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전한 연결 - 나와 교회를 든든하게 세우는 행복한 공동체
최성은 지음 / 두란노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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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 내용 및 나의 생각]


코로나 이전과 이후의 삶은 결코 같을 수 없다. 대면을 관계의 핵심적인 요소로 여기던 시대에 살다가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찾아왔고 우리는 ‘언텍트’라는 신조어를 만들어내야 할만큼 새로운 세상을 대면할 수밖에 없었다. 이제는 만나지 않고도 연결할 수 있는 시대가 왔다. 그렇기 때문에 코로나 이전으로 다시 돌아간다는 것은 삶의 일부분이 된 영역을 지워야 하는 것이기 떄문에 거의 불가능하다고 볼 수 있다. 교회에서도 대면/비대면 예배라는 개념 자체가 없었기 때문에 코로나 확산 초기에 온라인 예배를 두고도 신학적, 목회적 갑론을박이 꽤 진지하게 이루어졌었다. 그러나 지금은 그것이 옳든, 그르든 거의 대부분의 교회들이 온라인 예배 송출 또는 업로드를 하고 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저자는 ‘온전한 연결’을 다시 이야기한다. 지난 3년여의 시간 동안 ‘격리’되었고, ‘단절’되었던 관계를 다시 잇자는 시도다. 하나님과 연결해야 하며, 이웃과 다시 연결해야 하고, 결론적으로 교회 공동체와 다시 연결해야 한다. 왜냐하면 우리는 ‘연결’하지 않고는 살아갈 수 없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교회는 ‘연결’을 가장 잘 수행할 수 있는 공동체다. 그러므로 저자가 시무하는 지구촌교회 성도들과 나눈 ‘온전한 연결’을 주제로 한 설교에 귀기울여야 할 이유가 충분하다. 우리는 ‘연결’하지 않고는 살아갈 수 없는 존재가 확실하므로.


[책 속 인상적인 문장]


“우리의 가슴을 뛰게 하는 가정이 되려면 예배의 삶을 보여주어야 합니다” p. 219


예배의 삶을 잃어버린지가 얼마나 되었는지 모르겠다. 예배의 삶이 회복되어야, 예배의 감격이 삶 속에 회복되어야 가슴 뛰는 삶을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매일 드려지는 새벽예배, 수요, 금요마다 기도회가 있고 주일에 시간별로 예배가 있다. 이렇게 많은 예배가 내 삶 중에 드려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예배의 감격은 식었고, 예배에 집중하지 못하는 스스로를 발견했다. 그러니 가슴 뛰는 가정, 가슴 뛰는 교구, 가슴 뛰는 부서를 만들 수 있겠는가. 예배의 삶을 회복하고 싶다는 열정이 차올랐다. 파티를 만들고 싶었다. 가슴 뛰는 가정, 교구, 부서가 되어 예배의 삶으로 그들을 초대하고 하나님 안에서 온전한 연결, 예배를 회복하고 싶어졌다. 인생의 참 주인을 다시 한 번 정립하고 내 가정, 교구, 부서에서 은혜의 물결을 흘려 보내고 싶다.


[이 책을 추천하고 싶은 사람]


교회의 정체성과 필요성을 고민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추천할 만하다. 교회가 사회 속에서 희망이 되지 못하고 지탄의 대상이 후로 ‘탈교회’하는 사람들의 숫자가 심심찮게 많아졌다. 교회가 그 정체성을 잃어버리고 더 이상 공동체라는 말을 붙이기 어렵게 된 탓이다. 진리에는 관심이 없고 교회는 사유화되었다. 이기적이다. 교회의 정체성이 흔들리니 교회의 필요성 또한 약화되었다. 그러나 하나님의 교회는 결코 무너질 수 없다. 하나님이 지키시기 때문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머리이시기 때문이다. 또한 우리는 지체가 되어 그 교회를 세워가야 할 것이다. 무엇보다 바로 이 ‘온전한 연결’을 소망하며 한 걸음씩 나아갈 때에 교회의 정체성을 다시 회복하게 될 것이다. 세상은 교회를 필요로 할 것이다. 


