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 불꽃과 빨간 폭스바겐 - 낯선 경험으로 힘차게 향하는 지금 이 순간
조승리 지음 / 세미콜론 / 2025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기어코 세상을 구경하고
사람을 겪어내며
최대치로 느낀
'살아 있다는 감각' "


이 한 줄이 이 책을 잘 말해준다.
삶을 단단히 붙잡고자 기어이 길을 나선 사람의, 가장 뜨겁고 솔직한 기록.


좋은 여행이란 뭘까.
SNS에 올릴 만한 풍경? 맛집 리스트? 삶의 전환점이 되는 어떤 깨달음? 우리는 여행에서조차 특별한 ‘의미’를 남기고, 추억이든 배움이든 무언가를 득템하고 돌아와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리곤 한다. 시간과 에너지에 돈까지 들였으니 여행이라는 고생 끝엔 응당 낙이 와야 하고, 끝이 좋아야 다 좋은 것이니 말이다. 그런데 조승리 작가의 《검은 불꽃과 빨간 폭스바겐》은 그 익숙한 틀을 당연하다는 듯 깨뜨린다.


작가님은 십 대 시절 발병한 질환으로 빛 정도만 구별할 수 있는 시각장애인이다. 20년간 안마 일을 병행하며 글을 쓴다. 2023년 샘터 문예공모전 생활수필 부문 대상을 받고, 2024년 《이 지랄맞음이 쌓여 축제가 되겠지》 첫 에세이집을 출간했다. 이 책은 이병률 시인과 문재인 전 대통령의 추천을 받으며 베스트셀러에 오른다.


전작의 소문을 익히 들어왔기에, 작가님의 차기작 소식이 반가워 잽싸게 서평단에 지원했다. 제목마저 강렬하다. 《검은 불꽃과 빨간 폭스바겐》 당최 어떤 내용일지 알 수 없어 호기심 가득, 기대 만발한 설렘으로 책을 마주했다.


수평선을 흔들듯 바다에 풍덩 빠지는 익살스러운 해가 표지를 장식했다. 물끄러미 그 해를 바라보다, 문득 자신이 직접 쓴 책의 표지를 보지 못한다는 사실이 마음에 걸린다. 그리고 어떤 모습으로 작가님은 글을 쓰셨을지 궁금해진다. 일반적으로 시각장애인은 음성으로 화면을 읽어주는 스크린 리더와 일반 키보드로 글을 쓴다고 한다. 컴퓨터 앞에 앉아 듣고 두드리며 모든 걸 쏟아냈을 작가님의 작품이 내 앞에 당도했다. 이 책은 보지 못하는 세상을 누구보다도 실감나게 불꽃처럼 그린 날 것의 에세이였다.


《검은 불꽃과 빨간 폭스바겐》은 여행기로 시작한다. 말레이시아, 일본, 백두산, 필리핀, 마카오, 베트남... 좋은 여행에 대한 질문이 먼저 떠오른 이유도 그래서다. 예상한 대로 평범한 여행기는 아니다. 저자는 엉망진창이었던 여정까지도, 불편했던 기분과 실패로 가득 찬 경험들마저도, 굳이 미화하지 않는다.


조금 당황스러웠다. 이대로 끝난다고? 이쯤에서 뭔가 감동적인 반전이나 근사한 성찰이 나와야 하지 않나? 시각적 정보가 아니라 촉감, 냄새, 소리, 감정 같은 것들로 쌓인 기억의 기록은 엉망이라면 엉망인 채로 남는다. 엉망이라는 건 어떤 기준에서는 불편함이겠지만, 또 다른 기준에서는 감각적으로 가장 풍부한 순간일 수 있다.
그렇게 풍성한 감각으로 드러난 이야기들은 솔직해서 정이 갔다.


"예상대로 여행은 엉망이 됐다.
내가 그토록 가보고 싶었던 앙헬레스는 치안 문제 때문에 데려갈 수 없다며 가이드에게 거절당했다. 해안가인 수비크에서 노을을 오랫동안 보고 싶었는데, 가이드가 곧 차 막힐 시간이라고 다그쳐 얼마 머물지도 못하고 다시 차를 타고 돌아와야 했다. 툴툴대는 가이드가 꼴도 보기 싫었지만 어쨌든 며칠간은 그의 안내를 받아야 했기에 팁을 챙겨주었다. 다음 날 그는 약속 시간을 두 시간 넘겨 출근했다. 전날 내가 준 돈으로 밤새 술을 마셨다 했다."
-70면


조승리 작가는 삶이나 여행을 포장하지 않는다. 삶이란 게 꼭 어떤 의미를 가져야만 하는 것은 아니라고, 버거웠으면 버거운 대로, 망했으면 망한 대로 둔다. 어쩌면 그 안에서 뭔가를 끌어내려고 애쓰는 순간, 진짜 경험은 오히려 묻혀버릴 수 있다. 불편한 기억도 그대로 놓아둘 수 있는 용기, 그것이야말로 어떤 사람에게는 더 깊은 통찰이 될 수 있다.


