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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주의자 선언 - 판사 문유석의 일상유감
문유석 지음 / 문학동네 / 2015년 9월
평점 :

[문유석의 개인주의자 선언]
당신은 사람으로 부쩍 거리는 시장에 있다. 유명한 맛집의 떡볶이를 사서 집으로 가는 길이다. 그런데 아이 이름을 부르는 여성이 다급하게 뛰어간다. 당신은 순간적으로 이렇게 생각할 것이다. '아이를 잃어버렸구나', 그리고 그 여성은 시야에서 점점 멀어진다. 아마 여러 번 경험한 풍경일 것이다. 저자는 이 순간 갑자기 떠올렸다고 한다. '이 범상한 무심함 때문에 우리가 잃은 것들을 말이다.'
저자는 단원고 2학년 4반 18번 빈하용 군의 전시실을 들러 그림을 보고 감탄하다 길 건너 통인시장에서 기름 떡볶이를 사며 겪은 일이라며 에필로그에 썼다. '범상한 무심함'에 우리는 세월호 침몰 같은 일을 겪은 것은 아닐까? 그는 이렇게 독자를 생각하게 만든다.
저자는 판사이다. 그리고 글 쓰는 것도 좋아하는 사람이다. 그는 책에 자신의 소개 글을 여러 번 썼다. 프롤로그에도 '사람들을 뜨겁게 좋아하는 편도 아니고 무인도에 혼자 살 수는 없기에 사람들과 어울려 사회 속에서 살아간다'라고 밝혔다. 한국의 조직문화, 회식문화, 군대 문화, 집단주의 문화에 어쩔 수 없이 맞추며 살아간다는 맥락의 글을 곳곳에 흘렸다. 본문에도 그는 자신을 집단주의 문화와 서열 문화를 싫어하는 개인주의자라고 넌지시 그리고 분명하게 독자들에게 알린다.
"책, 글쓰기, 여행, 인간관계, 모두 내게 중요한 행복의 원천이다. 하지만 내가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하면 누군가에게 작은 도움이라도 줄 수 있다는 것 역시 이에 못지않은 과분한 행운이다."
그는 예전의 자유로운 영혼이었던 하루키가 부럽다고 한다. 그뿐 아니라 그는 책 곳곳에 행복, 말, 역사, 한국 사회의 문제, 더 나은 사회에 관해 이야기한다. 그의 책에서 가장 강렬한 부분은 다양성을 존중하는 사회, 개인주의를 인정하는 사회가 더 행복한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을 하게 하는 그의 주장과 설득력이라 할 수 있다. p.29에서 "극단적인 표현이지만 솔직한 심정으로 어떤 때는 우리 사회가 집단적 정신병을 앓고 있는 것처럼 보일 때가 있다."라고 표현했다. 타인의 시선 노예로 사는 한국, 집단주의에 비비며 그 안에서 존속해야 성공했다고 생각하는 한국 문화에 대한 그의 통찰이 돋보이는 책이다.
'집단주의 문화, 서열 문화, 수직적 관계, 군대 문화의 연결 고리들'
이러한 한국적 문화는 남들이 하면 나도 해야 그 집단에서 소속감을 느끼게 된다. 그 소속감이 주는 안도와 위안을 느끼지 않으면 도태하는 느낌도 갖게 한다. 남들이 하면 나도 해야 하고 남들이 사면 나도 사야 하고 남들이 입으면 나도 입어야 한다는 생각이 우리나라 곳곳에 있는 건 아닌지 묻게 되는 책이다. 저자는 남들과 같지 않으면 자존감 마저 무너지는 이 세상을 꼬집는다. 한국 사회의 곳곳에 있는 사회적 이슈나 문제(학교, 직업, 갑을 문화, 타인의 시선, 보여주는 것을 중요하게 여기는 풍토, 사는 동네, 차종, 외모까지)를 집단주의 문화, 서열 문화, 수직적 관계가 원인이라고 주장한다. 그래서 개인주의, 합리적 개인주의가 필요하다는 내용의 글을 담았다.
몇 가지 글 내용 중에서
p.23.
나는 감히 우리 스스로를 더 불행하게 만드는 굴레가 전근대적인 집단주의 문화이고, 우리에게 부족한 것은 근대적 의미의 합리적 개인주의라고 생각한다.
p.24.
어른이 되어서 비로소 깨달았다. 가정이든 학교든 직장이든 우리 사회는 기본적으로 군대를 모델로 조직되어 있다는 사실을. 상명하복, 집단 우선이 강조되는 분위기 속에서 개인의 의사, 감정 취향은 너무나 쉽게 무시되곤 했다. '개인주의'라는 말은 집단의 화합과 전진을 저해하는 배신자의 가슴에 다는 주홍글씨였다. '개인주의'야말로 르네상스 이후 현대에 이르기까지 인류 문명의 발전을 이끈 엔진이었다.
p.28.
유독 우리를 '더' 불행하게 만드는 것은 앞서 얘기한 집단주의 문화, 그리고 그것에서 비롯한 수직적 가치관이라고 생각한다. 수직적 가치관이란 사회 구성원들이 추구하는 가치가 획일화되어 있고, 한 줄로 서열화되어 있다는 뜻이다... 눈에 띄는 외관적 지표로 일렬 줄 세우기를 하는 수직적 가치관이 지배하는 사회에서 완전히 행복할 수 있는 사람은 논리상 한 명도 있을 수 없다.
p.32.
'남부럽지 않게' 살고 싶다는 집착 때문에 인생을 낭비하는 이들을 접할 때마다 드는 생각이 있다. 그냥 남을 안 부러워하면 안 되나. 남들로부터 자유로워지면 안 되는 건가. 배가 몇 겹씩 접혀도 남들 신경 안 쓴 채 비키니 입고 제멋으로 즐기는 문화와 충분히 날씬한데도 아주 조금의 군살이라도 남들에게 지적당할까 봐 밥을 굶고 지방 흡입을 하는 문화 사이에 어느 쪽이 더 개인의 행복에 유리할까. 우리가 더 불행한 이유는 결국 우리 스스로 자승자박하고 있기 때문 아닐까. 우리가 더 불행한 이유는 우리 스스로 자승자박하고 있기 때문 아닐까.
p.96.
조국 교수는 법대 입학 초기 여러 서클 세미나를 기웃거리고 다닐 무렵, 어느 자리에서 82학번 대선배로 안자 있는 걸 보고 순간 왜 홍콩 영화배우가 서울법대에 와 있는 걸까 시공간의 왜곡 현상을 느끼게 했던 양반이다. 교사 집안 장남으로 성격도 반듯해서 자기 때문에 비뚤어진 동생도 이해하고 배려하여 사이도 좋았다고 한다. 나는 그들을 '교회 오빠 타입' 이라 부른다.
p.212.
현실의 조폭에게 의리 따위는 없다. 이익이 있을 뿐이다. 그것도 조직의 이익이 아니ㅏ, 보스와 간부들의 이익이 있을 뿐이다. 말단 조직원들은 쓰고 버리는 소모품이다. 착각하지 말아야 한다. 당신은 조직에 이용당하는 호구에 불과하다. 이득을 분배 받는 공범씩이나 되지도 못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