#온전한연결 #최성은 #포스트코로나

#공동체필독서 #릭워렌추천

#목회자필독서 #두피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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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인들의 예정 - 불확실성 시대에 믿음의 거인들이 붙든 항구적인 확실성 세움클래식 9
한병수 지음 / 세움북스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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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움북스 #세움클래식09 

#한병수 #거인들의예정 


예정이라는 주제는 피조물이며 유한한 인간의 입장에서 받아들이기 쉽지 않은 교리일 것이다. 은혜로 선택받은 사람들 입장에서야 그것이 은혜인 것이지만, 애초에 유기될 것으로 정해진 사람의 입장에서는 무슨 이런 날벼락이 있나 할 수밖에 없는 이야기다. 그렇기 때문에 역사적으로도 이 민감한 주제를 놓고 논쟁이 끊임없이 진행되었고 시대를 거듭하면서 예정론은 그 내용이 더욱 풍성하면서도 예리하게 다듬어졌다.


한병수 교수님의 <거인들의 예정>은 목회자, 신학생, 일반 성도들이 이해하기 쉽지 않은 ‘예정론’ 교리에 관하여 역사적 관점에서 다루고 있다. 시대를 거치며 예정론이 어떤 형태로 논의되었으며, 그 핵심이 무엇이고, 현재 우리가 이해하고 있는 예정론은 어디에 근거를 두고 있는지 역사적, 성경적으로 이해할 수 있도록 돕는다. 교부시대부터 17세기에 이르기까지 정통 개혁신학의 관점에서 중요한 인물들, 그들의 논거, 성경적 근거를 들어 풀어주고 있다. 그러나 다루는 주제의 특성상 딱딱하고 어렵게 느껴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병수 교수님의 글쓰기 특징이 잘 살아 있어 한 문장도 음미하지 않고는 아쉬워서 앞으로 나아갈 수 없게 한다. 학술적인 글이 이리도 아름다울 수 있구나 감탄하게 될 것이다. 


유한한 인간이 무한하신 하나님의 일을 다 이해할 수는 없다. 그러한 한계 때문에라도 예정을 탐구하는 데 있어서 필수적으로 요구되는 것이 ‘겸손’이다. 또한 우리가 근거로 삼아야 하는 것은 ‘성경’ 외에 다른 것이 되어서는 안 된다. 하나님의 예정을 이해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말씀 외에 다른 것을 통하는 것은 본디 그 의미를 퇴색하게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저자는 그 원칙을 따라 언제나 해설에 앞서 그 울타리를 벗어나지 않기 위해 애쓰며 교리를 안정적으로 풀어낸다. 


아마도 많은 사람들이 예정 교리를 받아들이기 힘들어하는 부분은 선택 교리보다 유기 교리 때문일 것이다. 하나님이 선택한 사람이 있지만, 버린 사람도 있다는 교리는 선뜻 납득하기 쉽지는 않기 때문이다. 믿지 않는 사람에게 겁을 주어 믿게 하려는 술수처럼 보이기도 한다. 어떤 사람들은 그 교리에 반발하며 그런 옹졸한 신이라면 믿을 가치가 없다고 말하기까지 한다. 인간적인 면에서는 그럴 수 있다. 그러나 예정은 어디까지 ‘하나님의 뜻’에 유일한 원인을 두고 있기 때문에 인간의 이해를 전제로 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이해되지 않는 영역을 신비로 남겨두어야 하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많은 장점에도 불구하고 아쉬운 점 몇 가지를 짚을 수 있다. 먼저는 칼빈 신학에 정통한 저자이기에 저자를 아는 많은 독자들은 칼빈의 예정론에 대한 깊이 있는 해설을 기대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다른 챕터에 비해 칼빈의 예정론에 적은 분량을 할애한 것 같은 느낌이 아쉽다. 또한 저자의 학문적 배경 탓도 있겠지만 철저히 정통 개혁신학의 입장에서 예정론을 다루었기 때문에 이 스펙트럼에서 벗어난 예정론과의 비교 연구가 빠져 아쉽기도 하다. 마지막으로는 17세기 이후 예정론을 마지막으로 다루고 있는데, 예정론에 대한 현대적 논의가 어떤 방향으로 이어오고 있는지에 대한 설명이 더 붙었다면 좋지 않았을까 싶다. 자칫 17세기 이후 예정론에 대한 논의가 지지부진한 것처럼 오해될 수도 있고, 예정론의 논의가 발전이 지연된 채로 그 시대에 갇혀 있다는 인상을 줄 수도 있을 것 같다. 아마도 의도가 있어 <거인들의 예정>이라고 시대적으로 한정을 지어놓은 것 같기도 하다.