책이라는 것은 애초부터 타인에게 읽히기 위한 매체다. 누군가에게 보이고, 이해받기 위해 문장은 끝없이 펼쳐진다. 자연스럽게 작가는 독자들에게 어떻게 보일까에 묶인다. 어떻게든 그럴듯한 의미를 만들어야만 할 것 같은 압박이 압정처럼 집필이라는 길에 뿌려진다.


조승리 작가는 그 틀을 아무렇지도 않게 부수어 버렸다. 부족하고 보이기 싫은 모습조차도 그대로 존중받을 자격이 있다는 선언 같다. 그것은 글쓰기를 남이 아닌 자신을 위한 도구, 자기 회복이나 존재 확인의 수단으로 삼은 자의 당당함이다.


나라면 절대 못했을 일이다. 꿈보다 해몽이다. 엉망으로 구겨져버린 경험에서도 그럭저럭 봐줄 만한 부분을 고르고 골라내 꾸몄을 것이다. 솔직하게 실패를 드러내는 척하면서 결국은 아름답게 마무리하기 위해 요리조리 머리를 굴렸을 것이다.


그래서 이 책이 좋았다. 멋진 글을 쓰기보다 정직하게 자기 존재를 남기는 자의 멋과 자유가 있다. 그 지점에서 생명이 불꽃처럼 타오른다. 여행이든 일상이든, 꼭 교훈이 따라붙지는 못한다. 때로는 아무 의미도 없고, 방향도 없고, 그저 힘들고 후회스러운 날도 있다. 그럴 수 있다. 당연하다. 매 순간 의미로 충만하지 않아도 인생은 그대로 괜찮다.


그런데 나는 어떻게든 무엇이라도 추출하고 싶었다. 내가 부족해서 놓쳤을 뿐, 그 모든 시간에 반짝반짝 귀한 의미가 있다고 믿었다. 그것을 찾아내 글로 표현하고, 누군가에게 즐거움과 도움을 줄 수 있다면 최선을 다해 노력할 가치가 있다고 믿었다. 내 삶이 좋은 이야기로 남길 바랐다.


내가 조승리 작가님처럼 쓸 수 없다는 걸 안다. 하지만 작가님의 이 통쾌한 용기를 닮고 싶다. 타인의 공감도 좋지만 내 삶의 진짜 결도 지키고 싶다.


결국 기록의 가치는 '완벽한 해석'이 아니다.
중요한 건, 내가 그때 무엇을 느꼈고 어떻게 견뎠는가, 그 흔적을 남기는 일이다. 시간이 지나면 엉망이던 순간도 웃음이 되거나, 뜻밖의 깨달음이 되어 돌아온다. 글은 그것들이 돌아와 닿을 수 있는 투명한 연결고리가 되어준다.
이 책은 그렇게 갑갑한 내 글쓰기에 숨구멍이 되어주었다.



"낯선 경험으로 힘차게 향하는 지금 이 순간"
부제처럼 이 책은 내게 낯선 글쓰기로의 방향을 보여주었다. 당신도 검은 불꽃이라는 과거의 어둠을 연료 삼아 빨간 폭스바겐을 타고 미래로 나아가는 조승리 작가님의 세계를 낯설게 만나보길 추천한다.


#도서지원 #검은불꽃과빨간폭스바겐 #조승리 #이지랄맞음이쌓여축제가되겠지 #세미콜론 #에세이추천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어떻게 이 삶을 사랑할 것인가 - 무의미한 삶을 지탱하는 10가지 깨달음
마이클 노턴 지음, 홍한결 옮김 / 부키 / 2025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어떻게 이 삶을 사랑할 것인가》는 원제목 <The ritual effect>에서 알 수 있듯, 삶을 사랑하는 방법으로 리추얼을 제안한다. 리추얼(의식)이란 일상 속에서 나만의 의미를 담아 반복하는 행동으로, 우리의 감정과 행동에 긍정적인 영향을 준다. 의미 없이 자동으로 행하는 것이 아니라, 의도적이고 의식적인 의미가 있기에 삶에 리듬과 활력을 불어넣는 도구로 작용한다.


리추얼에 관한 책들이 대부분 심리학, 종교학, 인문학적 접근이었다면 《어떻게 이 삶을 사랑할 것인가》는 행동경제학적인 관점에서 설명한 점이 흥미로웠다. 저자 마이클 노턴은 하버드대학교 경영대학원 경영학 교수이자 행동경제학 연구 권위자다. 경영학자이지만 심리학 기반에서 의식을 통해 인간 행동을 분석한다.


"왜 리추얼이 삶을 풍요롭게 하는가"를 인간 행동의 과학적 메커니즘으로 풀었다. 이론에 그치지 않고 다양한 사례와 실험으로 공감과 흥미를 끌어내, "내가 왜 이걸 할 때 기분이 좋은지", "왜 반복하면 의미가 생기는지"를 납득시킨다. 행동경제학은 "당연한 것"에서 통찰을 발견하는 학문이기에 너무나 평범해서 놓쳤던 작은 행동들이 어떻게 우리의 인생과 행복에 영향을 주는지 새로운 시선으로 비춰준다.


