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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만 코드 - 매혹적인 이야기의 8가지 스토리텔링 비밀
길종철 지음 / 프런트페이지 / 2025년 3월
평점 :
"무엇이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는가?
지난 35년 동안 이 질문은 나의 뇌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8면
35년간 영화산업과 학계에서 활동한 대한민국 최고의 스토리텔링 전문가, 길종철. 한국영화아카데미 책임교수, 국내 최대 영화 투자배급사 CJ엔터테인먼트 대표를 거쳐, 현재는 한양대 연극영화학과 교수로 강의 중이다. 평생 고민한 질문의 답은 "스토리"였다고 그는 확신한다.
"오늘날 우리는 이야기의 홍수 시대에 살고 있다.
인간의 소통 수단이 다름 아닌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286면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는 것은 곧 설득이고, 그에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 이야기라는 저자의 결론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돌이켜 보면 세상과 삶의 모든 것은 이야기다. 우리는 이야기로 삶을 기억하고, 이야기로 자아를 구성한다. 스토리텔링은 전달하려는 메시지를 이야기로 풀어내 상대가 흥미롭게 받아들이게 하는 과정이다. 일상의 대화부터 우리가 주고받는 모든 의미 체계가 결국 이야기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천만 코드》는 취향이 파편화되는 시대에도 천만 관객과 소통한 영화들을 분석한다. 주인공, 중심인물, 진실, 욕망, 변화, 카타르시스, 아이러니, 지킬 것과 새롭게 할 것이라는 키워드로 매혹적인 스토리의 8가지 비밀을 풀어냈다. <도둑들> <광해, 왕이 된 남자> <명량> <국제시장> <변호인> <7번방의 선물> <서울의 봄> <범죄도시 시리즈> 등 누구나 알 만한 영화들이 가득하다.
전문가의 시선으로 영화 안팎의 이야기들을 쉽고도 다채롭게 분석한다. 덕분에 기억이 희미했던 영화들이 당시보다 더 풍성하고 깊이 있게 다가왔다. 영화를 사랑하고, 영화 채널을 즐겨보며, 평론까지 찾아보는 이라면 누구라도 흥미롭게 읽을 책이다. 나 역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몰입했다.
스토리에서 가장 중요한 건 무엇일까?
<STORY: 시나리오 어떻게 쓸 것인가>의 저자인 세계적인 스토리 대가 로버트 맥키는 주저하지 않는다. "감정이입 (empathy)."
관객이나 독자를 이야기 속으로 끌어들이는 데 가장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건 주인공이다. 주인공은 스토리의 심장, 관객의 아바타이자 가이드이다. 관객은 주인공을 통해 감정이입하며 이야기에 몰입하게 된다.
"영화의 흥행은 마치 눈사람을 만들 때 한 줌의 눈으로 시작해 눈덩이를 굴리고 불려가면서 궁극적으로 거대한 눈사람을 완성하는 것과 흡사하다. 그 한 줌의 단단한 눈덩이가 영화에서는 바로 주인공이다."
"<도둑들>은 화려한 주인공 집단을 미끼로 던지고 관객의 관심을 낚아챈 후 흥행성이 가장 높은 단독주인공 전략으로 최종 플롯을 완성했다. 이로써 시종일관 관객으로 하여금 주동인물 마카오박을 따라 집중력을 잃지 않게 하고, 점점 더 깊이 영화에 몰입하도록 만들었다. 이 점이 바로 천만영화의 반열에 오른 진짜 비결이다."
- 41면
글쓰기에서도 독자가 마음을 사로잡으려면, 독자가 화자와 마음을 나누고 함께할 수 있어야 한다. 응원하고 싶고 행복을 바라게 되는 인물, 독자가 감ㅈ어이입하는 '한 편'이 되는 것이 중요하겠다는 걸 깨달았다. 감정이입으로 독자가 이야기를 따라가는 그 시간과 경험이야말로 재미의 실체이자 대중성을 만드는 원리임을배웠다.
(그래서 글쓰기가 이토록이나 어려운 것이었구나!)
"주인공은 어떤 일이 있어도 그 이야기에서 가장 사랑할 만한 사람이어야 한다. .... 나는 '매력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 매력이란 그가 자신의 한계를 온몸으로 껴안는 행동을 할 때(그간의 우리 용어로 치자면, 생고생할 때), 그걸 지켜보는 사람(작가나 독자) 내부에서 저절로 일어나는 공감의 감정에서 비롯한다고 생각한다.
-김연수, <소설가의 일>
아이러니에 관한 통찰도 무척 인상 깊었다.
"스토리텔링은 아이러니를 통해 삶의 복잡성을 포착하는 예술이다." - 마크 트웨인
"현실이란 잔인할 정도로 아이러니한 것이며 바로 이 때문에 아이러니로 끝맺는 작품이 가장 긴 수명을 얻고 가장 널리 보여지며, 관객들로부터 가장 높은 칭송을 받고 애정을 얻게 되는 것이다."
- 215면
아이러니로 점철된 삶을 비유한 스토리는 그 의미가 더 깊게 각인되어 강력한 힘을 발휘한다. SF나 판타지 같은 허구의 이야기에도 현실의 감정과 관계의 원리가 깃들어 있기에 우리는 마음을 내어줄 수 있다. 사람들은 세상살이와 먼 이야기에 흥미를 느끼지 않는다. 이중적인 의미는 곧 삶의 은유이자 삶을 관통하는 언어다.
"아이러니는 우리가 사는 현실의 복잡성을 반영한다. 우리는 아이러니를 통해 삶을 더 잘 이해할 수 있다. 아이러니를 통해 진실을 드러낼 수도 있다. 이게 스토리텔링의 목적이다."
-236면
"스토리는 삶의 모습을 담고 있어야 하지만 아무런 깊이나 의미가 없는 보통 삼ㄹ의 단순한 복사판이 되어서는 곤란한다. 누군가의 삶을 그려내 우리의 삶으로 느끼고 받아들이게 해야한다. 그것이 바로 스토리텔링이다."
-237면
《천만 코드》를 읽으며 독자의 마음을 사로잡는 글쓰기에 대해 생각한다.
글쓰는 나를 영화의 주인공에 대입하니, 김연수 작가님 말씀처럼 "사랑할 만한 매력적인 사람"이 되어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된다. 감히 꿈꿔본 적 없는 상상이다. 생고생하는 나를 통해 독자들 내면에서도 절로 공감의 감정이 피어나는 글쓰기. 그 길을 향해 한 발짝 나아가고 싶다. 부러 찾지 않아도 한계와 고난은 또다시 닥쳐올 테니 온몸으로 그 터널을 지나면서 누군가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더 나은 이야기로 익어가고 싶다.
삶이라는 흙에서 꽃이 피고 열매가 맺히는 이야기들이 품고 있는 진심과 진실의 힘을 확신하게 된 것도 큰 수확이다. 다층적이고 모순된 삶의 구석구석에서 피어나는 이야기야말로 삶의 재미와 깊이, 감동을 더하는 필수 요소라는 것을, 평안하게만 살고 싶은 욕망을 조금씩 꺾으며 받아들들이고 있다.
'하늘 아래 더 이상 새로운 이야기는 없다' 그렇기에 어떻게 이야기할 것인가가 훨씬 더 중요해진 이 시대, 《천만 코드》는 스토리 입문서이자 참고서로서, 더 나아가 효과적인 설득과 소통의 실마리를 영화의 언어로 풀어놓은 훌륭한 커뮤니케이션 교양서로서 손색없는 재미있는 책이다. 자신있게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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