특별히 정통 개혁산학 전통에 있는 사람들에 있어서 만큼은 예정론과 관련한 역사를 훑으며 내가 이해하고 있는 예정론의 맥락을 제대로 이해할 있는 좋은 책이 출판되었다고 생각한다. 이후에도 보완하여 예정론에 관한 완성판이 개정되어 나왔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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쾌청 신약 - 들음에서 앎으로, 앎에서 삶으로 이어지는 성경 공부
박영호 지음 / 두란노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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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호, <쾌청신약>, 두란노, 2022


#쾌청신약 #박영호 

#성경공부 #신약안내서

#목회자필독서 #두피플 


한줄평 : <쾌청구약> 출간을 기다리게 하는 책이다.


포항제일교회 담임목사로 시무중인 박영호 목사님은 탁월한 목회자일뿐 아니라 신약학자로서도 식견과 실력을 두루 갖춘 선생으로 인정받는다. 새물결플러스 한국 신약학 시리즈 2권 <에클레시아>는 그의 박사학위 논문을 단행본으로 편집하여 출간한 것인데, 독자들 사이에서는 박사 논문의 표본으로 삼을 만큼 엄정하고 체계적인 글쓰기로 정평이 났다. 이후 <다시 만나는 교회>(복있는사람), <우리가 몰랐던 1세기 교회>(IVP) 등을 통해서는 평신도 독자들이 읽기에도 부담스럽지 않은 글쓰기를 보여줌으로써 저자의 글쓰기 스펙트럼이 얼마나 넓은지를 실감케 했다.


<쾌청신약>은 목회자로서 양을 생각하는 목자의 마음과 탁월한 신약학자로서 신약에 대한 농익은 이해를 동시에 잘 반영한 좋은 책이라고 평가하고 싶다. “듣기는 속히 하라”(약1:19)에서 따온 ‘쾌청’은 하나님의 말씀을 읽을 때에 나도 모르게 쏙 빠져들어 빨리 읽고 싶은 마음을 가지고 성경을 읽어가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간절함과 즐거움이 동시에 묻어나는 단어가 ‘쾌청’이다. 신약 그 자체를 즐겁고 명쾌하게, 그리고 분명하게 이해할 수 있도록 돕기 위해 글을 썼고, 그 목적을 훌륭하게 이뤄낸 것으로 보인다. 최소한 독자인 나에게는 읽어가는 순간마다 <쾌청구약>도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했으니 말이다. 좋은 소식은 <쾌청구약>도 머지않은 미래에 만나볼 수 있을 것 같다. 


특별히 이 책의 장점이라 할 수 있는 것은 성경의 ‘이야기적 특성’에 맞추어 풀어나간다는 것이다. 딱딱할 법한 학문적 논의를 놓치지 않으면서도 지루하지 않게 다루고 있으며, 내용을 이해시키기 위해 사용한 예화들도 굉장히 적절하다. 또한 성경의 내용을 설명, 해설하는 책이라기 보다는 성경의 독자가 되는 성도들로 하여금 ‘어떻게’ 성경을 읽어가면 좋을지에 대한 유익한 팁들도 각 장마다 제시되고 있으니 <쾌청신약>과 함께 신약성경을 읽어 간다면 더 넓고 깊은 지혜를 만날 수 있을 것이다. 아마도 나홀로 100독하는 것보다 이 책을 읽으면서 3회 정독하는 것이 훨씬 더 효과적이리라 생각한다. 우리가 ‘어떻게’ 읽느냐에 따라서 성경이 말하는 진의에 더 가깝게 다가갈 수 있을지, 더 멀어지게 될지가 결정되기 때문이다. 


더욱 공감이 되었던 부분은 저자 자신이 성경을 해석하고 글을 쓰는 기본적인 태도에 관한 것이었다. “신앙생활에 있어서, 성경 해석에 있어서, 교회에서 행하는 사역과 가르침에 있어서 우리는 정답을 갖고 있지 않다.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길이 무엇인가 찾아 가는 과정에 있다. 모든 신학은 잠정적이며, 모든 사역은 실험적이다.” 결국 우리가 성경을 읽고 해석하고 알아가는 모든 과정들이 진리에 가 닿는 과정이지 어느 것 하나 ‘그렇다’, ‘아니다’고 결론을 맺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런 자세로 성경을 읽어 갈 때 우리의 태도가 경직되지 않고 진리가 감당할 수 없는 크기로 온전하게 다가올 것이다. 진리를 내 의도에 맞추어 요리할 수 있게 둔다면 그것은 진리가 아니다. 진리는 우리가 가공할 수 없는 재료다.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야 한다.


