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은 가우디다 - 스페인의 뜨거운 영혼, 가우디와 함께 떠나는 건축 여행
김희곤 지음 / 오브제 / 201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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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부부는 향후 10년이내에 집을 짓는 것이 목표다. 지금은 경제력이 뒷받침되지 않기에 당장 지을 수는 없지만 우선 할수 있는 것이 '집짓기'에 관심을 두고 자료를 먼저 모으는 것이다.

자료를 찾다보니 건축물은 일상생활과 매우 밀접하면서도 건축 자체는 어렵기만 하다. 내가 살집의 평면도 한장 그리기가 그렇게도 어렵다.


보통 시골의 조립식 목조주택은 시공사를 선정하면 시공사에서 설계를 해 와서 짓는 경우가 많다. 우리 처갓집을 지을 때 그랬다. 건물주 입장에서는 설계비를 아끼려고 그렇게 주문하는 것이다. 

그렇다보니 하자보수가 문제가 된다. 전문 건축설계사 대신 현장 실무자들이 마치 레고블럭 맞추듯 대충 설계해서 조립해서 그렇다. 그래놓고선 건물주에게 원래 건물이라는 것이 하자가 없을 수가 없고, 지어 놓고선 끊임없이 보수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건물이 무슨 경부고속도로인가 말이다.


'스페인은 가우디다'


이 책은 그 동안 우리가 잘 알지도 못하는 건축을 예술이라기 보다는 속된 말로 '노가다'로 폄하하고, 건축물을 작품이라기 보다는 공산품 취급을 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게 해 준다. 

 

전문 건축가가 일반인을 대상으로 소개하는 건축과 역사, 작품에 관한 이야기이다. 건축의 신으로 불리는 스페인의 건축가 가우디의 일생과 그가 만든 건축물들에 대한 이야기다. 

 

가우디라는 역사적 인물의 일대기와 함께 그의 작품에 대한 전문적인 식견을 함께 늘어 놓았다면 자칫 산만하고 일관성 없는 내용이 될 수도 있었을 것이다. 

작가는 가우디의 각 작품별로 이야기를 풀어나가면서 어렵지 않게 설명을 풀어가고 있다. 그런 관점에서 작가는 현대 건축가로서 화려한 이력과 함께 글을 건축하는 것에도 뛰어난 재량을 보여준다. 

 

이는 전적으로 - 나만이 느낀 것일 수도 있는데 - 가우디가 스티브 잡스와 비슷한 성향이라고 봤기 때문이다. 스티브 잡스와 애플에 관한 책들을 보면 잡스의 고집불통, 괴팍함, 몰인정, 인간차별, 돌발언행 등 잡스의 개성과 특성에 촛점을 맞춰 장황하게 서술하다가 잡스의 혁신적인 업적을 끄집어 내어 나열한다. 그러한 것들과 혁신의 인과관계를 밝히지도 못하면서.

 

 

"가우디는 제도판 위에서 도면을 그리는 데 매달리지 않았다. 그는 항상 설계실을 박차고 나와 건물이 들어설 대지에서 3차원 공간구조를 먼저 세우고 나서 도면을 그렸다. 대지에 들어설 건축공간이 되자 하는 목적과 방향과 기능에 대해 충분히 질문하고 나서 춤추는 영감으로 구조와 기능과 미의 옷을 입혔다. 현장에서 보고 느낀 바람 소리, 물소리, 새소리, 한 송이 꽃과 나무까지 그들이 자아내는 영감을 바탕으로 3차원 모델을 만들어보고 나서 빠른 시간에 도면을 그렸다."

 

"그러나 가우디는 단 한순간도 장인정신을 손에서 내려놓은 적이 없었다. 항상 먼저 모델 작업이나 디테일 작업을 선행하며 모범을 보였다. 그와 함께 작업하는 사람들은 모두 가우디를 존경하는 동시에 두려워했다. 그들의 눈에는 별로 이상해 보이지 않는 작은 실수조차도 가우디는 가차 없이 허물어버리고 다시 시작했다. 가우디는 돈을 위해서 일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완벽한 작품을 만들어내기 위해서 신의 경지를 탐낸 예술가였다."


"가우디는 복잡한 구조의 건물을 단순하고 쉽게 지을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내기 위해 사무실에서 스케치에 몰입하기보다는 대지 현장에서 구상한 아이디어를 곧바로 모형으로 만들었다. 모형에서 발견한 공간을 정확하게 확인하기 위해 1:10의 축적의 도면을 그려야 했다. 전체 도면을 그리기 위해서는 넓은 책상 위를 이리저리 헤집고 다녀야 할 형편이었다. 할 수 없이 가우디는 한 가지 아이디어를 생각해냈다. 넓은 책상의 중앙에 사람이 들어갈 수 있을 정도의 구멍을 내고 중앙에 직접 들어가서 도면을 그리기 시작했다. 가우디의 가장 큰 특징은 남과 다른 생각을 하고, 남과 다른 방법을 찾아내고, 남과 다르게 행동한 것이었다."



이 책은 이처럼 가우디의 삶과 그의 작품에 관해 일관성있는 관점을 유지하면서 설명하고 있다. 아마도 작가 스스로 건축가이기 때문에 가능하리라. 

 

풍부한 사진자료는 문장으로 묘사하기에 한계가 있는 3차원 공간의 건축물들을 친절하게 설명하기 위한 작가의 노고가 엿보인다.

 

더욱이 아련한 학창시절 암기식으로 외웠던 고딕이나 로마네스크양식을 구분할리 만무한 내가 책의 후반부로 갈 수록 가우디 작품의 아름다움에 매료되었다.

 

카사 바트요와 카사 밀라를 보면서 '도대체 인간의 머릿 속에서 어떻게 3차원의 공간을 이토록 유기적이고 치밀하게 디자인 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감탄을 자아내게 된다.

 

작가는 본문을 통해 가우디의 건축 철학을 다음과 같이 소개한다.

 


""예술가는 작품을 만드는 데 도움이 될 자연을 찾아내어 창조주와 협력하는 것 뿐이다."라고 가우디는 입버릇처럼 떠들었다. 가우디에게 디자인이란 창조가 아니라 하나의 발견일 뿐이었다."