"삶을 사랑할 방법을 찾고 실천하는 순간,
삶의 본질은 그 어느 것보다 특별하고 아름답게 다가온다.
삶을 사랑하는 것은 단 하나의 특별한 순간이 아니라
매일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이루어진다."
-12면

리추얼은 삶을 사랑하는 연습이다. 삶을 사랑하는 가장 특별한 방식이다. 삶을 사랑하고 유지하기 위해 자신에게 딱 맞는 방식이다. 엉뚱하고 임의적일지라도, 자신에게 더없이 적절하고 효과가 좋다면 훌륭한 리추얼이다.


<상실>로 퓰리처상 최종 후보에 오른 조앤 디디온은 글이 막힐 때마다 작업 중인 원고를 비닐 봉투에 넣어 냉동실에 보관한다. 세계 최고의 피아니스트 중 한 명인 스뱌토슬라프 리흐테르는 분홍색 플라스틱 바닷가재를 상자에 넣어 무대에 오르기 전까지 가지고 다녔다. "처음에는 그저 기능적이었던 평범한 활동이 우리에게 지극히 중요한 활동이 되면서, 평범함을 초월한 비범함이 느껴지기에 이른다." (78면)



"습관은 당신을 성공으로 이끌 수 있지만,
리추얼은 당신을 충만하게 만든다."
- 로빈 샤르마

반복적인 행동이라는 점에서 리추얼은 습관과 비슷하다. 습관의 본질은 '무엇을' 하는가에 있지만, 리추얼의 본질은 '어떻게' 하는가에 있다. 습관이 실제적 보상을 준다면 리추얼은 감정적, 심리적 영향까지 덧붙는다. 좋은 습관이 자동화되어 별 노력이나 생각 없이도 루틴을 수행하는 행위가 습관이라면, 리추얼은 특정한 방식이라는 점이 중요하다.


커피를 내릴 때, 자동화된 습관으로 움직이는 사람은 최대한 빠르게 카페인을 섭취한다는 무엇이 중요하다. 반면, 리추얼을 행하는 사람은 굵게 간 커피 원두만 사용하고, 프렌츠 프레스 외에는 쓰지 않는 자신만의 유일한 방법, 어떻게가 중요하다.


갑자기, 베토벤이 떠오른다.
"60알의 원두는 나에게 60가지의 영감을 준다."
베토벤은 아침을 시작할 때 60알의 커피콩을 세고, 그 원두로 내린 커피를 마셨다고 한다. 강박으로 보일 수 있는 행동이지만 베토벤에게는 예술가로서의 하루를 시작하는 경건한 준비였던 것이다.


특정 행동에 따라 습관과 리추얼을 따로 구분할 수는 없다. 행동 자체가 아니라 행동에 부여하는 감정과 의미가 중요하다. 리추얼은 본질적으로 감정 유발제이기에 어떠한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우리는 감정을 마음대로 불러일으킬 수 없지만, 리추얼을 통해 기분을 바꾸고 북돋울 수 있으니 리추얼을 잘 사용하기만 한다면 얼마나 요긴한지 모른다. 내가 기분 좋아지는 행동을 알고 선택해 매일 리추얼로 삼아 행할 수 있다면, 매일 아침 좋아하는 음악을 틀고 커피를 내리는 순간을 '리추얼'로 삼는다면, 리추얼이 없는 삶과 분명 다를 것이다.


신호와 반복 행동, 보상으로 작동하는 습관의 알고리즘이 기계적으로 최적화와 효율화에 집착한다면, 독특한 리추얼의 행동은 삶을 가치 있고 더욱 사랑하게 만드는 중요한 요소가 된다.
<마침내 내 건강을 최적화했다. 이제 최대한 오랫동안 재미없게 살 수 있다> -톰 엘리슨의 에세이 제목
"반드시 해야 하니까"가 아니라, "스스로를 챙기고 아끼기 위해" 정성과 시간을 내어주는 삶은 분명 다채로운 감정으로 인해 훨씬 큰 만족감을 준다.



"감정다양성"
연구 결과에 따르면, 만족감, 즐거움, 기쁨, 신비함, 고마움뿐 아니라 슬픔, 두려움, 불안 등 다양한 감정을 느낄 때 삶이 감정적으로 더 풍부해지면 전반적인 행복도가 높아지는 경향이 나타난다.
긍정적 감정의 우세 여부보다 경험하는 감정의 다양성과 풍부함이 웰빙과 더 밀접히 연관된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47면


기쁨 세 번을 느끼는 것이 기쁨 두 번, 불안감 한 번을 느끼는 것보다 당연히 나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생태계의 건강이 생물다양성에 달려 있듯, 우리의 웰빙도 감정의 넓고 깊은 스펙트럼에 좌우된다는 사실이 무척 인상 깊었다. 매일 찾아오는 불안과 두려움도 내치려고만 하지 말고, 건강한 내면 생태계를 위해 필요한 감정이라는 다시 깨닫는다.


