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을 건너는 한 문장 - 당신에겐 한 문장이 있습니까?
정철 지음 / 김영사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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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만난 카피라이터의 책들은 하나같이 다 감각적이었다. 가벼운 몸짓으로 날렵하게 날아들어, 노련하게 빈틈을 찾아 날카로운 통찰을 유쾌하게 꽂아 넣는 솜씨! 묘한 쾌감을 주는 그들의 책은 한 번 더 눈길이 간다.


《인생을 건너는 한 문장》도 그렇다.
서문마저 시와 같고 여유가 넘친다.


한 문장.
두 문장.
세 문장.

문장을 하나씩 늘려가며 글을 쓴다. 아직 완성은 아니다. 연필을 내려놓는다. 지우개를 든다. 지우개로 글을 마저 쓴다.

세 문장.
두 문장.
한 문장.

내가 쓴 문장을 내 손으로 지운다. 지운다. 지운다. 더는 지울 것이 없다. 지우개똥 곁에 살아남은 문장 하나가 보인다.

이것이 책을 쓰며 내가 한 일의 전부다.
나는, 누가 훔쳐갈 것도 아닌데 꼭꼭 숨어서 이 일을 즐겼다.


기똥차다.
애써 쓴 문장을 지우고 지우고 지운다. 지우개똥이라니. 뜨거워진 지우개의 정련을 견디고 남은 결정체, 반짝이지 않을 수 없는 문장들이다.


짧고 쉽게 쓰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지 조금은 안다. 짧다고 쉽게 읽을 수 없었다. 짧아서 번 시간을 생각으로 덧칠해 가슴에 새긴다. 이 문장을 따라해볼까, 어떻게 다르게 바꿀까. 저자가 지우고 지워 만든 여백에 내 글을 더해본다. 그러라고 지우셨나.


딴짓하듯 시선을 창밖으로 옮긴 횟수는 그간 읽은 책들 중 《인생을 건너는 한 문장》이 가장 많지 않을까 싶다. 누가 보면 재미없는 책인 줄 오해하려나.


그래도 글을 자주 쓰는 편이라 글쓰기에 관한 문장들이 특히 기억에 남아 모아보았다. 쓰는 모든 분들께도 힘이 되었으면 좋겠다.


생선을 뒤집으면 선생이 된다
갈치나 넙치 같은 생선에게도 배울 것이 있다는 뜻이다. 세상 모든 것을 뒤집어 다시 보라. 뒤집는 순간 보이지 않던 귀한 것이 보인다.
내가 글을 써야 하는지, 글을 써도 되는지 고민이 깊은 사람은 '연필'을 뒤집어 보라.
-154 면


글을 쓰는 건 쉽지만
글을 쉽게 쓰는 건 어렵다
이 글이 쉽다면
내가 어려운 일을 해 낸 것이고,
이 글이 어렵다면 내가 한 말이 맞는 거다.
- 38면


동사가 연상되지 않는 명사는
곧 명사 신분을 잃는다
해는 뜨다. 꽃은 피다. 새는 날다. 물은 흐르다. 모두 다 자신만의 동사가 있는 튼튼한 명사들이다. '나'라는 명사도 튼튼해지려면 연상되는 동사 하나는 있어 줘야 하지 않을까.
-289면


베토벤도 삶의 9할을
백지 앞에 앉아 있었다
운명은 백지다. 아무것도 적히지 않은 깨끗한 백지다. 베토벤도 교향곡 5번 운명을 쓰기 전까지는 백지 앞에 앉아 있었다. 지금 내 앞에도 백지가 놓여 있다. 그곳에 내 손으로 오선지도 긋고 음표도 그려 넣으면 제법 괜찮은 운명 하나를 써 낼 수 있다. 내 운명은 베토벤이 대신 써 줄 수 없다.
- 273면


《인생을 건너는 한 문장》은 이렇게 진지하게 재미있다. 풉, 웃음이 터지게 한다. 감탄하며 고개를 끄덕이게 한다. 급히 손을 놀려 공책에 옮겨 적게 한다. 인덱스를 이미 너무 많이 붙여 붙이지 말까 고민하게 한다.


책을 선물하고 싶은 사람은
도서관을 선물하지 않는다
이 책에 너무 많은 밑줄을 긋지 마라.
물론 안다. 밑줄 긋고 싶은 문장이 어디 한둘이겠는가. 하지만 참아라. 밑줄이 많으면 밑줄은 없다. 강조가 많으면 강조는 없다.
- 248면


맞는 말씀입니다!
계속 발췌하고 싶은데 꾹 참아보겠다.


오늘 여기에 옮기지 못한 옮기고 싶은 문장들은 독자들께서 직접 확인하고 즐기시기를 강추합니다. 잠들기 전, 웃음을 머금고 기분 좋게 꿈꾸기 좋은 책, 다른 설명이 더 필요하지 않은 책, 《인생을 건너는 한 문장》


길이 없다 싶을 때도 미소 지으며 성큼성큼 인생을 건널 수 있도록 동글동글 윤이 나는 징검다리가 되어줄 《인생을 건너는 한 문장》 추천합니다.



