한 가이드"가 원제목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세상의 온갖 파동을 탐구한다. 그야말로 세상은 파동 더하기 파동, 파동 곱하기 파동이었다. 해변의 파도는 물론, 몸속의 심장 박동과 뇌파, 소리의 음향파, 정보화 시대를 떠받치는 전자기파, 세상에 색을 입히는 광파, 땅의 지진파, 그리고 군중 속 경기장의 파도타기와 도로 위의 교통 체증까지. 세상에 파동이 아닌 것은 떠오르지 않을 지경이다.


덕분에 이 책은 방대한 영역을 넘나든다. 물리학, 기상학, 지구과학과 지질학, 생물학과 의학, 기술공학, 심리학과 인지과학까지 물리적 파동을 설명하고 이것을 감지하고 해석하는 인간의 감각까지 다룬다. 세상과 인간을 신나게 활보하는 종합과학 인문서다.


머리가 지끈거릴 어려운 책 같다는 예감은 접어두라.
"경이롭고 유쾌한 파동의 과학"
무려 부제로 선택받은 문구다. 과학 덕후가 동네 편의점에서 아이스크림을 물고 앉아, 수다로 풀어준 것 같은 책이다. 파동을 향한 저자의 흥이 책에서 파도처럼 내내 물결친다.


물론 배경지식이 없는 나 같은 사람은 어려울 수 있다. 그런 부분은 그냥 넘어가자. 우리는 공부를 하는 게 아니라 즐거운 독서를 하는 중이니. ^^


파동의 사전적 풀이는 "물결의 움직임"이다. 물질의 움직임이 아니다. 물결로 표출된 파동이라는 흔들림으로 에너지가 전달된 것이다. 파도로 바닷물이라는 물질이 이동한 게 아니다. 파도가 지나간 뒤 바닷물은 여전히 그 자리다. "해초는 둥실거리다 대략 같은 위치에 머무를 뿐, 물결에 쓸려가지 않았다." (14면) 에너지가 지나가며 퍼져 나가는 것이 파동이다.


파동에 관한 지식들은 정말이지 흥미로웠다.
세상이 움직이는 방식이 보였기 때문이다.


"더 넓은 의미의 파동관찰자란
종류가 전혀 다른 파동, 즉
해변의 파도처럼 눈에 잘 보이는 파동과
소리처럼 눈에 보이지 않는 파동 사이에서
연결고리와 유사성을 찾는 사람이다.
세상의 파동스러운 성질은 워낙 미묘한지라
많은 사람이 전혀 모른 채로 살아가지만,
워낙 근본적이기에 일단 알아차리고 나면
어디에서나 보이기 시작한다."
- 119면


보이지 않지만 우리 주위를 빈틈없이 채우고 있는 수많은 에너지들은 각자의 리듬을 가진 파동으로 존재하고 있었다. 이 세상을 그렇게 인식하게 되자, 한 장면이 떠올랐다.


진동체처럼 흔들리는 인간, 매질로 연결된 세상, 그리고 그 사이를 따라 퍼지는 에너지, 사랑. 마치 현악기의 줄에서 시작된 떨림이 공기를 타고 음악이 되어 퍼지듯, 우리는 그렇게 흔들리고, 연결되고, 사랑으로 전해진다. 세상은 본질적으로 사랑을 전달하도록 설계된 거대한 파동 구조 같았다. 이것이 파동의 렌즈를 비춰 내가 해석해 본 세상이다.


"꽃을 아는 원숭이가,
슬픔과 기쁨을 꽃으로 노래할 줄 아는 원숭이가
인간이 된 것이지요.
황홀한 눈으로 꽃을 바라보았을 때
그 향기로 숨을 쉬었을 때
비로소 그 짐승의 가슴에는
인간의 피가 흘렀던 것입니다."
- 이어령


고 이어령 선생은 인간을, 사물 너머의 상징을 감지하고 표현하는 존재로 보았다. 꽃을 사물로만 보지 않고, 그리움과 향기로 느끼는 감각. 그 감각을 표출하는 순간, 원숭이는 짐승이 아닌 인간이 된다.


이 책을 읽으며 파동을 그저 과학 지식이 아닌 세상의 언어이자 리듬으로 받아들이게 됐다. 파동을 안다는 것은 세상과 인생이 끊임없이 흔들리고 진동하고 있음을 느끼는 능력이며 그렇게 포착한 나만의 감각을 언어로 붙잡는 과정이다. 이 책을 읽는 동안 이 아름다운 진화가 시작된 것 같다.


온 세상이 흔들리며 움직이고 있다는 사실은 경이롭다. 하지만 더 중요한 건 내가 그것을 느낄 수 있는 존재라는 것이다. 앞으로 나는 이 끊임없는 파동에 더 자주 응답하며 살고 싶다. 나 역시 하나의 파동으로 기쁘게 흔들리며, 그렇게 더 나 다운 인간으로 노래하며 춤추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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