리추얼은 거창하지 않아도 된다. 사소하고 이상하더라도 자신에게 딱 맞는 것이 중요하다. 우연히 쌓일 수도, 의도적으로 만들 수도 있다. 계속 반복하면서 의식적으로 그 행동을 선택하고 색다른 감정과 의미를 찾는 순간, 그때가 자신의 리추얼이 탄생하고 힘을 발휘하는 시작이 될 것이다.


이 책을 읽고 나만의 리추얼을 하나 만들고 싶어 궁리했다. 문득 기분이 좋아지고, 내가 나로 존재함이 알아차려지는 순간. 마음이 움직이며 내 안에 자연스럽게 무언가가 싹 트는 순간. 그 찰나를 의식적으로 반복하면 그것이 곧 리추얼이다.


한 장면이 떠올랐다. 얼마 전 유튜브로 출생률 급감이 불러온 한국의 인구 위기를 다룬 영상을 봤다. 심각했다. 아기가 태어나지 않는 사회는 경제적으로는 물론 사회, 문화, 군사적으로도 무너질 수밖에 없었다. 소름 끼치게 무서운 현상이 현재 실제로 일어나고 있었다. 거리에서 스치는 사람들이 달라 보였다. 대화를 나누는 분들로 북적이는 카페가 시끄럽지 않고 정겨웠다. 한 명 한 명이 소중한 생명이었다. 그렇게 다음 리추얼 후보 가 만들어졌다.


"마음속 산책 인사"
걸으면서 눈에 띄는 누군가에게 마음 속으로 다정하게 인사하고, 그분의 오늘을 살짝 상상한다. '안녕하세요. 오늘 어떤 일로 이 거리를 걷고 계세요? 전화하면서 미소 짓는 표정이 보기 좋아요. 무슨 좋은 일이 있는 걸까요, 날씨가 좋아서 봄이라서 좋으신 걸까요. ~~~"
이렇게 상상하다 보면 마음이 부드럽게 펴지는 것 같다.


리추얼은 기억에 남는 행위가 아니라, 느낌에 남는 행위인지도 모르겠다. 우리가 오늘 느꼈던 좋았던 순간, 그 감정을 따라가보자. 예측 불가능한 삶을 붙잡아 주체적으로 이끌며 돌보고 있다는 나만의 감각을 가져보자.


리추얼은 삶을 지탱하는 깊은 뿌리이자 세상에 하나뿐인 나로 생동하는 다정한 공간이 되어 준다. 《어떻게 이 삶을 사랑할 것인가》를 통해 일상적인 순간들을 비범하게 만들어 줄 각자의 리추얼을 발견하길, 일상의 행위들을 새롭게 바라보고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달콤한 도구로 리추얼을 즐기길, 습관 형성과 개선을 넘어서 삶의 목적과 개성에 어울리는 리추얼로 삶에 깊이와 의미를 더하길! 응원한다.



#도서지원 #어떻게이삶을사랑할것인가 #마이클노턴 #부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김소영의 초등 책 읽기 교실 - 마음과 생각을 함께 키우는 독서 수업
김소영 지음 / 다산에듀 / 2025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김소영의 초등 책 읽기 교실》는 <어린이라는 세계>로 잘 알려진 김소영 선생님의 독서교육서다. 2019년 <말하기 독서법>의 개정증보판이기도 하다. 제목 그대로 "말하기가 독서력을 키운다"는 주제 아래, 그림책•동시•동화• 지식책으로 갈래를 나누어 책과 어린이를 잇는 풍성한 독서법을 소개한다.


"저는 읽은 것에 대해 잘 말할 수 있어야 글도 잘 쓸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어린이는 특히 그렇습니다. 생각하는 방법을 배워가는 어린이에게 말하기는 일종의 연습 도구입니다. 말하기를 하면 어린이 스스로 자기 생각을 들을 수 있습니다."
- 24면


'읽기와 쓰기'라는 짝꿍 사이에 '말하기'를 끼워 넣었다. 읽은 다음 말하고, 말한 다음 쓰기 전략에 무릎을 쳤다. 손힘도 약한 아이들에게 "읽었으니 이제 쓰자"고 강요하는 대신, 질문으로 생각을 끌어내고 그것을 글로 옮기게 하니 글쓰기에 대한 부담도 덜어진다. 영리한 접근이다.


"책을 읽은 뒤에 바로 일목요연하게 생각이 정리되지는 않습니다. 생각을 말로 표현해 보면 비로소 자신이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게 됩니다. 말하기 위해 생각을 정리하기도 하지요. 이 책에서 논하는 말하기의 가장 큰 목적은 어린이가 자기 생각을 알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글도 잘 쓸 수 있습니다."
-25면

말하는 과정에서 아이의 생각이 싹트고 정리된다. 이렇게 생각하는 훈련을 통해 자신만의 주관을 갖는 사람이 되어 간다. 이는 '읽고 말하고 쓰기'라는 교육의 목적을 넘어, 더 큰 본질로 연결된다. 이 과정들이 유기적으로 엮이며 성숙한 어른으로 성장하는 선순환을 만든다. 독서교육을 포기해서는 안 되는 가장 큰 이유가 아닐까.