"부자를 위한 건물은 고난도의 디테일로 공간의 이상을 실현했지만 가난한 자를 위한 건물은 단순하고 절제된 구조로 공간의 본질을 구현해야 했다."

"도면을 그리기에 앞서 가우디는 그 공간에서 일어날 수 있는 다양한 활동을 항상 먼저 상상했다. 공간의 생명은 그 장소에서 일어나는 행위와 활동과 이벤트의 총합이다."

"살아있는 종교는 상상 속의 이야기가 아니라 사실적으로 묘사된 현실임을 가우디는 믿고 있었다. 자연은 신의 작품이듯이 사물과 인물들은 모두 신의 작품이다. 가우디는 허구의 대상을 재현하는 것은 미친 짓이라고 생각했다. 예수와 성자는 주변 인물들의 심성 속에 있다고 믿었다."


이러한 건축철학보다도 가우디가 더욱 매력적인 것은 당시 피카소를 비롯한 급진적 예술가들에게는 지독한 보수주의자로 지탄을 받았음에도 건축기술의 혁신은 물론 종교건축을 통한 종교혁신을 몸소 실천했던 예술인이었다는 점이다.


"모듈화 시스템을 도입하여 공사비와 시간을 절약하는 프리캐스트 공법을 1세기 전에 실험한 가우디는 복잡한 형태를 조각조각 해체하여 조립 가능하게 조율했다. 외부에서 제작된 단순한 조각들을 조립하여 복잡한 다리와 아치를 만들었다. 복잡한 구조의 건축물을 단순하게 조립할 수 있는 디테일의 힘은 기하학에서 나왔다. 복잡한 구조를 단순한 알고리즘의 고리로 해체하는 현대 건축공법을 19세기 말 가우디는 이미 시행하고 있었다."

"알람브라 궁전에서 무어인들이 실험한 기술을 응용하여 100년 전에 가우디는 배수, 정수, 저수의 과정으로 집약한 자연친화적인 집수 시스템을 개발했다."

"그 당시 스페인 성당은 일반적으로 성가대석을 막아놓았다. 성가대원석, 귀족석, 성당 소속 사제 순으로 정해진 위계 순서에 맞추어 앉게 되어 있었다. 가우디는 이 점에 대하여 의문을 제기했다. 20세기의 성당은 더 이상 권위의 상징이 아니라 모든 사람이 공평하게 하느님의 사랑을 교감하는 만남의 공간이라 믿었다. 대중에게 열린 성당을 만들기 위해서 가장 먼저한 일은 막힌 성가대석을 허무는 일이었다."


이 책을 통해 비로소 건축문외한이었던 내가 '건축이란 영화와 같은 종합예술이다.'라고 깨달을 수 있었다. 또한 건축의 신이라는 가우디를 알게 되었고, 그의 작품의 매력을 만끽할 수 있었다. 

내 주변에 스페인을 다녀온 사람들은 하나같이 스페인의 매력에 푹 빠져 와서는 그 낭만적인 분위기를 설명하기 위해 열을 낸다. 그런 스페인의 역사와 사회상에 대한 작가의 해박한 지식은 아직 가보지 못한 스페인이지만 조금 더 구체적으로 이해하고 다가 갈 수 있게 해 준다. 작가의 성공이다.

그러나 아쉬운 점도 있다.

첫 번째, 과연 공식적인 인쇄물이 맞을까 싶을 정도로 오탈자가 많다. 심지어 맞춤법이 틀린 곳도 있다. 

"부자들을 위한 집을 짓는 일에 몰두하면 할수록 가우디의 명성 높아져갔다. 언제부턴가 사람들은 이런 가우디를 부자들의 채면을 세워주는 일에 재능을 쏟아붓는 얼간이, 돈밖에 모르는 건축가라는 소문이 퍼지기 시작했다." 
- 본문 235쪽

이런 오탈자가 너무 많아 일일이 지적하기 힘들 정도이다. 아마도 작가가 끝까지 글을 완벽하게 다듬으려고 수차례 퇴고를 거듭하다가 생긴 오탈자일지도 모르겠다. 오탈자는 인쇄물의 신뢰를 떨어트리는데 오탈자는 꼭 출력 후에 발견되기 마련이다. 다음 쇄에서는 반드시 수정되어야 할 것이다.


두 번째는 작가의 문체가 지나치게 화려하다는 점이다. 특히 가우디의 첫 번째 작품이 나오기 전까지 성장기를 설명하는 전반부에서 두드러진다. '과연 건축가가 맞나? 소설가인가?' 싶을 정도로 화려한 문장을 보여 준다.

건축은 예술이라는 관점에서 건축에 대한 작가 본인의 철학과 감성을 실어 표현한 것으로 이해된다.


"메시아의 형상을 만들지 못하게 하는 이슬람의 율법은 무심한 돌 조각에 빛으로 물든 생명의 영감을 조각하게 했다. 가우디에게 빛은 풀무에서 타고 있는 태양의 거친 조각이자, 투명한 지중해의 햇빛과 돌의 애무였다."

"삶의 고통을 가려주려는 듯 골목에 드리운 그림자가 융단처럼 하늘을 이고, 뒤뚱거리는 협곡은 푸른 하늘을 버겁게 물고 있었다. 악취, 노점상이 가득하고 다툼, 섹스, 소음 등이 빈번한 빈민가의 좁은 골목길을 따라 걷다 보면 제각각인 건축 양식과 각양각색의 사람들이 뿜어내는 비릿한 살 냄새가 도시에 깊은 한을 아로새겼다."

"그에 비해 리베라 지역은 세상을 떠돌다 마지막 숨을 곳을 찾아든 가난한 노동자들의 질긴 생명들이 서로 부딪히며 아우성치는 막장이었다. 시중잡배들의 선술집과 매춘의 소굴이었던 선창가는 지금 화려한 워터 프론터로 옷을 갈아입고, 지중해의 바람에 실려 오는 파도의 포말에 과거의 상처를 말끔히 세척하고 아름답게 미소 짓고 있다."


하지만 과유불급이라고 지나치게 화려한 문장은 무엇을 말하고 싶은 것인지 진의를 파악하기 어렵게 만들기도 한다.
예를 들어 세탁기 매뉴얼에 다음처럼 써 있다면 어떨까?

