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겐 너무 어려운 스몰토크 - 나의 특별하고도 평범한 자폐 스펙트럼의 세계
피트 웜비 지음, 임슬애 옮김 / 윌북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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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악수는 생략해도 될까요?
있죠, 제가 자폐인이라서."
- 294면


이 책은 승진과 부모가 된 겹경사의 순간에 오히려 우울증과 극심한 번아웃을 겪으며, 병원에서 자폐 스펙트럼이라는 진단을 받게 된 교사의 이야기다. 어려운 강연은 잘 해내지만 스몰토크와 신발 끈 묶기, 신문 구독 취소 같은 사소한 일들이 끔찍하게도 어려웠던 이유를 서른네 살이 되어서야 알게 된 것이다.


이 책의 진짜 목적은 섣부르고 어설픈 자폐인에 대한 오래된 고정관념을 자폐인의 실제 삶의 경험으로 풀어내, 그들이 어떻게 삶을 운용하는지 보여주는 것이다. 물론 동시에 서로 다른 세계를 이해하지 못해 어긋한 소통 때문에 그들이 치러온 좌절감, 실망감, 끔찍한 혼란과 외로움을 함께 아파할 수 있도록 재치와 유머를 섞어 무겁지 않게 전한다.


자폐인들은 이상하다고? 이 책을 읽으며 나도 자폐 스펙트럼인가 의심할 정도로 저자에게 공감하는 상황이 많았다. 즉시 이해하고 판단해서 답해야 하는 전화 통화가 힘들다. 가면을 쓰는 데 능숙하고, 스몰토크가 어렵다. 불안도가 높으며, 내게 친절한 사람이라면 쉽게 믿는다.


나도 별나고 유난스러운 사람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난 모두가 조금씩은 이상하다고 생각한다. 이상함의 기준이 주류와 다르다고 낙인찍는 게 과연 옳을까? 그들이 비정상인 게 아니라 세상이 너무 규격화되고 획일적인 건 아닐까?


"자폐인에게는 놀라운 점이 가득하다.
놀라운 점 하나는 우리가 기본적이고 일상적인 일들을
해내지 못한다는 것이다. 또 하나는 압도적으로
복잡하고 어려운 작업은 아무런 문제 없이 쉽게
해낸다는 것이다.
전자는 우리에게 극도의 좌절감을 안겨준다."
- 110면


이 말은 역설처럼 들리지만 우리 사회의 기준이 얼마나 일방적인지를 생각하게 했다. 일상생활의 기본기는 사실 전형성에 맞춘 기술일 뿐, 누구에게나 쉬운 게 아니었다. 반대로 자폐인이 보여주는 복잡한 영역에서의 몰입과 정확성은,
우리가 기본이라 여기는 능력보다 훨씬 희귀하고 가치 있는 기술일 수 있다. 이 사회가 쉬운 것만을 잘하는 사람을 정상이라 동그라미 치고, 어려운 걸 잘해도 ‘기본이 안 됐다’며 빗금 치며 탈락시킨다는 점은 이제서야 기이하게 보인다.


이 책을 통해 "신경 다양인"에 대해 처음 알았다.
신경 다양인(Neurodivergent)은 뇌가 신경 전형인(Neurotypical)에 비해 생물학적으로 정보를 처리하고 감각을 느끼고 사회와 상호작용하는 방식이 다르다. 자폐 스펙트럼(ASD), ADHD, 학습장애(난독증, 난산증 등), 뚜렛, 불안장애, 틱부터 넓게는 감각 과잉, 내향적 HSP(초민감자)도 포함될 수 있다. 자연스럽게 "생물 다양성"이 떠올랐다.


생물 다양성은 곧 자연의 생존력이다. 단일종만 있다면 한 번의 병충해에 생태계는 전멸할 것이다. 기후 변화, 질병, 천적 등 끊이지 않는 위기로부터 무너지지 않기 위해서는 다양한 종이 함께 살아야 한다. 버티고 이기는 힘이 다양성에서 나온다.