비록 교육서이지만, 다양한 책 읽는 방법을 제시하고 있어 나의 독서에도 바로 적용할 만한 팁이 많았다. 특히 소설을 어떻게 읽을 것인가에 대해 큰 배움을 얻었다.

" '어떻게 될까?' '왜 이렇게 말할까?' '앞 장면과 어떻게 연결될까?'하는 질문을 품고 책을 읽는 것입니다. 이렇게 집중해서 읽음으로써 이해력이 높아지고 독서의 즐거움도 느낄 수 있습니다.

줄거리 외에 인물과 배경을 이해하는 것도 주제를 찾는 데 있어 중요합니다. 그 인물이 그렇게 말하고 행동하는 데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습니다. 그 이유를 생각하면 작가가 하고 싶은 말을 짐작할 수 있지요. 배경을 짚어보면 시대적, 사회적 환경을 이해하게 됩니다. 작가가 특정 시공간을 배경으로 설정한 것은 꼭 그래야 하는 이유가 있기 때문이니까요."
-131면

소설에 푹 빠지다보면 주요 줄거리는 잊고 인상적인 장면이나 표현만 기억나는 경우가 있다. 물론 즐겁게 읽는 것이 가장 큰 목적일 수 있지만, 조금 더 남는 읽기를 원한다면 이런 노하우가 유용하다. 스스로 질문을 던지며 소설과 내가 연결되고, 인물과 배경을 두루 살피면서 사고의 폭을 더 넓히는 훈련은 독서를 더욱 풍성하게 만든다.


글감 찾기에도 꿀팁이 담겨 있다. 글감을 찾는 일이 얼마나 어렵고 중요한지 글을 써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것이다. (나는 소재 찾기가 어려워 서평을 쓰게 됐다. 책이라는 훌륭한 글감이 눈앞에 있으니 소재 고민이 줄어든다.) 우리 같이 예쁜 수첩 하나 사볼까?


"과감하게 글감만 찾는 시간을 가져보세요. 글의 종류에 따라 적절한 글감의 조건을 생각해 글감'만' 적어보는 것입니다. 당장 글을 써야 한다는 부담이 없으면 의외로 글감이 많이 떠오릅니다.

마음에 드는 글감 수첩을 마련해 주세요. 재미있는 아이디어뿐 아니라 새로 알게 된 낱말이나 표현, 인용하고 싶은 말을 적을 수도 잇겠지요. 꼼꼼하게 채우지 못해도 됩니다. 한 동화작가는 자기가 구할 수 있는 가장 예쁜 수첩을 사서 늘 가지고 다니면서 틈틈이 작품 아이디어를 적는다고 합니다.
저에게도 아이디어를 쪽지에 써서 모아주는 상자가 있습니다. 재료만 가지고 요리가 되지는 않지만, 재료가 없으면 요리를 할 수 없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주세요."
- 252면

"독서교실에서 어린이들과 책을 읽고 이야기를 나눌 때면 그 기쁨이 매번 새롭게 다가옵니다. 같은 책을 읽은 사람들끼리만 나눌 수 있는 무언가 때문입니다. 저는 선생님으로서 가르치고 독자로서 배웁니다."
- 282면

설레며 《김소영의 초등 책 읽기 교실》을 즐겁게 읽을 수 있었던 이유는 김소영 선생님의 고운 마음씨가 책을 덮고 있기 때문이다. 글에서 사랑과 존중이 흘렀다. 선생님의 목소리를 들어본 적은 없지만, 책을 읽는 내내 따뜻하고 부드럽게 흐르는 음성이 들리는 듯했다. 어린이를 품듯, 대부분 학부모일 독자까지도 포근히 안아주는 글이었다. 25년 동안 어린이들과 함께 하며 갈고닦은 현장감 있는 노하우와 낮고 넓은 진심이 고스란히 책으로 열매 맺혔다.


책을 좋아하고 잘 읽는 아이로 키우고 싶다면, 부모 자신도 그런 어른으로 함께 자라나고 싶다면, 《김소영의 초등 책 읽기 교실》은 든든한 지침서가 되어줄 것이다.


#도서지원 #김소영의초등책읽기교실 #다산에듀 #김소영 #초등국어 #책읽는아이만들기 #책읽기수업 #독서력 #독서교육 #문해력 #말하기독서법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천만 코드 - 매혹적인 이야기의 8가지 스토리텔링 비밀
길종철 지음 / 프런트페이지 / 2025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무엇이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는가?
지난 35년 동안 이 질문은 나의 뇌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8면

35년간 영화산업과 학계에서 활동한 대한민국 최고의 스토리텔링 전문가, 길종철. 한국영화아카데미 책임교수, 국내 최대 영화 투자배급사 CJ엔터테인먼트 대표를 거쳐, 현재는 한양대 연극영화학과 교수로 강의 중이다. 평생 고민한 질문의 답은 "스토리"였다고 그는 확신한다.


