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인 심청 - 사랑으로 죽다
방민호 지음 / 다산책방 / 2015년 1월
평점 :
절판


최근에 기업 마케팅은 물론 SNS 및 대인소통에 관해서도 스토리 텔링Story Telling이 주목을 받고 있다사람들이 이야기의 힘그 자체에도 관심을 갖게 되었다는 의미다같은 맥락에서 이야기의 힘은 고전이 소설의 형태이든 구전口傳의 형태이든 과거부터 현재와 미래까지도 사람들에게 끊임없이 이어지며 영향을 줄 수 있는 원동력이 되기도 한다문학에서 시가 함축적 미라는 소쿠리에 가치를 담는다면 소설은 이야기라는 광주리에 재미와 가치를 함께 담는다작가의 인생관과 세계관을 독자에게 효율적으로 전달하기 위해서는 지루한 논문보다는 줄거리가 있는 소설이 훨씬 유용하다그래서 많은 철학자들이 소설을 집필했는지도 모른다.

 

이제 연인 심청을 보면 우리가 익히 알고 있던 심청전을 원전原典으로 하여 새롭게 구성된 소설이다이렇게 고전을 재구성한 작품에 작가만의 새로운 해석을 기대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하다더 나아가 사건과 등장인물에 대한 세밀한 묘사와 함께 원전의 빈 공간을 문학적 상상력과 감성으로 채웠을 때 독자는 만족하게 된다이미 독자는 원전의 줄거리를 비롯해 등장인물과 사건주제까지 모두 알고 있기 때문이다이것이 작가에게는 커다란 리스크Risk일 것이다리스크 없는 기회란 없듯이 작가의 선택이기에 스스로 떠안을 수밖에 없다이 점에 대해서 작가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작가란 황무지에 자기만의 꽃을 심는 존재가 아니었다길고 깊은 문학의 전통 속에서 나타나 그것에 한 줌 흙을 더하고 사라지는 존재였다나 또한 그런 작가의 한 사람이 되어야 했다다행스럽게도 이를 뒤늦게나마 깨달았고그것이 이 긴 여행의 출발점이었다.] 397

 

작가로서 사명감을 말하는 부분이지만 일면에선 전혀 새로운 이야기를 창작해야 하는 리스크를 오히려 잘 알려진 고전을 재구성함으로써 생기는 리스크로 전환시킨 명분이라고도 할 수 있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우리가 고전이라고 부르는 작품 속에는 인간의 본질에 대한 깊은 탐구가 전제되어 있다고전을 새롭게 구성한다면 앞서 말한 것처럼 작가만의 인생관과 세계관의 관점으로 인간본질에 대한 새로운 해석과 탐구를 제시해야 한다그 점에서 연인 심청은 그 시작이 매우 훌륭하다장님인 심봉사를 통해 육안보다는 마음의 눈이 먼 현대인으로 상징하고 심청으로 하여 이타적 사랑의 표본으로 삼고 있기 때문이다.

 

[세상살이 쓴맛을 어려서 몰랐던 탓에 심봉사는 철부지 같은 자기를 단련시킬 수 없었다동네 처녀를 농락하고도 정신을 못 차린 심봉사는 장가를 들고도 애어른 같은 심성에서 벗어나지 못했다그러다 덜컥 눈이 멀어버린 것이다가뜩이나 좁아터진 세상은 눈이 감김과 동시에 아예 닫혀버리다시피 했다심봉사는 그런 자신을 살필 수 없었다그런 마음의 눈이 없었다.] (78)

 

책의 앞부분부터 작가가 반복해서 말하지만 이 책의 가장 큰 동기는 작가의 깨달음에서 출발한다그 동안 철저히 눈에 보이는 것만 믿어 왔지만 사실은 상상적인 것환상적인 것마음 속에서만 작용하는 것과 같이 눈에 보이지 않는 힘으로 세상을 바꿔갈 수 있음을 깨달았다고 한다이 깨달음을 위한 질문은 생명과 인생의 근원적 질문에 다가가고 있다.

 

[왜 사람은 세상에 나고사람은 또 왜 세상을 떠나는가무엇 때문에 사람은 이 세상에 나서 춥고 배고프고 외롭게들 사는가왜 사람은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져야 하는가.] 6

 

생로병사生老病死애별리고愛別離苦이다누구나 답을 찾고 있는 이 본원적 질문을 통해 작가가 마음이라는 추상적 가치와 그 가능성에 눈을 떴음을 강조하는 것이다작가는 책의 도입부는 물론 본문에서도 다시 한 번 이 질문을 던진 후 책의 말미에서 작가가 깨달은 바의 답을 제시한다.

 

[우리는 누구나 이 우주의 어딘가로 돌아와 새로운 생명의 꽃을 피우게 되리니이 부조리한 세상에 태어나 절망과 고통을 맛본 것을 원통해하지만은 말아야 할 것이다이승에서의 우리들의 삶은 이 무한한 우주의 시공간 속에서 우리가 연출하고 있는 하나의 무대에 지나지 않는다그리고 우리 각자가 죽어 나를 잃어버리게 됨을 슬퍼하지 말자나라는 것이 본래 이 세상에는 존재하지 않는 가설적인 것이 아니던가나는 나의 뿌리로부터 피어난 하나의 꽃송이에 불과한 것이니 꽃이 져도 꽃나무는 죽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이어갈 것이다.] (381)

 

불가佛家의 법화경法華經에는 무시무종無始無終의 대우주와 일체인 영원한 생명이 장엄하게 펼쳐진다이와 차원은 다르지만 작가는 깊은 성찰에서 얻은 – 눈에 보이지 않는 가치와 힘에 대한 깨달음을 심청전이라는 도구를 활용하여 그려낸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인생을 길게 다 살아도 살아온 시간의 의미를 전혀 생각하지 못하는 이들이 있다그런 이들은 인생을 감각으로밖에 느끼지 못한다감각은 아프거나 뜨거운 한순간이 지나면 그 자리에 남아 있지 않는다감각의 기쁨을 쫓아다니고 감각의 아픔을 피해 다니며 사는 사람들은 한평생을 뜬구름처럼 헤매고 다닌다그런가 하면 인생을 초목처럼 사는 이들도 있다자기에게 부는 바람을 잎맥과 나이테에 새기며 삶이 다하는 날까지 상념을 사랑하며 사는 사람들이다.] (88)

 

이처럼 깨달음에서 출발한 작가의 인생관과 세계관이 본문에 그대로 녹아있다.

 

[예부터 없는 사람들은 있는 사람이 내려주는 떡고물만 먹어도 살 수 있는 법이다세상이 있는 사람없는 사람 분별없는 곳으로 천지개벽을 하면 좋겠지만 그때는 아직 오지 않았다.] (65)

 

이 문장에서 작가가 하고 싶은 말은 세상에는 아직도 구시대적 불평등이 존재하며 해소되지 않았다는 것이리라관점을 달리하면 이 부분은 자유주의 시장체제를 강조하는 보수정치인들의 소위 낙수효과라는 경제용어가 봉건체제부터 유래됨을 또그것이 의도하는 바가 무엇인지 알 수 있게 해 준다.

 

어쨌든 책의 첫 머리부터 작가가 친절하게 설명을 해주니 본문을 읽기도 전에 대략의 윤곽이 그려진다역시 원전이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또한 작가의 의도가 명징하기 때문에 독자는 이제 문학적 상상력과 감성까지 바라는 욕심을 내게 된다. 이 책에 대한 아쉬움은 바로 이 지점에서 발생한다.

 

작가는 마치 판소리인 듯 자신이 스스로 화자話者로 자청한다그래서인지 직설화법에 전체적으로 만연체를 선택했다이미 감성적 표현과 글을 배제하고 출발한 것이다문제는 가끔씩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는 화자의 문체가 독자의 감정선을 끊어 감정이입을 방해한다는 점이다.

 

[50년 세월도 화살같이 흐르거늘 봄날의 닷새 시간이야 오죽이나 할까.] (104)

 

심청이가 인당수에 가는 날을 받아놓고 신변을 정리하던 5일간의 시간이 빨리 지나갔음을 말하는 부분이다. 50심봉사 나이는 267쪽에 가서야 오십대 중반이라고 나오니 앞부분에서 뜬금없이 50년 세월은 어디서 나온 것인지 알 수 없었다혹시나 하는 마음에 책 표지의 작가소개란을 봤더니 작가의 나이가 50세이다죽는 날을 받아 놓은 사람의 심정을 굳이 작가의 나이와 비유했어야 했는가라는 아쉬움이 남는다설령 50년이 작가의 나이로 비유한 것이 아니라 해도 이 부분에서 50세미만 독자의 감정이입은 환기되어 버린다이에 비하면 다음에 제시 한 부분들은 좀 더 적극적이다.

 

[나무하러 가던 사람이 다 죽어가는 사람을 발견하고 난 후의 이야기는 세세하게 설명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어찌어찌해서 결국 심봉사는 도화동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250)

 

[이것은 앞에서도 이미 말했던 바이다.] (276)

 

[독자들은 놀랄 것이다심봉사의 처참한 모습에.] (346)

 

[이 대목에서 독자들은 생각할 것 같다이 이야기꾼이 심봉사가 장님인 것을 깜빡 잊은 게 아닌가 하고.] (366)

 

[그러면 독자들은 과연 심청이 다시 하늘로 올라가 유리 선녀의 본모습으로 돌아갔는지 궁금할 것이다. (중략이 문제는 독자들 각자의 상상에 맡겨두려 한다.] (395)

 

발췌한 부분만을 보더라도 소설에서 굳이 쓰지 않아도 될 표현들이다전후 문맥을 보면 더욱 더 사족蛇足으로 된다어쩌면 작가가 스스로 화자를 자청하고 판소리와 같은 분위기를 위한 연출이라고 할 수도 있다하지만 전문 이야기꾼이 세세하게 설명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라든지 어찌어찌해서라는 표현만큼은 삼가했어야 하지 않았나 싶다.

 

그 동안 내가 눈에 보이는 것만 믿어왔더라도 이 작품을 통해 눈에 보이지 않는 추상적 가치의 힘과 가능성을 이제 인정하겠다그럼에도 등장인물과 사건들이 운명론에 기대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는 없었다.

 

[그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은 믿지 못하는눈에 보이지 않는 힘으로는 세상을 바꿀 수 없다고 믿는 우리들 현대인의 어리석음에 관한 것이다나 또한 늘 있을 법한그럴 법한 일들로 소설을 써야 한다고 믿었던 어리석은 소설론의 소유자였다그것이 바뀌었다상상적인 것환상적인 것마음속에서만 작용하는 것이것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397)

 

하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가치와 힘이란 비단 사랑에 국한된 것은 아닌 듯하다. 작가의 깨달음은 눈에 보이지 않는 운명론까지 치달은 듯 보인다.