생물 다양성은 자연 생태계의 건강뿐 아니라 인간의 건강에도 중대한 역할을 한다. 자연의 다양한 미생물들은 인간의 면역 체계가 균형을 유지하고, 특정 질병에 대한 저항력을 높이는 데 기여한다. 다양한 식물과 동물에서 얻는 영양소가 우리의 건강을 유지하는 데 필수인 것은 말할 것도 없다.


우리도 마찬가지다. 신경 전형인만 있는 사회는 약하다. 다양한 감각과 시선이 있어야 인간 생태계도 건강하다. 모두 똑같이 느끼고, 생각하고, 대처한다면 새로운 문제와 변화에 인류는 잘 적응할 수 있을까. 다양성이야말로 문제를 해결하고, 미래를 대비하는 인류의 자산이다.


자폐 스펙트럼에서 스펙트럼은 스펙트럼(continuum)이라는 말 자체가 자폐와 비자폐로 나누지 않는다는 뜻이다. 유형이 아니라 연속선상에 있는 것이다. 그러니 자폐를 비롯한 신경 다양성은 ‘특수한 누군가의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 모두가 속한 인간 생태계의 일부다.


다만 그중 일부는 조금 더 예민하고, 다수의 리듬에 맞춰 살아가기 위해 더 많은 에너지를 소모할 뿐이다. 그들을 장애로 낙인찍기보다, 우리가 사용하는 정상의 기준을 먼저 의심해 보는 것, 그것이야말로 진짜 공존을 위한 시작일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우리는 조금씩 다르고, 조금씩 비정형적이며,
결국엔 모두 각자의 리듬으로 살아가는 신경 다양인이다.
모두가 똑같지 않아도,
서로에게 너무 어렵지 않은 대화로 함께 하는 세상.
이 책은 그런 세상을 꿈꾸게 한다.


이상하다고 여겼던 사람들을 나와 조금 다른 연속선상의 이웃으로 받아들이고, 내 안에 이상한 세계를 수용하고 확장하고 싶은 사람이라면 이 책과 함께 의미 있는 경험을 쌓을 수 있을 것이다. 세상과 나 자신에게 조금은 다르게 말을 걸게 될지도 모른다. 내 안의 이상한 세계를 부정하지 않고 껴안는 법, 그 다정하고 단단한 연습을 시작할 수 있길 바란다.



#도서지원 #나에겐너무어려운스몰토크 #윌북 #피트웜비 #자폐스펙트럼 #자폐 #신경다양성 #신경다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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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이 답했다 마땅히 가져야 할 부에 대하여 고전이 답했다 시리즈
고명환 지음 / 라곰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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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릇이 되면 부는 따라온다’는 말을 면죄부처럼 여기며 안도하며 지냈다. 그것을 덕이라고, 순리라고 부르며 애써 움직이지 않아도 괜찮단 자기합리화의 근거로 붙들었다. 하지만 아니었다.


<나는 어떻게 삶의 해답을 찾는가>부터 고명환 작가님의 팬이 되었다. 3년 반이 넘도록 (오늘로써 1311일째) 매일 아침마다 긍정 확언 영상을 올리는 행동 하나만으로도 큰 자극을 주신다. 그러한 꾸준함 뒤에는 책에서 얻은 깨달음과 통찰이 있다는 것을 알기에 그의 책들은 일단 믿고 본다.


이 책은 전작 《고전이 답했다 마땅히 가져야 할 삶에 대하여》와 한 글자만 다르다. "삶과 부". 두 책 다 고전을 기반으로 쉽지만 깊게, 철학적이지만 현실적으로 삶을 해석한 인문 에세이다. "기승전독서"라고 할 만큼 독서를 강조해서 독서 에세이라 봐도 무방할 것 같다. 언뜻 보면 구성과 문체가 비슷해서 두 책 간에 차이를 눈여겨보며 읽었다.


전작이 고전에서 찾은 삶의 의미로 인생 전반의 태도를 말하는 기초과정이라면, 이번 책은 그 위에 부에 관한 건강한 태도를 재정립하는 심화과정이란 생각이 들었다.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자신만의 방향을 잡았다면 '돈에 대한 혼란이나 죄책감, 욕망을 다룰 줄 아는가'하는 단계로 인생의 가치관을 구체화하는 것이다.


