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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은 가우디다 - 스페인의 뜨거운 영혼, 가우디와 함께 떠나는 건축 여행
김희곤 지음 / 오브제 / 2014년 9월
평점 :
우리 부부는 향후 10년이내에 집을 짓는 것이 목표다. 지금은 경제력이 뒷받침되지 않기에 당장 지을 수는 없지만 우선 할수 있는 것이 '집짓기'에 관심을 두고 자료를 먼저 모으는 것이다.
자료를 찾다보니 건축물은 일상생활과 매우 밀접하면서도 건축 자체는 어렵기만 하다. 내가 살집의 평면도 한장 그리기가 그렇게도 어렵다.
보통 시골의 조립식 목조주택은 시공사를 선정하면 시공사에서 설계를 해 와서 짓는 경우가 많다. 우리 처갓집을 지을 때 그랬다. 건물주 입장에서는 설계비를 아끼려고 그렇게 주문하는 것이다.
그렇다보니 하자보수가 문제가 된다. 전문 건축설계사 대신 현장 실무자들이 마치 레고블럭 맞추듯 대충 설계해서 조립해서 그렇다. 그래놓고선 건물주에게 원래 건물이라는 것이 하자가 없을 수가 없고, 지어 놓고선 끊임없이 보수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건물이 무슨 경부고속도로인가 말이다.
'스페인은 가우디다'
이 책은 그 동안 우리가 잘 알지도 못하는 건축을 예술이라기 보다는 속된 말로 '노가다'로 폄하하고, 건축물을 작품이라기 보다는 공산품 취급을 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게 해 준다.
전문 건축가가 일반인을 대상으로 소개하는 건축과 역사, 작품에 관한 이야기이다. 건축의 신으로 불리는 스페인의 건축가 가우디의 일생과 그가 만든 건축물들에 대한 이야기다.
가우디라는 역사적 인물의 일대기와 함께 그의 작품에 대한 전문적인 식견을 함께 늘어 놓았다면 자칫 산만하고 일관성 없는 내용이 될 수도 있었을 것이다.
작가는 가우디의 각 작품별로 이야기를 풀어나가면서 어렵지 않게 설명을 풀어가고 있다. 그런 관점에서 작가는 현대 건축가로서 화려한 이력과 함께 글을 건축하는 것에도 뛰어난 재량을 보여준다.
이는 전적으로 - 나만이 느낀 것일 수도 있는데 - 가우디가 스티브 잡스와 비슷한 성향이라고 봤기 때문이다. 스티브 잡스와 애플에 관한 책들을 보면 잡스의 고집불통, 괴팍함, 몰인정, 인간차별, 돌발언행 등 잡스의 개성과 특성에 촛점을 맞춰 장황하게 서술하다가 잡스의 혁신적인 업적을 끄집어 내어 나열한다. 그러한 것들과 혁신의 인과관계를 밝히지도 못하면서.
"가우디는 제도판 위에서 도면을 그리는 데 매달리지 않았다. 그는 항상 설계실을 박차고 나와 건물이 들어설 대지에서 3차원 공간구조를 먼저 세우고 나서 도면을 그렸다. 대지에 들어설 건축공간이 되자 하는 목적과 방향과 기능에 대해 충분히 질문하고 나서 춤추는 영감으로 구조와 기능과 미의 옷을 입혔다. 현장에서 보고 느낀 바람 소리, 물소리, 새소리, 한 송이 꽃과 나무까지 그들이 자아내는 영감을 바탕으로 3차원 모델을 만들어보고 나서 빠른 시간에 도면을 그렸다."
"그러나 가우디는 단 한순간도 장인정신을 손에서 내려놓은 적이 없었다. 항상 먼저 모델 작업이나 디테일 작업을 선행하며 모범을 보였다. 그와 함께 작업하는 사람들은 모두 가우디를 존경하는 동시에 두려워했다. 그들의 눈에는 별로 이상해 보이지 않는 작은 실수조차도 가우디는 가차 없이 허물어버리고 다시 시작했다. 가우디는 돈을 위해서 일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완벽한 작품을 만들어내기 위해서 신의 경지를 탐낸 예술가였다."
"가우디는 복잡한 구조의 건물을 단순하고 쉽게 지을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내기 위해 사무실에서 스케치에 몰입하기보다는 대지 현장에서 구상한 아이디어를 곧바로 모형으로 만들었다. 모형에서 발견한 공간을 정확하게 확인하기 위해 1:10의 축적의 도면을 그려야 했다. 전체 도면을 그리기 위해서는 넓은 책상 위를 이리저리 헤집고 다녀야 할 형편이었다. 할 수 없이 가우디는 한 가지 아이디어를 생각해냈다. 넓은 책상의 중앙에 사람이 들어갈 수 있을 정도의 구멍을 내고 중앙에 직접 들어가서 도면을 그리기 시작했다. 가우디의 가장 큰 특징은 남과 다른 생각을 하고, 남과 다른 방법을 찾아내고, 남과 다르게 행동한 것이었다."