IVP <일곱 문장으로 읽는 구약, 신약> 세트가 성경을 이해하는 탁월한 시선을 제시한다면, 박영호 목사님의 <쾌창신약, 구약> 세트는 성경읽기 가이드의 좋은 대안이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간결하지만 담을 담은 액기스를 교회와 성도들이 적극활용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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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빙점》 해동 - 소설 《빙점》 최고의 해설서 세움 문학 2
모리시타 다쓰에 지음, 권요섭 옮김 / 세움북스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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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움문학클래식_02

#미우라아야코 #빙점

#모리시타다쓰에 #빙점해동


최근 인문학 렌즈를 통해 성경을 해석하고 적용하여 설교로 연결시키려는 시도들이 많아졌다. 인간에 대한 깊은 이해를 바탕으로 성도들에게 와닿는 설교를 할 수 있도록 돕기 위해서다. 이와 관련하여 인문학이 신자들의 신앙에 미치는 영향 등을 연구한 책들도 다양하게 소개되었다. 세움북스의 세움 문학 시리즈도 그러한 시도의 일환으로 볼 수 있다. 


애초에는 미우라 아야꼬의 <빙점>을 읽고서, <빙점 해동>을 참고해 읽으려고 계획했다. <빙점>을 읽으면서 캐치하지 못했던 내용들을 하나하나 벗겨갈 생각이었다. 그러나 생각보다 스토리 자체에서 짚어내야 할 포인트가 보이지 않아 당황스러웠다. 소설이 재미없어서가 아니라 재미와는 별개로 내가 소설이라는 장르에 익숙하지 않은 탓이었다. 계획은 뒤로 하고 해설서를 다시 읽기 시작했다. <빙점>은 <빙점 해동>을 읽고서, 다시 읽어보는 것이 더 도움이 되겠다는 생각을 했다.


<빙점 해동>이라는 재치 넘치는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미우라 아야코의 <빙점>을 제대로 해동하는 해설서다. 이미 <빙점>은 지난 60년간 국내 베스트셀러이자 스테디셀러로 많은 독자들에게 사랑받고 있다. <빙점 해동>은 국내에 가장 잘 알려진 일본 작가 미우라 아야코의 문학 세계를 완전히 통달한 전문가가 녹여내기 시작하는데 이 소설이 어떻게 만들었고, 또 독자가 어떻게 먹는 것이 가장 맛있는지를 제대로 일러주는 최고의 레서피라고 할 수 있다.


<빙점>은 인간의 내면 깊은 곳의 자리한 지독한 면을 끊임없이 파헤치며 인간의 원죄를 수면 밖으로 끄집어 낸다. 주님은 원수를 사랑하라고 했으나 인간의 죄악됨은 사람을 끝모르는 복수로 이끌어가고 그 끝은 결국 나락으로 귀결된다. 알면서도 끌려가는 불륜의 늪이 가져온 결과와 그 사건의 복수를 위해 날카롭게 갈았던 칼날에 자기 자신이 깊이 베이기도 하는 인간 삶의 참상을 본다. 이 깊은 죄의 늪에서 빠져나올 방법이 있을까. 독자는 자기 안에 도사리는 죄의 쓴 맛을 공유하면서 그 희망의 빛을 함께 찾기 시작한다.


죄에 물든 모든 사람이 갖고 있는 ‘빙점’의 한계, 꽁꽁 얼어붙은 빙점을 녹일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하는 일을 계속함으로써 해동하는 일이라고 말한다. <빙점 해동>의 저자 모리시타 다쓰에는 “희망이란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하는 것”이라고 해설함으로써 미우라 아야코가 <빙점>을 통해 전하고 싶었던 핵심을 잘 요약, 정리해준다. 소설이라는 장르가 갖는 힘, 이야기가 인간에게 미치는 힘이라는 것이 바로 그런 것 아닐까 싶다. 가상의 이야기처럼 멀어보이지만, 실상은 우리가 사는 현실과 맞닿아 있어서 나도 그 소설 속 세계와 무관하지 않음을 자각하게 하는 것. 그리고 한번쯤 ‘고민하게’ 하는 것이 작가의 의도 같다. 


