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철학자들의 서 - 기이하고 우스꽝스러우며 숭고한 철학적 죽음의 연대기
사이먼 크리칠리 지음, 김대연 옮김 / 이마고 / 2009년 11월
평점 :
품절


 

‘철학자들의 죽음’이라는 테마 아래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부터 현대의 철학자까지 (거의) 연대순으로 훑은 책이다. 저자 사이먼 크리칠리는 “이 책을 쓰면서 고대철학 연구자들이 ‘독소그라피doxography’ 즉 ‘학설지學說誌’라 부르는 것을 염두에 두었”다고 하고, “그것은 철학자들의 생애와 주장, 신조, 때로는 죽음까지 다룬 해설서를 의미한다”고 한다. 저자의 말 그대로 견유학파의 ‘디오게네스’가 나오는 장에서는 그의 생애와 주장, 신조, 죽음까지 두루 다루어짐을 엿볼 수 있다. 크리칠리의 권유에 따라 고대에서 현대로 읽어나가면 이 책은 (머릿속을 좀 헝클어뜨리는) 한 권의 철학사가 된다(이렇게 읽으면 고대 그리스에서 로마, 중세, 르네상스기, 근세, 근대, 현대에 이르며 철학사상과 그와 결부된 죽음관의 변화를 일별할 수 있다). 이와 다르게 앞뒤 순서 없이 아무데나 재미있게(!) 읽으면 흥미로운 철학인명사전이 될 테다(크리칠리가 먼저 자신의 책은 ‘철학의 역사라기보다는 철학자들의 역사’에 가까운 책이라고 짚어두고는 있지만).
그 자신 철학자이기도 한 저자는 책을 시작하며 제사題辭에서 밝힌다.

내가 출판업자라면, 짧은 설명과 함께 다양한 죽음을 기록해놓은 인명록을 만들고 싶다. 죽음을 가르치는 사람은 삶을 가르치고 있는 것이다.

몽테뉴의 <철학을 한다는 것은 곧 죽는 법을 배우는 것이다>라는 글에서 따온 문장이다. <<죽은 철학자들의 서>> 집필의 구체적인 동기와 목적을 여기에서 찾을 수 있다. 한데 동기보다 목적이 더 강해서인지 ‘기이하고 우스꽝스러우며 숭고한 철학적 죽음의 연대기’라는 부제를 달았음에도, 이 책은 (몇몇의 예외 인물이 있기는 하지만) 철학자들의 죽음이 ‘삶을 가르치고 있’음―숭고한 철학적 죽음 쪽에 무게를 더 두고 있다.

*철학을 한다는 것은 곧 죽는 법을 배우는 것이다._키케로
*죽는 법을 배운 사람은 노예가 되지 않는 법을 배운 셈이다._몽테뉴
*잘 죽는 법을 알지 못하는 자는 잘 살지도 못한다._세네카


이와 같은 책머리의 문장들이 줄곧 이 책을 이끌어나가고 있는 것이다. 190여 명(동양 고대의 철학자 6명, 10명 안짝의 여성 철학자 포함)에 이르는 철학자를 다루는 와중에 크리칠리는, 죽음이 완전한 끝이라고 생각한(영원불멸을 원치 않은) 에피쿠로스학파의 죽음관을 지지하기까지 한다.

아리스토텔레스 이래로 철학이 약속해주는 가장 고결한 행복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관조적 삶bios theoretikos이다.

같은 맥락에서 그의 신념에 부합될 만한 문장이다. 동의할 만하다. 이처럼 에피쿠로스학파의 죽음관을 지지하며 죽음 앞에 의연할 듯 보이며, 곳곳에서 시니컬하게 구는 저자 크리칠리는 기이하게도 이 책 끝에서 자신의 스승 자니코 다음에 자기자신을 넣어놓았다. 두고 볼 일이다. 그의 말대로 정말 ‘곰’에게 쫓겨서 죽는 최초의 철학자가 될는지!

나오는 철학자가 워낙 많아서 색인이 절실했던 책이다. 게다가 단편적으로 다루어진 철학자들이 좀 있어서 아쉬웠다. 그럼에도 곁에 두고 생각날 때마다 다시 펼쳐 보고 싶은 책이다. 크리칠리가 워낙 폭넓게 찾아보고 집필해서인지 눈길을 오래 끄는 문장이 많았다. 일부분만 옮겨 적으면 이렇다.