세상에 없는 것은
있을 필요가 없으니
없는 것이다
여기서 알 수 있는 귀한 진실 하나.
당신은 꼭 필요한 사람.
- 26면




*** 출판사 김영사의 지원을 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했습니다. 감사합니다. ***


#인생을건너는한문장 #정철 #카피라이터의글 #에세이추천 #힘나는글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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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을 만나는 지름길, 철학의 뒷계단 - 탈레스에서 비트겐슈타인까지, 위대한 철학자 34인의 생애와 사상
빌헬름 바이셰델 지음, 안인희 옮김 / 김영사 / 202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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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가 살았을 1900년대의 독일 집을 상상해본다. 지금의 우리야 아파트에 사니 뒷계단이랄 것이 없지만 이런 집이라면 출입구가 여러 곳일 거다.


뒷계단으로 슬쩍 들어가 집주인의 꾸미지 않은 "생긴 그대로"의 숨겨진 모습을 엿본다는 발상이 재미있다.


허례허식이나 과장 없는 인간적인 모습, 더 나아가 인간적인 것을 넘어서려고 애쓰는 위대하고도 감동적인 노력까지 들여다보며 《철학을 만나는 지름길, 철학의 뒷계단》은 철학자들의 다양한 면모를 비춘다.


"(인간적인 노력까지도 보게 된다면)
뒷계단으로 올라온 무례함은 없어지고 오히려 철학자들과 진지한 대화를 할 수도 있다.
........
뒷계단은 장식이 없으니 사람의 마음을 홀릴 것도 없다. 그래서 이따금 더욱더 확실하게 목적지로 안내해준다."
- 8면


《철학을 만나는 지름길, 철학의 뒷계단》은
1905년 태생인 독일의 교수 빌헬름 바이셰델이 1966년에 출간한 책이다. 철학의 나라 독일에서 고전으로 인정받은 스테디셀러로 대학의 철학 개론 수업이나 학원가의 논술 교재로도 쓰이는 철학 입문서다. 철학 분야의 "사회교육 과정"의 역할을 하는 책이지만 어렵지 않다. "철학적 주제들을 보통 사람들의 일상의 담론으로 만들기"가 이 책의 목적이기 때문이다.


다수의 번역상을 받은 안인희 번역가가 2004년 《철학의 에스프레소》라는 제목으로 출간했지만 여러 출판사를 거치며 절판이 된 것을 김영사가 올해 《철학을 만나는 지름길, 철학의 뒷계단》으로 새롭게 펴냈다.


번역가님은 다시 거듭 읽으며 책을 손질했다. 전문용어를 최소한으로 줄이고 "존재"를 "있음"으로, "현존재"를 "여기있음", "진리"를 "참"으로 서양의 언어 형태를 쉬운 우리말로 바꾸는 힘든 작업을 감내하셨다. 덕분에 더 선명하고 신선하게 의미가 전달되어 철학의 중요한 개념들을 편안하게 살필 수 있게 한 번역가님의 노력이 정말 인상 깊었다.


《철학을 만나는 지름길, 철학의 뒷계단》은 34명의 위대한 철학자를 시대순으로 살펴보는 철학 역사서로도 볼 수 있다. 철학을 탄생시킨 고대의 탈레스부터 철학을 붕괴한 비트겐슈타인까지 서양 철학의 2500년 역사를 담았다.


저자는 풍부한 일화로 철학자들의 개성있는 일상을 전한다. 또 철학적 사상의 정수를 압축하여 설명하고 평한다. 뒷계단을 안다는 것은 집의 전체 구조를 파악하고 있다는 것. 한 명의 철학자를 공부하는 것도 어려울 텐데 이 많은 철학자들을 다 파고들었다니 저자의 방대한 지식과 영리한 해석이 놀라웠다. (게다가 그 어렵다는 칸트 전문가다.)


동시에 괴짜 같은 철학자들의 뒷모습이 재미있고 친근해 즐거웠다. '이 사람들도 똑똑한 척은 다 하더니 이상한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네.' 오히려 그들이 생생하게 입체적인 인간으로 그려졌다.


철학의 계단을 오르면, 결혼하라는 어머니의 요구를 이리저리 피해다녔던 탈레스가, 사람들의 지켜보는 시선은 아랑곳않고 24시간을 꼬박 같은 자리에 서서 생각에 잠겨 있던 소크라테스가, 눈에 띄는 거대한 몸피를 지녔음에도 “어떤 경우에도 남의 눈에 띄지 않겠다는 소망”에서 말을 거의 하지 않아 ‘말 없는 황소’라는 별명을 얻었던 토마스 아퀴나스가, 자신의 책 『자본』에 대한 반응이 전무하자 부정적 서평과 긍정적 서평을 직접 쓴 마르크스가 독자를 기다리고 있다. 물론 ‘세상이라는 책’에서 배우기를 바라며 유럽 각지를 떠돌던 모습 이상으로 은둔을 꿈꾸었던 데카르트, 정해진 일과를 엄격하게 지키는 것으로 유명했던 칸트라면 이런 갑작스런 방문을 못마땅해할 수도 있겠다. 칸트라면 다방면에서 해박했음에도, 햇빛이 빈대의 생존과 번식을 위해 꼭 필요한 것이라 여겨 햇빛을 차단하기 위해 늘 덧창을 닫아두었다는 일화도 빼놓을 수 없다.
- 출판사 리뷰 중


그중 가장 달리 보인 철학자는 소크라테스다. 《철학을 만나는 지름길, 철학의 뒷계단》에서는 그의 유명한 악처 크산티페에 대해서도 들려준다.