"매미소리 높고, 햇살마저 더위에 지쳐버린 한여름. 행여나 서산 끝자락을 붙잡고 매달리면 먼 바다 흰파도처럼 바람에 살랑이는 홑이불이 더욱 뽀송해질까. 뽀송뽀송한 에어크린을 선택하시려면 여유로운 오후, 테라스에 앉아 향기로운 커피잔을 스푼으로 젓듯 메인 다이얼을 천천히 오른쪽으로 돌려 에어크린을 선택하세요. 그리곤 몰래 마음을 준 그 이 앞에서 머뭇거리는 풋사랑처럼 살포시 시작버튼을 눌러주세요."


"시간의 침묵 소리가 삐거덕거리며 거친 삶이 토해내는 중세의 한숨 소리를 들을 수 있는 리베라의 상징인 라이에타나 거리는 좁아서 더 친근하고, 깊어서 더 외롭다."

"그리고 로마네스크 기둥은 신고전주의 건축물의 발코니에 올라타고서 지난 시간을 침묵으로 노래하고 있다."


이 중에서도 작가는 유난히 '침묵'이라는 단어를 사용한 역설과 은유를 자주 보여준다. '소리없는 아우성'이라는 시적인 표현은 이미 유명하다. 같은 방식으로 반복해서 쓴다면 분명 진부해진다. 이 책은 문학작품이 아니며 화려한 문체에 대한 의견은 전적으로 나만의 주관적 판단이다. 이는 읽는 이의 감성과 취향에 따라 다르게 수용될 수 있다. 


"스페인은 가우디다"

이 책은 건축 전문가가 아니더라도 쉽게 가우디와 스페인을 이해할 수 있게 해 준다. 스페인 여행을 계획한다면, 스페인을 이해하고 싶다면 아마도 가장 먼저 손에 들어야 할 책이 아닐까 싶다.

FC바르셀로나 팬들도 필독 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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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버드 창업가 바이블 - 전 세계 창업가들의 27가지 감동 스토리
다니엘 아이젠버그 & 캐런 딜론 지음, 유정식 옮김 / 다산북스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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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도 인연이 있다. 이번에 만난 '하버드 창업가 바이블'이 나에겐 매우 적확한 시기에 만나 선연이 된 책이다.

대부분의 경영/마케팅 서적들은 스티브 잡스와 빌 게이츠를 소개한다. 애플, MS,  페이스북, 구글 등 대부분 IT업계의 성공 신화를 분석하며 독자에게 마크 주커버그처럼 어린 나이 때부터, 스티브 잡스와 같은 혁신과, 빌 게이츠와 같은 경영감각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한다. 스티브 잡스와 애플에 관한 내용은 너무 많이 듣고 읽어서 이젠 나더러 책을 쓰라고 해도 쓸 판이다. 
한 때 정부에서조차도 정책을 통해 스티브 잡스나 빌 게이츠 같은 인재를 대량으로 육성할 수 있다고도 했으니...

이 책에는 우리가 기존에 알고 있던 성공사례는 없다. 더구나 창업가에 대한 막연했던 고정관념을 깨준다.

역설적이지만 고지식한 나는 이런 책이 좋다. 고지식한 성향임에도 종종 기존의 잘못된 관념들을 통렬히 깨 부수는 것에서 성취감과 희열을 느끼기 때문이다.

대체로 저자가 독자의 마음을 잘 이해할수록 전체 구성과 목차가 잘 정리되어 있는데 이 책이 그렇다.

총 4부로 구성되어 있는데 1부에서는 기존의 관념을 부정하고 2부와 3부에서는 창업가의 공통점 또는 자격요건 등을 논한다. 마지막 4부에 가서는 저자가 정의하는 창업가를 설명하기 위해 가치 인식, 가치 창조, 가치 획득으로 개념을 정립하여 주장한다.

1부에서는 '창업가에 대한 잘못된 선입관'을 깬다. 창업가가 굳이 혁신가이지 않아도 된다고, 전문가이지 않아도 된다고, 더구나 젊지 않아도 된다고 한다.

창업과 경영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독자라면 앞부분부터 자극이 되어 책장을 서둘러 넘겨 보게 될 것이다.

2부에서는 성공한 창업가들에게 발견되는 공통점을 '역발상'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잠시 내 얘기를 해 보자.
내가 현재 일하고 있는 사진분야에서 7년만에 나만의 사업 아이템을 발견하여 3년여 정도 사업계획을 구상하고 다듬어 왔다. 

올해 초에 창업을 위해 자금을 구하겠다고 했을 때 내 주변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부정적으로 말했다. 
운영 중이던 스튜디오도 문을 닫을 정도로 경기가 좋지 않다. 누구나 디지털 카메라를 들고 다니는데 사진관이 되겠느냐. 요즘 사진관 시작해서 투자비 회수나 가능하겠냐는 등. 맞는 말이다.

심지어 나를 상업사진분야로 끌어들인 친구마저 소상공인 지원 대출조차 불가능할 것이라고 못 박아줬다.

모바일 게임회사의 부사장으로 있는 선배만이 내 사업계획서를 검토 해 주었는데 오랜시간 고민하여 꼼꼼하게 잘 만든 사업계획이라고 평가 해 줬을 뿐이다.

한 번은 소상공인 지원센터의 창업기본교육을 받으러 안산시청에 갔을 때 일이다. 여섯명의 강사가 마치 함께 모여 작심이라도 한듯이 대다수 요식업 창업자들의 나태한 마인드와 창업행태를 신랄하게 비판하다 못해 물어 뜯었다. 나는 단지 요식업이 아니라는 점에서만 안도할 수 있었다.