*더 적은 것으로 설명할 수 있는 것을 더 많은 것으로 설명하지는 말라._오컴
*몽테뉴를 읽을 때 나는 전적으로 몽테뉴가 아니라 나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_파스칼
*우주라는 이 거대한 책은 철학으로 쓰여 있으며, 그것은 우리의 끊임없는 관찰을 통해 드러난다.
_갈릴레오 갈릴레이
*태양과 죽음은 오래 쳐다볼 수 없다._라로슈푸코
*자유인은 결코 죽음에 대해 생각하지 않는다. 그의 지혜는 죽음에 대한 성찰이 아니라 삶에 대한 성찰이다._스피노자
*스피노자여, 밤에도 저주받고 낮에도 저주받으라. 잠잘 때도 저주받고 일어날 때도 저주받으라. 나갈 때도 저주받고 들어올 때도 저주받으라._1656년 유대교 회당에서 파문당할 당시의 글
*인간은 죽을 때가 아니라 태어날 때 애도 받아야 한다._몽테스키외
*모든 종교는 도덕적으로 악합니다. 만일 어떤 사람이 아무개가 신앙심이 깊다는 말을 듣는다면, 그는 자신은 독실하면서도 아주 착한 사람들의 사례를 알고 있지만 그놈은 틀림없이 악당일 거라고 결론내릴 겁니다._흄
*사람이 자신에 대해 길게 이야기를 늘어놓는 것은 허영심 때문이다. 그러므로 나는 짧게 말하려고 한다._흄
*내 안의 이 신비로운 길을 가라. 과거에도 미래에도, 이 세계의 영원성은 우리 안에 있으며, 다른 어디에도 없다._노발리스
*결혼이란 뱀의 무리 속에서 뱀장어를 발견하길 꿈꾸며 눈을 가린 채 자루 속에 손을 집어넣는 것이다._쇼펜하우어
*내가 좋아하고 할 줄 아는 건 많지 않지만 그중에서도 내가 확실히 가장 잘하는 건 술 마시기다. 나는 많은 책을 읽었지만 그보다 더 많은 술을 마셨다. 글 쓰는 사람 대부분이 나보다 훨씬 많이 썼지만, 술 마시는 사람 대부분보다 나는 훨씬 더 많이 마셨다._기 드보르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한국의 맹금류
채희영 외 지음 / 국립공원관리공단 / 2009년 3월
평점 :
품절


 

두려움이 없는 단독자, 방랑자이자 뛰어난 사냥꾼, 비행사.

목소리가 좋거나 때깔이 좋거나 사람을 잘 따르거나 하는 다른 새들보다 더욱 끌리는 이유다. 그간 관심을 갖고 지켜본 맹금류로는 말똥가리, 솔개, 새매, 참매, 흰죽지수리, 황조롱이, 매 등이 있는데, 이들이 수리과와 매과로 나뉜다는 건 이제야 알았다. 수리처럼 생긴 놈이 매과에 들어가 있고, 그 반대인 경우도 허다한 걸 보고 고개를 갸웃거렸고, 거기에 더해 콘도르과와 몇몇 과가 더 있다는 것도 알았고. 맹금류에도 텃새와 나그네새가 있다는 것까지.

불만 하나! 썩은 고기나 먹는, 덩치 큰 독수리는 맹금류에서 빼면 안 될까. 

불만 둘! 책이 너무 딱딱(하드커버라서 그런가)하다. 삽화는 일본 작가의 것이고, 사진은 풍부하지 못하고.

그래도 국내 필자들의 첫 시도라고 하니 그쪽으로 매를 한 마리 날려 보낸다. 그 매가 국립공원관리공단 위를 선회할 것이다. 러시아 민담에도 나오듯 기분이 좋을 때 누군가의 머리 위로 매가 빙글빙글 돈다고 하니까. 

맹금류를 뜻하는 Raptor는 라틴어 Raptre에서 왔단다. Raptre는 '잡아서 가지고 가다'라는 뜻이다. 적확하다. 

그나저나 지지난 주 북한산 오르던 길에 본 그놈은 말똥가리였을까, 솔개였을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숲은 누가 만들었나 뒹굴며 읽는 책 3
윌리엄 제스퍼슨 지음, 윤소영 옮김, 척 에카르트 그림 / 다산기획 / 1994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한마디로, 숲은 햇빛과 바람과 비와 천둥과 흙과 동물들, 세균들, 그리고 수많은 씨앗들이 서로 어울려서 만든 것이다. 이 책은 빈 땅이 처음에는 풀밭이 되었다가 이내 소나무 숲으로, 다시 활엽수들의 숲으로 왜 그리고 어떻게 바뀌어가는지를 친절하게 설명하고 있다. 더불어, 이러한 숲의 변화에 맞춰 거기에 사는 동물들의 종류 또한 차츰 달라진다는 것까지 말이다. 

<<숲은 누가 만들었나>>에서 저자가 관찰하고 탐구한 숲은 '미국 매사추세츠에 있는 한 활엽수림'이다. 하지만, 저자는 말한다. 