 

[뜻을 만들기도 전에 운명이 자기들을 사로잡았다두 사람이 다른 점이 있다면 윤상이가 자기 운명을 바꾸려고 몸부림을 치면서 기회를 엿보았다면 청이는 자기에게 주어진 삶의 조건을 담담히 받아들이는 사람이 되었다는 것뿐이다.] (129)

 

[서신을 받아들고 청이는 이 또한 자신이 피할 수 없는 운명임을 깨달았다.(중략청이는 비로소 이 모든 것을 받아들이리라 했다.] (287)

 

[사람은 자기 뜻대로 이룰 수 없는 일이 많다그 이룰 수 없음자기보다 크고 높은 것이 있어 자기를 마음대로 굴려나가는 큰 힘을 가리켜 운명이라 한다.] (304)

 

[이런 때 사람의 의지는 지친 날개를 접는다대신 바야흐로 운명의 나침반이 결말의 방향을 가리키기 시작한다이 자침의 힘 앞에서 사람의 투쟁은 무효화된다원인도이유도 알 수 없는 무자비한 이치가 사람을 옴짝달싹 못하도록 결박 지어서는 모든 것을 끝맺는 운명극의 마지막 무대로 끌고 가는 것이다.] (345)

 

사랑으로 세상을 바꾸겠다는 심청이는 정작 운명에 순응하던 조선의 대표적인 여인상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어서 아쉽다심청전을 재해석한다고 해서 심청이 잔 다르크가 되어 세상을 개척하길 바라는 것은 아니다다만 사랑이든혁명이든 세상을 바꾸려면 적어도 자신의 삶부터 주체적으로 살아야 하지 않겠는가, 자신의 운명부터 개척해야 하지 않겠는가 싶다.

 

[저는 이제 가려 하오오라버니너무 슬퍼 마세요그리고 뱃님네들 부디 먼 곳까지 무사히들 건너가세요이 한 목숨 바쳐 제 아비의 눈먼 생애를 건져 올리고 뱃님들의 생명까지 구할 수 있다면 비록 짧은 생애였으나 제가 이 세상에 온 것도 귀한 뜻이 있겠지요.] (139)

 

인당수에 빠지기 전 심청의 마음은 사랑이라기보다는 차라리 운명에 고꾸라진 체념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이렇듯 심청의 사랑은 그 대상도종류도 어떤 것이지 형체가 없이 두루뭉술하다.


심청과 심봉사는 전생에 선계仙界에서 몰래 만났던 연인이었고 그에 따른 벌로써 현세에 부녀관계로 태어난 것으로 설정됐다또한 원전에는 없던 심청의 현세의 연인으로서 윤상이 등장하여 남녀 간의 사랑 이야기도 다루어진다

심청이 용궁에서 전생을 깨달은 후 속세에 두고 온 심봉사를 그리워하고 죄책감을 갖는 장면에선 심봉사를 아버지로서 사랑하는 것인지이성으로서 사랑하는 것인지 구분하기 쉽지도 않다. 작가는 오히려 사랑의 종류를 구분하는 것이 필요 없음을 말하고 싶었던 것일까? 어쩌면 사랑을 보다 큰 울타리로 말하려했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세상에 나기를 각기 운명에 따라 타고나니 사람이 너나없이 평등하다는 윤상이 오라버니 말씀은 맞지 않아내 나이 열다섯 살 되도록 세상에 나서 모진 고생을 했지만그것이 누가 나를 해코지한 게 아니요아버지가 스무 살에 안맹하신 것도 누가 그렇게 만들어놓은 건 아니었어세상에 태어나보니 왕후장상이 따로 있고천민과 노비가 따로 있었으니 그건 필시 잘못된 거지만이걸 바꾸려면 평생을 다 바쳐도 못 이룰 거야세상을 향한 윤상이 오라버니의 포한진 마음은 내가 꼭 품어주고 싶어하지만 세상을 바꾸고 싶은 마음처럼 위태로운 것도 없어꼭 세상을 바꿔야 한다면 사랑밖에는 달리 방법이 없는 거야.’] (74)

 

여기서 심청이 말하는 사랑은 이타적 사랑이 아니라 운명의 벽 앞에 강제된 희생으로 보인다극복할 수 없는 가혹한 운명 앞에 좌절하고 선택의 여지없이 희생하는 것을 이타적 사랑이라고 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의도된 아이러니라고 할까카오스라고 할까결말부에 가서 심청은 심봉사를 살리기 위해 현세의 연인인 윤상을 희생시킨다. 윤상은 그것도 아주 참혹하게 죽어간다.

 

[그것은 결국 윤상이 오라버니의 목숨을 바칠 테니 아버지를 살려달라고 애걸한 것과 무엇이 다르단 말인가.] (372)

 

고문을 당하는 윤상을 살릴 수 있는 방법은 왕에게 사실을 말하는 것이었다말만 하면 100% 생명을 살릴 수 있었다반면 전의마저 포기한 채 죽어가는 심봉사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이라곤 냉수 한 사발 떠 놓고 천지신명에게 기도하는 것 밖에는 방법이 없다심청은 잠시 고민하다가 심봉사를 선택하고 기도를 시작한다죽어가는 윤상이는 내버려 둔 채로


작가가 깨달은 눈에 보이지 않는 힘은 이제야 운명을 넘어 기원하는 인간의 마음에 다다른다. 미신이라는 것에초점을 맞추기보다는 기원하는 인간의 간절한 마음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다만 여기에선 눈에 보이지 않는 가치의 대척점이 잘못 설정된 것이 아닌가 싶다그 어떤 것도 인간의 생명과 맞바꿀 수 없지 않나.


심봉사가 기사회생하고 눈을 뜨는 장면에선 심청이가 곁에 있지도 않았다기도를 하러 갔기 때문이다심청전의 클라이막스인 심봉사가 눈뜨는 장면은 애먼 궁녀인 신비와 전의가 목도하게 된다결국 원전보다 감정이입하기 어려운 새로운 구성이 되고 말았다.

 

정리해 보면 소설 연인 심청의 주인공은 심청이 아니라 심봉사라고 할 수 있다욕심과 어리석음으로 마음의 눈마저 닫혔던 심봉사가 깨달아가는 과정을 자세히 그렸기 때문이다그리고 작가가 말하고 싶었던 이타적 사랑은 작가의 피조물인 윤상을 통해 실현된 것이다.

 

[과연 자기는 죽으려 하느냐고 스스로에게 한 번 더 묻는다무엇을 위해서 아까운 목숨을 버리려 하느냐고돌이켜보면 한 번도 자기에게 흡족한 사랑을 바치지 않은 여인이 아니었더냐고전생에 맺어질 인연을 쌓지 못한잊어야 할 여인이 아니었더냐고 묻는다그랬다이 모든 것이 사실이었다그럼에도 윤상이는 자기 목숨을 바쳐 심청을 구하려 하고 있다.] (376)


책의 말미작가의 말에서 작가 스스로 다음과 같이 주제를 정리하고 있다.

 

[실로인간은 자기가 처한 상황보다 항상 더 큰 것을 욕망하며현대는 그 극심한 욕망이 충돌하는 아비규환의 쟁투장이다여기에 나오는 심봉사는 바로 우리 현대인의 표상이라고 할 수 있다그리고 이 세계를 구할 수 있는 것은 자기를 버리고 남을 위할 줄 아는 이타적 사랑밖에 없다. “연인 심청은 이타적 사랑의 이야기다그것을 실현해가는 운명 개척의 이야기다.] (399)

 

주제에 비추어 보아도 윤상의 사랑이야말로 작가가 의도한 바의 이타적 사랑이며윤상의 죽음이야말로 사랑에서 우러나온 희생이 아닐까 싶다.

 

소설이라는 문학 장르에 기대하는 독자입장에선 연인 심청이 아쉬운 면이 없지 않지만 고전의 현대적 해석을 도출하여 현재를 시사하는 새로운 이야기로 재창조한 것에 커다란 의미가 있다특히 작가는 이 책의 출간 직전 세월호 참사가 일어났다고 회고하며 그들을 기념하고 있다.

 

[이 소설을 가다듬는 동안 이 나라에 밀려든 슬픔고통원한절망분노무기력감 같은 것을 생각하면소설로써 대체 무엇을 할 수 있겠는가 하는 회의감마저 들지 않을 수 없었다거칠고 차가운 바다에서 스러져간 어린아이들에게그날 이후 함께 슬퍼하고 괴로워해온 이들에게그리고 이 수렁 속에서 건져올려져야 할 이 나라의 모든 이들에게이 작은 정성을 바친다.] 399

 

이제 이 소설은 21세기인 지금어처구니없게도 304명의 심청을 차가운 바다 속에 던져버린 대한민국 어른들이야말로 욕심에 눈이 멀어버린 심봉사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너무도 오래된 이야기라 작자마저 미상인 심청전의 내용이 21세기에도 그대로 적용되어 시사된다는 것은 안타깝게도 인간의 본질은 결코 변하지 않았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작가가 오늘날 시의적절하게도 심청전의 심봉사를 현대인의 상징으로 소생시킨 바로 이 지점에 이 소설의 가치와 작가의 탁월함이 있다고 할 것이다.

 

[사람들은 저마다 살기 위해 세상에 난다그런데 세상의 모습은 마치 자기가 살기 위해 남이 죽어야 하는 형세를 취하기 쉽다각자가 자기를 위해 자기 아닌 존재를 삶의 나락으로 빠뜨려야 하는 상황 속에서 저마다 살아남으려 안간힘을 쓰는 일이 사람의 유구한 역사에 걸쳐 되풀이되어왔다그러나 사람들의 삶의 비극성은 이것으로 아직 완성되지 않는다그것은 어떤 집단이 그 집단의 생존이나 이익을 위해 어떤 한 사람의 개인을 희생양으로 삼을 때 그 어떤 절정을 보여주는 경우가 많다집단에 속한 이들은 자기들 가운데 어느 하나를 대의를 위해 희생시키고야 만다그리고 그 행위를 쉽게편안히 잊어버리고는 한다하지만 그들은 실은 그 과거의 일을 망각한 체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어떻단 말이냐내가 바로 그런 처지에 빠질 수도 있었던 것을나는 운이 좋았을 뿐이고 그자는 나빴을 뿐인 것을하지만 모두가 벌인 일은 그들 각자의 심중에 잔상처럼 남아 있다그 과거의 일은 서서히 잊혀갈 수도 있다그러나 아직은 잊어버리지 못했다.] (212)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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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하 2015-02-22 08: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읽는 내내 심봉사가 참 얄미웠어요. ㅠㅠ

kevin 2015-02-23 09:14   좋아요 0 | URL
그러게요^^ 저도 딸이 있지만 딸의 죽음을 한 달만에 잊는다는 것은 철이 없는 것이 아니라 그냥 어리석은 축생이죠.
 