"출발선에 섰을 때는 박수 받을 것을 기대하지 마라."
(중략)
창업하려는 사람이 열광하던 기회는 처음부터 좋은 호응을 받는 경우가 거의 없다. 이것이 바로 창업가들이 역발상적으로 기회를 인식하고 체계화해나가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일반적인 특징이다.
(중략)
창업에 성공한 사람들은 대개 사람들이 자신의 아이디어를 우습게 생각하더라도 무시할 줄 안다. 역사는 아이디어에 대한 창업가의 확고한 자신감을 인정해주지 않은, '유명한' 거절 사례들로 가득하다.
(중략)
창업가들은 다른 사람들이 쓸데없고 불가능하고 멍청해 보인다고 간주하는 상황으로부터 가치를 발견하고 창조한다. 이것이 창업가의 일이다. 
- 본문 중에서


2부의 본문 중에 이런 글을 읽었을 때 적어도 내겐 위안이 되고 용기를 불어 넣어주는 격려로 다가왔다. 이렇게 창업가는 외로울 수 밖에 없다는 것을 확인 받고서야 주변 반응에 대한 섭섭한 마음이 사라졌다.

3부에서는 창업가가 필연적으로 맞이하게 될 '역경'을 주제로 창업가에게 경고를 해 주기도 하고 주의를 환기시켜주기도 한다. 

창업가정신이라는 '부엌'은 위험하고 뜨겁다. 그리고 모든 사람들이 그런 부엌에서 일할 운명을 타고난 것도 아니다. 그래서인지 새로운 무언가를 '요리'하려고 하면 항상 폄하하는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그들은 요리하다가 불에 델 것을 두려워한다.
- 본문 중에서

역경을 대하는 태도가 바로 창업가의 최소 자격이며 더 나아가 '역경'을 피하지 않고 정면으로 극복하는 것이 그 자체로 '진입장벽'을 만드는 것이라고 한다.

창업가들은 외부의 역경을 마주할 때마다 자기 내부에서 결단력, 인내력, 유연한 문제 해결력 등이 생겨난다고 믿는다. 사실 많은 창업가들은 체스코와 아완처럼 외부의 역경을 극복하고 극히 불리한 환경 속에서 성공적으로 가치를 창조하는 능력이 바로 경쟁을 위한 전략이자 '잠재 경쟁자들을 막는 진입장벽'이라고 여긴다.
- 본문 중에서

4부에서는 저자가 주창하는 창업가에 대한 새로운 정의를 내리기 위한 요소로 '비범한 가치 인식', '비범한 가치 창조', '비범한 가치 획득'이라는 개념을 정립한다.

비범한 가치의 인식과 창조는 2부에서 논한 역발상과 상당부분 일맥상통하는 부분이며 다른 마케팅/경영서적에서도 쉽게 접할 수 있는 개념이다. 

창업자는 결국 결과(비범한 가치의 획득)로 평가받을 수 밖에 없으며 비범한 가치를 발견하고 창조하였더라도 정작 창업자 스스로 비범한 가치를 획득하지 못했다면 창업가라고 할 수 없다는 다소 파격적인 주장을 펼친다.

사실 가치의 획득이라는 부분에서 저자의 확고한 주장을 그대로 받아들이기가 다소 불편했는데 내가 '가치'를 폭넓게 정의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 책에서 저자가 말하는 '비범한 가치'를 단지 '경제적 가치'로만 국한 지어 생각한다면 저자의 주장을 훨씬 타당성 있게 수용할 수 있을 것이다.

앞서 말했듯이 개인적으로 처한 상황과 맞물려 이 책이 문학책도 아닌데도 내게 용기를 주는 책이 되었다.  

저자도 서두에 말했듯이 '요리책'같은 창업관련 서적은 많다. 이 책은 그런 요리책이 될 수는 없다.
이 책을 통해 자신의 창업 아이템을 다시 한 번 점검 해 보고 창업과정 전반에 걸친 마음가짐을 점검하여 방향을 정할 수 있을 것이다.

단지 아쉬운 것은 몇 가지 대표사례가 계속해서 반복 소개되는 점이다. 애플과 잡스와 같은 유명한 사례를 모으려고 했다면 당사자를 직접 인터뷰하거나 회사를 방문하지 않고도 간접적인 경로를 통해 여러 사례들을 확보하여 소개했을 것이다.
이 책에 소개된 사례들은 모두 저자와 인맥이 닿거나 직접 인터뷰할 수 있는 평범한 사람들의 성공창업 사례이기 때문에 다양성은 조금 부족한 것이라고 애둘러 이해 해 본다.

창업에 관심이 없고 계획이 없는 사람은 이 책을 읽는다고 해서 창업에 대한 관심이 생기거나 창업을 하겠다는 용기를 불러 낼 수는 없다.

창업을 계획하거나 아이템을 갖고 있으면서도 아직 방향을 찾지 못한 사람들에겐 이 책은 성능 좋은 나침반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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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최고의 학교는 왜 인성에 집중할까 - 하버드가 선정한 미국 최고 명문고의 1% 창의 인재 교육법
최유진 외 지음 / 다산에듀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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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문제만큼 하고 싶은 말과 논쟁거리가 많을까? 

이 책의 서평을 쓰려다가 엉뚱하게도 교육에 관한 내 생각만 한 가득 쓰다가 모두 지우고 다시 처음으로 돌아왔다.

이 책은 엄밀히 말하면 미국의 명문고등학교인 필립스 엑시터의 소개서이다. 필립스 엑시터 고등학교를 자세하게 설명함으로써 전인교육의 필요성과 교육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 해 주고 있다.

우리는 알고 있다. 오바마 미국대통령이 공식석상에서 칭찬하는 한국의 교육의 장점이 사실이 아니라는 것을. 

애둘러 이렇게 해석한다. 한국의 교육을 칭찬한 것이 아니라 교육열을 칭찬한 것이라고.

이제 이 책을 통해 우리는 한국에 없는 미국의 전인교육현장을 엿볼 수 있게 된다.

나는 토론과 토의, 논쟁과 언쟁을 구분 못하고 내 의견에 거슬리면 기분이 상하여 흥분하고 목소리마저 높아진다. 그래서 선진국의 토론식 수업이라고 하면 막연하기도 하려니와 그 수업 분위기를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내겐 고역인 것이다.

하지만 현장에서 직접 수업을 진행했던 저자의 친절한 설명은 전혀 거부감이 들지 않고 마치 그 자리에 앉아있는 듯 분위기에 젖어들 수 있다.