그렇다고 매사추세츠에 있는 숲에 대한 것으로만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이 세상 어디서나 숲은 모두 같은 과정을 거쳐 태어나고 성장하기 때문입니다. 

재미있는 사실 한 가지는 숲을 만든 누구에 '사람'은 '결코' 들지 못한다는 것. 하기야 지구가 생겨난 이후로 지금까지 우리들 사람이 뭐 하나 제대로 만든 게 있었나. 그래도, 숲을 둥지처럼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반드시 '뒹굴며' 읽어봐야 할 책―<<숲은 누가 만들었나>>.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해적 이삭 2 - 알리스는 어디에
크리스토프 블랭 지음, 김이정 옮김 / 세미콜론 / 2006년 9월
평점 :
절판


 

<<보물섬>> <<신밧드의 모험>> <<해저 2만리>> <<80일간의 세계일주>>류의 해양만화. 어느 한쪽에 치우친 것은 아니고 청춘의 방랑과 사랑, 낯선 세계와의 만남 등이 알맞게 버무려져 있다. 범선으로 하는 항해, 해적들의 거친 세계, 남극 풍경, 스케치하듯 그려낸 19세기(?) 프랑스의 도시 풍경이 볼 만하다. 작가가 (해군 출신이라 많이 헤매진 않았겠지만) 만화 그리느라 공부 좀 했을 듯하다. 재미도 재미고, 범선의 구조는 물론 당시의 도시 풍경까지 고증해가며 자신의 만화로서 재구축해야 했을 터이니.

그나저나 블랭 씨는 요새 뭘 하시는지. 프랑스 아마존에서 찾아보니 2005년에 5권을 내놓고는 여태 소식이 없다. 이런 추세라면 이제 시작하는 올해 아니라 내년에도 <<해적 이삭 3>>을 보기는 힘들겠다.



얼른, 이다음 6권도 내놓으시길.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책이 되어버린 남자
알폰스 슈바이거르트 지음, 남문희 옮김, 무슨 그림 / 비채 / 2009년 10월
평점 :
절판


 

책이 '운명을 품고' 있음을 아주 잘 보여주는 소설이다. 1) 돈처럼 돌고 돌거나 2) 죄수처럼 갇히거나 3) 물, 불 등에 요절당하거나……. 이 소설에 등장하는 책은 1), 2)의 운명이다. 어린 시절부터 책에 점점 더 미쳐가 주위 사람들에게 '책벌레, 독서광, 이야기광'으로 찍힌 남자. '여행을 할 필요를 느끼지' 못하고 그 점에 관해 친구들과 논쟁하고 날 때면

굳이 집 밖으로 나갈 필요는 없다. 네 책상에 머물러 귀를 기울여라. 귀기울 것도 없이 그저 기다려라. 기다릴 것도 없이, 완전히 조용히 그리고 홀로 있으라. 세상이 자청해서 너에게 본색을 드러내 보일 것이다. 세상은 달리 어쩔 수가 없다. 그것은 황홀함에 취해 네 앞에서 몸을 뒤틀 것이다.(<<악은 인간을 유혹할 수는 있지만 인간이 될 수는 없다>>(프란츠 카프카, 솔, 1998), 191쪽)

이따위 카프카의 글로 갈음하는 남자. 책을 자신과 관계하는 모든 것으로 치환할 수 있는 그 남자(결혼했지만 별거 중이다), 이름조차 비블리Bibli(책Biblio에 가까운)다. '그 책'에 홀리고 만 그는 자기 이름에 걸맞게 (카프카의 소설 <변신>의 그레고르 잠자가 벌레가 되듯) 책으로 변신해버린다. 그 후 청소부, 도서관장, 편집자, 소설가, 장서가 등을 만나며 '그 책' 나름의 운명을 겪게 되는데……. 동물성의 '벌레'(잠자)가 집 밖으로 나가지 못하고 죽은 데 반해 사물성의 '그 책'(비블리)은 도서관에서 시작하여 무덤 속까지 두루 돌아다닌다. 가히 놀랍다. 한데 '그 책'이 사람 생가죽 장정에다 펄펄 살아 있는 사람의 생각으로 들끓는 책이라니, 더욱 그로테스크하다. 이 점에 입각하여 적는다.

*제목: 너무 단편적이다. 원제 그대로 (좀 더 함의적으로) '그 책Das Buch' 정도로 붙이면 안 되었나? '그 책'에 사로잡힌 자는'책이 되어버린 남자' 비블리만이 아니다. 로마나 부크Buch(이 또한 책이다!)라는 여자도 등장하지 않나.

*삽화: 지나치게 많은 데다 톤이 제각각이다. 책 전체 분위기를 산만하게 만들고 있다.

그로테스크 미학의 관점에서 보니 그렇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사악한 책'의 천로역정은 볼 만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