크산티페를 아내로 두지 않았다면 소크라테스도 소크라테스가 아닐 것이다. 니체는 이렇게 말한다. "소크라테스는 제게 꼭 필요한 아내를 얻었다. ... 크산티페는 정말이지 그가 점점 더 자신의 직업을 행하도록 내몰았다."

소크라테스가 자신의 서재에 틀어박혀 있었다면 그는 절대로 그 유명한 소크라테스가 되지 못했을 것이다.
- 45, 47면


크산티페는 남편이 철학 활동을 못하게 하려고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했다. 집을 끔찍한 지옥으로 만들고, 창문에서 남편 머리 위로 더러운 물을 부었다. 사람 많은 시장에서 남편의 외투를 벗겨가기도 했다. 그녀는 왜 그랬을까?


남편으로서 소크라테스를 바라보자. 겉으로만 보면 그는 싸돌아다니며 수다 떠는 일밖에는 하지 않았다. 그는 진짜로 빈둥거리는 사람이었다. 집과 아내와 자식들을 보살피지 않고, 정상적인 생계 활동을 하지 않고 사람들과 쓸데없는 잡담이나 한 것이다.


게다가 소크라테스는 게으름뱅이 유형이 전혀 아니었다. 운동을 열심히 했고 심지어는 춤도 잘 추었다. 단순히 건강을 위해서! 전쟁터에서도 다들 추위에 몸을 꽁꽁 싸고 있을 때도 맨발로 얼음 위를 걸었다고 한다. 다 도망치는 상황에서도 혼자서 장군을 따라 성큼성큼 걸어갔다. 태연히 아군과 적군을 살펴보면서 말이다.


소크라테스가 일정 부분 크산티페를 악처로 만들고, 크산티페도 일정 부분 소크라테스를 위대한 철학자로 만드는 데 기여했다면 더 억울한 사람은 누구일까? 우리의 테스형은 왜 자신의 가족을 내팽개쳤을까? 분명 누군가가 가족을 돌보라 말했을텐데 그때 그는 뭐라고 답했을까?


《철학을 만나는 지름길, 철학의 뒷계단》은 분명 재미있다. 높은 철학의 문턱을 낮추었다. 그러나 사실 결코 쉬운 책은 아니다. 문장은 쉽다. 어려운 단어도 없다. 번역도 훌륭하다. 그런데 이해가 안 된다. ㅎㅎㅎ


철학이 쉬우면 철학이겠는가. 철학자들이 온 생을 바쳐 사색하고 사유해 길어올린 형이상학적인 사고의 흐름을 이해하는 것이 단번에 될 일이 아님을 인정해야만 했다. 철학은 답이 아니라 질문이다. 질문에 질문하기다. "철학하기란 답변을 찾아내고 이 답변과 더불어 편안하게 쉰다는 뜻이 아니다. 철학하기란 언제나 새로이 본질적인 물음들을 내놓는다는 뜻이다."(344면)


지독하게 생각해 파고들 깊이가 있어야 철학이지, 금세 모든 것이 드러날 얕은 세계라면 철학이 아니지 않을까. 그 세계를 탐구할 호기심이 있다면 재미와 깊이를 겸비한 《철학을 만나는 지름길, 철학의 뒷계단》은 최적의 선택이라고 본다.


저자는 "올라감과 내려감"을 말하며 책을 마무리한다. "서른네 번을 올라간 사람은 내려가기를 잊어서는 안 된다. 내려가기가 그냥 무심하게 내려가기 아니면 심지어 그냥 떨어지기가 되지 않으려면, 올라가면서 경험한 것이 속에 간직되어야 한다. 조심스레 간직하며 내려가야만 철학자들의 층에서 얻은 통찰이 일상의 삶이라는 지층에서, 혹은 심지어 현실이라는 지하실에서도 쓸모가 있을 테니 말이다."


모든 걸 이해하지 않아도 된다. 일반 독자라면 그럴 수도 없는 일이다. 하지만 머리가 엉키는 혼란속에서 가느다란 깨달음의 한 줄기 빛으로 지적 희열을 맛본다면 조금만 더 철학적 세계에 머물러보자. 그 빛을 소중히 간직하며 책을 덮고 다시 열자.

그 횟수를 반복할수록 통찰은 빈번해질 것이다. 비판적 사고력이 높아지고, 자기성찰과 자아발견으로 가는 길목에서 삶의 의미가 선명해질 것이다. 다양한 관점과 문제를 다각적으로 분석하는 능력을 갖출수 있다. 자신을 깨는 순간들을 귀하게 여기며 일상으로 내려간다면 분명 커다란 변화가 작게 조금씩 따라올 것이다.


가까이 하기엔 먼 당신.
하지만 가까이 하고픈 매력적인 당신, 철학.
《철학을 만나는 지름길, 철학의 뒷계단》은 그러한 당신을 좀 더 친근하고 사랑스럽게 다시 볼 수 있게 하는 묘약이 될 것이다.


*** 출판사 김영사의 지원을 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했습니다.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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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든 하다 보면 뭐가 되긴 해 - 루마니아의 소설가가 된 히키코모리
사이토 뎃초 지음, 이소담 옮김 / 북하우스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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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부터 좋았다.
"뭐든 하다 보면 뭐가 되긴 해"
아이들이 폰만 붙들고 꼼짝 않고 있으면 절로 하게 되는 말과 닮았다. "얘들아, 그렇게 앉아만 있지 말고 뭐라도 해~" (^^;;) 뭐라도 하면 무슨 기회로든 연결될 거라는 평소 신념에서 나온 말이다. 그 믿음을 실제로 살아낸 나의 증인, 사이토 뎃초.