한 번은 원하는 인생을 살아라 - 카이스트 윤태성 교수가 말하는 나를 위한 다섯 가지 용기
윤태성 지음 / 다산북스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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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든 야구든 지금의 명감독이 과거 현역시절에도 뛰어난 선수였던 경우는 많지 않다. 자신이 실력으로 구현하는 재능과 남을 가르치는 재능이 다르기 때문일 것이다. 누군가는 현역시절 두각을 나타내지 못했던 선수가 명감독이 될 수 있었던 것은 잘하지 못하는 선수의 마음과 그 원인을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이라고도 한다. 반대로 역시절에 뛰어난 실력과 재능으로 제 몸값과 명성이 높았던 선수치고 감독으로서의 명성과 실력을 이어가는 경우를 보기는 어려운 것 같다.


이 책의 저자인 윤태성 교수의 이력은 화려하고 다양하다. 그의 이력을 지하철 노선도처럼 그려 본다면 마치 자기 마음대로 가고 싶은 방향으로 진로를 바꿔가며 성공적으로 살아 온 엄친아처럼 보인다. 


진로와 인생이라는 현역무대에서 실력 좋은 프로선수이다. 더구나 이 책을 보니 아직 현역으로 뛰면서도 감독으로서의 재능마저도 갖추고 있으니 프로 스포츠에서도 보기 드문 유능한 선수이자 명감독이 아닐까 싶다.


이 책은 진로와 커리어에 대한 가이드이다. 진로고민, 커리어 디자인이라는 인생의 추상적인 문제들을 사진을 보여주듯 명확하고 구체적으로 풀어주고 있다. 그뿐 아니라 표현 역시 막힘이 없으며 에둘러 말하지 않고 직구를 던진다. 뒷방 노인네의 퀴퀴 묵은 잔소리나 무용담이 아니라는 말이다.


이 책을 읽는 내내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을 20대에 만났더라면...



저자는 프롤로그에서부터 인생에는 답이 있다고 말한다. 내 인생이기 때문에 내가 정답을 정하고 채점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서두부터 공격적으로 개념을 정립하기 때문인지 본문에서도 인상 깊게 남아 마음을 움직이는 부분들이 많다. 남에게 추상적인 개념을 전달하기 위한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기존 언어에 대한 새로운 정의定義를 내리는 것이다. 윤태성교수는 이것이 능력이고 장점이다. 이 책을 읽고 나면 이런 능력이 가능했던 이유도 알 수 있다. 


저자는 평소에 메모를 세 가지로 분류해서 기록하며 중요하고 복잡한 생각은 이미지화 시켜서 기록함으로써 생각을 계속 확장시켜갈 수 있는 방법을 터득했다. 더불어 본인 스스로 진로가 변경되는 갈림길, 중요한 고민의 순간에 그 과정 자체를 모두 체계적인 기록으로 남겨 두었던 것이다. 그리곤 그에 따른 실패와 성공의 결과들을 평가한 것이다.


이 책의 부제가 '카이스트 윤태성 교수가 말하는 나를 위한 다섯 가지 용기'라고 되어 있듯이 저자는 전체적인 분류를 다섯 가지로 나누어 제시하고 있다. 이미 진로가 결정되어 있는 내 입장에서는 (나는 아무것도 없지만 진로가 결정되어 있다는 것이 지금의 20대에겐 가장 부러운 점이리라. 특히 아직도 진로를 고민 중인 30대라면 더욱 절실할 것이다.) 인상 깊었던 부분들이 성실과 긍정의 인생관과 인간중심의 경영관이라는 두 가지 관점으로 다가와 내 마음에 자리 잡았다.


1. 성실과 긍정의 인생관


- 오늘은 오늘 분량의 낙숫물 한 방울만 떨어뜨린다고 생각해야 한다. 바위가 뚤어지려면 낙숫물을 계속 떨어뜨리는 지속성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마음이 조급하다고 하루에 세 방울 떨어뜨리는 것도 아니고 3일에 한 방울 떨어뜨리는 것도 아니다. 그저 오늘은 오늘 분량의 한 방울만 떨어뜨리면 된다. (41쪽)


- 나는 왜 이렇게 끈기가 없을까 고민할 필요가 없다. 왜냐하면 나는 약한 자이니까. 약한 자인 것을 알고 있으니까 매일 조금씩 10년 동안 하겠다고 마음먹으면 된다.(43쪽)


- 체증효과란 투입한 내용에 비해서 산출되는 내용이 현격하게 증가하는 효과를 말한다. 낙숫물이 바위를 뚫는다는 마음으로 미래를 준비해야 한다. 그러므로 조금이라도 매일하는 것이 좋다. (51쪽)


- 나는 결과보다 과정을 더 중요하게 생각한다. 과정은 어느 정도 제어할 수 있다. (중략) 과정에서 중요한 것은 성실성이다. 매일매일 성실하게 보내면 그걸로 만족할 수 있다. 그러나 결과는 내가 제어할 수 없다. 결과는 주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121쪽)


학창시절을 생각해 보자. 다가올 시험을 대비 해 평소에 공부하고 익힌다는 것은 눈에 보이지도 않고 측정할 수도 없다. (하긴 얼마나 자습했는지 공부한 흔적으로 낙서가 된 연습장의 장수를 기준으로 검사하는 선생님이 있긴 했다.)

하지만 평소에 열심히 공부했다면 시험이라는 계기를 만나 그 동안 머릿속에 누적됐던 공부가 실력이라는 형태로 나타나게 되는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는 것과 누적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결과는 엄청난 차이를 만든다. 이는 복리이자에 비유할 수 있겠다. 눈에 보이지 않게 누적된다는 것은 그 과정이 매우 지루하다는 의미이다. 그래서 성실하기가 힘들다.


법화경法華經에서는 일념一念을 생명에 새긴다고 한다. 즉 눈에 보이지 않는 나의 올바른 일념을 생명에 쌓아갔을 때 연緣을 만나 그것이 내 생명에서 발현된다는 원리이다. 저자도 인생의 시크릿 같은 이 지점을 명확하게 체득하여 체계적으로 소개하고 있는 것이다.



- 작은 파도는 항상 있다. 파도가 있으니까 바다다. 이 때 뒤집히지 않으려면 파도에 대해서 정면으로 맞서야 한다. 뱃머리가 파도에 직각으로 향하지 않으면 아무리 큰 배라도 뒤집어진다. (100쪽)



가장 크게 내 마음에 와닿는 글이다. 내 스승께서도 인생은 파도의 연속이라고 자주 말씀 해 주셨다. 작은 파도로 단련받아야 더 큰 파도를 타고 넘을 용기가 생긴다고. 마흔이 넘었어도 인생은 녹록치 않다. 오히려 내 몸 하나 건사하기 힘든데 나뭇잎 같은 조각배에 처자식까지 태우고 있다. 하지만 아직 남아있는 열정으로 역경을 주시하고 정면으로 돌파하라는 말에 오히려 용기를 얻어간다. '파도가 있으니까 바다다'라는 말은 정말 멋지지 않은가!



- 한 사람이 평생 동안 가질 수 있는 감정의 총량이 일정하다면 가급적 인생의 말년에 행복을 사용하는 것이 좋다. (111쪽)


- 인생에는 후회는 없어야 한다. (중략) 후회는 성과와는 상관이 없다. (227쪽)


-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 필요한 성실성은 배려의 형태로 나타난다. 상대방이 원하는 것은 하고 원하지 않는 것은 하지 않는 것이다. (231쪽)


- 힘든 순간을 견디기 위해서는 입에서 나오는 표현도 바꾸어야 한다. (중략) 내 입에서 나오는 말은 가장 먼저 내 귀가 듣는다. 내 입과 내 귀가 수시로 소통하면 결국 내 마음이 움직이기 때문에 먼저 내 입에서 나오는 말을 스스로 제어해야 한다. 그러므로 극단적인 표현을 삼가고 내가 견딜 수 있을 정도의 표현을 해야 한다. (323쪽)



이런 내용을 보면 저자는 인생을 그저 권선징악의 수준에서 말하는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인생의 고투 속에서 깊은 사색을 통해 누구보다 힘겹게 역경을 이겨낸 사람의 조언이다. 인생의 묘미를 맛 본 사람만이 쏟아낼 수 있는 말들이다. 그 사색의 깊이가 얼마나 깊은지 가늠하기 어렵다.


오직 분노와 좌절만이 횡행하는 가치관 상실의 시대에서 이러한 깊이에서 후배를 다독이고 방향을 제시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 점에서 윤태성교수는 명감독이다.




2. 인간중심의 경영관


- 아무리 좋은 회사라도 이직률이 제로가 되지는 않는다. 회사에서 열심히 교육시키고 경험을 쌓게 해서 양성한 인제라도 언젠가는 사직한다. 그러므로 회사의 입장에서 중요시 해야 하는 것은 이직률이 아니다. 사직한 사람들이 다른 곳에서 맹활약을 하게 만들어야 한다. 넓게 보았을 때 우리 회사를 사직한 사람이 우리 편이 되도록 해야 한다. (31쪽)


- 기업에서는 기술, 제품, 마케팅, 영업, 조직을 포함해서 모든 것이 다 중요하다. 그런데 그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을 한 가지만 말하라고 한다면 역시 사람이다. (340쪽)


내가 만나 본 대부분의 사업자들은 직원의 못마땅한 점을 찾아내기에 혈안이 되어 술안주로 삼았고, 인건비를 줄이기 위해 못마땅한 직원을 찾아 어떻게 자를까를 고민했다. 특허도 아닌데 직원이 자신의 사업아이템으로 독립하여 경쟁 해 오면 어쩌나 전전긍긍하는 사람도 있었다. 동네에서는 '사장님'소리를 들을지는 몰라도 경영자라기 보다는 장삿꾼이다. 


나 역시도 이런 생각의 틀 안에 있었다는 것을 이 글을 보고 나서야 알았다. 보다 넓은 시야로 생각한다면 내 사업장이 아니라 업종의 차원에서 장기적으로 생각해야 한다는 것이다. 도요타에선 수소차 원천기술을 공개하고, 테슬라 모터에선 전기차 기술을 공개했다. 시장을 키우기 위한 일환이라고 평가받지만 이런 관점을 사람에게 적용시킨다면 자신의 사업장이 해당 업종의 사관학교 역할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 '출세했다'는 말을 다르게 표현하면 '가족과 세상의 범위가 커졌다'는 의미다. (237쪽)


- 기술보다 중요한 것은 이 세상을 좋게 바꾸겠다는 신념이다. 신념이 없이 그저 기업을 키워서 자본 이득을 보고 부자가 되겠다는 마음만 가진다면 장삿길에 들어서는 것에 불과하다. (329쪽)



장사수완보다 자신의 확고한 철학이 먼저라는 말이다. 애플 창업자 스티브 잡스, HP 창업자 윌리엄 휴렛과 데이비드 팩커드, 구글 창업자 래리 페이지 등 이미 성공한 수많은 사람들이 강조했던 것이다. 하지만 창업을 하는 목적이 나에게는 물론 가족에게도 좋고, 사람들에게도 좋고, 세상도 좋게 하는 일에 있어야 한다고  강조하는 저자의 말이 더 가슴을 울리고 있다.