"오늘날 우리는 이야기의 홍수 시대에 살고 있다.
인간의 소통 수단이 다름 아닌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286면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는 것은 곧 설득이고, 그에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 이야기라는 저자의 결론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돌이켜 보면 세상과 삶의 모든 것은 이야기다. 우리는 이야기로 삶을 기억하고, 이야기로 자아를 구성한다. 스토리텔링은 전달하려는 메시지를 이야기로 풀어내 상대가 흥미롭게 받아들이게 하는 과정이다. 일상의 대화부터 우리가 주고받는 모든 의미 체계가 결국 이야기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천만 코드》는 취향이 파편화되는 시대에도 천만 관객과 소통한 영화들을 분석한다. 주인공, 중심인물, 진실, 욕망, 변화, 카타르시스, 아이러니, 지킬 것과 새롭게 할 것이라는 키워드로 매혹적인 스토리의 8가지 비밀을 풀어냈다. <도둑들> <광해, 왕이 된 남자> <명량> <국제시장> <변호인> <7번방의 선물> <서울의 봄> <범죄도시 시리즈> 등 누구나 알 만한 영화들이 가득하다.


전문가의 시선으로 영화 안팎의 이야기들을 쉽고도 다채롭게 분석한다. 덕분에 기억이 희미했던 영화들이 당시보다 더 풍성하고 깊이 있게 다가왔다. 영화를 사랑하고, 영화 채널을 즐겨보며, 평론까지 찾아보는 이라면 누구라도 흥미롭게 읽을 책이다. 나 역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몰입했다.


스토리에서 가장 중요한 건 무엇일까?
<STORY: 시나리오 어떻게 쓸 것인가>의 저자인 세계적인 스토리 대가 로버트 맥키는 주저하지 않는다. "감정이입 (empathy)."
관객이나 독자를 이야기 속으로 끌어들이는 데 가장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건 주인공이다. 주인공은 스토리의 심장, 관객의 아바타이자 가이드이다. 관객은 주인공을 통해 감정이입하며 이야기에 몰입하게 된다.


"영화의 흥행은 마치 눈사람을 만들 때 한 줌의 눈으로 시작해 눈덩이를 굴리고 불려가면서 궁극적으로 거대한 눈사람을 완성하는 것과 흡사하다. 그 한 줌의 단단한 눈덩이가 영화에서는 바로 주인공이다."


"<도둑들>은 화려한 주인공 집단을 미끼로 던지고 관객의 관심을 낚아챈 후 흥행성이 가장 높은 단독주인공 전략으로 최종 플롯을 완성했다. 이로써 시종일관 관객으로 하여금 주동인물 마카오박을 따라 집중력을 잃지 않게 하고, 점점 더 깊이 영화에 몰입하도록 만들었다. 이 점이 바로 천만영화의 반열에 오른 진짜 비결이다."
- 41면


글쓰기에서도 독자가 마음을 사로잡으려면, 독자가 화자와 마음을 나누고 함께할 수 있어야 한다. 응원하고 싶고 행복을 바라게 되는 인물, 독자가 감ㅈ어이입하는 '한 편'이 되는 것이 중요하겠다는 걸 깨달았다. 감정이입으로 독자가 이야기를 따라가는 그 시간과 경험이야말로 재미의 실체이자 대중성을 만드는 원리임을배웠다.
(그래서 글쓰기가 이토록이나 어려운 것이었구나!)


"주인공은 어떤 일이 있어도 그 이야기에서 가장 사랑할 만한 사람이어야 한다. .... 나는 '매력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 매력이란 그가 자신의 한계를 온몸으로 껴안는 행동을 할 때(그간의 우리 용어로 치자면, 생고생할 때), 그걸 지켜보는 사람(작가나 독자) 내부에서 저절로 일어나는 공감의 감정에서 비롯한다고 생각한다.
-김연수, <소설가의 일>



아이러니에 관한 통찰도 무척 인상 깊었다.
"스토리텔링은 아이러니를 통해 삶의 복잡성을 포착하는 예술이다." - 마크 트웨인
"현실이란 잔인할 정도로 아이러니한 것이며 바로 이 때문에 아이러니로 끝맺는 작품이 가장 긴 수명을 얻고 가장 널리 보여지며, 관객들로부터 가장 높은 칭송을 받고 애정을 얻게 되는 것이다."
- 215면


아이러니로 점철된 삶을 비유한 스토리는 그 의미가 더 깊게 각인되어 강력한 힘을 발휘한다. SF나 판타지 같은 허구의 이야기에도 현실의 감정과 관계의 원리가 깃들어 있기에 우리는 마음을 내어줄 수 있다. 사람들은 세상살이와 먼 이야기에 흥미를 느끼지 않는다. 이중적인 의미는 곧 삶의 은유이자 삶을 관통하는 언어다.