히키코모리로 오랜 시간을 지낸 저자 사이토 뎃초는 어려서부터 끝도 없이 내향적이고 생각이 과한 인간이었다. 마지막 여행은 고등학교 2학년 수학여행. 대학 입시를 망치고, 동일본대지진을 겪고, 간신히 대학에 들어가서는 사랑에 실패했다. 장 난치병인 크론병까지 걸린다. 그렇게 진정한 히키코모리가 되었다.


"부모님께 얹혀산다. 게다가 태어나서 지금까지 30년, 바깥세상에 제대로 나간 적이 없다."
- 24면
"상처받은 자신을 제대로 돌보지 않고 불성실하게 굴었다는 소리다. 그러다가 4학년 마지막에 힘이 다해 내 마음은 본가의 방구석에서 무너져 내렸고 더는 꼼짝할 수 없었다. 이때부터 아름다운 히키코모리 생활이 막을 연다."
-31면


꿈이 소설가라 일본 문학을 전공했지만 우울증을 겪으며 능동적인 행동인 독서마저 놓게 된다. 대체제로 영화에 몰두하며, 아무것도 이룬 게 없다는 초조함과의 투쟁을 영화 비평 쓰기로 맞선다. 인터넷에 영화 이야기를 쓰는 재야의 시네필들처럼 되고 싶어 그들을 흉내 내기 시작한 것이다. 일본에 공개되지 않은 작품을 닥치는 대로 보고 비평을 쓰다 깨닫는다.

"영화로 치면, 주변에서는 할리우드나 일본의 오락 영화를 보는데, 장뤼크 고다르를 보는 나, 완전 힙하다."
- 37면


'주변과 다른 내가 멋짐'이라는 나르시시즘을 부정적으로 보지 않고 에너지로 삼아, 긍정적인 정체성을 만들고 좋아하는 일에 파고드는 원동력으로 삼는 모습이 굉장히 인상적이었다.


"하나뿐인 자기 자신을 끝끝내 파고들어야만 도달할 수 있는 미지의 영역이 있다고 믿는다. 그러니 나는 '주변과 다른 내가 멋짐'이라는 나르시시즘에 인생을 걸었다. 그건 루마니아와 루마니앙에 인생을 거는 것이기도 했다."
- 38면



저자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꾼 영화 <경찰, 형용사> 루마니아어 자체를 주제로 삼아 그만의 독특함을 둘러싼 통찰이 풍부한 작품이다.


"내 뇌를 루마니아어 사전으로 후려치고 반강제로 루마니아 문단으로 끌고 간 대단한 은인이다."
- 39면


원래 뼛속까지 어학 오타쿠인 저자는 루마니아어에 빠진다. 그러나 희귀 언어를 전문적으로 배울 곳은 없었다. 교재도 턱없이 부족한 환경에서 루마니아어 학습은 가시밭길이었다. 일본은 물론 세계적으로도 루마니아어에 관심이 있는 사람은 없었다. 재미있게도 저자는 바로 그 지점에서 이런 생각을 한다.

"마이너한 언어를 배우려는 나,
완전 힙해... ."
- 58면


빵 터졌다. 오타쿠와 히키코모리적인 사고방식이 엉뚱하고도 유쾌한 시너지를 내는 장면이 아닌가! 저자의 깊은 곳에 굳건하게 흐르는 자기애가 지금의 그를 만들었다는 확신이 들었다. 탐나는 멋진 능력이다.


《뭐든 하다 보면 뭐가 되긴 해》는 자기가 좋아하는 걸 찾아가는 즐거운 여정을 담았다. 좋아하는 대상의 세계로 깊게 들어가는 자기만의 방식, 자신이 자극받는 포인트까지 세밀하게 파악한 자기 전문가의 진로 찾기로도 보였다. "그저 나의 즐거움만을 위해 마음 내키는 대로 경박하게" 좋아하는 일을 따라 한 발 한 발 걸어가며 예상하지 못한 길로 튀어 날아가는 과정이 무척 흥미로웠다. 일본 방구석에 틀어박힌 채 인터넷만으로 루마니아까지 영역을 넓힐 수 있음을 당당히 보여준다.


《뭐든 하다 보면 뭐가 되긴 해》의 핵심 키워드는 출판사가 내세운 '히키코모리'보다 '오타쿠'에 있는 것 같다. 독자의 흥미를 끄는 데는 히키코모리가 좋았겠지만 한 가지 분야에 온갖 방법으로 치열하고 집요하게 매달린 힘은 저자가 오타쿠였기 때문이라고 본다.


자기만의 세계를 구축하고 깊이 몰입하는 힘을 가진 이들. 그 세계 안에서 공동체 의식을 가지고 교류하며, 새로운 것을 배우고 성취하기를 좋아하는 사람들. 변태적인 이미지로 오해받기도 하지만 강한 자기 주도성과 끈기, 창의성과 독창성을 지닌 그들을 다시 만나는 시간이었다.