- 프로는 자신의 일을 성공적으로 해내고 있다는 자신감과 자기 일 자체에 대한 자부심이 넘쳐난다. 그러나 동시에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해서 항상 두려움을 느낀다. 이 점이 아마추어와 다른 점이다. (237쪽)


- 즐겁게 할 수 있는 것은 본능인데 이는 능력에 앞서는 것이다. 능력이 있으면 그 일을 하는 것이 어렵다거나 부담스럽다고 느끼지 않는다. 그러므로 즐기면서 동시에 일을 처리하기 위한 능력이 있다면 내가 잘하는 것이라고 판단해도 무리가 없다. (263쪽)


- 중요한 것은 나와 다른 사람의 차별화가 아니라 나와 나의 차별화다.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내가 달라야 하며 내일의 나는 또다시 달라져야 한다는 의미다. (279쪽)


- 창의력은 절대 우연히 생기지 않는다. 성실하게 움직이면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매일 조금씩 새로운 것이 탄생한다. 그러다가 어느 날 새로운 것이 내 눈에 보이게 된다. 창의력의 출발은 문제를 의식하는 것이며 창의력의 실현은 지식 사이에 존재하는 관련성을 이해하는 것이다. 창의력은 지식과 지식 사이를 관련짓는 능력이다. (281쪽)



나는 지금 내가 하는 사진일이 좋다. 하루 종일 무거운 장비를 들고 다니며 힘들게 일해도 사진촬영 자체가 내게는 즐거움이다. 사진은 고객의 주관적 평가가 좌우하면서도 정작 부정적 평가가 직접적으로 나타나지 않는 특성이 있다.

처음에는 전문가라는 자부심 같은 자만심이 가득했다. 


몇 해전부터 스스로 창의력이 부족하고 감성이 부족한 것은 아닌지, 발전은 하고 있는 것인지, 더 나아가 차마 직접 말하지 못했던 고객의 마음을 읽지 못한 것은 아닌지도 고민이 됐다. 이제는 매번 셔터를 누를 때마다 그런 고민들이 머리에서 떠나질 않는다. 프로사진사 10년만에 요즘처럼 사진촬영이 두려운 적이 없었다. 


본문에서 40세 전에는 모르고 배우고, 이후에는 알고 배운다는 표현이 정확하다. 사진경력 10년만에 이제서야 내가 무엇을 모르는지 알게 됐다. 무엇을 더 공부해야 하는지, 무엇을 더 연구해야 하는지 알게 된 것이다. 



- 경영은 경영학과 다르다. 경영은 미래를 선택하는 결단이고 경영학은 과거를 분석하는 프레임이다. (293쪽)



가장 명쾌하게 와닿는 부분이다.

사진은 그 자체로 예술분야에 속하지만 업業으로는 기술이다. 소위 사진쟁이들은 다른 전문분야의 엔지니어들처럼 한결 같이 자기고집과 근성이 강하다. 더구나 '이 분야에선 나만이 옳다'는 판에 박힌 생각으로 굳어진 사람들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문제는 그것이 사진이라는 전문분야를 넘어 사업과 경영전반에도 철저히 적용되어 진다는 것이다. 촬영기술과 마케팅은 물론 직원이 청소하는 방식마저도 자신의 생각만을 강조한다.

나는 학창시절 전기공학을 전공했지만 사진으로 사업을 하겠다는 계획을 세웠을 때 방통대 경영학과에 편입했다. 물론 졸업은 못하고 있지만 이처럼 명쾌하게 경영학과 실제 경영의 차이를 설명한 것을 보고 들은 바가 없다.



내 입장에서 두 가지 관점으로 나누어 보았지만 이 책에는 유익한 내용이 넘친다. 여기에 모두 옮기지 못할 뿐이다.

내가 이 책을 '가이드'라고 했는데 진로고민과 커리어디자인에 대한 마인드셋이기도 하면서 몇몇 부분들에서는 매뉴얼 수준의 구체성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잘하는 일과 하고 싶은 일 중에서 선택하는 방법을 보면 매트리스를 작성하고 8020법칙을 적용하여 자신의 진로를 찾아 결정하는 것도 있다. 이것은 진로가 결정된 사람에겐 한번 보기만 할 정도이겠지만 진로문제를 고민하고 있는 사람에겐 무척이나 유용하고 실용적이다. 또 기록하고 이미지화 시켜서 생각을 확장시켜가는 방법, 웃음 연습의 필요성과 연습방법, 슬럼프 극복 방법 등도 매우 구체적으로 소개되고 있다.


40대 초반을 지나고 있는 내게도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책인 것은 말할 나위 없다. 중간까지 읽었을 때는 앞서 말한 것처럼 '내가 20대에 이 책을 읽었더라면..'이라고 생각했지만 마지막 장을 덮을 때는 이제라도 읽어서 좋았다라는 생각이 된다. 저자를 직접 만나보고 대화 해 보고 싶다고 느끼는 것도 오랜만이다.


2~30대에겐 망망대해에 표류하듯 형체없는 고민에 빠져있을 때 한줄기 등대불빛처럼 명쾌하고 구체적인 방향제시가 된다는 점에서 유익할 것이다. 40대에겐 인생의 정오를 관통하며 과거를 정리하고 미래로 향하는 내 계획들을 점검할 수 있다는 점에서 유익하다.


나이를 떠나 지금 진로문제로 고민하는 사람이 이 책을 만난다면 마치 한화이글스가 김성근감독을 만난 것이라고 말씀 드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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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나는 기회에 집중하는가 - 결단의 승부사, 손정의가 인생에 도전하는 법
미키 타케노부 지음, 김윤수 옮김 / 다산북스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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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 마사요시 회장은 일본의 대표적 IT기업인 소프트뱅크의 회장이다. 그의 존재조차 몰랐으며 어떠한 도움도 주지 않았던 한국이 지금은 한국이름으로 손정의회장이라 부르며 한민족의 자긍심으로 소개하고 있다.


평소엔 해외거주 교포에 대해 무관심하다가 국제적 명성을 날리거나 실적을 이루면 한민족의 자긍심이라며 유난을 떤다. 마치 한국이 키운 것처럼.


기자회견이나 간담회라도 하게 되면 뻔뻔하고 뻔하게도 꼭 '한국인의 핏줄'과 '마음의 고향'을 묻는다. 아니 강요한다. 너무도 민망한 장면이지만 요즈음은 골프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교포선수가 많아서 자주 보게 된다.


교포 3세에게 굳이 핏줄 확인을 받아서 뭐하려나? 국내에 있는 다문화가정 자녀들 차별이나 하지 말지. 민족이기주의다. 그냥 거지근성인가?


어쨌든 이 책은 손정의회장의 경영마인드에서 배우는 자기계발서이다.


저자 소개를 보면 저자인 미키 타케노부는 스티븐 코비StephenR. Covey나 브라이언 트레이시Brian Tracy와 같은 동기부여전문가 또는 자기계발전문가가 아니다.


손정의회장과 오랜기간 함께 일했으며 현재도 일본 내 현역 경영자로 활약하고 있다. 이 책은 저자가 손정의회장에게 느끼고 배운 것을 정리하여 질문과 답변 형태로 써나가고 있다.

 


그 동안 스티브 잡스와 빌 게이츠, 워렌 버핏의 이야기는 정말 많이 듣고 읽었다. 아시아에서 빌 게이츠를 능가할 수 있는 역량을 가진 경영인으로 손정의회장이 꼽힌다니 이제 그에 대한 관심은 한민족의 핏줄이라는 이유를 넘어서는 듯 하다. 아마도 이 책이 그에 대한 방증이 아닐까 싶다.


분량이 많지 않은 이 책의 목차를 둘러 보면 기존의 자기계발서보다 독특하거나 별다른 것은 눈에 띄지 않는다. 목차만 보면 기존의 자기계발서들을 요약정리하여 복습한다는 느낌이랄까?


읽어가기 시작하면 비로소 참신한 부분도 볼 수 있다. 자기계발전문가 내지 저널리스트, 기자, 전기작가 등이 기업의 밖에서 바라보고 경영자의 주변인물을 인터뷰하여 집필한 자기계발서가 아니라 경영자와 함께 야근하고 부대끼며 실무를 보았던 사람의 목소리이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기업을 둘러싼 사회환경과 사람들에 대한 비판적 시각과 뛰어난 현실감각이 가장 먼저 눈에 띈다.


- 사회구조는 이미 완성되어 있으니 거기에 편승만 하면 된다는 생각으로 좋은 대학에 진학해서 좋은 회사에 들어가려는 사람이 많다. 안정된 회사에서 최대한 튀지 않고 정년까지 근무하는 것을 목표로 삼는 사람도 많다. 요즘 같은 사회에서 사람들이 꿈을 잃어버리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23~24쪽)


- 가사이 임원은 "새로운 걸 해도 리스크, 안 해도 리스크"라고 하였다.(중략) 회사는 창업한 이상, 인간은 태어난 이상 사회에서 어떤 포지션이든 취해야 한다. 사람들의 바람과 달리 절대로 안정된 것은 없다는 뜻이다.(24~25쪽)


- 그러나 처음부터 대기업에 취직하길 원했던 사람이라면 대안으로 벤처기업 창업이나 취직을 고민하지 마라. 솔직히 이런 사람은 벤처기업 사원이 되건 창업자가 되건 크게 성공하기 어렵다. 그냥 대기업 취직 준비에만 집중하는 편이 본인을 위해 좋다.(75쪽)


- 빠른 이해를 위해 합격률이 낮은 사법고시를 떠올려보자.(중략) 그런데 재미있는 건 합격하지 못한 사람들은 운이 나빳다거나, 컨디션이 안 좋았다는 등의 이유를 필사적으로 찾아낸다는 사실이다. 그들은 그렇게 결과를 합리화시킨 다음 다시 고시 준비에 엄청난 시간을 투자한다. 개인적으로나 사회적으로나 정말 안타까운 노릇이다. 아마 이들이 조금 더 현명했더라면 적절한 철수 기준을 미리 정해놓고 도전하지 않았을까. (79쪽)



각 파트마다 저자가 하고 싶은 말을 강조하거나 보충하기 위해 곁들인 말들이지만 이러한 냉정한 지적이야말로 진로문제를 고민하는 청년들에겐 오히려 도움이 될 것이다.


기 업조직을 이해하는 관점도 제시된다. 그 동안 우리는 기업의 연공서열을 무조건 낡은 관습이며 비효율적이며 불평등한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이것이 문화적 토양이 다른 미국식 인센티브제를 무비판적으로 수용하면서 생긴 편견이었음을 저자는 지적하고 있다.