사실 나는 '부'에 대해 큰 관심이 없다. 흔히 말하듯, 그릇이 되면 부는 저절로 따라온다는 말을 어설프게 믿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책을 읽으며 알았다. 덕은 부의 바탕이 될 수는 있지만 부는 준비된 자가 쟁취하는 적극적이고 실질적인 결과물이었다. 하늘을 올려다 본 채, 입만 벌린다고 해서 잘 익은 감이 정확히 쏙 내 입에 떨어질 수는 없는 노릇이다.


고전 속 부자들도 덕을 길렀지만 동시에 철저히 계산하고, 부를 설계하고, 현실을 직시했다. 부는 철학이라기보다는 기술이다. 그릇보다는 도구로 보는 관점이 지금 내게 필요했다. 그릇이 되기만 하면 된다는 건 반쪽짜리 진실이었다. 부는 따라오는 게 아니라, 내가 능동적으로 끌어와야 하는 거였다.


고명환 작가님의 이번 책도 정말 만족스러웠다. 처음부터 답을 아는 선생님처럼 전달하지 않고, 의문을 갖고 답을 찾아가는 사유의 과정을 같이 걸어가자 손 내미는 것 같았다. 다층적이면서도 깊게 사유하는 저자여서 그런지 각 챕터는 짧지만 묵직하다. 좋은 책을 만나면 늘 그랬듯, 나는 이번에도 많은 줄을 긋고 끄적이며 즐거웠다.


가장 인상 깊었던 주제는 "호리병이 아닌 대접에 담을 것"

"노자가 말했다. 찰흙으로 그릇을 만드는데,
텅 빈 공간이 있어서 그릇의 기능이 있게 된다고.
빈 곳을 흙으로 다 채우면
그것은 그릇이 아니라 그냥 흙덩어리다.
방 역시 마찬가지다.
문과 창과 벽이 있고, 그 안에
텅 빈 곳이 있어야 방이다.

돈을 벌려면 이 '텅 빈 공간'을 이해해야 한다."

반드시 빈 곳을 만들어야 한다. 돈을 좇는 사람은 욕심으로 입구 쪽이 점점 좁아지는 호리병이지만 돈을 제대로 버는 사람은 주둥이가 넓어지는 대접 같다. 고객을 우선으로 하고 남을 구하려고 애쓰는 마음이 대접 같은 그릇이다. 주둥이가 넓어지면 품을 수 있는 공간도 점점 커진다. 그릇은 점점 커지고 그 안에 돈은 저절로 채워진다. 돈의 선순환이다.


채우는 데만 급급하기 쉬운 세상. 원자는 99.9%가 비어 있고 0.1%만이 원자핵으로 이뤄진다는 사실과 노자의 공 사상을 떠올리며 인생에도 텅 빈 공간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선명하게 새길 수 있었다.


여전히 나는 "그릇" 개념에 끌리지만 이제는 안다. 진짜 부를 담는 그릇은 멍하니 도 닦는 신선이 아니라 계산하고 설계해 온몸을 움직인 도공의 작품이라는 것을. 그저 크기만 한 그릇이 아닌, 타인을 담을 넉넉함과 부를 순환시킬 구조를 갖춘 대접을 설계할 때다.



#도서지원 #고독한북클럽 #고명환 #고전이답했다 #고전이답했다마땅히가져야할부에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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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 관찰 일기 쓰기 - 관찰하고 기록하며 자연과 친해지는 법
클레어 워커 레슬리 지음, 신소희 옮김 / 김영사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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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언가를 똑바로 보려면 그것을 그려야 하며...
보는 것과 그리는 것은 결국 하나임을...
세상은 내가 끊임없이 재발견하는 것임을 배웠다."
- 프레더릭 프랭크, <보는 것의 선>


자연 관찰 일기?
그림일기는 알지만 자연을 관찰하는 일기가 있다는 건 처음 알았다. 자연을 관찰하고 인식하고 느낀 내용을 규칙적으로 기록하는 일기라니, 일기의 세계는 생각보다 다채롭다.