"한동안은 끝까지 쓴 것 자체에 성취감을 느꼈는데, 나는 그쯤에서 만족할 인간이 아니었다."
- 100면


책상 위에 수북히 쌓인 영화 노트는 장장 44권이다. 10년간 한 페이지에 영화 한 편을 기록한 것이다. 넷플리스 자막으로 루마니아어에 다가가고, 페이스북으로 4천명에게 친구 신청을 해 일상 표현을 배우며 슬랭까지 따로 공부한다. (페이스북으로 이어진 인연 덕분에 소설을 문예지에 기고하며 소설가가 되어 3년간 30편가량의 단편을 게재했다)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으로 루마니아어를 폭격하는 모양새다.


《뭐든 하다 보면 뭐가 되긴 해》를 읽으며 '꾸준히'가 세상 가장 어려운 나 같은 사람은 쉽게 다다를 수 없는 경지이기에 저자의 오타쿠적인 무궁한 에너지는 어디서 나오는 것인지 알고 싶었다. 정답을 찾지는 못했지만 힌트는 얻었다.


"자신이 좋아하는 것"
그것을 찾으면 우리도 오타쿠가 될 수 있지 않을까. 그 하나를 아직 찾지 못했기에, 찾았더라고 그에 대한 애정이 무르익을 만큼의 시간을 내어주지 못했기에 우리를 펼치지 못한 건 아닐까.


"나는 바로 당신에게 다른 곳에는 없는 가능성이 있다고 믿는다. 왜냐하면 그게 나였으니까, 나 같은 건 형편없다고 생각했던 예전의 나. 그저 지금 서 있는 그 자리에서도 할 수 있는 일이 있다. 그곳이기에 해낼 수 있는 것이 있다.

좋은 나쁘든
지금 네가 거기 그렇게
있는 게 최대의 강점
벅틱 [ NATIONAL MEDIA BOYS ]
- 252면


어디 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고, 우리가 지금 거기 있다는 사실, 그보다 가치 있는 건 없다는 응원. 내가 선 이 자리에서 뭐든 해낼 수 있다는 희망을 《뭐든 하다 보면 뭐가 되긴 해》를 통해 증명해 낸 성공 스토리는 용기를 북돋운다. 소설가가 되기까지 놀라운 행운이 이어진 것은 단지 운이 아니라 다각적으로 모든 노력을 기울인 준비된 능력 덕분임을 안다. 핑계 대지 말고, 변명하지 말고 여기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해보자. 그 다음은 지금은 알 수 없는 미래의 내가 또 해낼 것이다.


안주하고 정체하려는 나태함이 기어나올 때마다 주문처럼 되새기련다. "뭐든 하다 보면 뭐가 되긴 해"


나르시시트 덕후의 자기애 만땅 찬가 《뭐든 하다 보면 뭐가 되긴 해》 삶의 새로운 변화를 꿈꾸는 분, 좌절과 실패를 겪고 있는 분, 인생의 재미를 찾고 싶은 분, 긍정적인 에너지를 얻고 싶은 모든 분들께 추천합니다.


*** 출판사 북하우스의 지원을 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했습니다. 감사합니다. ***


#뭐든하다보면뭐가되긴해 #사이토뎃초 #북하우스 #루마니아소설가가된히키코모리 #오타쿠 #히키코모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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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사에 균열을 낸 결정적 사건들
김형민 지음 / 믹스커피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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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역사에 취약하다. 세계사는 더더욱 그렇다. 너무나 부족하지만 역사에 손끝이라도 닿아 보려는 시도를 조금씩 하고 있다. 내가 누리는 이 놀라운 현재에 이르기까지 숱한 희생과 헌신을 쏟은 지나간 생명의 존재들을 알기 때문이다.


그 존재들 중 특히 마음을 주고 싶은 사람들이 여기 《세계사에 균열을 낸 결정적 사건들》에 있었다.


"역사는 승자의 역사일 뿐이다"
역사를 기록하는 이들이 승자이기 때문에 승자독식의 기록으로 남은 역사이지만 그 틈바구니에서도 살아남은 작고 소중한 이야기들이 여기 있었다.


'계란으로 바위 치기'라는 걸 모르지 않으면서도 바위를 더럽히기라도 하겠다는 듯 스스로를 내던진 사람들도 있었다. 살아남고자 바짝 엎드리는 한편, 머리를 짜내고 발버둥 쳐서 살길을 마련하고 끝내 역전의 발판을 만들어내는 사람들도 있었다. 비록 뜻을 이루지 못했다 해도 뒤를 잇는 이들의 등불로 남아 거대한 잉걸불의 단초가 된 사람들도 있었다.
- 5면


"균열을 내려는 시도가
끊인 적은 없다"
패배는 처절했지만 짓눌린 사람들의 도전은 끊인 적이 없었다. 그 기억이 사람들의 머릿속에 남고 마음속에 새겨져 역사의 수레바퀴는 계속 굴러갔다.


교과서에 실려 죽은 지식으로 문자에 묻힌 거창한 사건들보다, 기억의 비좁은 틈새를 누비고 삶으로 살아낸 작은 자들의 이야기가 진짜 역사가 아닐까. 주목받지 못한 사람들이 역사의 본모습이 아닐까. 《세계사에 균열을 낸 결정적 사건들》을 읽는 내내 역사란 무엇인가 하는 질문이 함께 다녔다.