이 책은 이처럼 가우디의 삶과 그의 작품에 관해 일관성있는 관점을 유지하면서 설명하고 있다. 아마도 작가 스스로 건축가이기 때문에 가능하리라.
풍부한 사진자료는 문장으로 묘사하기에 한계가 있는 3차원 공간의 건축물들을 친절하게 설명하기 위한 작가의 노고가 엿보인다.
더욱이 아련한 학창시절 암기식으로 외웠던 고딕이나 로마네스크양식을 구분할리 만무한 내가 책의 후반부로 갈 수록 가우디 작품의 아름다움에 매료되었다.
카사 바트요와 카사 밀라를 보면서 '도대체 인간의 머릿 속에서 어떻게 3차원의 공간을 이토록 유기적이고 치밀하게 디자인 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감탄을 자아내게 된다.
작가는 본문을 통해 가우디의 건축 철학을 다음과 같이 소개한다.
""예술가는 작품을 만드는 데 도움이 될 자연을 찾아내어 창조주와 협력하는 것 뿐이다."라고 가우디는 입버릇처럼 떠들었다. 가우디에게 디자인이란 창조가 아니라 하나의 발견일 뿐이었다."
"부자를 위한 건물은 고난도의 디테일로 공간의 이상을 실현했지만 가난한 자를 위한 건물은 단순하고 절제된 구조로 공간의 본질을 구현해야 했다."
"도면을 그리기에 앞서 가우디는 그 공간에서 일어날 수 있는 다양한 활동을 항상 먼저 상상했다. 공간의 생명은 그 장소에서 일어나는 행위와 활동과 이벤트의 총합이다."
"살아있는 종교는 상상 속의 이야기가 아니라 사실적으로 묘사된 현실임을 가우디는 믿고 있었다. 자연은 신의 작품이듯이 사물과 인물들은 모두 신의 작품이다. 가우디는 허구의 대상을 재현하는 것은 미친 짓이라고 생각했다. 예수와 성자는 주변 인물들의 심성 속에 있다고 믿었다."
이러한 건축철학보다도 가우디가 더욱 매력적인 것은 당시 피카소를 비롯한 급진적 예술가들에게는 지독한 보수주의자로 지탄을 받았음에도 건축기술의 혁신은 물론 종교건축을 통한 종교혁신을 몸소 실천했던 예술인이었다는 점이다.
"모듈화 시스템을 도입하여 공사비와 시간을 절약하는 프리캐스트 공법을 1세기 전에 실험한 가우디는 복잡한 형태를 조각조각 해체하여 조립 가능하게 조율했다. 외부에서 제작된 단순한 조각들을 조립하여 복잡한 다리와 아치를 만들었다. 복잡한 구조의 건축물을 단순하게 조립할 수 있는 디테일의 힘은 기하학에서 나왔다. 복잡한 구조를 단순한 알고리즘의 고리로 해체하는 현대 건축공법을 19세기 말 가우디는 이미 시행하고 있었다."
"알람브라 궁전에서 무어인들이 실험한 기술을 응용하여 100년 전에 가우디는 배수, 정수, 저수의 과정으로 집약한 자연친화적인 집수 시스템을 개발했다."
"그 당시 스페인 성당은 일반적으로 성가대석을 막아놓았다. 성가대원석, 귀족석, 성당 소속 사제 순으로 정해진 위계 순서에 맞추어 앉게 되어 있었다. 가우디는 이 점에 대하여 의문을 제기했다. 20세기의 성당은 더 이상 권위의 상징이 아니라 모든 사람이 공평하게 하느님의 사랑을 교감하는 만남의 공간이라 믿었다. 대중에게 열린 성당을 만들기 위해서 가장 먼저한 일은 막힌 성가대석을 허무는 일이었다."
이 책을 통해 비로소 건축문외한이었던 내가 '건축이란 영화와 같은 종합예술이다.'라고 깨달을 수 있었다. 또한 건축의 신이라는 가우디를 알게 되었고, 그의 작품의 매력을 만끽할 수 있었다.
내 주변에 스페인을 다녀온 사람들은 하나같이 스페인의 매력에 푹 빠져 와서는 그 낭만적인 분위기를 설명하기 위해 열을 낸다. 그런 스페인의 역사와 사회상에 대한 작가의 해박한 지식은 아직 가보지 못한 스페인이지만 조금 더 구체적으로 이해하고 다가 갈 수 있게 해 준다. 작가의 성공이다.
그러나 아쉬운 점도 있다.
첫 번째, 과연 공식적인 인쇄물이 맞을까 싶을 정도로 오탈자가 많다. 심지어 맞춤법이 틀린 곳도 있다.