자연 관찰 일기는 머릿속을 벗어나 자연의 세계에 들어서기 위한 시간이다. 그러니 일반 일기처럼 자신의 고민을 중심 주제로 다루지 않는다. 자연 앞에서 내가 어떻게 반응했는지, 무엇을 배웠는지 자연이 주인공이다. 핵심은 잘 보는 것이다. 하늘에 구름이 떠 있는지, 새소리가 들리는지, 날씨가 어떤지, 어떤 식물이 보이는지 간단한 질문을 품고 내 반응을 덧붙이면 된다.


잘 그릴 필요 없다.
중요한 건 글이나 그림보다도 얼마나 잘 '보고' 기록했는가니까.
"내가 사는 이곳의 자연에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을까?" 묻는 호기심을 갖는다면 더 잘 볼 수 있다.


"자연 관찰 일기를 작성하는 '올바른' 방법은 없습니다.
자연 관찰 일기를 잘 쓰려면 융통성이 있고
어디까지나 자신의 의도에 충실해야 합니다."
- 18면


《자연 관찰 일기 쓰기》 책에는 다양한 샘플 일기가 실려있다. 그리기의 기초에서 기록 요령까지 전체를 개괄하되 장황하게 설명하지 않는다. 도전해 봄직하겠단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나도 해봤다.


물꽂이 중인 얼룩자주달개비를 그렸다. 잎이 이렇게 많았나, 하나하나 다 그리다 보니 잎맥을 따라 손이 멈췄다. 낙서라고 생각하고 끼적여봐도 좋다며, 1~2분 안에 빠르게 그리라고 책은 말했지만, 그 짧은 순간에 집중하게 되는 기분이 근사했다.


자연을 관찰하려면 멈출 수밖에 없다. 자연을 관찰하고 그리기 위해 멈춘 나는 생각하는 사람이 아니라 느끼는 인간이었다. 시각, 촉각, 청각, 후각까지 오감이 켜졌지만 쉬는 것 같았다. 자연 앞에서 뇌가 해석을 멈추고 존재에 집중하는 것. 디지털에 잠식당한 숨 막히는 시간과는 결이 다른 빈틈 같은 시간이었다.

관찰은 존재를 바라보는 훈련이었다. 기후 위기로 생태 감수성이 중요해진 시대에 자연 관찰 일기는 누구나 실천할 수 있는 생태적 사고였다. 아이들과 함께 수첩이나 스케치북을 들고나가 자연 관찰 일기를 쓴다면 시의적으로도 훌륭한 교육이 될 것이다.


자연을 관찰한다는 건 곧 나를 들여다보는 일이다. 관찰은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는 연습이다. 보는 눈이 달라지면 일상에 의미가 더해진다. 달리던 시간에 브레이크를 걸고, 삶을 다시 감각하고 싶은 사람이라면 이 책을 통해 자연에 다가가보자. 느린 눈으로 자연을 보자. 그러면 나도 다시 보인다. 자연처럼 더 나 다워질 것이다.


⁠#도서지원 #자연관찰일기쓰기 #클레어워커레슬리 #자연관찰 #일기 #자연관찰일기고전 #김영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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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 나이 들수록 행복해지는 인생의 태도에 관하여 - 103세 할머니 의사의 인생 수업
글래디스 맥게리 지음, 이주만 옮김 / 부키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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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을 때까지 건강하고
행복하게 사는
6가지 인생의 비밀"

시대가 급변하고 있다. 예전 같으면 나이가 들수록 익숙한 것들에 둘러싸여 삶이 점차 안정되지만, 이제는 아니다. 계속해서 새로운 것들을 배우며 변화에 맞춰야 한다.

더군다나 지금은 100세 시대. 늙을수록 적응력은 떨어질 텐데, 세상은 반대로 점점 빠르게 변하니 늙는다는 건 쉬어도 되는 게 아니라, 더 오래 버텨야 한다는 뜻이 됐다. 죽을 때까지 건강하고 행복하게 산다는 말이 압박처럼 느껴지곤 한다. 이런 막연한 두려움이 《나이 들수록 행복해지는 인생의 태도에 관하여》를 집어 들게 했다. 이 책이 내가 놓친 삶의 희망을 보여주지 않을까.