"이길 만한 사람들만 이기고 힘센 쪽은 결코 지지 않는 역사였다면 역사란 얼마나 재미없고 따분한 이야기의 반복으로만 채워질 것인가. '다윗'의 돌팔매 없이 '골리앗'의 승전보로만 점철된 역사는 얼마나 지루하겠는가."
- 16면


《세계사에 균열을 낸 결정적 사건들》의 저자 김형민은 "다윗과 골리앗"의 비유로 책을 꿰었다. 여린 소년 다윗처럼 승리할 가능성이 적은 약자 언더독들의 전략, 용기, 결의, 지혜, 신념 5가지 실로 역사를 재미있게 만든 사람들을 작품으로 완성했다.


저마다의 방식과 수단으로 드라마틱한 역전극을 만들고, 영웅적 비극을 써내며, 패배로써 역사를 다채롭게 한 역사의 찐 주인공들. 심심한 역사의 균열을 끌어낸 사연을 하나로 모았다.


30가지의 이야기들은 하나같이 처음 듣는 내용이었다. 평소 표정 변화가 적은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세계사에 균열을 낸 결정적 사건들》을 읽을 때는 절로 눈이 치켜올라가 이마 주름살이 자주 나타나고, 쯧쯧거리며 고개를 젓고, 안타까움에 얼굴이 일그러지기도 했다. 약자들의 희생과 시련이 마음 아팠지만 그래도 희망을 말하고 있는 저자의 속마음이 들렸다. "함께 뭐든 해보자고."


《세계사에 균열을 낸 결정적 사건들》은 고구려부터 조선의 이순신을 거쳐 1970년대 동일방직 여성 노동자들, 1980년대 프락치였다가 민간인 사찰을 폭로해 국군보안사령부를 무너뜨린 윤석양 이병, 지역주의에 맞선 노무현과 허대만까지 우리의 역사의 구석구석을 비춘다.


(윤석양)
"양심의 소리는 아주 작고 고요하지만 때로는 그 소리가 너무 커서 듣기조차 거부하다고 느낄 때가 있다"라는 토로에서 윤석양의 고뇌가 얼마나 치열했을지 짐작할 수 있다.
윤석양이 보안사를 탈출하던 그날은 .....
인간의 영혼을 도구로 삼는 어둠의 세력에게 끝내 왜 너희들이 어둠인가를 가르쳐 준 날이며, 한때 거인에게 꿇어 엎드렸던 다윗이 기어코 돌팔매를 던져 골리앗의 이마에 적중시킨 '디데이'였다는 뜻이다.
-332면

누가 출세를 하고 누가 행복하게 살았든 개인의 사정일 뿐이고 누구도 정답을 낼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누가 역사의 돌팔매를 부여잡고 거악과 맞섰는지, 그래서 결과적으로 대한민국을 변화시켰는지를 묻는다면 당연히 윤석양을 호명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 335면


사악하고 거대한 지옥 아우슈비츠에 자발적으로 들어간 비톨트 필레츠키의 이야기도 놀라웠다.
나치의 만행을 폭로하고자 혈혈단신 나선 기적 같은 용기를 낸 사람들이 있었지만 '설마 그런 일이 벌어질 수 있겠는가?' 믿을 수 없이 비현실적인 이야기는 어느 나라에도 받아들여지지 못했다고 한다.


"누구나 그 소문의 진상을 궁금해했지만 수용소 안을 들여다 보기 전에는 아무도 내막을 알 수 없었다. 필레츠키는 그 공포를 이겨낸다. 일부러 통행 금지를 어겨 독일군에게 체포된 뒤 아우슈비츠로 끌려간다. 수용소 잠입 목적은 수용소 안의 폴란드인을 규합해 저항군을 결정하는 데 방점이 찍혀 있었다."
- 83면


지하조직을 결성하고 조악한 재료로 무전기까지 만들어 외부와 교신했지만 바깥 사람들은 그 간절함을 외면했다. "아무리 독일놈들이라도 설마 그럴 리가. 가스실에서 무슨 인체 실험을, 이 사람 뻥이 심하군." 하면서 말이다. "폭격이라도 해달라. 제발! 가스실만이라도!" 절규했지만 폭격기는 오지 않았고 나치의 감시망은 비밀조직을 조여왔다. 결국 그는 민간인 복장을 구한 뒤 감시대원들을 제압하고 탈출에 성공한다. 참으로 용감한 분!!!


1944년 바르샤바 봉기에도 참여해 그 지옥에서도 살아나온다. 그러나 폴란드 망명 정부에 충성해온 그를 눈엣가시로 여긴 폴란드 공산 정부에 체포돼 사형을 선고받는다. "폴란드 만세." 그는 평생을 두고 충성하고 사랑한 나라를 입에 올리며 사형대에 선다.


"용감한 사람들, 정면으로 악에 저항하고 그것으로 생존의 의미를 삼은 사람들, 온갖 난관을 떨치고 깊숙이 숨겨진 진실의 옷자락을 잡아채 광장으로 끌어낸 이들 또한 항상 나타난다.
감당하기 어려운 막강한 적과 그들이 내뿜은 공포 앞에서 부러질지언정 꺾이지 않았던 다윗들의 가장 큰 무기는 용기와 신념이었다. 필레츠키라는 인물 역시 그를 대표하는 사람 중 하나였다.
그의 최후진술을 들어보자.
"죽음을 앞둔 순간에 두려움이 아니라 기쁨을 느끼는 삶을 살고자 노력했다." "
- 88면


역사라는 틀을 전혀 생각하지 못하고 빠져 읽었다. 울컥하게 만드는 글솜씨로 골수 팬들을 거느린 글쟁이라는 저자의 소개글이 뒤늦게 떠올랐다. 과연 그랬다. 이해하기 쉽게 복잡한 역사를 간추려 설명하지만 에세이스러운 서술로 역사 속 인물들의 감정을 고스란히 전하고, 인문학적인 질문을 결론에서 던지며 쓰고 달고 깊은 다채로운 글맛을 보게 했다.