- 과거 일본 기업에서는 부하 직원의 과실을 상사가 책임지는 게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내가 처음으로 취직했던 미쓰비시지쇼 같은 전형적인 대기업에도 "책임은 내가 질 테니 젊은 친구들은 자유롭게 꿈을 펼쳐라."하고 말하는 듬직한 부장이 있었다. 이런 기업 문화가 정착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연공서열'이라는 제도가 있었다. 지금은 능력에 상관없이 오랫동안 근무했다는 이유만으로 승진하는 관행을 비합리적이라고 보지만, 사실 시간을 들여 그 사람을 평가한다는 점에서는 연공서열이 합리적이기도 하다. (중략) 보통 사내에는 실적으로 형성된 신뢰 관계가 존재한다. 그렇기 때문에 실적이 없는 아랫사람이 큰일을 하려면 기존에 실력을 인정받은 상사가 보증을 설 필요가 있다. (114쪽)


드라마 '미생'의 오차장 같은 상사는 연공서열의 조직에서 만나기가 더 쉽고, 실적으로 서로 경쟁하는 인센티브제 조직에선 부하의 아이디어마저 빼앗아가는 마부장이 더 현실적이라는 말이다.


저자가 실무에서 잔뼈가 굵어진 프로젝트 전문가이다보니 이미 조직에 있는 사람들에게도 실무차원에서 도움이 될만한 매뉴얼적 내용들도 소개되고 있다.


오 늘 가능한 일을 오늘 끝내는 법, 손정의식 키워드조합을 통한 기획 발상법, 업무속도가 느린 사람들을 위한 '1박 2일 문서 작성법' 등이다. 구체적으로 조언하고 있고 방법이 간단해서 곧바로 자신의 업무 플로어에 적용시킬 수 있는 것들이다. 짧은 분량에 이렇게 핵심만 담아 전하는 것도 저자가 프로젝트 매니저로서의 다년간 경험이 있었기에 가능한 것 같다. 그래서 독자가 하나 더 얻는 것이 있다면 조직의 프로젝트에 관한 명확한 개념의 정립이다.


실패의 당위성을 설명하기 위해 시작된 프로젝트에 관한 내용은 책의 후반부에 이르면 왜 무의미해 보이는 수많은 프로젝트가 하달되는지, 중요 프로젝트 매니저는 왜 외부에서 채용하는지, 왜 우리에게 프로젝트의 올바른 문화가 정립되지 않았는지에 대한 궁금증을 자연스레 해소 해 준다.


프로젝트란 끊임없이 새로 시작되어야 하는 것이고 이는 실패를 통해 성공을 다져가는 과정인 것이다. 손정의회장처럼 실패한 프로젝트에 대해선 절대 질책을 하거나 책임을 물어서는 안되는 것이 기업 프로젝트의 본질이었던 것이다. 

 




사실 이런 내용보다는 저자의 원래 의도는 손정의의 경영마인드를 통한 자기계발법을 소개하는 것이다.


이 책을 통해 저자가 소개하는 손정의회장은 70년대 한국 경제개발의 전형 즉, 군대식 밀어붙이기의 달인이다. 마치 숯불구이에서 기름이 빠지 듯 아전인수, 안하무인, 독재가 빠진 군대식 밀어붙이기이다. 추진력이 엄청난 경영자이다.


여 기에 성공한 경영자들의 공통 특성이라고 할 수 있는 목표설정, 말하기보다 듣기, 권위의식보단 직접 행동하는 리더쉽, 발상의 전환 등을 손정의회장도 모두 훌륭히 갖추고 있다. 하다못해 철저한 준비로 원고없이 발표하는 스타일마저 갖추고 있다.


이 중에서 목 표설정은 수많은 자기계발서들이 꼭 다루는 것이고 똑같이 강조하는 것이지만 정말이지 재차 강조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목표도 없는 자기계발이란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손정의회장의 목표설정에 대한 언급은 매우 인상적이다.


- 내가 20대 후반이었을 때, 손정의와 다음과 같은 대화를 나눈 적이 있다. "사람들이 성공하지 못하는 이유를 아나?"  "으음······. 잘 모르겠습니다."   "(화이트보드에 우뚝 솟은 산과 그 아래를 빙글빙글 도는 나선을 그리면서) 사람들은 올라갈 산을 정하지 않고 산기슭을 빙글빙글 돌기만 하거든. 이래서야 어떻게 정상을 올라가겠나. 먼저 자신이 올라갈 산을 정해야 돼. 그리고 그 산의 정상을 목표로 삼아 차근차근 걸어가는 거야." (53쪽)


주변을 둘러보면 놀 랍게도 인생의 목표없이 부표처럼 살아가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 그렇다고 이런 부류의 사람들이 소욕지족의 삶을 누리는 것도 결코 아니다. 오히려 욕심이 과하여 매주 로또를 사며 환경 탓, 남 탓, 조상 탓을 더 많이 한다. 그러니 이런 손정의회장의 비유는 촌철이 아닐 수 없다.


나 역시 창업을 준비하는 사람으로서 발상의 전환을 갖게 해 주는 내용에 더 집중하게 된다.


- 일반적으로 빚이라고 하면 '마이너스'로 생각하기 쉽지만, 손정의의 생각은 다르다. 오히려 빚을 질 수 있다는 건 그만큼 회사가 높은 평가를 받고 있으며, 사람들이 안심하고 돈을 맡긴다는 뜻이다. 은행의 구조를 생각하면 손정의의 생각이 이해된다. 은행은 사람들로부터 예금이라는 명목으로 돈을 모은다. 은행에 있는 돈은 대부분 고객의 것이지만, 사람들은 은행이 예금을 모으는 걸 마이너스나 나쁜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은행은 행원에게 예금 할당량을 주고 돈을 끌어모을 정도다. 예금 규모가 크다는 건 그만큼 은행의 신용도가 높다는 증거이기 때문이다. 돈을 맡아 이자를 붙여서 돌려준다는 점에서 보면 은행이나 기업이나 다를 바 없다. (83~84쪽)


- 비록 목적에 이르는 방법은 달라졌어도 신규 사업이나 기업 인수 같은 최종 목표는 바뀌지 않았기 때문이다. '의견은 바꿀지 몰라도 의도는 바꾸지 않는다'는 게 손정의의 원칙이다. (180쪽)



부채마저도 긍정의 단어와 마인드로 바꾸고 반대의견도 긍정적으로 수용하는 방법을 보면 역시 범인은 아닌 듯 하다.


이 책도 기존의 자기계발서들이 수없이 말해왔던 것들을 담고 있다. 하지만 손정의식이며 보다 동양적이다. 그래서 내가 겪고 있고, 내 주변에서 벌어지는 일처럼 느껴진다.


사 람은 절대 독설로 변화하지 않는다. 영화나 드라마가 이것을 착각하게 만들어왔다. 기존의 자기계발서들은 매우 자상하게도 독자를 납득 시키고 더 나아가 감동을 시켜 움직이길 바랬다. 그러다보니 내용이 많다. 여러 이야기들과 구체적인 사례들이 수도 없이 소개되고 있다. 이 책은 거두절미하고 핵심만을 짚어서 말한다. 


질문과 답변의 형식이 아니었다면 의제-질문-를 끌어오는 과정도 필요했을 것이다. 그랬다면 주저리 주저리 내용이 길어졌을 것이다.


책 의 구성도 매우 깔끔하다. 질문에 간결하게 답하고 중요한 문구는 색을 넣어 두어 굳이 밑줄을 긋지 않아도 된다. 각 답변의 끝에는 '손정의의 결단'이라는 박스를 만들어 요약 해 두어 매우 일목요연하다. 목차를 보며 다시 찾아보는 것이 불편하지 않을 정도로 구성이 잘되어 있다.


피상적으로만 알았던 손정의회장의 경영마인드와 철학을 구체적으로 접할 수 있었으며 무엇보다 엄청난 의욕을 끌어내지 않고도 곧바로 실천할 수 있는 유익하고 구체적인 내용들이 잘 정리되어 있어 마음에 든다.


저자는 자신이 수없이 많은 프레젠테이션을 반복했기에 지금은 페이지당 발표시간이 3분가량 소요된다고 한다. 그래서 주어진 시간에 맞춰 프레젠테이션을 정확히 작성할 수 있다고 한다. 같은 맥락에서 본다면 이 책은 매우 잘 만들어진 프레젠테이션이다. 독자의 시간마저 아껴주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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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스포루스 과학사 - 동서양을 넘나드는 보스포루스 인문학 1
정인경 지음, 강응천 기획 / 다산에듀 / 2014년 12월
평점 :
품절


앞으로 미술, 전쟁, 영화, 의학, 여성, 문학, 철학, 경제사 등이 출간 예정이라니  '동서양을 넘나드는 보스포루스 인문학' 시리즈 중 첫 번째가 바로 '과학사' 인듯하다.


기획의 글을 보면 유럽과 아시아를 가르는 좁디 좁은 보스포루스 해협을 사이에 두고 벌어졌던 동서양의 역사를 인문학적 주제로 풀어간다고 한다.


즉 유럽의 역사 따로, 아시아의 역사 따로 보는 것이 아니라 동서양이 서로 주고받았던 인문학적 영향을 주제별로 소개하는 것이다.


이 책은 과학에 대해서만큼은 '가치중립적이어야 한다.'는 고정관념을 깨주는 과학사책이다.


일반 역사에 관한 책들은 역사학자와 그에 따른 역사적 관점에 따라 다양하게 출간되고 역사적 사건에 대한 기술 및 해석이 매우 다양하게 전개된다.


하지만 과학사에 대해서만큼은 고등학교 교과서에서 배운 내용 이외에 색다른 것은 거의 없었다. 기껏해야 숨겨져 있던 야사野史들을 소개하는 정도였다.


여느 역사책도 그렇지만 여기에 조금 더 보탠다면 역사 속 결정적인 순간들에 대해서 '만약 ~했더라면'이라는 식의 가설을 소개하여 안타까움을 자아내는 정도뿐이다.


내 가 가장 최근에 읽었던 과학책은 데이비스 보더니스의 '일렉트릭 유니버스'였는데 이 책 역시 전기電氣라는 주제로 과학사의 숨겨졌던 이야기나 실제로 일어났었던 사실들을 찾아 소개하고 있다. 완전히 새로운 내용이 많아서 너무나 재미있게 읽었지만 과학은 가치중립적이어야 한다는 전제조건에서 크게 벗어나지는 않았다. 즉 한 개인의 인성에 대한 평가는 있지만 역사적 사건들에 대한 가치적 평가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이제 '동서양을 넘나드는 보스포루스 과학사'는 프롤로그에서 애초에 과학적 발견과 가치가 별개일 수 없다는 논거를 제시하며 앞으로 전개해갈 내용이 앎-과학적 지식-이 삶과 역사를 바꿨던 것들을 중점으로 살펴볼 것이라는 것과 기존에 잘못 인식되어 온 유럽중심의 과학사를 비평하고 이를 통해 우리의 입장에서 과학의 역사적 의미를 살펴보자고 말하고 있다.