<빙점 해동> 통해서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함으로써 우리 안에 모든 빙점들이 해동될 있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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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야 - 기도로 밤을 뚫다
이규현 지음 / 두란노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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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야 #이규현 #수영로교회

#기도 #금요철야의비밀

#목회자필독서 #두피플 


최근 한국교회에 대한 평가는 ‘기회’보다는 ‘위기’에 가깝다. 어쩌면 앞으로 기회는 없는 것이 아닌가 하는 절망도 느껴진다. 코로나 팬데믹 기간에 교회의 가장 중요한 요소 중에 하나인 공동체라는 개념과 정체성이 모호해졌다. 모임이 법적으로 금지되었고, 법을 어기면서까지 모이려는 교회를, 세상은 이해하려 하지 않았다. 이웃을 사랑하라는 계명은 있지만 현실은 이웃의 생명을 위협하는 행위를 신앙으로 포장한 것으로 받아들여졌고 교회는 비정상적인 집단으로 오해되었다. 이런 와중에 가장 먼저 줄어든 것은 함께 모여 기도하는 시간이었다. 주일예배 만큼은 대면 / 비대면 예배 가리지 않고 확보하려 애썼지만, 시간을 줄여야 한다면 그 외의 예배 시간들이 조정되었다. 그중 금요철야는 가장 우선적으로 전환되었다.


이규현 목사는 다시 철야의 영성을 회복해야 한다고 말한다. 밤 9시에 모여 고작 11시까지 기도하는 시늉을 하는 것이 아니라, 철야 즉 밤을 새워 하나님 앞에 엎드리고, 엎드려 울다 지쳐 잠이 들고, 그렇게 깨면 다시 그 자리가 기도의 자리가 되는 철야의 영성이 회복되어야 한다고 외친다. 편의주리, 편리주의가 만연한 한국교회 그리스도인들이 배부른 영성?을 버리고, 다시금 하나님 앞에 엎드리는 영적 야성을 회복해야 한다는 것이다. 어떤 때는 이전의 금요철야가 그립기도 한 것이 사실이다. 할머니, 어머니 세대들이 방석과 이불을 가지고 교회로 향하는 그림을 추억하는 분들이 적잖다. 기도하지 않으면 버틸 수 없기 때문에 하나님 앞에 엎드려 울기라도 해보자는 심정으로 나간 것이다. 그렇게 문제가 해결되었다기 보다 하나님 앞에 모든 설움을 쏟아 놓는 행위를 통해 그 마음이 위로를 받고 해결을 받았다. 


이제는 부르짖어 기도하는 사람들을 찾기가 쉽지 않다. 고상하게 앉아 묵상기도를 한다든지, 기도문을 외는 것으로 기도를 대체한다든지, 그마저도 머리를 앞뒤로 흔드는 행위가 기도의 전부가 된 시대다. 간이 절이도록 하나님을 찾는 백성이 없으니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실 이유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목회자들은 성도들을 기도하는 자리로 이끌어야 할 영적 책임이 있다. 금요철야 설교를 위해 진액을 짜 넣으며 최선을 다해 준비하고 결연한 각오로 선포해야 한다. 기도하면 좋고 안하면 말고 식의 선포는 지양해야 한다. 그 시간이 아니면 안 된다는 심정으로 열정적으로 선포해야 한다. 은혜 받은 사람은 기도의 문이 열린다. 설교단에서부터 먼저 하늘의 문이 열려야 한다. 그럴 때에 기도의 불길이 강단을 넘어 회중에게까지 전달되고 활활 타오르게 될 것이다ㅏ.


이규현 목사는 철야기도가 회복되어야 하는지, 회복을 위해 수영로교회는 무엇을 하고 있는지, 또한 기도의 결과로 어떤 은혜들이 있었는지 현장의 에너지를 그대로 전하고 있다. 정필도 원로목사는 살아 생전에 기도의 사람으로 알려져 있다. 유지를 받들어 이규현 목사의 중심에도 기도 영성이 자리 잡고 있다. 기도 외에는 교회도, 목회도 수가 없다. 오직 하나님 앞에 무릎 꿇는 열심만이 한국교회를 다시 살게 하는 원동력이 된다는 확신을 갖고서 외친다. 철야가 답인가?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철야의 영성이 한국교회의 위기를 타개할 여러 방법 중에 하나는 있을 것이다. 한국교회의 부르짖음이 사라진 위기를 철야기도의 영성을 되찾고, 부르짖음을 통하여 기회로 바꿀 있어야 것이다. <철야> 한국교회의 꺼져가는 철야 영성에 기름을 부어 되살리는 역할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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