축복
- 나태주

처음보다는
나중이 좋았더라
좋았어도 아주 많이 좋았더라
날마다 너의 날들도
그러기를 바란다


나중이 아주 좋은 인생을 바라지 않을 이가 어디 있을까. 103세 '전인의학의 어머니'로 불리는 글래디스 맥게리 의사의 인생 수업이 끝이 더 좋은 삶의 6가지 비밀을 말한다.


전인의학은 질병만을 대상으로 삼지 않는다. 몸, 마음, 감정, 영성까지 포함한 ‘인간 전체’를 하나의 유기체로 보고 치료한다. 그래서 이 책은 무엇을 먹으라, 어떤 활동을 하라 같은 장수의 비법이 아니라 "관점 전환"을 이야기한다.


"진정한 의미의 건강은
질병을 진단하거나 그저 수명을 연장하는 것과는 관련이 없다.
그보다는 자신이 누구인지 알아내고,
어떻게 성장하고 변화해야 하는지 알아차리고,
무슨 일을 할 때 가슴이 뛰는지 귀 기울이는 것과 관련이 있다."
- 28면


몸과 정신의 문제들이 건강한 삶에 영향을 끼치는 것은 맞지만 건강한 삶을 '결정짓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저자는 건강과 행복의 결정적 요소로 "생기"를 강조한다. 생기는 살아 있다는 느낌, 살맛 나는 기분, 삶을 끌고 가는 내면의 동력이다. 그것은 우리가 태어난 이유와 연결된다.


"우리가 이 세상에 존재하는 이유는 고유한 재능과 연결되기 위해서다. 이 재능과 연결될 때 삶의 의욕이 솟는다. 하지만 이 재능과 반드시 연결해야만 의미가 있는 것은 아니다. 탐색 과정 자체에 더 중요한 가치가 있다. "자신의 생기를 찾는 과정" 자체가 우리를 생명력 넘치게 만든다. "
-56면


생기는 타고나는 게 아니라 찾고 연결하는 힘이다. "너 자신을 알라." 지금 당신을 설레게 하는 일이 있다면 그게 바로 당신만의 생기다. 좋아하는 일을 좇을 때, 목적은 저절로 드러난다. 이 생명력은 나만을 위한 것이 아니기에 세상과 직결되어 있다. 재능을 발휘하고 그것으로 세상에 기여할 때, 삶을 긍정하고 나아가는 행복한 인생이 된다.


건강하고 행복한 삶의 6가지 비밀은 이것이다.
1. 당신은 이 세상에 태어난 이유가 있다
2. 모든 생명은 움직여야 산다
3. 사랑은 가장 강력한 치료약이다
4. 당신은 결코 혼자가 아니다
5. 모든 것은 당신의 스승이다
6. 에너지를 마음껏 사용하라


창조적 생명력이 끊이지 않는 행복한 삶을 살기 위해서는 결국 사랑이 중요했다. 자신을 사랑하지 않고, 사람들을 사랑하지 않는다면 생기가 솟는 샘물은 마르고 만다. 사랑이 생명을 흐르게 하고, 몸과 마음을 치유하며, 일에 에너지를 쏟게 하고, 긍정적인 관점을 갖게 한다. 사랑과 연결될 때 우리의 세상은 커진다.


미래에 대한 불안이 앞길을 막는 것이 아니었다. 100세 시대가 공포로 다가오는 건, 목적 없이 오래 살아야 한다는 상상 때문이다. 두려움은 생기를 찾으라는 신호로서 진짜 방향을 묻고 있었다. 세상이 요동쳐도 사랑하고 싶은 것, 연결되고 싶은 사람, 하고 싶은 일을 찾았다면 불안은 방향을 가리키는 감각이 된다.