이 책이 마음에 드는 것은 저자가 주체적이고 전향적인 역사 인식을 갖고 있어서 기존에 알고 있던 역사적 사건에 대해서도 전혀 새로운 관점을 제시 해 준다는 점이다. 책을 통해 배움의 재미를 추구한다면 이보다 좋은 책은 없을 것이다. 


- 우리는 구석기시대에서 신석기시대로의 이행을 자연스러운 역사적 발전으로 이해하고 있다. 과연 농사짓기가 환경적으로 자연스러운 일일까? 인간은 농사짓기가 수렵채집보다 더 수월했을까? 그렇지 않다. (중략) 최근 몇몇 연구는 구석기인들이 농사짓는 법을 몰라서 안 한 것이 아니고 알면서도 하지 않은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농사법을 알고 있었지만 수렵채집의 생활 방식을 바꿀 절박한 동기가 없었던 것이다. 그러다가 어느 시점에 이르러 농사짓기를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에 놓였다. 자연환경이 변한 것이다! 환경의 변화에 따라 인간도 변화해야 하는 상황으로 내몰렸다. 살아남기 위해서 적응해야 하고, 그렇지 않으면 죽을 수밖에 없는 진화적 압력을 받았던 것이다.(28~29쪽)



위 내용이 새롭지만 공감된다면 우리는 그 동안 교과서 내용을 비판없이 외우고 있었던 것이다. 



- 지구에서 인구가 폭발적으로 증가했던 시점은 세 번이 있었다. 첫 번째는 도구를 제작하는 인류가 출현한 뒤부터 20만 년 전까지, 인구가 100만 명에 도달했을 때이다. 두 번째는 신석기혁명을 계기로 1만년 전에 500만 명이었던 인구가 17세기까지 5000만 명으로 늘어났던 때이다. 세 번째는 산업혁명이었다. 17세기 5000만 명이었던 인구가 오늘날 70억 명으로 증가한 것이다. 이처럼 혁명이라고 이름 붙인 역사적 사건에는 인구의 폭발적 증가가 있었다.(32쪽)


- 바빌로니아인들은 달의 모양이 변하는 매달 7일, 14일, 21일, 28일을 불길한 날로 생각하고 집에서 쉬었다. 7일을 일주일로 삼는 전통은 이때부터 생겨났고 로마시대에 이르러 휴일로 지정되었다. 일주일은 천문 주기를 바탕으로 하지 않고 임의로 정한 유일한 천문단위이다.(42쪽)



책을 읽어 나가면서 이런 방식의 역사적 접근을 계속 경험하고 유익한 정보도 얻게 된다.


최 근에 개봉한 영화 '인터스텔라'로 서점가는 때 아닌 호황을 누린 듯 보인다. '인터스텔라가 개봉되기만을 손꼽아 기다렸다.'는 정도가 아니라 '인터스텔라가 없었다면 우린 다 굶어죽었을 것이다.'라는 듯이 책마다 인터스텔라를 우려먹고 있다. 난해하기 짝이 없는 상대성이론과 블랙홀 이론이 요즘처럼 대중의 관심을 받은 적도 없지 않나 싶다.


이 책은 과학사를 다루기 때문에 가장 큰 획을 그은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이 빠질 리가 없다. 그런데 상대성이론을 설명하는 방식과 관점도 일반적인 설명과 다르다.



- 이러한 고전역학의 관점에서는 빛과 같은 속도로 달린다면 빛의 속도는 0 이 되고 멈춘 것처럼 보여야 옳다. 그런데 빛의 속도는 어디에서 관측되든지 일정하고 불변이었다. 실험적 결과를 보든, 맥스웰의 전자기 방정식을 보든 빛의 속도가 줄어드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지난 100여 년 동안 움직이는 관측자가 빛의 속도를 수도 없이 측정했지만 그 결과는 한결같이 1초에 30만 킬로미터였다. 아인슈타인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고전역학의 절대시간과 절대공간의 개념을 깨 버렸다. 빛의 속도가 불변이라면 시간과 공간이 상대적으로 변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운동 법칙에서 속도는 물체가 이동한 거리를 시간으로 나눈 값이므로, 속도는 시간과 공간에 연결되어 있다.(중략) 만약에 시간과 공간이 절대적이라면 빛의 속도는 관측자의 운동 상태에 따라 다르게 나타나야 한다. 그런데 우주에서 빛의 속도는 불변이었고 이에 따라 시간과 공간이 변할 수밖에 없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운동도 상대적이고, 시간과 공간도 상대적이다! 공간, 시간, 물질은 서로 단단히 얽혀 있어서 각각의 양은 다른 것에 대해 관점으로만 파악할 수 있다는 것이 상대성 이론의 핵심이다. 아인슈타인은 3차원 공간에 1차원의 시간을 합쳐서 '4차원 시공간'을 구성했다. 시간과 공간이 얽혀 있는 4차원 시공간에서는 공간에서 빠르게 이동하면 시간이 느려지고, 공간에서 느리게 이동하면 시간이 빨라지는 현상이 벌어진다. (279~380쪽)


- 그 후에 발표된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은 중력에 대한 우리의 생각을 바꾸어 놓았다. 중력의 정체는 뉴턴이 말한 원격 작용하는 힘이 아니라, 시공간의 휘어짐이 초래한 힘이라는 것이다.(385쪽)




저자는 과학 발달의 역사를 물질-운동-힘(에너지)에 대한 탐구로 정리하고 풀어가면서 각 시기의 유럽과 아시아의 과학사를 함께 살펴보고 있다.


먼저 이슬람문화의 역량과 과학사에 대한 공헌이 강조되고 있는데 이슬람 문화권에 대한 편협한 사고와 제한된 정보만을 갖고 있는 우리에게 상큼한 방향제 같은 역할을 한다.


사실 이슬람 문화에 대한 인식을 달리 해야 한다 것을 '스페인은 가우디다'(김희곤, 오브제)라는 책을 만났을 때 처음 느꼈다. 이 책은 스페인의 건축양식을 묘사하기 위해서 이슬람의 건축양식을 소개하던 책이었다.


아라비안나이트 정도의 이해만 있던 나에겐 지금의 중동, 즉 이슬람의 문화가 과거 역사 속에서 찬란하게 꽃피웠다는 것조차 새롭게 다가왔었다.


이 책은 거기에서 더 나아가 유럽의 과학사에 이슬람의 찬란한 문명이 얼마나 큰 공헌을 했는지 낱낱이 소개하므로써 유럽인이 자신들 것이라고 자부하는 그리스의 철학과 과학이 실은 이슬람 문명이 없었더라면 결코 유럽에 남겨지지 않았을 것이라고 한다.


- 칼리프뿐만 아니라, 이슬람의 지식인과 엘리트들은 그리스 문헌의 가치를 알아보았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오르가논』, 유클리드의 『기하학 원론』, 프톨레마이오스의 『알마게스트』 등을 철저히 연구하고 지적사업의 초석으로 삼았다. (중략) 900년 이슬람 세계에서는 갈레노스의 저술을 129편이나 가지고 있었는데 유럽에서는 고작 3편밖에 없었다. 넘쳐나는 책들은 도서관 서가를 채우고 학자들을 키웠다. 당시 이슬람 세계에 설립된 도서관은 수백 곳에 이른다고 추정된다. 에스파냐의 코르도바에만 70곳의 도서관이 있었고 수십만권의 장서가 소장된 도서관도 여러 군데였다. 10세기 이집트 카이로의 '지혜의 집'에는 200만 권의 책이 있었고 그중에 과학 관련 서적만 1만 8000여 권이 있었다.(112~113쪽)


- 이슬람의 천문표 중에는 알콰리즈미al-Khwarizmi, 780~850가 만든 것이 가장 유명하다. 알콰리즈미는 알마문의 후원을 받고 활약한 이슬람의 대표적인 천문학자이자 수학자였다. (중략)우리에게 낯익은 대수학, 알고리즘, 0이란 숫자 또한 알콰리즈미의 업적들이었다. (115~117쪽)


- 이렇게 12세기 번역의 시대가 찾아왔다. (중략) 그는 프톨레마이오스의 『알마게스트』를 비롯해 아리스토텔레스의 『물리학』, 유클리드의 『기하학 원론』, 알콰리즈미의 『대수학』, 아비센나의 『의학정전 등 70여 권의 아랍어 원전들을 번역했다. (중략) 이후, 아리스토텔레스가 그리스 철학자인지도 몰랐던 유럽인들 사이에 아리스토텔레스 하면 '철학자'로 통할 만큼 번역서가 널리 퍼져 나갔다.(162쪽)



저자가 시종 주의하며 당부하는 것은 유럽중심적 역사인식과 사고방식이다.


- 유럽인들은 중국으로부터 화약을 배워 대포와 범선을 만들었다. 대포와 범선은 유럽에서 '화약혁명' 또는 '군사혁명'을 일으켰고 유럽 밖으로 군사력을 팽창하기에 이른다. 주경철은 그의 책 『대 항해의 시대』에서 이러한 15세기의 상황을 '폭력의 세계화'라고 말한다. 우리가 알고 있는 콜럼버스의 '지리상의 발견', '신대륙의 발견'이 얼마나 잘못된 용어인지를 이 책에서 낱낱이 파헤치고 있다. 15세기 유럽의 화학혁명, 다시 말해 유럽의 과학기술적 혁신을 진보로 간주할 수 있을까? 유럽인들은 대포와 범선을 개발해 제국주의의 길로 접어든 것을 '발견의 시대' 또는 '탐구의 시대'라고 자평하지만, 우리 입장에선 '착취와 수탈의 시대', '인종 학살의 시대'라고 불러야 옳다. 과학의 역사에서 우리가 배워야 할 것은 과학기술의 방향성에 대해 문제의식을 가지는 것이다. 역사적으로 과학기술의 발전이 인간의 행복을 증대시켰는가? (171~172쪽)


 과학이기 때문에 가치중립적으로 접근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방향성에 대한 가치평가를 반드시 거쳐야 한다는 것이다. 이점이 바로 이 책의 매력이다.


우리는 인류의 직립보행에서부터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까지의 과학적 사실들을 기본상식으로 알고 있다. 더불어 '과학은 가치중립적이어야 한다.'고 강요받아 왔으며 이에 따라 스스로 자기검열에 충실했었다.


