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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겐 너무 어려운 스몰토크 - 나의 특별하고도 평범한 자폐 스펙트럼의 세계
피트 웜비 지음, 임슬애 옮김 / 윌북 / 2025년 7월
평점 :
"아, 악수는 생략해도 될까요?
있죠, 제가 자폐인이라서."
- 294면
이 책은 승진과 부모가 된 겹경사의 순간에 오히려 우울증과 극심한 번아웃을 겪으며, 병원에서 자폐 스펙트럼이라는 진단을 받게 된 교사의 이야기다. 어려운 강연은 잘 해내지만 스몰토크와 신발 끈 묶기, 신문 구독 취소 같은 사소한 일들이 끔찍하게도 어려웠던 이유를 서른네 살이 되어서야 알게 된 것이다.
이 책의 진짜 목적은 섣부르고 어설픈 자폐인에 대한 오래된 고정관념을 자폐인의 실제 삶의 경험으로 풀어내, 그들이 어떻게 삶을 운용하는지 보여주는 것이다. 물론 동시에 서로 다른 세계를 이해하지 못해 어긋한 소통 때문에 그들이 치러온 좌절감, 실망감, 끔찍한 혼란과 외로움을 함께 아파할 수 있도록 재치와 유머를 섞어 무겁지 않게 전한다.
자폐인들은 이상하다고? 이 책을 읽으며 나도 자폐 스펙트럼인가 의심할 정도로 저자에게 공감하는 상황이 많았다. 즉시 이해하고 판단해서 답해야 하는 전화 통화가 힘들다. 가면을 쓰는 데 능숙하고, 스몰토크가 어렵다. 불안도가 높으며, 내게 친절한 사람이라면 쉽게 믿는다.
나도 별나고 유난스러운 사람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난 모두가 조금씩은 이상하다고 생각한다. 이상함의 기준이 주류와 다르다고 낙인찍는 게 과연 옳을까? 그들이 비정상인 게 아니라 세상이 너무 규격화되고 획일적인 건 아닐까?
"자폐인에게는 놀라운 점이 가득하다.
놀라운 점 하나는 우리가 기본적이고 일상적인 일들을
해내지 못한다는 것이다. 또 하나는 압도적으로
복잡하고 어려운 작업은 아무런 문제 없이 쉽게
해낸다는 것이다.
전자는 우리에게 극도의 좌절감을 안겨준다."
- 110면
이 말은 역설처럼 들리지만 우리 사회의 기준이 얼마나 일방적인지를 생각하게 했다. 일상생활의 기본기는 사실 전형성에 맞춘 기술일 뿐, 누구에게나 쉬운 게 아니었다. 반대로 자폐인이 보여주는 복잡한 영역에서의 몰입과 정확성은,
우리가 기본이라 여기는 능력보다 훨씬 희귀하고 가치 있는 기술일 수 있다. 이 사회가 쉬운 것만을 잘하는 사람을 정상이라 동그라미 치고, 어려운 걸 잘해도 ‘기본이 안 됐다’며 빗금 치며 탈락시킨다는 점은 이제서야 기이하게 보인다.
이 책을 통해 "신경 다양인"에 대해 처음 알았다.
신경 다양인(Neurodivergent)은 뇌가 신경 전형인(Neurotypical)에 비해 생물학적으로 정보를 처리하고 감각을 느끼고 사회와 상호작용하는 방식이 다르다. 자폐 스펙트럼(ASD), ADHD, 학습장애(난독증, 난산증 등), 뚜렛, 불안장애, 틱부터 넓게는 감각 과잉, 내향적 HSP(초민감자)도 포함될 수 있다. 자연스럽게 "생물 다양성"이 떠올랐다.
생물 다양성은 곧 자연의 생존력이다. 단일종만 있다면 한 번의 병충해에 생태계는 전멸할 것이다. 기후 변화, 질병, 천적 등 끊이지 않는 위기로부터 무너지지 않기 위해서는 다양한 종이 함께 살아야 한다. 버티고 이기는 힘이 다양성에서 나온다.
생물 다양성은 자연 생태계의 건강뿐 아니라 인간의 건강에도 중대한 역할을 한다. 자연의 다양한 미생물들은 인간의 면역 체계가 균형을 유지하고, 특정 질병에 대한 저항력을 높이는 데 기여한다. 다양한 식물과 동물에서 얻는 영양소가 우리의 건강을 유지하는 데 필수인 것은 말할 것도 없다.
우리도 마찬가지다. 신경 전형인만 있는 사회는 약하다. 다양한 감각과 시선이 있어야 인간 생태계도 건강하다. 모두 똑같이 느끼고, 생각하고, 대처한다면 새로운 문제와 변화에 인류는 잘 적응할 수 있을까. 다양성이야말로 문제를 해결하고, 미래를 대비하는 인류의 자산이다.
자폐 스펙트럼에서 스펙트럼은 스펙트럼(continuum)이라는 말 자체가 자폐와 비자폐로 나누지 않는다는 뜻이다. 유형이 아니라 연속선상에 있는 것이다. 그러니 자폐를 비롯한 신경 다양성은 ‘특수한 누군가의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 모두가 속한 인간 생태계의 일부다.
다만 그중 일부는 조금 더 예민하고, 다수의 리듬에 맞춰 살아가기 위해 더 많은 에너지를 소모할 뿐이다. 그들을 장애로 낙인찍기보다, 우리가 사용하는 정상의 기준을 먼저 의심해 보는 것, 그것이야말로 진짜 공존을 위한 시작일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우리는 조금씩 다르고, 조금씩 비정형적이며,
결국엔 모두 각자의 리듬으로 살아가는 신경 다양인이다.
모두가 똑같지 않아도,
서로에게 너무 어렵지 않은 대화로 함께 하는 세상.
이 책은 그런 세상을 꿈꾸게 한다.
이상하다고 여겼던 사람들을 나와 조금 다른 연속선상의 이웃으로 받아들이고, 내 안에 이상한 세계를 수용하고 확장하고 싶은 사람이라면 이 책과 함께 의미 있는 경험을 쌓을 수 있을 것이다. 세상과 나 자신에게 조금은 다르게 말을 걸게 될지도 모른다. 내 안의 이상한 세계를 부정하지 않고 껴안는 법, 그 다정하고 단단한 연습을 시작할 수 있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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