《세계사에 균열을 낸 결정적 사건들》은 소수자, 여성, 노예 등 역사에서 배제된 주변부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끌어와 다층적이고 복잡한 역사의 구조를 보여준다. 언더독에 가까울 대부분의 독자들이 공감대를 자극해 우리 역시 역사의 일부라는 사실을, 역사는 권력의 승리가 아니라 권력과 저항의 상호작용이라는 사실을 가르쳐준다. 실패 역시도 역사의 흐름을 바꾸는 동력이 된다는 희망을 작은 영웅들의 이야기에서 볼 수 있었다.


요즘 《세계사에 균열을 낸 결정적 사건들》처럼 역사를 다채롭고 새롭게 해석한 관점을 담은 책들이 늘고 있는 것 같다. 하나의 같은 산도 어디서 바라보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모습으로 보이듯, 역사 또한 다각도에서 낮고 높은 여러 시선으로 통합적으로 살펴볼 때 진짜 모습을 파악할 수 있는 것 같다.


책이 들려주는 지나온 과거의 흔적 안에서 잠시 살며 같은 고민과 감정을 경험하고 나온 뒤, 우리는 한층 더 큰 다윗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세계사에 균열을 낸 결정적 사건들》이 전하는 기억할 만한 존재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보자. 새로운 변화는 1%의 가능성만 있어도 포기하지 않고 나아간 자들의 희망과 용기로 끊이지 않을 것이다. 생생히 살아내며 계속 싸우고 있는 역사의 과거와 현재를 기억하고 알려준 책, 그래서 미래를 여전히 꿈꾸게 한 책, 《세계사에 균열을 낸 결정적 사건들》 감사합니다.


"독립이 되는 건 아니지만,
알려줘야지. 우리는 계속 싸우고 있다고."
- 170면

"결국 기억이 세상을 움직인다.
아울러 오늘날 우리 곁에서 골리앗과 대항해 싸우는 사람들은 없는지 살펴보자. 그리고 그들을 기억하자. 그들 역시 우리에게 이렇게 말하고 있을 수도 있으니까.

"우리가 쓰러진다 해도, 우리를 기억해주시오."

- 166면




***출판사 믹스커피의 지원을 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했습니다.***

#세계사에균열을낸결정적사건들 #김형민 #언더독 #믹스커피 #작은힘으로세상을뒤집은승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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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전공자도 이해할 수 있는 AI 지식 (10만부 기념 개정판) - 챗GPT부터 유튜브 추천, 파파고 번역과 내비게이션까지 일상을 움직이는 인공지능 이해하기 비전공자도 이해할 수 있는
박상길 지음, 정진호 그림 / 비즈니스북스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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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가 노벨상을 휩쓰는 시대?"
이번 노벨상은 한강 작가님의 문학상 수상에 모든 이목을 집중하는 바람에 노벨 물리학상이나 화학상 수상자는 누구인지 사실 몰랐다.


그런데 수상자들이 모두 전통적인 학자가 아니라 AI를 연구했거나 AI를 이용한 과학자들이라고 한다.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들이 만든 딥러닝과 인공신경망 기술은 물리학에 뿌리를 두고 있다. 노벨 화학상도 같은 맥락으로, AI가 과학의 중심으로 자리잡고 그 가치를 당당히 인정받은 의미있는 사건인 것 같다.


과학계뿐 아니라 우리의 일상도 마찬가지다.

"챗GPT는 어느덧 우리 일상의 필수품이 됐습니다. 여행 계획을 세우고 맞춤 관광 코스를 제안하며, 취향과 예산에 맞는 패션 아이템을 추천하고, 연애에 대해 조언하고, 독창적인 소설을 집필하고, 다양한 장르의 노래 가사를 씁니다. 복잡한 수학 문제의 풀이법을 설명하고, 프로그래밍 코드를 작성하며, 역사적 사건을 분석하기도 합니다. 다국어 번역, 문서 요약, 비즈니스 전략 수립, 과학적 가설 제시, 요리 레시피 개발 등 폭넓은 분야에서 능력을 발휘합니다."
- 10면


사실 아직 나는 챗GPT를 잘 사용하지 않아 지나가듯 저자가 한 이 말에 적잖이 놀랐다. 나만 이렇게 AI에 손 놓고 있나 싶다. 하지만 기사를 찾아보니 챗GPT를 유료로 쓰는 국내 사용자 비율이 6%라고 한다. AI 챗봇에 대해 '어느 정도 아는 편이다'고 답한 비율은 42.1%, '잘 안다'는 반응은 3.4%였다. 반대로 '들어는 봤지만 잘 알지 못한다'는 이는 40.9%였다.


AI 현장의 전문가인 저자와 나 같은 일반인이 체감하는 AI의 활용은 무척 다른 것 같다. 하지만 분명 미래 사회는 AI와 밀착될 것이다. 스마트폰이 널리 보급된 지 10년 만에 95%의 성인이 이용하게 된 것처럼 말이다.