이 책에선 이것을 직접적인 주제로 다루지는 않지만 그 이유가 과학이 항상 기독교와 대립해왔기 때문이라고 알 수 있게 된다. 즉 코페르니쿠스나 갈릴레오가 강요받았던 가치중립이 오늘날까지 그대로 이어져온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이 는 저자가 유럽의 과학혁명이 왜 동아시아에서는 일어나지 않았는지를 풀어가는 과정에서 드러난다. 기독교적 세계관이 일상의 모든 것을 잠식하고 결정하던 유럽은 기독교 교리에 도전하는 과학혁명이 모든 것을 뿌리채 뒤흔드는 사건으로 되었다면 자연과 어울려 살아가며 기독교적 세계관이 없었던 동아시아에서는 그 파급력이 미미했던 것이라고.


과학사에서도 역시나 피비린 내가 진동하는 잔혹한 기독교의 역사는 반복된다. 카톨릭의 부폐에 의한 살육, 프로테스탄트의 등장으로 시작되는 구교와 신교간의 살육, 이슬람에 대한 십자군 원정 살육 등. 이에 비하면 카톨릭 선교사가 중국에 유럽의 과학서를 전하면서도 교리에 반하는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을 숨긴 것은 귀여운 측에 속한다.


이러한 암울한 역사였기에 이제부터는 누구를 위한 과학이냐고 계속 물어야 하는 것이다.


-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독가스를 만든 독일 과학자 프리츠 하버 Fritz Haber, 1868~1934가 전범 재판에 회부되려 하자 수많은 과학자들이 하버를 옹호했다고 한다. 독가스를 처벌한다면 독가스가 발명되기 이전에 나온 고성능 폭약과 탱크, 잠수함은 어찌해야 하는가? 전쟁 무기 중에 무엇이 더 사악하고 나쁜 것인가? 이렇게 반문하면서 살상 무기를 만든 과학자가 사악한 것은 아니고 전쟁이 사악할 뿐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그렇다면 과학자의 책임은 없는 것인가? (402쪽)


- 놀라운 사실은 1915년 독가스를 만들어 실전에 사용한 하버에게 1918년 노벨화학상이 주어졌다는 것이다. 유럽 사회는 과학자의 사회적 책임에 대한 의식이 마비되어 있었다. 과학자들은 자신들이 개발한 무기가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해 거의 알지도 못했고 심각한 문제의식을 느끼지도 않았다. 반면 하버의 아내였던 클라 임머바르 Clara Immerwahr, 1870~1915 는 과학자들이 대량 살상 무기를 만드는 데 누구보다 절망했다. 그녀는 독일 여성 중에 몇 안되는 박사 학위 소지자이며 유능한 화학자였다. 과학자로서 양심의 고통을 견딜 수 없었던 그녀는 남편의 행동에 저항하는 의미에서 자살을 선택했던 것이다.(406쪽)




이 책의 또 다른 묘미 중 하나는 유럽의 역사와 동아시아의 역사를 동시에 기술하고 있다는 점이다.


다른 역사책에서 '유럽의 이 때는 우리로 치면 조선의 영조 시대 때에 해당한다.'는 정도로 소개했다면 이 책에선 유럽과 동아시아의 교류를 중점적으로 찾아 소개 해 주고 있어서 해당 시대를 좀 더 입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


그 속에서 우리의 자긍심을 높여 줄 조선시대 김석문과 홍대용의 우주론과 철학이 구체적으로 소개되기도 한다.



원시시대부터 원자폭탄까지 과학사를 망라한 이 책은 '사람이 중심이다.'라는 소제목을 단 에필로그를 통해 주제를 다시 한번 정리 해 준다.


- 세상의 모든 사람이 죽으면 '이것이 세계다'라고 말할 사람이 아무도 없잖아요? 이것은 브라질의 교육개혁가 파울루 프레이리Paulo Freire, 1921~1997 가 쓴  『폐 다고지』에서 농부가 하는 말이다. 농부는 자신이 없다면 세계도 아무 의미를 갖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 자신이 세계를 해석하고 변화시키는 주체임을 자각했다. 인간은 세계를 이해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는 과정에서 과학이라는 언어를 창조했다.(중략) 인간이 없다면 세계에 대한 앎으로서 과학도 없는 것이다.(418쪽)


- 한국사람들 대부분은 과학기술이 인간의 행복을 가져올 것이라고 믿고 있다. (중략) 그런데 과학기술이 발전하면 무조건적으로 인간의 삶이 나아진다고 생각하는 것은 큰 착각이다. 우리는 과학의 역사를 통해 과학기술의 발전이 인간을 행복하게 해 주지 않는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중략) 과학기술의 발전은 인간의 행복을 증대시킨 만큼, 불행도 증대시켰다. 우리가 간과하고 있는 것이 있다. 과학기술의 발전 그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정작 중요한 것은 과학기술을 어떻게 발전시키고 어떻게 사용할 것인가의 문제이다. (418쪽)


- 브라질의 농부처럼 우리는 자신이 세계를 변화시키는 주체임을 자각해야 한다. (중략) 과학기술이 중심이 아니라, 사람이 중심이 되어야 한다. 우리가 어떻게 살 것인가를 먼저 묻고 그 다음에 과학기술의 방향성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419쪽)



과학사를 다룬 책에서 이토록 명징한 주제의식과 함께 전향적인 관점을 보여주는 경우가 드물다.


정치적 이슈와 비교하자면 무상보육하자고 했더니 나라에 돈이 어딨냐라고 되묻는 사람에게


'이제 우리나라 경제력도 세계 13위 수준인데 그 정도 경제력은 됩니다.'라고,


학생들 무료급식하자고 했더니 부잣집 아들까지 공짜로 주자는 말이냐고 되묻는 사람에게


'부자라 세금 많이 냈으니까 그까짓 한끼 공짜로 줍시다.'라고 하는 것 같다.


이제는 과학이든 복지정책 분야이든 발전에만 쫓기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중심이 되어 삶의 질과 자연의 가치가 우선 논의되어야 하는 시대이다.


'동서양을 넘나드는 보스포루스 과학사'는 이러한 시대에 부합하는 세련된 과학사라 할 수 있다. 출간 예정인 시리즈도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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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란꽃이 모랑모랑 피어서 - 제2회 퍼플로맨스 대상 수상작
박소정 지음 / 다산책방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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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란꽃이 모랑모랑 피어서"

 

화사한 표지에 제목마저 이토록 예쁘다. 책을 펼치면 차례에 소개되는 소제목도 꽃이름으로 채워져 그 향기 가득하다.


이 책은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하는 로맨스 소설이다. 


마치 시나리오처럼 드라마나 영화의 장면들을 보는 듯 잘 짜여진 구성을 보여준다.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하기에 자칫 이야기의 전개가 지루하거나 늘어질 수도 있었겠지만 현재에서 과거로, 과거에서 현재로 오가는 구성은 독자가 각 사건들의 유기적 연결을 쫓아 갈 수 있도록 하여 지루할 틈이 없다. 이런 구성은  최근 출간되는 소설들의 특징 중 하나이기도 하다. 또한 화가가 점을 찍어 커다란 그림으로 그려나가는 점묘화처럼 흩어져 있는 듯 보이는 작은 이야기들이 모여 전체 이야기를 구성 해 가고 있다. 


주인공 수연은 신분은 낮지만 다방면에 걸쳐 손재주가 좋으며 생활력이 강한 아가씨이다. 그 중에서도 꽃을 말려 가루로 만들거나, 솥에 넣고 찌거나, 기름을 짜내서 향수로 만드는 것을 좋아하여 궁궐 내에 있는 향장香匠이 되는 꿈을 꾼다. 


이야기는 수연이 독립을 하고, 궁에 들어가 향장이 되어가는 과정에서 생기는 사랑, 희열, 질투, 오해, 배신, 희생을 담아내고 있다.(이렇게 단어로 나열하니 제법 거창하다.)


조선시대가 배경인만큼 작가의 방대한 자료조사가 돋보이기도 한다. 조선시대 사회상을 담아 내기 위한 생경한 생활용품과 용어들이 등장하여 국어사전을 찾아보는 수고로움도 감수해야 한다.


- 디딤돌 위에 놓인 수연의 낡은 운혜를 본 민아는 당혜를 도로 가져와 수연의 운혜와 맞대어 보았다. 길이가 꼭 맞았다.(221쪽)


단지 자료조사만 하여 나열했다면 문학이라 할 수 없을 것이다. 곰팡이 냄새나는 지하창고에서 찾아낸 소재들을 먼지를 털어내고 감성의 옷을 입혔기에 아름다운 문학소설이 될 수 있었다. 작가가 구사하는 어휘 역시 옛스럽고 고즈넉하다. 원래 수많은 민요와 판소리 내용에 음담패설이 많기야 하지만 작가가 구전 민요를 가져와 풀어가는 것을 보면 능글맞기까지 하다. 


- 넝출넝출 호박넝쿨 담장 안에 손을 주고

  우리 님은 어디 가고 내 품 안에 손 안 주네 (53쪽. 경북 구미 전승 민요.)


- 엎어지고 엎어지고 인삼 밭에 엎어지고

  아해들은 물럿거라 우리 임자 엎어진다

  엎어지고 엎어지고 그 위에 내 엎어지고 (92쪽)



사실 간결한 문체 속에 담겨있는 감성과 문학적 상상력을 굳이 숨기려하지 않기때문에 소설의 앞부분만 보면 단지 소녀감성의 예쁜 로맨스 소설일 뿐이라고 넘겨짚게 된다. 


- 작은 잔 하나에 술이 담기고, 한이 담기고, 어미가 미처 전하지 못한 말들도 눈송이가 되어 담겼다. (62쪽)


- "그거 아세요? 새벽 세 시진이 되면 아무도 안 보는 사이에 옥천교 해치가 다리에서 내려와 물장구를 친대요. 나무에서 떨어진 살구를 깨물어 먹기도 하고. 물 위로 올라오면 찹찹찹 발자국을 찍기도 하고. 하긴, 원래 물에서 사는 영물인데 돌다리 위에 붙여놓았으니 얼마나 놀고 싶었을까. 이다음에 옥천교에 살구가 떨어져 있으면 잘 살펴보세요. 반쯤 베어 먹은 게 있을지 몰라." (198쪽)




그런 관점에 덧붙이자면 소설 전반에 등장하는 수연의 주변인물들이 대체로 평면적이다. 더구나 이런 등장인물들이 수연에게 비중을 차지하는 것 같다가 한 순간에 부질없이 사라지고, 또 어느 순간 갑자기 나타나기도 하는 것이다.


전반부에 나오는 경쾌한 이야기들, 개성과 비중 약한 주변인물들, 꽃과 약재의 향기가 진동하는 분위기, 고즈넉하면서도 산뜻한 감성. 사실 이런 것들때문에 작가가 앞부분에 치밀하게 준비 해 둔 복선을 놓치고 만다.