우리는 세상에 단 하나뿐인 퍼즐 조각이다. 생기는 나만의 형태를 찾아 세상과 맞물릴 때 흐르기 시작한다. 그런데 세상은 2차원의 평면 퍼즐이 아니라 3차원의 입체 퍼즐이다. 사방으로 휘고 구부러진 내 퍼즐 모양을 알기란 얼마나 어렵겠는가. 그래서 사람들은 각자 자신의 퍼즐 조각이 어떤 모양인지 발견하는 데 평생을 보낸다.


세상의 퍼즐 조각 중 하나로서 온전한 나다움을 찾는 과정이 인생인 것 같다. 다른 조각들과 조화를 이루고, 나 자신의 고유한 빛깔로 내 자리를 찾아가는 여정이 행복하고 건강한 삶이다.


이 책을 읽으며 '어떻게 오래 살아야 하나'라는 질문이 '어떻게 하면 살아 있는 삶을 살까'라는 고민으로 바뀌었다. 생기는 살아 있는 나로 존재하는 힘, 고갈되지 않는 삶의 연료였다. 내 안의 생기라는 불씨를 해답으로 찾아낸 오늘의 결론이다. 맡은 자리를 성실히 채움으로 나의 존재 가치를 매일 새롭게 깨닫는 노년, 좋았어도 아주 많이 좋은 삶의 나중을 꿈꾸게 됐다.


#도서지원 #나이들수록행복해지는인생의태도에관하여 #글래디스맥게리 #부키 #노후준비 #노년기 #인생의태도 #생기 #생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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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제의 날들
조 앤 비어드 지음, 장현희 옮김 / 클레이하우스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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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제의 날들》은 2024년 영국 왕립문학학회의 국제 작가로 선정된 미국의 시인, 소설가, 에세이스트인 조 앤 비어드의 "에세이 + 소설"이다. 한 권에 소설과 에세이를 동시에 실어 새로운 읽기 경험을 선사한다.


총 9개의 작품 중 소설로 발표한 건 두 작품이지만 무엇이 소설이고 에세이인지 구분할 필요는 없었다. 에세이와 소설의 경계에서 사실의 진정성과 허구의 몰입감을 아름답게 조율한 글은...... 그렇다. 분명 자기답고 아름답게 실재하고 있었다.


실화를 바탕으로 했지만 소설적인 흐름과 긴장감이 어디까지가 사실이고 어디서부터 허구인지 구분할 수 없게 했다. 하지만 그건 중요하지 않았다. 뭣이 중헌디. 이야기 안에 담긴 감정은 모두 진짜였으니, 독자는 그 속에 풍덩 빠져들기만 하면 된다.


"넋이 나간 듯, 그녀는 마지막 순간을
어머니의 젊은 얼굴을 올려다보며 보낸다.
셰리?
여전히 어머니를 바라보며, 셰리는 고개를 끄덕인다.
누군가 그녀의 팔을 잡는다.
주삿바늘은 차갑고, 순식간에 그녀는 감각을 잃는다.
두꺼운 얼음층이 그녀와 남자들을 분리한다.
셰리는 비좁은 공기주머니 속에서 천천히 호흡하고,
머리 위로 화려한 스케이트를 신은 아이들이 모여든다.
그녀는 얼음 밑에 볼을 댄 채 잠시 거기 머문다.
그러다 곧 누군가의 손이 내려와 그녀를 아래로 밀어 넣는다."
- 116면


암으로 고통스러웠던 생을 마감하기 위해 안락사를 택한 셰리의 마지막 장면이다. 실제 지인의 죽음을 다룬 이 장면에서 장르를 융합하는 실험의 정점을 본 것 같았다. 얼음 아래 잠긴 이미지로 죽음을 은유한 문장을 읽으며 인물과 함께 그 순간을 체험한 듯했다. 나는 감히 누군가의 죽음을 상상해 글로 옮기는 일을 시도하지 못할 것 같다. 뛰어난 작가의 용기와 감각 덕분에 두 세계가 접히는 경계를 경험할 수 있어 좋았다.



"이 정도로 구체적인 문장을 쓰면서
버릴 문장이 없을 수 있다니"
김겨울 작가의 이 한 마디가 정말로 이해되는 글이었다.