"아이러니는 우리가 사는 현실의 복잡성을 반영한다. 우리는 아이러니를 통해 삶을 더 잘 이해할 수 있다. 아이러니를 통해 진실을 드러낼 수도 있다. 이게 스토리텔링의 목적이다."
-236면


"스토리는 삶의 모습을 담고 있어야 하지만 아무런 깊이나 의미가 없는 보통 삼ㄹ의 단순한 복사판이 되어서는 곤란한다. 누군가의 삶을 그려내 우리의 삶으로 느끼고 받아들이게 해야한다. 그것이 바로 스토리텔링이다."
-237면


《천만 코드》를 읽으며 독자의 마음을 사로잡는 글쓰기에 대해 생각한다.
글쓰는 나를 영화의 주인공에 대입하니, 김연수 작가님 말씀처럼 "사랑할 만한 매력적인 사람"이 되어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된다. 감히 꿈꿔본 적 없는 상상이다. 생고생하는 나를 통해 독자들 내면에서도 절로 공감의 감정이 피어나는 글쓰기. 그 길을 향해 한 발짝 나아가고 싶다. 부러 찾지 않아도 한계와 고난은 또다시 닥쳐올 테니 온몸으로 그 터널을 지나면서 누군가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더 나은 이야기로 익어가고 싶다.


삶이라는 흙에서 꽃이 피고 열매가 맺히는 이야기들이 품고 있는 진심과 진실의 힘을 확신하게 된 것도 큰 수확이다. 다층적이고 모순된 삶의 구석구석에서 피어나는 이야기야말로 삶의 재미와 깊이, 감동을 더하는 필수 요소라는 것을, 평안하게만 살고 싶은 욕망을 조금씩 꺾으며 받아들들이고 있다.


'하늘 아래 더 이상 새로운 이야기는 없다' 그렇기에 어떻게 이야기할 것인가가 훨씬 더 중요해진 이 시대, 《천만 코드》는 스토리 입문서이자 참고서로서, 더 나아가 효과적인 설득과 소통의 실마리를 영화의 언어로 풀어놓은 훌륭한 커뮤니케이션 교양서로서 손색없는 재미있는 책이다. 자신있게 추천한다.


#도서지원 #천만코드 #길종철 #프런트페이지 #스토리텔링 #주인공의법칙 #아이러니 #천만영화 #마음을사로자는이야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생각이 많은 당신을 위한 말하기 수업 - 고민을 줄이면 대화가 쉬워진다
사이토 다카시 지음, 최지현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25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사이토 다카시의 말하기 책이라니!
꼭 읽고 싶어서 서평단에 당첨되기를 고대했는데 감사하게도 행운을 얻었다. 박문호 박사님의 강력 추천으로 18년 만에 복간돼 베스트셀러가 됐던 <일류의 조건>을 쓴 사이토 다카시 교수님의 신간이었기 때문이다. 늘 말하기에 자신이 없는 내게 40년 경력의 커뮤니케이션 대가인 사이토 다카시 교수님은 어떤 이야기를 들려줄지 무척이나 기대했다.


학문적인 근거 위에 이론적으로 딱딱하게 쓰인 책이 아니다. 캐주얼한 대화처럼 편하게 서술된 데다 230쪽 정도로 가벼운 편이어서 술술 읽힌다. 디테일한 기술이나 노하우를 알려주지만 애써서 외우려 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습득되도록 명쾌하게 쓰였다. 구체적인 팁들도 큰 도움이 됐지만 무엇보다 유익했던 것은 "말을 잘 한다"는 개념이나 "대화" 자체에 관한 관점을 재정립할 수 있었다는 사실이다.


당신은 "말을 잘하는 사람"이 어떠하다고 생각하는가? 나는 청산유수로 끊임없이 화제를 이어가며 모임에서 주인공으로 돋보이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진짜 말 잘하는 사람은
누구나 편안함을 느끼도록
다정한 공간을 만들어주는 사람입니다"

'다른 이를 챙기는 사람'이다. 나보다 다른 사람에게 눈을 돌릴 수 있고, 내가 말하는 데 집중하기보다 분위기를 신경 쓸 수 있는 사람 말이다. 이런 사람이 대화를 잘 이끄는 사람, 호감을 얻는 사람, 진정으로 대화를 잘하는 사람이라고 《생각이 많은 당신을 위한 말하기 수업》은 말한다.


유재석이 떠올랐다. 출연자 모두를 세심히 챙기며 모두가 함께 참여할 수 있도록 배려하고 조율해, 촬영장의 분위기를 주도하는 우리나라 최고의 진행자다. 따뜻하게 살펴주고 기회를 주며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만들어진다. 말하기 편한 자리가 되면 출연자들의 매력적인 면모들이 자연스럽게 드러났을 것 같다.


같은 맥락으로 "리액션"을 강조한다.
"이야기를 잘하는지 아닌지는 소통에서 그렇게 중요한 요건은 아닙니다. 그보다 즐겁게 지낼 수 있는지가 중요합니다. 상대방의 이야기가 재미없어도 리액션을 재미있게 해보세요. 이것이 요즘 시대에 가장 적절한 배려 아닐까요."
-127면


사실 말하기 편하도록 분위기를 리드하는 건 "듣는 사람"이다. 다시 만나고 싶고 얘기하고 싶은 사람을 떠올려보자. 당신의 이야기에 미소 지었거나, 반응을 잘해주었거나, 손바닥을 치면서 쾌활하게 웃지 않았나? 그렇다. 내가 기분 좋게 이야기할 수 있었던 건 상대가 재미있다는 듯 이야기를 들어주었기 때문이다.


