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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더월드 - 심해에서 만난 찬란한 세상
수전 케이시 지음, 홍주연 옮김 / 까치 / 2025년 7월
평점 :
"관심을 두어야 할 곳은 사물의 표면이 아니다."
- 테런스 매케나
우리는 바다를 안다고 말하지만, 실은 심해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다. 《언더월드》는 그 무지를 경이로 바꾸는 책이다.
"심해에는 철을 호흡하는 생물,
유리 골격으로 이루어진 생물,
피부로 소통하는 생물들이 있다.
몸의 안팎을 뒤집을 수 있는 생물도 있다.
입이 두 개일 수도, 심장이 세 개일 수도,
다리가 여덟 개일 수도 있다.
수천 개의 작은 몸이 마치
군대처럼 모여 이루어진 생물도 있다.
노란색 불빛을 쏘는 심해 생물도
최소 1종 이상 있다. 어떤 생물은
속이 다 비치는 머리를 가지고 있다.
그리고 그곳에서 가장 연약해 보이는 생물조차,
대형 트럭을 찌그러뜨릴 만큼의
수압을 견딜 수 있다."
- 32면
수심 200미터 아래의 바다, 심해.
심해는 지표면의 65퍼센트, 생물이 사는 공간의 95퍼센트를 차지한다. 지구의 모든 대륙과 섬을 태평양 안에 집어넣어도 남아메리카를 하나 더 집어넣을 수 있다니, 막연하게 가늠해온 지구의 크기가 얼마나 말도 안 되게 작았던 건지 뒤늦게 부끄러움이 밀려왔다.
《언더월드》를 통해 만난 심해는 바다의 우주였다. 우주보다 더 알아낸 것이 없는 세계인지도 모른다. 화성 탐사용 로버는 3개인데 비해 잠수정은 1대뿐이라니 말이다. 압력은 사람 몸을 납작하게 누를 정도로 세다. 물은 냉장고보다 차갑다. 빛은 없지만, 많은 생물들이 스스로 빛을 낸다. 지구 생명체의 절반이 살고 있지만 대부분 미지의 존재다.
"미지의 물속 세상이 우리의 발밑에 항상 존재한다는 사실, 우리가 사는 세계 안에 또다른 수중 세계가 있다는 사실은 언제나 일종의 마법처럼 나에게 경이와 두려움을 동시에 불러일으켰다."
-22면
그 이름만으로도 우리를 숨죽이게 만드는, 말 그대로 ‘깊고 어두운’ 세계. 《언더월드》는 내게 심해에 관한 책이라기보다, 심해로 연결되는 단 하나의 채널이었다. 저자가 전하는 심해의 경이로움과 기묘한 생물들, 히말라야의 봉우리들을 거꾸로 뒤집어놓은 형태로 파인 해구와 해곡 등 상상하지 못한 지질학적 구조들까지, 과학적인 지식과 관련된 모든 이야기들은 판타지처럼 신기하고 신비로웠다.
지루하고 어려운 과학책일 거라 예상했지만 전혀 그렇지 않았다. 소설인지 과학책인지 분간할 수 없을 정도로 문학적으로 아름다운 문장들이 이어진다. 전미 잡지상을 수상한 저널리스트이자 <O, 오프라 매거진>의 편집장이었던 수전 케이시의 필력은 예상하지 못한 놀라움이었다.
챕터마다 인물들이 등장하며 플롯이 흐르고, 그 안에 과학 지식이 녹아있다. 팩트를 나열하기보다 저자가 보고 느낀 감각을 과하지 않은 시적 언어로 전달한다.
사실 심해보다 저자의 글솜씨에 홀려서 읽었던 것 같다. 담백하고 깔끔한 단문의 책들을 주로 읽다가 길고 복잡하지만 전혀 힘들이지 않고 술술 써내려간 유려하고 자연스러운 매력이 넘치는 글에 빠졌다. 나도 모르게 낭독하며 글맛을 음미하고 있었다.
그렇게 이 책 자체가 어느새 내게는 심해로 보였다. 문장과 내용이 안팎으로 모두 신비롭게 살아있었다. 활자는 검푸른 수압 속을 유영하듯 흐르고, 문장은 생물발광처럼 어둠을 밝힌다. 모든 문장들이 내가 전혀 알지 못했던 세계를 표현하고 있었다. 그 메시지들은 찬란하고 역동적인 동시에 그야말로 경이로웠다.
차갑고도 찬란하며, 삭막해 보이지만 실은 가장 치열하게 살아내는 존재들로 가득한 심해의 경이로움을 이보다 더 경이롭게 전달할 수 있을까. 활자들이 생명처럼 움직이며 지구의 가장 깊은 곳으로 데려가는 듯했다.
"하늘을 날면서 비행기를 고치고 있었던 셈이죠."
-221면
심해를 사랑하고 연구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도 무척 흥미로웠다. 그들 또한 심해의 생명체처럼 보였다. 빛도 닿지 않는 그곳을 향해 생명을 걸고 묵묵히 나아가, 인간이 닿을 수 없는 경계를 넘나드는 그들 역시 이해하기 어려운 놀라운 존재였다.
인간이 자연을 어떻게 사랑할 수 있는지, 어떻게 닿을 수 없는 세계를 향해 나아갈 수 있는지를 이 책을 목격하고 경험할 수 있어서 참 감사했다. 한 편의 긴 시이자 기도 같았던 시간이었다. 물 한 방울 없이도 물속으로 고요하게 가라앉는 듯한 경험이었다.
책을 덮은 뒤에도 여전히 심해에 잠긴 듯했다. 심해는 깊고, 어둡고, 멀다. 하지만 그 안엔 빛나는 생명들이 있고, 그곳을 향해 가는 사람들이 있다.
심해의 경이로움을 경이롭게 전하는 데 성공한 《언더월드》, 꼭 경험해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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