국어시간에 배웠다. 중심문장과 뒷받침 문장을.
하지만 《축제의 날들》은 문장 하나하나가 독자적인 의미를 가지고 모두가 주인공처럼 빛난다. 설명하지 않고 보여줌으로써 느끼게 한다. 감정을 묘사하지 않고 암시한다. 그 여백이 특유의 문체를 만들고 독자의 내면을 강하게 건드린다.


자신이 보고 느낀 세상을 고해상도 렌즈로 걸러낸 후 예술로 창조하고, 감정선까지 정밀하게 설계한 것 같았다. 작가의 시선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내가 작가의 눈이 되고 귀가 된다.




"몹쓸 피로와 고통으로 인해 자기 자신이 죽어가는 동물처럼 느껴진다. 이 모든 것이 마치 축사와도 같다. 더러움, 냄새, 그리고 소의 몸 안에 갇혀 침대에서 화장실까지 비틀거리며 터벅터벅 걸어가는 느낌까지. 몸이 특히 더 나쁜 오후, 셰리는 마치 먼 곳에서 들려오는 것 같은 자기 목소리를 듣는다. 겁에 질린 소 울음소리 같은 것이 깊고 길게 울린다."
- 67면



아이비리그 중 한 곳인 세라 로런스 칼리지에서 글쓰기를 가르치는 교수이기도 해서 저자의 글에 대한 사유도 인상 깊었다.


"가장 중요한 질문은
'이 작품의 표면 아래 숨어 있는 메시지는 무엇인가?'이다.
.......

좋은 에세이는, 좋은 단편, 좋은 회고록,
좋은 소설도 마찬가지이지만,
아이디어에 달려 있다. 그래서 좋은 작품은
명목상 주제를 넘어
보편적인 무언가를 조명하면서
스스로 고양할 수 있는 것이다.
문학은 교훈을 준다.
작가는 독자보다 더 현명하고
더 많은 지식을 갖추어야 한다는 뜻이다.
그래서 논픽션 워크숍에서 내 노력의 절반은
아이디어와 문제를 끌어내는 데 쓰인다."
- 182면


글을 쓰는 이유는 제각각이겠지만, 독자가 누군가의 글을 읽는 이유는 무언가를 얻기 위함이다. 내면을 성장케하는 글의 실용성을 지향하는 나 역시 "무언가를 조명하면서 스스로 고양한다"라는 저자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아이디어와 문제를 끌어내는 데 노력의 절반을 들인다는 저자의 태도가 스승께 전해 받은 가르침처럼 내 안에 오래 남았다.



"사랑하는 반려견의 죽음,
불타는 건물 안에 갇힌 남자,
암 투병 끝에 안락사를 선택하는 여자,
죽어가는 친구와 배신한 남편을 떠올리는 이야기까지."



고통과 죽음의 언저리를 기록한 이 책의 제목은 왜 "축제의 날들"일까? 축제의 사전적 의미를 찾아보고 놀랐다. "축하와 제사를 통틀어 이르는 말"

탄생과 죽음, 희극과 비극, 양극단의 감정이 한 단어에 고여 있었다. 삶에서 지워지지 않는 밀도 높은 날들을 축제로 정의한 적확함에 감탄했다. 슬픔이든 기쁨이든 일상을 흩트린 의도치 않은 기념일은 삶의 클라이맥스이자 의미 있는 축제일 수 있다. 그런 날들을 축제로 재해석한 저자 덕분에 나는 오늘 조금 더 커진 것 같다.


축제란 누군가에게는 떠들썩한 환희지만 다른 누군가에겐 조용한 작별일지도 모른다. 삶은 이것과 저것의 사이, 웃음과 울음의 경계에서 오히려 더 뚜렷해지는지도 모르겠다. 기억이라는 무대 위에서 우리의 축제는 어떤 얼굴이었을까. 《축제의 날들》은 그 얼굴을 오래 바라보게 한다. 나도 언젠가 내 인생이 지나왔을 축제의 날을 기록할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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