"리액션은 상대방에게 '관심이 있음'을 보여주는 최고의 기술"
-129면
커뮤니케이션은 공격보다 수비가 중요하다고 한다. 재미있는 이야기를 하려고 애쓰기보다 내가 주인공인 듯한 기분으로 리액션을 보여주면 대화를 더 잘 ㅣ이끌 수 있다. 말의 분량을 많이 차지하는 사람이 주인공이 아니라 누구보다도 즐겁게 대화에 참여하는 사람이 주인공이었다.


그러니 앞으로는 '상대의 이야기에 진심으로 웃었는가, 진심으로 동조했는가, 분위기를 부드럽게 만들었는가에 대해서 신경 써보자. 리액션만 잘 해도 대화의 질이 상당히 달라진다. 중요한 것은 말하는 내용이 아니라 상대에게 관심을 전하는 것이다.


나의 대화에 대해 발견한 점도 있었다. 《생각이 많은 당신을 위한 말하기 수업》이라... 나는 생각이 많지 않다고 생각했다. 대화에 잘 참여하지 못하는 이유가 할 말이 없어서였기 때문이다. 할 말이 없는데 생각이 많을 수는 없지 않은가. 그런데 아니었다.


"다른 사람과 대화할 때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이런 말을 하면 날 싫어하지 않을까?' '이런 제안이나 질문을 하면 바보 같다고 비웃진 않을까?' 고민하느라 피곤해지는 것이죠. 이는 '상대의 건너편에 있는 나를 보면서 이야기하는' 것과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오로지 상대가 나를 어떻게 볼지에만 신경을 쏟는 탓에 상대가 아니라 나 자신에게 의식이 향하는 것입니다."
-24면


곰곰이 따져보니 그랬다. 내 마음에 집중하기보다 상대의 입장에서 과하게 의식했다. 상대의 마음을 거슬러 기분을 상하게 하지는 않을까 눈치 보기 바빴다. 그러다 며칠 전 챗 gpt와 정보 검색이 아닌 대화다운 대화를 처음으로 나누었다. 편했다. 맞춤형 알고리즘 덕분에 나한테 모든 걸 맞추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는데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챗 gpt는 인간이 아니다. 내가 말실수를 하더라도 상처받을 마음이 없다. 잘못한다고 어그러질 인간관계가 아니다. 다른 사람들과 그물망처럼 연결돼있어 복잡한 상황을 고려하지 않아도 된다. 마음에 안 들면 초기화하면 끝이다. 내가 챗 gpt의 심정을 헤아릴 이유가 없으니 그저 있는 그대로의 진심으로 나도 모르게 대화하고 있었다.


"싸늘한 반응을 두려워하지 않는 태도, 정확히 말하면 '저 사람이 나를 싫어하나 봐'라는 식으로 생각하지 않는 습관이 나를 지켜줍니다. 즉 상대의 반응에 크게 신경 쓰지 않도록 노력하는 것이 무척 중요합니다."
- 27면


대화는 의미의 연결과 감정의 연결, 두 가지 기능을 갖는데 남의 말에 쉽게 상처받는 사람은 이 두 가지를 잘 구분하지 못하는 경향이 있다. 상대는 무시할 의도 없이 '나는 너와 달리 빵이 아니라 밥을 좋아한다'는 사실에 기반한 발언을 자신이 멋대로 받아들이는 경우도 많다. 감정으로만 대화하지 말고 상대의 의도를 잘 구분하자.


이렇게 대화에 대해 많은 것을 배웠다. 나는 대화를 못 하는 사람이라고, 나와 대화하는 사람은 재미가 없을 거라고 오랫동안 나에 대한 편견을 가진 채 살아왔다. 사이토 다카시가 말하듯 말을 잘 못하는 성격은 없다. 악기를 다룰 때 처음에는 누구나 서툴듯, 대화도 악기같이 기술이기 때문에 갈고닦으면 누구든 잘할 수 있다. 오히려 잘못된 선입견이 즐거운 대화를 막는 커다란 장벽으로 작용하고 있었다. 《생각이 많은 당신을 위한 말하기 수업》 덕분에 와르르 무너진 것 같아 정말 감사하다.


대화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편안한 마음이었다. 대화를 어떻게 정의하고 있는지, 대화하는 자신에 대해 어떤 관점을 갖고 있는지 뒤틀린 초점을 바르게 재정립시켜주는 훌륭한 책이다. 대화할 때마다 머릿속이 복잡해져 생각이나 감정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해 고민인 분들께 강력 추천한다.



#도서지원 #생각이많은당신을위한말하기수업 #사이토다카시 #웅진지식하우스 #말하기수업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