"인공지능은 당신을 대체하지 않습니다.
인공지능을 이해하고 활용하는 사람이 당신을 대체할 뿐이죠."
- 11면


《비전공자도 이해할 수 있는 AI 지식》의 저자 박상길은 말한다. 지나치게 기술에 의존할 필요도 없지만 그렇다고 기술에 공포를 느껴서도 안 된다고. AI로 빠르게 변화할 미래에 적응하며, 시대가 요구하는 경쟁력을 갖춰 더 나은 의사 결정을 하기 위해서는 어렵고 복잡해도 AI를 알아가는 노력이 얼마쯤은 필요하다.


AI는 그렇게 어려운 개념이 아니다. 다음 세대의 스마트폰과 같다. 스마트 스피커가 음성 명령을 이해해 알람 설정, 음악 재생, 날씨 정보를 제공한다. 내비게이션 앱이 최적의 경로를 도로 상황에 맞춰 안내한다. 넷플릭스, 유튜브에서 취향에 맞춰 콘텐츠를 추천한다. 스마트폰 보안 시스템이 얼굴을 인식한다. 챗GPT는 업무의 효율성을 높여준다. 이미 우리가 편리하게 쓰고 있는 기능을 더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것이다.


《비전공자도 이해할 수 있는 AI 지식》는 2022년에 출간된 AI 분야 교양서로, 10만부 기념 개정판으로 최신 정보를 업데이트해 다시 출간되었다. 현직 전문가가 대중을 위해 쉽고 간결하게 풀어낸 책으로 이미 인정받은 AI 입문서다.


저자 박상길은 카카오 챗봇, 다음커뮤니케이션에서 검색엔진을 만들고 현대자동차 AI팀 리더를 맡았던 AI 기술 현장의 전문 엔지니어다. 《비전공자도 이해할 수 있는 AI 지식》은 제목 그대로 복잡한 수식을 배제하고 학생들도 쉽게 이해하는 데 초점을 두고 집필했다.


"고심해서 고른 인공지능의 8가지 쓸모를 자세히 소개합니다. 각 서비스가 어떻게 작동하는지 구체적인 원리를 살펴보면서 인공지능 서비스에 매력을 느낄 수 있도록 했습니다. 특히 원리를 이해하는 것이 얼마나 우아하고 아륻마운 일인지를 깨닫게 하고 이를 통해 기술과 과학에 대한 이해를 높이고, 나아가 여러분이 다른 분야에도 작동 원리를 응용하여 도움이 될 수 있도록 했습니다."
- 16면


그 8가지 인공지능 분야는
알파고. 자율주행. 검색엔진. 스마트 스피커(시리야~). 기계번역. 챗봇. 내비게이션. 추천 알고리즘.


특히 자율주행에 관한 내용이 재미있다.
넘어야 할 산이 많지만 기업들은 2014~2017년까지 3년 동안 우리 돈으로 90조 원을 넘게 투자했다. 왜냐고? 자율주행차는 산업 전반에 엄청난 변화를 가져오기 때문이다.


먼저 개인이 자동차를 소유할 필요가 없어진다. 앱으로 호출하면 집 앞까지 자율주행차가 달려와 대기할 테니까. 대중교통은 지하철 중심으로 재편될 것이다. 버스, 택시, 트럭, 우버나 카카오 택시까지도 운전과 관련한 직업은 대부분 사라질 것이다.


호텔 산업도 큰 영향을 받는다. 이동 중에 자율주행차에서 숙박할 수 있으니 숙박소가 필요 없어진다. 우리나라는 좁아서 덜하겠지만 미국처럼 큰 나라는 엄청난 변화가 있을 것이다.


부동산 업계도 요동칠 것이다. 교통이 편리한 입지의 의미가 약화되어 부동산 가격 기준이 지금과 달라질 것이다. 이렇게 군사, 물류, 보험, 의료, 정비, 항공 등 다양한 분야가 자율주행차에 영향을 받는다니! 미래를 미리 예측한다는 것은 완전히 새로운 차원으로 시간을 보게 한다.


《비전공자도 이해할 수 있는 AI 지식》은 이렇게 관심 분야가 아니라 평소에는 듣기 어려운 흥미로운 이야기들을 전한다.


인공지능의 역사와 메커니즘까지 설명하고 있어 모든 내용을 파악하려면 품이 든다. 하지만 애쓴 만큼 이해의 폭이 깊어지면 얕은 지식에 그쳤을 때와는 달리 입체적이고 폭넓게 세상을 보고 적응해갈 수 있을 것이다.


게다가 개발자 출신의 IT 전문 일러스트 정진호님의 앙증맞은 그림 300컷이 과학 교양서임에도 부담을 덜어주어 마음을 더 편안하게 해준다.


《비전공자도 이해할 수 있는 AI 지식》는 또,
AI 개발과 활용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편견, 프라이버시 침해, 책임 소재 등 다양한 윤리적 문제를 논의할 필요성도 강조한다.


AI는 인간이 빚어낸 공학으로 삶을 풍요롭게 할 "도구"임을 짚어준다. 두려워하지 않고 인공지능을 더 이해하고 활용하며, AI 기술의 발전으로 직면할 다양한 문제에 대해 고민하고, 미래 사회를 함께 만들어 갈 책임감까지 아우르는 책이었다.


AI의 세계로 발을 들여놓을 수 있도록 친절하게 손을 내밀어주는 안내서로 《비전공자도 이해할 수 있는 AI 지식》 추천합니다.



*** 출판사 비즈니스북스의 지원을 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했습니다.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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