교육에 관심이 많은 부모라면 읽어봐야 할 책이다. 좁은 나라 안에서 주입식 교육을 받고 자라 경직된 사회를 만들어 온 우리네 한국사람이 이 책을 통해 교육에 대한 패러다임을 바꿀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나는 딸 아이가 공부만 잘하는 아이가 되기 보다는 공부는 조금 못해도 책을 많이 보는 행복한 아이가 되었으면 한다. 이 책의 말미에 별도로 편집된 저자의 성장기와 유학생활의 기록은 그 점에 많은 도움이 된다. 본문 중에서도 학업 성적과 독서능력과의 상관관계를 정리 해 준 부분도 매우 유용하다.

이 책을 통해 막연하던 토론식 수업, 미국 유학생활 등을 손으로 만지듯 구체적으로 볼 수있어서 좋았다. 아내에게도 꼭 읽어보라고 권했다.

이 책을 보고 나서 또 다시 학창시절로 돌아갔으면 좋겠다, 지금의 인생이 단 한번 뿐인 것이 아쉽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필립스 엑시터에서의 생활이 생생하게 펼쳐져 있다. 

특히 자식을 미국 유학 보낼 계획이 있는 부모라면 반드시 읽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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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은 눈물 위를 달린다
팀 보울러 지음, 양혜진 옮김 / 놀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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팀 보울러의 '소년은 눈물 위를 달린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가족의 의미와 가치를 재확인시켜주는 이야기이다. 짧은 단편소설이지만 10대의 심리상태를 정확하게 묘사하고 있다. 

​원제 'Night Runner'를 '소년은 눈물 위를 달린다'로 번역했는데 우리말 제목이 더 잘 어울리고 멋들어진다. 제목 짓는 이의 감성과 재량이 뛰어나다. 

감성과 창의력이라곤 눈꼽만큼도 없는 나더러 지으라고 했다면 아마도 '야간 배달부'나 '오밤의 뜀뛰미'라고 했겠지...

줄거리 자체는 결코 평범하거나 일상적이지 않다. 일상을 묘사한 드라마라기보단 범죄 스릴러에 가깝다. 헐리우드 영화를 많이 보아 온 우리들에게 이 책의 줄거리는 어쩌면 영화로 한 번쯤 봄직하다는 착각을 불러 일으킨다.

여느 부모처럼 아들을 죽도록 사랑하지만 자기 기분에 따라 신경질적으로 손찌검을 하는 부모 밑에서 자란 주인공 지니 오코로는 학교에서도 친구 하나 없이 스핑크라는 아이에게 매일 맞는게 일이다.

스핑크에게 맞는 게 싫어서 - 또 부모도 때림으로 - 부모 몰래 학교를 빠진 어느 날, 집 안의 침입자가 들어오면서 겉잡을 수 없는 사태에 휘말려 든다.

그 침입자는 범죄소굴의 우두머리 중 하나였고, 그들을 집안으로 불러오게 된 것은 어머니의 칠칠치 못한 행실에 기인한다. 주인공의 시각으로 평가하자면 그것은 또 다시 무능한 가장인 아버지에게 책임의 화살이 날아가게 된다.

그런 어머니와 아버지를 죽이겠다고 협박하는 악당에게서 가족을 지키기 위해 주인공 지니는 밤마다 달리게 된다.

단편소설의 특징인지 영국문학의 특징인지 구분하기 어렵지만 문장이 담백하기 그지없다. 주변상황과 공간에 대한 묘사는 절제된 반면 주인공의 움직임과 동작 등은 짧은 문장으로 속도감있게 그려져 있다.

굳더더기 없는 문장과 촌철과도 같은 등장인물의 짧은 대화들은 읽는 이가 다른 생각을 할 겨를도 없이 이야기 속으로 빨려들어 마지막 책장으로 달려가게 만든다. 


아마도 이 책을 읽은 사람이라면 열이면 열 반드시 '오이디푸스 컴플렉스'를 꺼내어 놓으리라. 그 관점을 유지하자면 분명히 곳곳에 보인다. 


엄마가 나를 바짝 끌어안는다. 나는 엄마 목덜미에 머리를 푹 처박고는, 조금 전 바로 이 자리를 빨아 대던 로미오의 입술을 잊어 보려고 노력한다. (46쪽)

다른 엄마들과 함께 교문 앞에 서 있는데, 일고여덟 살밖에 안 된 주제에 나는 우리 엄마가 다른 엄마들보다 미인이라고 생각했다. 진짜 여자 말이다. (48쪽)

그런데 황당한 건, 엄마는 쇠약해 보이지만 그래도 여전히.....
"아름다워요." 나는 말한다.
내가 왜 간호사에게 이런 말을 하고 있나 모르겠다. 그저 듣는 사람을 당황스럽게 할 뿐인 말을.(194쪽)
 
이것은 작가가 10대인 지니의 심리적 모순상태를 표현하기 위해 차용한 요소 중 하나로 보인다. 역시 이 책의 백미는 긴박한 상황 속에서도 가족에 대한 애증과 심리적 모순을 절묘하게 표현 해 낸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단지 줄거리를 끌어가는 것에 초점이 맞았다면 여느 드라마나 영화 시나리오처럼 지니의 부모는 그냥 자식을 학대하는 부모로 단순하게 표현됐을 것이다. 주인공 지니 역시 그런 부모 밑에서 자라서 온갖 육체적 심리적 병폐가 있는 그래서 복잡해 보이는 캐릭터로 묘사됐을 것이다. 

지니의 부모는 자식을 학대하는 부모는 아니다. 아들을 죽도록 사랑하지만 단지 일상에 찌들어 습관적으로 자식에게 손찌검을 할 뿐이다. 극중에서 악마의 모습으로 그려지는 부모가 아니라 일상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여느 부모들의 모습으로 된다. 

지니 역시 모든 면에서 부모가 마음에 들지 않지만 부모가 자신을 사랑하는 만큼 부모를 죽도록 사랑한다. 또 그 속에서 10대답게 자신의 모순된 심리와 감정을 놓치지 않고 고민해간다.

지극히 평범하고 현실적인 이 두가지가 읽는 이로 하여금 이 책의 이야기에 더욱 공감되고 몰입되는 지점일 것이다.