- 양반이라던 아비는 아기에게 이름만 지어주고 모녀를 떠났다. 물처럼 아무 곳에나 스며들어 연을 맺으며 살라는 뜻이었다. 네 어미가 그렇게 내게 왔으니, 아이에게도 어울리는 복이라 했다.(13쪽)


- 자유연애를 하는 처자들의 모습이 혹 저와 비슷하지 않을까. 장옷은 경박해 보이니 내 오래된 쓰개치마라도 하나 주어야겠다. 주홍색 고름이 달린 장옷을 느슨하게 쥐고 있는 수연이 퍽 은근해 보여 민아는 얼굴을 붉혔다. (35쪽)


다시 읽어보니 어쩌면 내가 남자라서 놓쳤던 것이 아닐까 싶다. 여성이라면 민감하게 포착하고 넘어갔을 수도 있겠다.

솔직히 '수연이 퍽 은근해 보여'라는 표현이 너무 마음에 들었다. 어쩌면 이토록 짧은 어휘로 정확히 감각을 표현해 낼 수 있을까 싶어서. 이 부분이 복선일 것이라곤 차마 예상치 못했다. 그러니 반전이 있을 것이라고는 기대하지도 않았다.


후반부에 나타나는 작은 반전은 잠시간 읽는 이를 혼란에 빠뜨린다. 더구나 소설 앞부분이 동화였다면 후반부에서는 증오와 암투때문에 피튀기는 분위기로의 반전도 이어진다. 


- "하나가 살면 하나가 죽는 게 궁이다. 그걸 잊어서는 안 된다. 강씨와 네 벗을 살리는 대신 그에 합당한 것을 내게 주겠느냐." 상처를 입겠지만 내 곁에 붙들어둘 수는 있겠지. 정연은 그의 손도 같이 베이는 걸 모르고서 기어코 비수를 들었다.(186쪽)


그리고나서 소설의 거의 끝부분에 도달해서 작가는 또하나의 반전을 선물한다.





눈에 두드러지는 것은 작가가 독자를 감정이입 시키기 위해 활용하는 주요기법인 점증법이다. 조악한 내 기억으로는 점증법이 효과적으로 쓰인 곳은 모두 세 번이다. 


첫 번째는 수연이 어머니 무덤을 찾아 술을 마시는 장면에서 '한잔, 두잔, 세잔, 네잔'으로 표현하며 잔수가 거듭될수록 수연의 한을 독자가 마시고 취하게 만든다.


두 번째는 수연과 봉림대군인 정연의 추억을 표현하기 위해 '천 일간의 사랑'을 선택한다. 날수를 '천 일'에서 시작하여 '하루'로 끝내지만 사랑의 농도로 보자면 점증법이다.


세 번째는 수연이 정연의 시체를 반함하기 전에 기원하는 장면에서 나온다. 망자가 저승까지 갈 동안 먹을 식량인 따뜻한 쌀밥을 정연의 입에 버드나무 숟가락으로 넣어주는 상상을 하는 장면이다. 백 석이요, 천 석이요, 만 석이요라고 점증적으로 표현하지만 오히려 애틋한 사랑을 점점 절제된 한으로 담아내는 장면은 가히 압권이다.



- 혼자였던 시간은 견딜 만했다고 생각한다. 미련, 누구나 무심히 외면할 그 감정들을 수연도 툭툭 버려두었다. 그 폐기에 익숙해지니 그 곳에 사랑이 있었다는 어떤 증표를 보아도 무덤덤하게 되었다. 수연의 눈에서 뜨거운 눈물이 솟았다. 완전히 끝났다고, 더 이상 힘들지 않을거라 생각했던 나는 얼마나 우스웠는지. (181쪽)


- 사랑 때문에 힘들어서 차라리 당신을 만나지 않았더라면, 하고 생각한 때가 있었다. 그 못난 생각의 대가를 이제야 받고 있구나. 수연은 애써 미소를 지었다. (201쪽)


- 수연은 말을 다 잇지 못했다. 아마 우리 중에 서로를 더 사랑하는 사람이 결별을 못 버티고 지고 말겠지. 그럼에도 그에게 견디라, 말할 수밖에 없는 어폐에 가슴이 쓸렸다.(205쪽)


이처럼 작가는 이 작품에서 수연의 사랑, 단의 사랑, 정연의 사랑 그리고 민아의 사랑 등 사랑에 대한 다각도와 다차원적인 관점을 제시 해 주고 있다.


뿐만 아니라 작가는 우리네 인간사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적 성찰도 곳곳에 보여주고 있다.


- 철저하게 하나를 가져가면 다른 하나를 돌려주는 게 세상인데 모든 초목마다 공평하게 불어오는 바람에, 따스하게 달궈진 조약돌에 수연은 다시 마음이 녹고 말았다. (170쪽)


- 아주 작은 열쇠 하나면 된다. 한 세상을 가로막고 있는 문이 아무리 거대하더라도. (180쪽)


- 사필귀정, 인과응보라. 세상사는 아주 간단한 원리에 의해 돌아갔다. 균형은 아름답다는 것 또한 그 원리 중 하나겠지.(210쪽)


- 말을 섞고 살을 부비면 헤어나올 수 있는 고독에 오래 잠겨있다 보면, 궁지에 몰렸다 착각하게 되는 법이다. 극단적인 선택은 그러한 순간에 만들어진다. (230쪽)


- "학문에 적을 둔 자들이 보편적인 관념을 통해 세상을 배우고 또 판단하는 건 그들도 지각하기 어려운 뿌리 깊은 방식이다. 그런 지점이 때로는 그들의 시야를 좁게 만들지." (261쪽)



이런 철학적 성찰에 이어 고전문학 시간에나 들어 봄직한 문화적 언어적 유례도 자연스럽게 소개하고 있다.



- "청 세조가 무엇을 주었느냐." 왕이 물었다. 내전에 서늘한 기운이 감돌았다. 

"황제는 제게 원하는 것을 한 가지 고르라 했습니다." 세자가 답했다.

"그래, 무엇이 그리도 탐났더냐." 세자는 고개를 들어 왕의 눈치를 살폈다. 아비의 말에 뼈가 있었다.

"용연석입니다. 황제가 아끼던 벼루로 매우 귀한······"

"용연석!" 왕은 서안 위의 벼루를 집어들어 세자에게 던졌다. 벼루는 세자의 가슴 정중앙을 치고 둔탁한 소리를 내며 떨어졌다. 세자빈은 눈을 질끈 감았다. 무수리들은 물동이에 물과 함께 왕의 말을 퍼 담았다. 그때부터일까, 민가에서는 안하무인인 자식을 두고 요녀석이라 부르는 말이 퍼진것이. (166쪽)


-  청국에서 돌아온 여인들은 사흘 밤낮 동안 홍제천에서 몸을 씻은 후에야 남편의 곁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그 후로 사람들은 은방울꽃더러 화냥년 속고쟁이 가랑이라 불렀다. (244쪽)



그런데 책 표지 안쪽에 소개된 작가의 이력을 보니 무려 1992년생이다. 스물두살이라는 말인데 오타인가? 서강대 신방과 재학중이라니 사실이군. 


문득 요즘 방송되는 개그콘서트의 '쉰밀회'코너가 생각난다. 94년생 유아인역의 김대희씨 스승으로 나오는 김지민씨의 대사처럼 박소정 작가가 나보다 정확히 스무살이나 어린데 왠지 내가 '선생님'이라고 불러야 할 것 같다.


음악을 하는 내 형님도, 음치인 나도 '가수는 타고난다'는 가수 이승철씨 말에 절대 공감한다. 스티브 잡스도 철저하게 차별 대우했던 천재적 예술가는 역시 타고 나는가보다. 박소정 작가는 타고난 글쟁이임에 틀림없다.


작가는 또 향수도 좋아하는가보다. 책의 말미에 있는 작가의 말을 통해 '조선에 술을 증류하여 얻은 주정으로 알코올 향수를 만든 여성 장인이 있었다면?'이란 아이디어에서 출발했다고 한다. 향수를 좋아해서인지 향기에 감성을 싣는 여성이기 때문인지 향수에 대한 작가의 생각도 녹아있다.


- 결국 당신을 울게 하는 것. 그것이 향이고, 향이 가진 힘이라 믿었다. 그립다는 게 무언지 뼈저리게 배우고서 얻은 깨달음이었다. 그 힘을 마음대로 하고 싶었다. 나는 웃고, 당신을 울리 수 있도록. 그 힘에 이렇게 당할 줄은 꿈에도 몰랐다. (181쪽)


- 다시 만난 수연에게 전의감 교수는 향의 유혹이 제일 참기 쉬운 것이라 말했다. 없어도 애달프지 않고 있어도 싫지 않은, 단지 그뿐이라며. 몽상과 사치에 빠져 있던 수연을 위한 말이었다. (268쪽)



물론 아쉬운 부분도 있다. 책을 읽어가면서 주인공 수연이 점점 영화배우 하지원씨로 구체화 된다는 점이다. 여성 주인공이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천민에서 시작하여 궁에 들어가 귀족의 정점인 왕족과 사랑하게 된다는 플롯이 드라마 '대장금', '다모', '기황후'와 비슷하기 때문이다. 누군가 이 소설로 드라마를 만든다면 아마 하지원씨를 주인공으로 쓰지 않을까 싶다. 




이 책의 앞부분만을 겨우 읽었을 때 - 아직 봉림대군인 정연이 등장하기 전에 부산 출장을 갔다. 분명 이 책에서는 꽃이 피어나 향기가 넘치는데 지금은 초겨울이다. 


부산엔 겨울에 피는 꽃 동백꽃이 있다. 동백꽃을 찾아 남는 시간에 감천문화마을에 올랐다. 정말 있다.


사진 몇 컷을 찍고 집에 와서 책을 마저 읽어보니 소설에서 동백꽃은 수연과 정연을 연결해주는 특별한 꽃이었다. 내게도 더욱 소중한 인연이 아닐 수 없다.


- 그나마 동백나무에 매달린 작은 꽃봉오리들이 그의 눈요기가 되어주었다. 봉오리는 작더라도 꽃잎의 붉은 빛은 만개했을 때와 다르지 않았다. (68쪽)


- 심양의 겨울은 유독 길었다. 동백나무는 봄비를 맞고서야 작은 꽃망울을 보여주었다. (161쪽)


- 그의 말에 뾰로통한 수연은 꽁꽁 언 눈을 툭툭 찼다. 순간, 수연은 강렬한 기시감에 사로잡혔다. 멍울진 붉은 동백꽃이 눈에서 아른거렸다. 걸음을 우뚝 멈춘 수연은 야릇한 기분으로 정연을 돌아봤다. 틀림없다. 당신, 오래전 겨울 내 꽃신을 찾아준 사람.(163쪽)



추운 겨울 눈 속에서도 뜨거운 빛을 잃지 않은 꽃 동백꽃. 겨울의 문턱에서 만난  '모란꽃이 모랑모랑 피어서'. 이 소설이야 말로 동백꽃 같은 작품이다.


박소정 작가의 다음 작품을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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