"부자들을 위한 집을 짓는 일에 몰두하면 할수록 가우디의 명성을 높아져갔다. 언제부턴가 사람들은 이런 가우디를 부자들의 채면을 세워주는 일에 재능을 쏟아붓는 얼간이, 돈밖에 모르는 건축가라는 소문이 퍼지기 시작했다."
- 본문 235쪽
이런 오탈자가 너무 많아 일일이 지적하기 힘들 정도이다. 아마도 작가가 끝까지 글을 완벽하게 다듬으려고 수차례 퇴고를 거듭하다가 생긴 오탈자일지도 모르겠다. 오탈자는 인쇄물의 신뢰를 떨어트리는데 오탈자는 꼭 출력 후에 발견되기 마련이다. 다음 쇄에서는 반드시 수정되어야 할 것이다.
두 번째는 작가의 문체가 지나치게 화려하다는 점이다. 특히 가우디의 첫 번째 작품이 나오기 전까지 성장기를 설명하는 전반부에서 두드러진다. '과연 건축가가 맞나? 소설가인가?' 싶을 정도로 화려한 문장을 보여 준다.
건축은 예술이라는 관점에서 건축에 대한 작가 본인의 철학과 감성을 실어 표현한 것으로 이해된다.
"메시아의 형상을 만들지 못하게 하는 이슬람의 율법은 무심한 돌 조각에 빛으로 물든 생명의 영감을 조각하게 했다. 가우디에게 빛은 풀무에서 타고 있는 태양의 거친 조각이자, 투명한 지중해의 햇빛과 돌의 애무였다."
"삶의 고통을 가려주려는 듯 골목에 드리운 그림자가 융단처럼 하늘을 이고, 뒤뚱거리는 협곡은 푸른 하늘을 버겁게 물고 있었다. 악취, 노점상이 가득하고 다툼, 섹스, 소음 등이 빈번한 빈민가의 좁은 골목길을 따라 걷다 보면 제각각인 건축 양식과 각양각색의 사람들이 뿜어내는 비릿한 살 냄새가 도시에 깊은 한을 아로새겼다."
"그에 비해 리베라 지역은 세상을 떠돌다 마지막 숨을 곳을 찾아든 가난한 노동자들의 질긴 생명들이 서로 부딪히며 아우성치는 막장이었다. 시중잡배들의 선술집과 매춘의 소굴이었던 선창가는 지금 화려한 워터 프론터로 옷을 갈아입고, 지중해의 바람에 실려 오는 파도의 포말에 과거의 상처를 말끔히 세척하고 아름답게 미소 짓고 있다."
하지만 과유불급이라고 지나치게 화려한 문장은 무엇을 말하고 싶은 것인지 진의를 파악하기 어렵게 만들기도 한다.
예를 들어 세탁기 매뉴얼에 다음처럼 써 있다면 어떨까?
"매미소리 높고, 햇살마저 더위에 지쳐버린 한여름. 행여나 서산 끝자락을 붙잡고 매달리면 먼 바다 흰파도처럼 바람에 살랑이는 홑이불이 더욱 뽀송해질까. 뽀송뽀송한 에어크린을 선택하시려면 여유로운 오후, 테라스에 앉아 향기로운 커피잔을 스푼으로 젓듯 메인 다이얼을 천천히 오른쪽으로 돌려 에어크린을 선택하세요. 그리곤 몰래 마음을 준 그 이 앞에서 머뭇거리는 풋사랑처럼 살포시 시작버튼을 눌러주세요."
"시간의 침묵 소리가 삐거덕거리며 거친 삶이 토해내는 중세의 한숨 소리를 들을 수 있는 리베라의 상징인 라이에타나 거리는 좁아서 더 친근하고, 깊어서 더 외롭다."
"그리고 로마네스크 기둥은 신고전주의 건축물의 발코니에 올라타고서 지난 시간을 침묵으로 노래하고 있다."
이 중에서도 작가는 유난히 '침묵'이라는 단어를 사용한 역설과 은유를 자주 보여준다. '소리없는 아우성'이라는 시적인 표현은 이미 유명하다. 같은 방식으로 반복해서 쓴다면 분명 진부해진다. 이 책은 문학작품이 아니며 화려한 문체에 대한 의견은 전적으로 나만의 주관적 판단이다. 이는 읽는 이의 감성과 취향에 따라 다르게 수용될 수 있다.
"스페인은 가우디다"
이 책은 건축 전문가가 아니더라도 쉽게 가우디와 스페인을 이해할 수 있게 해 준다. 스페인 여행을 계획한다면, 스페인을 이해하고 싶다면 아마도 가장 먼저 손에 들어야 할 책이 아닐까 싶다.
FC바르셀로나 팬들도 필독 하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