엄마는 잠시 문이 닫히는 걸 지켜보더니 몸을 돌려 내 얼굴을 후려친다. 나는 악하고 뒤로 한걸음 물러난다.(중략)
그런데 또다시 손바닥이 날아드는 게 보인다. 이번에는 엄마의 손목을 붙잡는다.
"놔, 지니!"
"안 때린다고 약속하면"
"약속 못 하겠다면"
나는 그래도 놔준다. 하지만 엄마의 손을 계속 주시한다. 손은 여전히 옆구리에서 파르르 떨고 있다.(중략)
엄마는 내가 앉을 자리를 내준다. 내가 옆에 털썩 앉자 엄마는 팔을 뻗어 어깨동무를 한다.
"망할 꼬맹이."
"좀 닥쳐, 엄마."
엄마가 나를 바짝 끌어안는다. - 본문 중에서

아빠가 옷을 입은 채로 침대에 널브러져 있는 모습이 눈에 선하다. 맥주 캔을 내려놓는 소리가 나지 않았으니 침대는 물론 몸에도 엎질렀을 것이다. 처음 있는 일도 아니다. 한번은 몸에 온통 토한 채 그대로 잠이 든 적도 있었다. 나는 아빠가 괜찮은지 확인하러 가지 않을 거다. 지금 당장은 그 꼴을 보아 낼 자신이 없다. 대체 내가 왜 저 개자식을 사랑하나 모르겠다. 함께 보낸 좋은 날들 때문인 것 같은데, 요즘은 그런 날도 거의 없다. 엄마도 똑같다. - 본문 중에서

이제 나는 침대에서 물러선 채 아빠를 내려다보며 중얼거린다.
"주정뱅이 새끼, 당신은 나한테 사랑받을 자격도 없어."
나는 엄마를 떠올린다.
"당신도 마찬가지고."
하지만 어떤 말도 진심이라고 장담할 수 없다. - 본문 중에서

이런 이유로 결말에 가서야 부모가 모든 잘못을 인정하며 주인공을 껴안고 끝나는 영화같은 카타르시스는 없다. 비록 주인공이 심리적 모순 상태에 있었지만 이 가족이 서로 끈끈하게 사랑하고 있다는 전제에는 변함이 없었기에 그렇다.

10대의 심리와 특성에 대한 작가의 예리한 통찰력 두 가지를 볼 수 있다. 
첫 번째, 10대의 심리와 기억은 사진 같은 또렷한 이미지로 남는다는 것이다. 또 하나는 그렇기 때문에 어떤 대상을 특성이 함축된 별명으로 부름으로써 직관적으로 표현한다는 점이다.

지니는 엄마와 각별한 사이인 듯한 남자를 '로미오'라고 부른다. 또한 자신을 괴롭히는 악당을 '플래시 코트'라고 부르기도 한다. 반면 지니에게 친절하지만 별명을 붙이지 못한 - 특성과 이름의 연관성을 찾지 못한 간호사인 '파이드레이'의 이름은 몇 번이나 들으면서도 잘 기억하지 못한다.

지니는 자연 사진집 한 권을 소중히 간직하며 잠들기 전 혼자만의 시간에 들춰본다. 그 속에 담긴 고요하고 평화롭지만 인상적인 풍경사진들은 지니가 동경하는 낙원이다. 

유독 지니에게 반복되어 들리는 도시의 소음. 이 소음이 지니가 처한 상황에 따라 지루하게도, 시끄럽게도, 그립게도 표현된다. 이 소음과 더불어 어둡고 지저분한 뒷골목, 삭막한 동네 전경 등은 사진첩에서 보았던 전원의 풍경과 대비를 이룬다.

 지니의 마음에 따라 가변적인 도시환경에 비해 전원의 풍경은 절대적이다. 사진 속 풍경은 거꾸로 지니의 마음으로 들어오는 것이다. 또한 지니의 유일한 탈출구로써 역할을 한다. 지니는 이 사진들을 자주 연상함으로써 한 번도 가 본적 없는 그 곳들을  마치 가본 듯이 더욱 더 사무치게 그리워하게 된다. 사진 속 풍경이 자기의 것으로 되는 과정이다.

그 낙원을 엄마에게 의도치 않게 지니의 '손'이 꺼내어 줌으로써 지니의 꿈은 가족의 꿈으로 공유된다. 소통의 창구가 된다.


이 책은 뚜렷한 주제인 가족에 대한 애증과 그 심리적 모순 상태에 대해서 주절주절 떠들지 않는다. 
지니와 함께 숨차게 뛰다가 보면 내가 사춘기때 느꼈던 심리상태가 되살아난다. 
물리적 폭력이든 언어적 폭력이든 서로에게 폭력을 난무하는 가족간의 애증. 그것을 10대의 눈으로 보면서 독자 스스로 되새김질하게 만든다.

나 역시 사춘기 때 어머니와의 갈등이 극에 달했었다. 그 속에서 나 나름대로 심리적 모순을 극복해 내야 했다. 아니 극복하지 못하고 최근까지도 그 애증의 관계를 이어오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곤 애써 외면하여 저만치 멀리 치워두고 있었다. 

이 책은 이제 내가 가정을 꾸려 자식을 낳고 가장이 되어 그것을 다시 한번 꺼내어 보는 기회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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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미유 형사 베르호벤 추리 시리즈
피에르 르메트르 지음, 서준환 옮김 / 다산책방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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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인 베르호벤 카미유가 강력계 형사이기에 추리소설 분위기를 물씬 풍겨온다. 오랜만에 추리소설을 읽게 됐구나 싶어 기대가 컸으나 엄밀히 말하면 추리소설이라기 보다는 스릴러이다. 그래도 본격 수사물이라면 충분히 그 맛을 즐길 수 있으리라.

카미유의 연인인 안 포레스티에가 금은방 강도사건의 폭행 피해자가 되면서 연이어 벌어지는 3일간의 사건을 다룬 내용이다. 마치 미국 드라마 '24시'처럼 1일, 2일, 3일의 3부로 구성된다. 소제목은 진행되고 있는 현재 시간으로 되어 있다.

이러한 구성은 호흡이 매우 짧은 문체와 과거와 현재, 미래를 섞어 자유롭게 오가는 서술기법, 정밀한  상황 묘사, 구체적인 심리묘사와 더불어 몰입도를 증가시킨다.

안 포레스티에가 무장강도에게 폭행당하는 장면과 그 장면을 주인공 카미유가 사후에 CCTV로 확인하는 장면은 40여 쪽에 걸쳐서 묘사되어 있다. 짧은 문체로 속도감을 더 한 전개와 데생같은 작가의 묘사력은 마치 읽는 이가 직접 폭행 당해 얼굴이 퉁퉁 부은 듯한 통증을 느끼게 한다. 폭행상황이 어서 빨리 끝나기를 바랄 정도로 읽는 동안 견디기 힘들만큼 괴롭기까지 하다.

초반에 과거와 현재를 빈틈없이 섞어 놓은 서술방식도 압권이지만 극을 끌어가는 또 하나의 백미는 '시점'이다. 주인공 카미유와 그 주변으로 벌어지는 상황은 3인칭 시점(전지적 작가시점)으로, 범인은 1인칭 시점으로 진행된다. 

3인칭 시점에서 독자는 등장인물의 모든 것을 알 수 있다. 그것을 다시 범인의 관점인 1인칭 시점으로 동시에 보게 되면 독자는 더욱 초조해 지고 상황에 몰입될 수 밖에 없다.

더구나 시점이 교차되기도 한다. 병원에 범인이 다녀간 후 카미유와 안의 대화까지 3인칭으로 서술되다가 간호사가 대화에 끼어든 순간부터 간호사의 1인칭으로 서술되고 있는 것이다.

이 '시점의 전환'은 중간에 있는 반전을 위해 작가가 독자에게 던져주는 일종의 힌트가 아니었나 싶다. 1인칭으로 말하고 있는 '내가' 누구인지 끝까지 놓치지 말란 듯이 말이다. 또한 범인을 꽁꽁 숨겨두기 위한 장치이기도 하다.

강도사건 직후 용의자들의 이름이 회고되거나 직접적으로 나열되면서 독자는 1인칭의 범인이 대충 누구일 것이라고 예측 할 수 있다. 중간에 가서야 예상 했던 그 사람이 아니었다는 반전이 나올 때는 다시 앞부분을 뒤적이지 않을 수 없었다. 전개가 빠른 이야기를 따라 가기도 바쁜데 읽었던 부분을 잘못 이해했다는 생각에 다시 더듬게 되는 마음은 답답하기만 하다.

의례 소설의 반전이라는 것이 그렇기야 하겠지만 이 부분에서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를 연상하게 된다. 줄리언 반스가 기억의 불명확성을 집필동기로 했던 것처럼 피에르 르메트르도 기억의 왜곡과 기억이 취사선택된다는 것을 곳곳에서 직접적으로 다루고 있다.

"인간이란 기억을 각각 다른 순서로 재배열하는 법이다."  (본문 중에서​)

"혹시 이처럼 불행한 옛일조차도(그는 한참 동안 어떤 표현이 좋을지 고민해본다) 미묘한 기억의 조작에 따라 미세하게 다른 빛깔로 채색되고 만 것은 아닐까? 가장 은밀한 방식으로 침윤되어버린 것은 아닐까? 분명히 셈을 다 치렀는데도 예기치 않게 남아 있는 계산서의 잔액처럼 말이다.​"  (본문 중에서​)

"영원한 수수께끼 한 가지. 어떻게 해서 우리는 어떤 결론에 다다르게 되고 그런 결정을 내리게 되는가? 어떤 순간에 우리는 스스로 어떤 결정을 내렸는지에 대해 의식하게 되는가? 카미유의 대답에 스며들어 있는 무의식의 몫이 얼마나 되는지는 얼른 확답하기가 불가능한 문제이다.​"  (본문 중에서​)

더 나아가 '인식의 한계' 또는 '인식의 부조리'도 작은 소재로 삼고 있다. 안 포레스티에가 폭행으로 실신 해 있다가 의식을 어느 정도 회복했을 때 죽은 듯이 그대로 엎드려 있어야 하는 것이 올바른 처세라 할 수 있다. 안이 주변상황과는 무관하다는 듯이 핸드백까지 챙겨서 일어나 힘겹게 걸어가는 모습을 통해 강한 충격에 의한 인식의 부조리를 표현한다. 또 그것이 누구나 강한 충격에 노출됐을 때는 그럴 수 있다는 것을 행동과 상황묘사를 통해 읽는 이에게 충분한 공감을 얻어 내고 있다. 이것은 또 다시 충격적인 상황에 처한 카미유에게 향한다.

소설의 앞부분부터 작가는 대체로 염세적인 세계관 내지 사회관을 보여 주며 유지하고 있다.

"즉, 최악의 상황에서 황당해 보일 만큼 낙천적으로 대처하는 것이야말로 그나마 가장 나은 길이 아닐까. 그러니까 안의 농담은 긍정적인 징조다. 그 농담이 조금 더 이어졌다면 아마 카미유는 그녀의 퇴원수속을 밟으러 수납 창구로 달려갔을지도 모를 일이다. 희망은 이토록 비열한 기만이다.​"   (본문 중에서​)

 "희망은 실로 재앙 중에서도 최악의 재앙이다. 왜냐하면 희망은 인간의 고통을 연장시키기 때문이다"라는 니체의 말과 대등하게 연장선을 이어간다고 할 수 있다.

"비극적 숙명은 안도하는 사람을 덮치길 좋아한다. 안도의 눈길로 세상을 바라볼 때만큼 비극적 숙명이 엄습하기 좋은 순간도 없다. 그리고 그 순간, 그것은 마치 우연처럼 한 치의 오차도 없이 개입한다."​  (본문 중에서​)

"부조리하게도 세상은 우리의 삶을 예고도 없이 이토록 참혹하게 짓밟는다. 그에 대해 우리는 속수무책이다. 피해자가 자신의 억울함을 호소할 수조차 없는 불의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이다.​"  (본문 중에서​)


최근 들어 한국 사회에서 보여지고 있는 납득하기 힘든 뉴스와 사건사고들을 보면 사회의 단면을 지적한 작가의 지적은 매우 적확하다고 공감하게 된다.

사실 이것은 세태풍자를 넘어 살인사건으로 전부인을 잃은 한 남자가 4년만에 생긴 연인을 또 다시 강도사건으로 잃을 처지가 된 것 자체가 ​암울한 숙명이라는 것을 강조하기 위한 장치로 볼 수 있다. 이런 관점에서 앞서 언급한 기억의 왜곡이나 인식의 부조리 역시 주인공 카미유가 처한 암울한 숙명적 현실을 뚜렷하게 부각시키고 있다.

이 불운한 주인공이 억세게 운이 없는 사람이라고 어느 정도 인정할지라도 그가 처한 상황에서 자칫 현실감이 결여된다면 독자는 공감하기 힘들어지기 때문일 것이다.

카미유는 단순 강도사건에서 피해자이자 연인인 안에게 필요이상의 살의를 드러내는 범인의 행적에서 끊임없이 의문을 갖는다.

"실제로 대체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무언가 이상하다."  (본문 중에서​)

만약 독자가 추리를 하자고 한다면 이 질문에서 출발하는 것이 정답이 될 것이다. 본격 추리물이 아니기도 하겠지만 '이렌'과 '알렉스'를 읽지 않은 독자에겐 이야기가 종반으로 치달을 때까지 별다른 단서가 잡히지 않는다.

"왜 그런지 설명할 수는 없지만, 그는 어쩐지 자기가 지금 잘못된 길로 접어든 것 같다는 직감에 시달린다. 여기서 이러고 있어봤자 아무 소용없다. 아무래도 이 사건은 끝이 무척 안 좋을 것만 같은 예감."   (본문 중에서​)

작가가 던져 준 친절한 복선 중 하나이다.

"누군가가 불시에 재난을 맞을 때 겹치는 우연이란 언제나 무작위적인 법이다. 하지만 또한 이런 우연의 겹침 덕분에 카미유에게도 안 같은 여인을 만나는 날이 찾아왔다고도 할 수 있다. 그러니 모든 것을 싸잡아서 불평할 수만은 없는 노릇이다."   (본문 중에서​)

그러면서도 초반엔 이처럼 우연을 강조함으로써 돌발적이고 우발적 사건인 듯 포장 해 간다. ​흔히 소설에 우연이란 있을 수 없다는 것이 정설이다. 모든 것의 인과관계가 명확해지​는 소설 종반에 가서는 "미래는 언제나 자기를 뒤따라오는 법이죠."라며 오히려 인과를 강조하기에 이른다.

"흔히들 사람은 상황에 따라 흔들리 수밖에 없다고 믿는다. 하지만 그는 그렇지 않다. 우리에게 닥친 일이란 우리가 스스로 빚어낸 결과물일 뿐이다."   (본문 중에서​)


결국 주인공 카미유에 의해 사건은 해결되지만 주관적인 관점으로 보자면 희비가 명확하지 않은 결말이라고 할 수 있다. 한 사람으로서 '카미유'를 보자면 누구에게나 동정 받아 마땅한 기구한 삶의 주인공이라 할 수 있다. 그런 카미유의 삶을 통해 보면 작품 전반에 걸쳐 작가는 독자에게 과연 희망을 던져주기나 하는 것일까?라는 의구심이 생긴다. 작가는 마치 그것을 아껴두었다는 듯이 마지막 세쪽을 남겨두고 다음과 같이 꺼내어 놓는다.

"그래, 물론 나도 알아. '희생'이라는 말, 누가 누구를 위해 '희생'해왔다는 말, 참 가소롭지....요즘 자주 쓰이는 말도 아니고, 옛날 연속극 같은 데서나 나올 법한 표현이지.(중략) 그러니 누가 누굴 위해 희생한다는 게 전혀 가당치 않은 일만도 아니지.​(중략) 바닥까지 가라앉기를 무릅쓰고, 누군가가 다른 사람을 위해 희생한다는 게 결코 잘못된 일이 아니라는 사실을 확인한 셈이잖나.(미소) 요즘처럼 각박하게 이기주의만 판치는 세상에서는 차라리 사치스러워 보일 수도 있겠지만 말이야. 안 그래?"

작가 피에르 르메트르는 자신이 탄생시킨 카미유보다 더욱 관찰력이 뛰어난 사람임에 틀림없다. 전화로 사건보고서를 독촉하는 미샤르 서장과 카미유가 통화하는 장면에서는 마치 독자가 당사자가 된 듯 하다. 
카미유의 부하 루이가 보고하는 다른 사건들의 내용이나 카미유와 범인의 눈에 비춰진 주변사람들의 묘사를 보면 현대의 프랑스 사회도 한국 사회가 보여주는 현상과 별반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알게 해 준다. 문화와 철학의 나라이며 선진국으로 칭송되어지는 프랑스라 할지라도 현대인의 본성이 만든 무대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피에르 르메트르는 현대를 살아가는 인간의 본성을 통찰하는 지점을 정확히 알고 있는 듯 하다. 

이렇듯 피에르 르메트르의 문체, 서술기법, 묘사력 등은 마치 한편의 영화 시나리오처럼 친절하고 선명하게 이야기를 이끌어 가고 있다. 잘 만들어진 영화 한편을 보는 듯하다. 만약 이 작품이 시나리오라면 카메라 워킹까지도 고려된 듯한 작가의 묘사력에 탄복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440쪽이 넘는 분량이지만 읽다보면 어느 덧 마지막장을 넘기고 있을 정도로 흥미진진한 이야기가 펼쳐진다.

다만 아무래도 시리즈물이다보니 앞선 작품의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다. 피에르 르메트르의 작품을, 더구나 베르호벤 시리즈를 처음 접한다면 가능한 순서대로 '이렌'과 '알렉스'부터 읽는 것이 좋을 것이다. 이런 수사물에서 함께 추리하는 것을 즐긴다면 더욱 그렇다. 그래야만 살아 숨쉬는 인간 카미유의 고뇌에 더욱 근접 해 들어갈 수 있을 것이다.
영화 본 시리즈를 각각 봐도 재미있지만 순서대로 볼 때 시리즈만이 갖는 전체적인 이야기 흐름을 놓치지 않고 볼 수 있듯이 베르호벤 시리즈도 마찬가지다. 

베르호벤 시리즈는 추리소설의 장점인 인간심리와 본성에 대한 묘사, 스릴러의 긴장감을 두루 갖춘 작품이라 할 수 있다. 동시에 문학에 대한 갈증도 풀어 줄 수 있는 현대문학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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